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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다시, 교류의 시간으로

김현진 | 369호 (2023년 05월 Issue 2)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 인근에 있는 프랑스 최초의 카페, 르 프로코프(Le Procope)를 비롯해 생제르맹데프레의 터줏대감 격인 레 뒤 마고(Les deux Magots),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는 파리지앵은 물론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핫플레이스입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헤밍웨이 등 당대 사상가와 문화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한데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던 역사를 되짚어 보며 지식인들의 흔적을 찾습니다.

카페는 ‘응접실’ ‘사교 모임’이란 의미인 ‘살롱(salon)’의 진화 버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의 귀족들은 자신의 집 거실에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을 초대해 지식과 친목을 나누곤 했는데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살롱을 주최하던 귀족들이 해체되면서 카페가 살롱의 뒤를 이어 지식과 문화 교류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4, 5세기 고대 그리스 아테네 귀족들의 집회가 살롱의 기원이라고도 합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 모습은 현대에 접어들어 ‘커뮤니티’로 발달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최근 7∼8년 새, 비슷한 취향이나 전문 분야에 대해 지식을 나누며 네트워크를 쌓는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양질의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의 밀도가 높아져 연대감이 강해질수록 모임의 가치는 커졌습니다. 하지만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상승기를 맞이한 시점에 시작된 팬데믹은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이 핵심인 사업 모델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만나지 못하는 단절의 시간 동안 활로를 찾지 못하고 쓰러진 사례도 부지기수. 하지만 반대로 ‘연결’의 핵심을 간파한 덕에 더 진화된 방식으로 3년여 만에 찾아온 엔데믹을 맞이하게 된 사례들도 있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초대형 악재 속에서도 살아남으며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넥스트 라운드’를 대표하게 된 모임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좁고 깊은 주제로 수요층을 정밀하게 타기팅하면서 전문성을 극대화한 ‘버티컬(vertical)’ 커뮤니티 구축을 꼽을 수 있습니다. 대전 내 소수 신약 개발자 모임으로 출발했으나 7000여 명의 회원이 속한 거대한 지식 교류의 장으로 발돋음한 ‘혁신신약살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모임은 연구자와 창업자가 살롱에서 만나 회사를 세우고 투자를 받는 등 연대의 강도가 극대화돼 팬데믹 시기에도 오히려 굳건히 성장했습니다.

이 밖에도 ‘작고 안전한’ 로컬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사업 모델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편 커뮤니티의 ‘넥스트 라운드’, 그 대표 주자들은 이 집단에 속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뚜렷하다는 데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침 이번 호 케이스 스터디로 소개하는 육아 앱 ‘베이비빌리’가 전략적으로 조성한 커뮤니티, ‘베이비빌리 동기’가 대표적 사례가 될 만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게 된 젊은 부부들이 생생한 경험을 나누면서 실질적·심리적 혜택을 동시에 누릴 수 있게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디 사회적 동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 실시한 워크트렌드인덱스 조사에서도 이 같은 결과가 드러납니다. 팬데믹 이후 사무실 복귀를 주저하는 일반 직원들마저 ‘사무실로 컴백하기 위한 가장 큰 동기부여 요소’를 묻는 질문에 ‘동료들과의 사회적 교류’를 꼽았기 때문입니다.

파리의 ‘르 프로코프’에서는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기원으로 꼽히는 ‘백과전서’가 기획됐고 그리스 시대의 지식인 모임에선 철학의 근간들이 싹텄습니다. ‘찐팬’들이 가득한 브랜드와 플랫폼은 거센 바람에도 잘 흔들리지 않고 감염병의 공포 역시 의연하게 견뎌냈습니다.

엔데믹을 맞아 다시 찾아온 교류의 시대.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는 새로운 기회들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어서 다시, 커뮤니티의 다음 챕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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