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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생산방식 글로벌화

‘Toyota Way’ 같은 ‘Korean Way’를…

김기홍 | 30호 (2009년 4월 Issue 1)
통합현장혁신(Integrated Field Innovation· IFI) 프로그램은 그 동안 우리 기업들이 추진해온 TPM이나 6시그마 등의 정해진 절차와 기법으로 체계화된 혁신 프로그램과 달리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는’ 혁신 활동이다.(DBR 28호 참조)
 
이는 일체의 형식을 버리고 ‘문제’ 자체에 관심을 갖는 데서 출발한다. 이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현장에서 찾아내며, 문제를 해결한 뒤 또다시 새로운 문제에 집중한다. 이러한 반복되는 개선 활동 사이클 속에서 혁신팀은 과제 도출 능력과 문제 해결 역량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 또 이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고, 장애 요인을 제거하며, 개선 활동을 지속하는 데 집중한다.
 
IFI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각 기업에 존재하는 문제 형태에 따라 문제 해결 기법과 절차를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다. 또 기업 문화와 구성원 역량에 적합한 과제 도출 능력과 문제 해결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기업의 문화적 특성과 기질, 구성원들의 정서, 문제를 보는 시각에 맞춰 문제 해결 패턴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다 보면 IFI 활동 자체가 기업 문화와 경영 철학에 맞는 혁신 체계로 자리잡는다.
 
이처럼 기업 문화와 구성원들의 정서를 반영하면서 꾸준히 진화해 나가는 IFI는 민족적 기질과 문화적 기반, 역사적 배경을 달리하는 해외 생산 기지에 적용될 때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글로벌 생산 방식의 의미와 필요성
내수 시장이 제한돼 있고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필연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기술과 지식을 바탕으로 해외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글로벌 경영은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10여 년간 국내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은 눈부셨다. 한국 기업들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 생산 기지와 판매망을 구축하고,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며 코리아의 브랜드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최고 경영진은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경쟁력 있는 제품과 품질 그리고 생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현지 문화와 정서, 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지화(localization)가 전제돼야 한다. 또 세계 어느 곳에 있는 공장이든 전 세계적으로(globalization) 조직 구성원들에게 하나의 공통된 가치와 원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세계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현지 국가의 기업 풍토를 존중하는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경영 방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지금까지 이어온 기업의 가치 체계와 문화적 강점, 경영 이념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글로벌 구성원들을 강하게 묶어주는 새로운 가치 체계를 찾고 있다. 도요타는 2001년 기존의 핵심 가치를 ‘도요타 방식(Toyota Way)’으로 집약해 창업 이념과 경영 철학을 새로운 글로벌 시대에 맞게 재구성했으며, 이를 토대로 글로벌 도요타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면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영은 국내 생산 기지와 해외 생산 기지 간의 문화적 아이덴티티 및 가치 공유에 있어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 동남아, 유럽 등에 진출한 국내 기업체의 해외 생산 기지를 방문해보니 현지 주재원들과 현지 채용 직원들은 ‘한국식은 안 된다’는 문제를 한결같이 지적했다. 한국에서 적용했던 관리 방식과 생산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뚜렷하게 현지 실정에 맞는 생산 방식과 관리 방식을 도입한 기업도 드물었다.
 
도요타 출신의 한 컨설턴트는 생산 방식의 글로벌화에 대해 얘기하던 도중 “중국 공장에서는 5S 활동을 납득시키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땅이 넓고 공간이 많다 보니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필요성 자체를 납득시키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반면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도요타 출신들은 도요타 방식밖에 모른다”고 말했다. 어떤 문제든 도요타 방식 속에서 해답을 찾고 적용하려 들기 때문에 현장의 정서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더라는 불만이다. 도요타는 글로벌 구성원들과 도요타의 가치와 원칙을 공유하는 데 강력한 도구가 되는 도요타 생산 방식(Toyota Production System·TPS)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강력한 도구를 갖고 있어도 정작 그 가치를 실행하는 데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어떤가? 해외 생산 기지에 적용할 수 있는 우리만의 생산 방식이 있는가? 기업 문화와 경영 철학, 가치 체계와 실행 체계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글로벌 문화로 성숙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갖고 있는가?

한국식 생산 방식의 해외 적용 성공 사례
해외 생산 현장에서 한국식 생산 방식을 적용해 글로컬리제이션을 이뤄낸 국내 기업의 사례를 살펴보자. 2008년 벨기에에 진출한 국내 A기업은 현지 생산 현장에 IFI 활동을 적용했다. A기업은 유럽과 미국, 동남아, 중국 등에 생산 기지를 보유한 글로벌 기업으로, 한국인 주재원 파견을 최소화하고 철저하게 현지 인력을 채용한다는 경영 전략을 갖고 있다.
 
벨기에 진출 이전 A기업은 현지 역사와 문화는 물론 사고방식이나 기질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지만, 정작 들어가 보니 한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우선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는 탓에 직업에 대한 이해가 국내와 크게 달랐다. 현지 직원들은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3시만 되면 칼같이 퇴근했다. 용접기의 전원을 켜둔 채 서둘러 퇴근하는 직원도 있었다. 퇴근 시간을 10분만 넘겨도 반드시 초과근무 수당을 받아갔다.
 
