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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법 말고 핵심을 배워라

김수욱 | 28호 (2009년 3월 Issue 1)
필자는 지난해 정부투자기관의 경영 평가를 위해 모 공기업을 방문했다. 보통 기관을 방문하기 전에 그 기관이 제공하는 경영평가 보고서를 사전에 검토한다. 필자는 보고서에서 ‘효과적인 위험 관리를 위해 6시그마 기반 위험관리 시스템을 구축, 활용하고 있다’는 문구를 접했다. 6시그마 기법을 어떻게 위험관리 시스템에 구축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궁금했던 필자는 해당 공기업의 부사장에게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필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부사장은 관련 부서 팀장에게 설명을 넘겼고 그 팀장 역시 내용을 잘 모르는 듯 급히 과장 및 실무 책임자를 호출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필자에게 돌아온 답은 “추후 서면으로 알려드리겠다”가 전부였다.
 
이런 해프닝은 비단 이 공기업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 공기업은 열풍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경영 혁신 기법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변화와 혁신이 정부의 정책기조로 강조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6시그마, 균형 성과표(BSC), 전사적 자원관리(ERP), 고객 관계관리(CRM) 등의 기법을 무분별하게 도입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기법들은 분명 조직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훌륭한 혁신 도구다. 특히 6시그마와 BSC는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1000대 기업의 약 40%가 도입했을 정도로 전 세계 기업이 널리 사용하고 있는 성과 관리법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이에 대해 ‘과거 75년 경영학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경영관리 툴’이라는 다소 과장된 평가를 내렸을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 기법들을 도입해 성공을 거둔 기업은 30%에 불과하다. 혁신 기법의 도입 및 활용에 들어가는 비용과 인력 또한 상당하다. 경영진이 실질 인사권과 예산 집행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민간 기업에서조차도 상당한 사전 준비와 지속적인 변화 관리를 진행해야만 성공할 정도로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니 공기업이 첨단 기법을 도입해 실질적인 성과를 이뤄내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에 대한 참고 사례가 바로 보잉과 유니바 등이다. 세계 최대 항공우주업체인 보잉은 상용기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존 시스템을 대형 및 중형 컴퓨터 시스템군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ERP를 도입한 보잉은 쓰디쓴 실패를 맛봤다. ERP 도입에도 불구하고 주요 관리자가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지 않다 보니 과거 방식으로 부품을 요청하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새 시스템이 요구하는 방식을 따르기보다 자기 방식대로 작업 순서를 바꾸는 관리자도 많았다. 이 모든 일이 겹치면서 보잉은 극심한 부품 공급 부족과 업무 혼란에 시달려야 했다.
 
미국 워싱턴 주에 위치한 석유화학 유통업체 유니바의 사례도 비슷하다. 1990년대 초반에 유니바는 심한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객 획득, 리더십 효율성 등 34개의 측정 지표를 담은 BSC 기반 리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BSC가 당면한 재정 위기를 극복해 줄 것이란 경영진의 기대와 달리 유니바는 BSC 구축 후 이전보다 3배나 많은 16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결국 유니바는 리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을 실시한 지 불과 2년 만에 이를 전면 철회하고 기존의 기업 운영 방식으로 회귀했다. 현재는 네덜란드의 로얄 파크외드(Royal Pakhoed)가 유니바를 인수했다.
 
일본의 내구 소비재 생산업체 빅뱅도 마찬가지다. 1000명 규모의 직원을 보유한 빅뱅은 업무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혁신적인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하고 인사·급여·재무·수주관리 등 여러 기능을 연계시킨 ERP 시스템 구축을 시도했다. 그러나 ERP 도입 과정에서 ERP가 제공하는 업무 개혁 모델이 회사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취소했다.
 
선진국 민간 기업의 이러한 실패 사례는 현재 국내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 및 산하 공기업들이 도입을 추진하는 경영 혁신 기법의 상당수가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첨단 혁신 기법을 도입한 뒤 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앞의 실패 사례에 다 나와 있다.
 

첫째, 진정한 혁신 전도사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혁신 기법은 경영층이 제안하고 경영층의 지시에 따라 실무진이 실행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혁신 기법을 제안하는 경영층이 일반 조직원보다 그 기법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혁신 기법의 추진 방법, 조직 구성, 예산 확보, 자원 할당, 일정 수립, 모니터링, 위기 관리, 성과 평가를 포함한 전략적 마스터플랜 또한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실무진이 어느 정도의 방향 감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작업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당 기간의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법을 도입할 때 어느 정도의 부정적인 결과는 피할 수 없다. 경영진은 이 부정적 결과가 궁극적으로는 중장기적 성장의 출발점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구체적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제시하지 못하면 부정적 결과에 대한 조직 구성원의 반감과 혁신 피로감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둘째,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사전 준비는 크게 △회사가 처한 현실과 혁신 기법의 효과에 대한 철저한 분석 △조직 내 공감대 형성 △의사결정 상의 문제점 제거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유니바는 재무 위험에 직면한 상황에서 상당한 투자금을 필요로 하는 경영 기법을 도입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가에 대해 신중히 판단하지 않았다. 최근과 같은 글로벌 경영 위기에서는 기업 안팎의 자금 사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수적이다.
 
또 혁신 기법을 도입하기에 앞서 이 기법이 우리 조직에 왜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전사적인 공감대부터 형성해야 한다. 어느 조직에서건 구성원들은 대체로 변화를 싫어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기법을 도입한다 해도 조직의 구성원들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효과를 보장하기 어렵다. 새로운 혁신 기법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구성원들의 전문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특히 혁신 기법에 대한 전담 인력을 두기 어려운 중소기업에서는 교육 프로그램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의사 결정 과정의 문제점도 혁신 기법 도입 이전에 제거해야 한다. 몇몇 핵심 인력이나 조직 위주로 조직의 의사 결정이 이뤄질 경우 의사 결정 과정에서 부서 간의 알력이 상당히 커진다. 이 와중에 성급하게 혁신 기법을 도입할 경우 기존의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고 조직이 부담해야 할 비용만 커진다. 의사 결정 과정을 대폭 축소해 유연하고 빠르게 혁신 기법을 확산시킬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자사 환경에 맞는 솔루션을 선정해야 한다
혁신 기법을 도입할 때 실수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과정이 바로 소프트웨어 구매다. 이때 많은 솔루션 공급자 가운데 신뢰할 만한 공급자를 선택하는 것이 관건이다. 최적의 솔루션 공급자를 선택하려면 그 공급자의 비전, 소유한 첨단기술, 회사의 재정 및 기능별 내부 역량, 서비스 지원, 과거의 사업 실적 등을 기준으로 철저한 시장 분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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