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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과학적으로 비과학 읽기

김현진 | 375호 (2023년 08월 Issue 2)
서울 대치동에서 중고생 대상으로 학업·진로 상담을 진행하는 한 유명 입시 컨설턴트가 최근 학생 상담 시 꼭 물어보는 정보 중 하나는 MBTI입니다. “학생은 ENFP라서 진득하진 못해도 순발력이 있겠네. 선생님들과도 잘 지내서 수행평가는 잘 받겠고…”와 같은 상담이 실제로 이뤄지는 겁니다. 대중성을 철저히 살피는 K팝 업계도 MBTI를 스토리텔링 소재로 활용합니다. 예컨대, 최근 새 앨범을 낸 SM 소속 아이돌 그룹 NCT드림의 앨범 제목은 ‘ISTJ’였습니다.

최근 몇 해간 MBTI가 사회 각 분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곳곳의 기업 현장으로도 확산돼 포천 500대 기업의 80%가 이미 인사 결정에 MBTI를 참고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비주류’로 여겨졌던 MBTI가 비즈니스의 ‘주류 영역’에 당당히 입성한 모양새라 할까요.

하지만 상당수 학자는 MBTI에 대해 아직 엄정하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는 ‘유사 과학’ 또는 ‘비과학’이라고 규정합니다. MBTI의 과학성을 입증하기 위한 학문적 시도는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누적 데이터가 많지 않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유사 과학에는 증명이나 분석으로 신빙성을 입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도 있습니다. 사주나 점술 등입니다. 임원 면접 때 관상가를 대동한다든지, 선거나 인사 등을 앞두고 유명한 점술가를 찾는 수십 년 전 관행은 AI 기술이 고도화된 2023년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사 과학은 MZ세대 등 젊은 층 사이에서 더 인기가 높습니다.

유사 과학에 대한 의존은 사회적 환경과 인간의 본성 차원에서 모두 해석 가능합니다. 특히 예측도, 대응도 어려웠던 감염병발 팬데믹,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재난 등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 요소가 증폭되는 최근 상황이 유사 과학을 부채질하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부모 세대보다 부실한 경제 기반과 불확실성을 안고 살면서 ‘갓생’이란 강박까지 갖게 된 젊은 층에서 이를 더 신봉하게 된 데는 이들이 이러한 사회적 환경 변화에 더욱 취약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MBTI와 같은 심리 검사의 인기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범주적 사고’를 지향한다는 사실로도 해석 가능합니다. 스페인 에사데경영대학원과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 리즈경영대학원 공동 연구진에 따르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매일 수집하게 되는 인간의 뇌는 정보를 단순화하고 구조화해내는 ‘범주화 기계’나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정보를 특정 카테고리로 묶으면서 상황을 단순하고 수월하게 이해하게 되는 데서 인간들은 큰 안정감을 느낀다는 겁니다. 따라서 80억여 개에 달하는 각각의 스토리를 가진 전 세계 80억여 명의 인간을 단 16개 유형으로 규정하는 게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소속감까지 경험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사 과학이 최근 더 큰 인기를 얻는 모양새지만 특히 한국에서 열기가 뜨거운 이유는 ‘개인의 정체성 찾기’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도 눈에 띕니다. 지금까지 개인의 자아를 확립하는 데 인색했던 문화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데 갈증을 느낀 한국인들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MBTI나 사주 등을 찾는 것입니다.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는 극한 호우, 강력 범죄 등 예기치 못했던 사건 사고로 여느 해보다 다사다난한 여름을 보내게 된 대한민국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고군분투가 담긴 이야기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비과학과 유사 과학 신드롬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해석과 이에 몰입하면 안 되는 이유를 고찰함과 동시에 이를 ‘문화’이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함께 담았습니다. 또 유사 과학에 체계와 공신력을 더하려는 시도와 ‘K-사주’ 또는 ‘K-점술’의 글로벌 진출 가능성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소개합니다. 나와 우리 조직의 정체성, ‘요즘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를 모색하는 데 있어 색다른 시각과 참신한 인사이트를 얻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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