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한발 늦은 남한산성의 ‘혁신’

22호 (2008년 12월 Issue 1)

전쟁은 국가 또는 사회, 단체, 개인의 운명을 건 싸움이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생명’과 ‘행복한 삶’이다. 전쟁은 생명과 행복을 걸고 싸우는 것인 만큼 사회의 다른 어떤 경쟁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치열한 경쟁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은 빠른 변화를 낳는다. 그래서 전쟁은 엄청난 비극과 희생을 초래하는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의 곳곳에서 빠른 변화를 야기한다. 20세기 초반의 사례를 보더라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항공산업과 전자, 통신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낳았다. 단 50년 사이에 간신히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제트기로 진화했고, 로켓과 자동유도장치가 개발됐다. 옛날 모토로라 광고에도 나온 워키토키는 휴대전화의 원조라면 원조이고, 요즘은 레저차량(RV)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라고 부르지만 그 원조인 지프도 2차 세계대전이 낳은 발명품이다.
 
그렇다고 인류사회의 발전을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거나 필요악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전쟁이라는 것이 이런 ‘특이한 후유증’을 낳기도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역사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전쟁이 주는 경쟁과 필요에 대한 압박이 변화와 발전을 야기한 원인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참혹하고 끔찍한 전쟁과 패배를 경험하고도 변화를 거부하거나 폐허 위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에 빠져있는 경우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한 사례가 우리 역사에 있다.
 

 
강력한 요새였던 남한산성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남한산성은 서울을 둘러싼 산성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독특하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중요시되었으며, 최근에는 산성 내에서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최대 규모의 건물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남한산성이 중요한 이유는 일단 지리적으로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을 연결하는 최고의 교통 요지에 자리 잡고 있다는 데 있다. 조선시대까지도 중남부를 연결하는 도로는 광주이천안성을 지나 충청, 전라, 경상도로 갈라졌다. 더욱이 지금도 산에 올라보면 알 수 있지만 한강 나루를 굽어보고 있는 남한산성에서는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이 일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남한산성은 요새로서도 강력해서 몽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몇 안 되는 성 가운데 하나다. 1232년 광주부사 이세화가 지휘하는 고려군은 살례탑이 이끄는 몽골군 본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남한산성 공략에 실패한 살례탑은 충주로 내려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수원, 안성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충주는 1차 침공 때 가본 길이었고, 수원과 안성 쪽은 처음 택한 진로였다. 이 때문에 길을 잃었는지, 주변을 직접 둘러보려고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며칠 뒤 살례탑은 용인 처인성에 나타났다가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에 쳐들어 온 침략군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장수로 기록됐다.
 
남한산성의 강력함은 독특한 지형에서 기인한다. 산은 강변 평지에 우뚝 솟아 상대적으로 높고 굉장히 가파르다. 산의 안쪽은 뾰족하고 가파른 봉우리들에 감긴 분지처럼 되어 있는데, 이것이 두 가지 장점을 가져다준다. 하나는 주변의 봉우리들이 자연적인 방벽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보통 산성은 한두 개의 봉우리를 택해 8부 능선을 따라 감는 형태로 건축되는 데 비해 남한산성은 빙 둘러선 봉우리를 따라 쌓았다. 그래서 성 앞의 경사도 대단히 급하며, 측면부의 경사는 6070도가 넘는다.

다른 하나는 분지처럼 형성된 정상부가 넉넉한 주거공간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이곳은 지금도 마을이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넓다. 농성을 하려면 인구와 식량이 필요하다. 장기농성의 경우 산비탈이나 정상부에서 텐트를 치고 거주하는 것과 마을에서 거주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서울에서 가깝고 대규모 병력이 거주할 수 있는 산성으로 이만한 곳은 드물다.
 
