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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서 배우는 경영

택산함괘는 노동에 대한 위로 메시지

박영규 | 374호 (2023년 0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주역의 택산함괘의 효사에는 엄지발가락, 장딴지, 넓적다리 등 노동력을 상징하는 신체 부위들이 언급된다. 즉, 택산함괘는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근간인 인간의 노동을 강조한다. 택산함괘의 효사는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주라’는 말로 시작한다. 기업 역시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발로 뛰는 영업사원, 택배 노동자들이 있어야 존립을 유지할 수 있다. 뇌풍항괘는 꾸준하게 노력하는 노동자들을 포용하고 이들의 일자리 안정성을 보장하라고 이른다.



주역 64괘는 상경 30괘와 하경 34괘로 나뉜다. 상경에서는 주로 천지자연과 우주 만물의 이치와 변화를 다루고, 하경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인간들의 간난신고와 길흉화복을 다룬다. 하경의 첫 번째 괘와 두 번째 괘는 각각 택산함(澤山咸)괘와 뇌풍항(雷風恒)괘인데 변화무쌍한 인간의 삶에서 암시하는 바가 자못 크다.

택산함괘는 연못을 뜻하는 태괘(☱)가 위에 놓이고 산을 뜻하는 간괘(☶)가 아래에 놓이는 모양의 복합 괘로 연못과 산이 서로를 품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전통적인 주역의 해석에 따르면 연못은 땅(여성)의 성기이고, 산은 하늘(남성)의 성기이다. 즉 남녀가 서로를 껴안고 교합하는 에로틱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 택산함괘라는 것이다. 인간사의 출발이 남녀의 만남과 교접, 자손의 출산을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에는 꽤나 그럴듯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특히 택산함괘의 효사에 쓰인 엄지발가락(拇), 장딴지(腓), 넓적다리(股), 혀(舌)와 같은 신체의 감각기관들을 성적 행위와 연관 지어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에는 더욱 힘이 실린다.

전통적인 해석처럼 택산함괘를 남녀의 성적 결합으로 국한하면 엄지발가락과 장딴지가 첫 번째 효사와 두 번째 효사에 쓰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특히 괘의 이름 중 ‘다할 함(咸) 자’에 담긴 메시지를 추론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 다할 함 자를 남녀의 육체적 관계에서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연구자들도 있는데 실소를 자아내는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비유하자면 『도덕경』 3장에 나오는 ‘실기복(實其腹) 강기골(强其骨)’이라는 문장을 ‘배불리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해 뼈를 튼튼히 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노자가 ‘삶의 본질에 충실하라’는 뜻으로 말한 구절을 그런 식으로 해석해버리면 동양 최고의 고전을 단순한 헬스 잡지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주역 택산함괘를 성적인 서사로 치환해버리는 전통적인 해석은 ‘다할 함(咸) 자는 곧 느낄 감(感) 자’라는 단사(彖辭)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단전을 포함한 주역 십익(十翼)을 지은 공자의 권위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학문적 풍토 때문에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주역 연구자는 택산함괘를 남녀의 성적 감응(感應)을 위주로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좀 더 확장적인 시각으로 주역을 보면 택산함괘가 기업 경영의 보편적인 원리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택산함괘의 효사에 등장하는 신체 부위들은 삶의 기초인 ‘노동력’을 상징한다. 주역이 태동한 시기인 수렵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 수단은 인간의 육체였다. 그중에서도 엄지발가락이나 장딴지, 넓적다리는 특히 없어서는 아니 되는 육체노동의 근간이다. 이들이 시원찮으면 날쌘 짐승을 추적할 수도 없고, 먹잇감을 구할 수도 없고, 그 결과 가족이라는 기업을 원활하게 경영할 수가 없게 된다. 혀도 마찬가지이다. 이 감각기관이 고장 나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열매를 먹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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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규chamnet21@hanmail.net

    인문학자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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