정해진 작업이 아니면 전혀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일도 없었다. 따로 지시를 내리면 지시받은 일만 하고, 지시받은 일에 시간이 소요되면 평소 하던 일상 업무를 방치했다. 한번은 현장에 무질서하게 쌓인 부품들을 정리 정돈하기 위해 지정된 장소에 부품을 보관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다음 날 여전히 부품들이 방치돼 있었다. 담당자는 지정 장소를 표시하는 선이 그려져 있지 않아 정확한 장소를 몰랐다고 변명했다. 선을 그려주기로 한 부서에서는 선을 그릴 페인트가 떨어져 주문해 받기까지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현장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처럼 A기업의 IFI 활동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어야 했다. A기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혁신팀을 꾸려 현장 직원들을 만났다. 현장 직원들은 생산 관리에 대한 이해도, 작업 역량도 많이 부족했다. 개선 활동을 위한 문제 의식이나 개선 기법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었다. 국내 공장의 반장급에 해당하는 리더가 있었지만, 개인주의 성향 탓에 제대로 된 작업 관리나 지시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A기업은 우선적으로 리더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리더들의 직무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작업 안전과 정리 정돈, 설비 관리, 생산 관리 등 20여 개 과목의 생산 기초 이론을 정리해 매주 수요일 ‘수요 아카데미’를 열었다. 이와 더불어 IFI 활동을 상세히 설명하고, 개선 경험이 없는 현장 수준을 감안해 간단한 실행 절차를 만들었다. 잦은 안전사고와 정리돼 있지 않은 부품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정리 정돈 작업도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A기업은 현지인 채용을 원칙으로 슈퍼바이저와 반장급 리더를 먼저 교육해 이들이 자체적으로 현장을 실행,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혁신팀이 작업반 하나하나를 방문 지도하는 형태로 각 작업반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인 중심의 생산 방식에서 벗어나 토론과 협업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서면화된 절차나 지시보다는 리더들이 직접 현장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역량 강화 교육도 실시했다. 직원들이 변화의 필요성과 개선 활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현장 교육을 병행한 것이다.
 
혁신팀은 ‘개선’에 대해 ‘각 작업반의 일을 쉽고, 편하고, 안전하게 바꾸는 것’으로 정의하고, 각 작업반에서 가장 위험하고 불편한 일들을 찾아보도록 토론을 시작했다. 그리고 직원들이 토론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도록 보장했다. 두 달이 지나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원들이 먼저 토론에 참여해 개선 활동을 시작했다. 작은 개선이었지만 서로 토론하고 협의하면서 작업이 쉬워지고 위험 요소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혁신팀은 작업자들이 문제를 찾아내면 즉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개선 절차와 방법을 교육하고 지원이 필요한 사항을 함께 협의했다. 개선 결과는 ‘수요 아카데미’에서 모든 리더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되자 초기에 부정적이던 직원들까지 하나둘씩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을 10분만 넘겨도 초과근무 수당을 챙기던 직원들이 스스로 남아 오후 5시가 넘도록 토론하기도 했다. 이처럼 벨기에 공장의 혁신 활동은 한국식 생산 방식의 원칙과 방향을 잃지 않으면서 현지 공장에 적용할 수 있는 벨기에식 개선 활동들로 채워졌다. 한국 공장과 벨기에 공장이 같은 활동을 다른 방식으로 하게 된 것이다.

IFI,
한국식 글로벌 생산 방식으로
글로벌의 개념은 외국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그 문화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다. 서로 다른 점을 ‘차이’가 아닌 문화적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고, 반드시 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원칙에 공감하며, 목표와 방향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향한 공동의 노력 속에서 문화와 기질의 다양성이 발전적으로 기여하는 체제야말로 모두가 꿈꾸는 글로벌 기업의 모습이다.
 
이런 측면에서 통합현장혁신(IFI)은 글로벌 현장의 혁신 방법론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IFI는 획일화된 절차를 강제로 적용해 기존 생산 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낭비, 비효율, 불합리를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체제 자체를 구축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구성원의 특성과 기질에 따른 다양성은 고스란히 수용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문화적 다양성이 공유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 그대로 투영된다.
 
IFI는 결코 어려운 기법을 새롭게 도입하는 게 아니다. 혁신의 원점으로 되돌아가 우리가 실패를 거듭한 이유를 생각해보고, 문제점을 찾은 뒤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가진 역량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더 이상 선진 기업들에 의지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를 믿고 우리의 강점이 드러나는 문제해결 활동을 추진해보자. 이것이 바로 IFI의 궁극적인 사상이요, 한국식 생산 방식의 완성을 위한 첫걸음이다. 절차와 기법에 연연하지 않고 구성원의 다양한 기질과 역량을 수용해 역동적으로 발전해가는 혁신 체계는 단순히 ‘한국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혁신 체계의 완성을 위한 출발이 될 것이다.

편집자주 성과 개선 및 원가 절감 전문 컨설팅 회사인 네오플럭스가 기업이 원가 절감을 체질화할 수 있는 방안을 연재합니다. 기업 현장의 실제 사례를 통해 원가 절감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변화 관리 △운영 개선 △공급망 개선 3부문으로 나눠 제시합니다. 원가 절감에 관한 기업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이드라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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