기술의 발전이 지형을 극복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 산성에도 약점은 있다. 우선 정상부의 분지를 형성하는 봉우리가 두 겹이다. 두 겹이면 이중의 장벽을 구성하니 더 좋을 것 같지만, 성벽을 바깥쪽 산맥을 따라 쌓으면 너비가 너무 넓어진다. 이런 이유로 안쪽 봉우리를 따라 성을 쌓았지만 바깥쪽 봉우리가 더 높다는 게 문제였다. 높은 바깥쪽 봉우리 쪽에서 적들이 사격할 경우 안쪽 봉우리의 아군 병사들이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바깥쪽과 안쪽 봉우리 사이가 12km가 될 정도로 넓어서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화살과 총의 사거리가 짧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오래 가지 못했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대피했고 청군은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청군은 가파른 성벽을 직접 공략하는 대신 외곽 봉우리에 올라 포대를 설치했다. 여기서 발사한 포탄은 성벽을 넘어 성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성벽 곳곳이 파괴되고 내려앉았으며, 인조가 거주하는 행궁에까지 포탄이 날아들었다.
  
물론 조선군도 포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대포는 우리가 만주족보다 먼저 사용했다. 그렇지만 청군은 조선군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사정거리가 긴 대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기술은 발전하며, 기술 발전으로 대포의 사정거리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것이 조선의 실수였다. 높은 봉우리에서 내려 쏘는 것이므로 사거리는 더 멀어지고 포탄의 위력도 더 강력해졌다.

성벽이 파괴되고 식량도 떨어지자 인조는 청 태종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천년을 지탱해 온 요새이지만 두 겹의 산맥은 이제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그러나 남한산성을 폐기하기에는 산성의 입지나 장점이 아까웠던 것 같다. 그래서 조선 정부는 병자호란이 끝난 뒤에도 이 성을 유사시의 피란처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드러난 약점을 보완해야만 했다. 산성의 보완공사는 숙종 때인 17,18세기 때 대대적으로 행해졌다. 청군이 점령했던 외곽 봉우리에 별도의 작은 성을 쌓고, 봉우리를 마주 보는 성벽에는 대항포대를 설치했다. 한봉성과 남옹성, 장경사 옆 신옹성 등이 이때 보완한 시설들이다.
 
소 잃고 고치려는 외양간도 다시 살펴야
그러면 이 보완공사가 효과는 있었을까. 이후로는 전투가 벌어지지 않아 단언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해 남한산성을 답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옹성의 대항포대는 왜성의 이중성 구조를 원용한 것이다. 안쪽 치의 축성방식도 왜성의 축조방식을 도입한 것이 분명했다. 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상당히 찜찜했다. 이 땅에 왜성이 세워진 것은 임진왜란 때였다. 7년의 전쟁 동안 조명 연합군은 단 한 개의 왜성도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 소문이 나자 왜성의 견고함에 놀란 명나라 장수들까지 견학을 왔다. 그러나 조선은 왜성의 구조를 깊이 있게 연구하지 않다가 병자호란을 겪은 뒤에야 남한산성에 도입했다. 임진왜란의 참혹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때도 무용하기만 했던 15세기 전술로 돌아가 청군과 싸우자고 할 정도로 외래 문물에 대해서는 꼿꼿한 자존심을 유지하던 조선 정부로서는 대단히 진취적인 자세였다. 이 노력과 결단은 진정으로 평가해 주고 싶다. 그러나 왜성의 성벽도 이미 100200년 전인 대포의 포탄이 봉우리 사이를 가로지르지 못하던 시절에 만든 설계였다.
 
변화와 발전을 낳는 진정한 동인은 개개인의 삶 속에 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는 말처럼 변화와 발전도 일상 속에서 늘 변화와 발전을 관측하고 추구하는 사람이 이뤄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사회의 여러 현상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고 말한다. 이 말에는 숨은 의미가 있다. 톱니는 크기에 따라 회전 속도가 제각각이다. 수십 개의 톱니바퀴는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한다. 사회현상도 똑같다. 이것을 비교하고 관측하는 것은 복잡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톱니바퀴만으로 세상을 재단하기를 좋아한다. 대포의 발전 속도를 떼어놓고 보면 17세기 말 남한산성에 왜성의 구조를 도입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민족적 자존심을 실용주의로 극복했다고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것은 실전에서 무용한 실용이었다. 우리가 16세기의 축성술을 도입하는 동안 대포는 강선을 지닌 강철대포로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