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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인재보다 소중한 시스템 경영

김수욱 | 35호 (2009년 6월 Issue 2)
기업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재무 안정성, 마케팅 능력, 독특한 조직 문화, 첨단 시스템 도입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최고경영자(CEO)의 강력한 리더십을 포함한 핵심 인재의 중요성이 앞서 언급한 요인들을 능가한다고 생각한다.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핵심 인재는 기업 경쟁력과 기업 가치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러니하게도 인재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한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존재하듯, 기업 경쟁력의 원천인 핵심 인재가 신변 문제로 조직을 떠나거나 다른 경쟁사로 옮겨가면 그 기업의 미래는 어떨까? 그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민간 기업과 달리 공기업은 특히 경영진의 임기가 짧다. 길어야 최대 3년이고 1, 2년 안에 CEO나 임원이 바뀌는 일도 흔하다. 경영진의 잦은 교체는 일관적이고 책임감 있는 정책 추진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특히 신·구 최고 경영진의 경영 철학이 판이하게 다르거나, 경영 성과에 큰 차이가 있다면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하다. 결국 기업의 장기 경쟁력이 크게 훼손된다.
 
핵심 인력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 경영이 공기업에 꼭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누가 들어오고 나가느냐에 상관없는 안정적인 체제를 만든다면 핵심 인재 유출이나 변동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많은 경영 전문가들이 “핵심 인력이 없어야 기업이 장수할 수 있다”고 조언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몇몇 핵심 인력이 주도하는 경영에서 조직 전체가 힘을 내도록 하는 방법이 바로 시스템 경영이다.
 
스웨덴 금융회사 스칸디아는 시스템 경영에 성공한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은 재무제표를 비롯한 회사 내부 지적 자본을 계량화한 후 주주들에게 공개한 최초의 회사였다. 이를 통해 고객과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고, 조직 내 업무 프로세스의 효율성도 크게 증가시켰다.
 
동부그룹도 시스템 경영을 추진하는 기업이다. 동부는 특정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각자 맡은 일에만 매진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을 직원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감독자가 없어도 직원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동부는 업무 관리 과정을 시스템화했고, 직원들이 이 개념을 이해하도록 교육도 끊임없이 실시하고 있다. CEO, 임원, 직원 등 세 그룹이 함께 지식 포럼을 가지는 일도 잦다.
 
시스템 경영의 많은 장점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 경영에 편견을 갖고 있다. 어렵고 복잡하며 일부 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시스템 경영의 개념과 필요성만 이해한다면 누구나 시스템 경영을 시도할 수 있다. 시스템 경영의 대표적 방법은 서비스 청사진(service blueprint)이다.
 
서비스 청사진은 제품 및 서비스가 고객에게 도달하는 전 과정을 2차원 평면에 그리는 방법이다. 즉 고객이 매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나갈 때까지의 모든 활동을 보여주는 도식이다. 이때 고객과 직접 상대하지 않는 부서에서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꼭 포함시켜야 한다.
 
서비스 청사진은 2가지 효과를 준다. 첫째, 고객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서 및 고객과 직접 접촉하지 않는 지원 부서를 구분해 각 부서의 전략 및 성과 측정 지표를 설정하는 근거를 마련해준다. 둘째, 원활한 서비스 제공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 즉 실패 가능점(fail point)과 지연 가능점(delay point)을 점검해 핵심 성공 요인을 파악하고, 사전 위험 관리 및 품질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서비스 청사진은 조직 내 여러 부서들이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하며, 현재 서비스가 어떤 식으로 고객에게 전달되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때문에 각각의 부서에서는 자기 부서 내부에서 개선할 점 및 다른 부서와 협력해 개선할 점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각각의 부서가 자신의 핵심 기능을 서로 비교하는 과정에서 핵심 인력이나 특정 부서에 지나치게 쏠린 업무를 파악하고, 이를 다른 부서로 이전하거나 새로운 서비스 흐름도를 만들어 조직 내 협업을 강화할 수 있다. 기업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서비스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며, 협업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점이야말로 시스템 경영의 최고 묘미다.
 
공기업은 민간 기업보다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부서 이기주의가 만연할 여지가 많다. 업무 프로세스의 속도 또한 느린 편이다. 하지만 올바른 시스템 경영 체제만 구축한다면 민간 기업보다 훨씬 큰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공기업 조직원들이 갖춰야 할 중요한 역량이 시스템 경영에 관한 사고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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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욱

    김수욱kimsoo2@snu.ac.kr

    서울대 경영대 교수

    김수욱 교수는 서울대에서 경영학 학사 및 석사,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경영대학 부학장 겸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 한국 생산관리학회 차기 회장, 한국중소기업학회 및 품질경영학회 부회장, 한국 SCM 학회지 편집위원장, 국방부 군수혁신 위원회 위원, 국토교통부 국가교통정책조정 실무위원회 위원,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육성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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