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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조지 길더 디스커버리 인스티튜트 공동 창립자: GRIDS

메타버스로 향하는 길에 5가지 관문
초번영 시대에 부족한 자원은 ‘시간’뿐

이규열 | 360호 (2023년 0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정보기술의 진보는 메타버스에 성장 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메타버스로 나아가는 데는 ‘GRIDS’라는 다섯 가지 관문이 있다. 이는 게이밍 기술(Gaming Technology), 렌더링(Rendering), 신원(Identity) 보장,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초번영(Superabundance)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게임 기술과 렌더링은 3차원(3D) 가상 세계에서 물리적 현실 세계를 구현하는 데 필요하다. 경제 활동이 메타버스에서 이뤄지려면 개인의 신원이 블록체인을 통해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보장돼야 한다. 앞으로의 세상은 자원이 희소하지 않는 초번영의 시대로 나아갈 것이다. 초번영 시대에 유일하게 부족한 자원은 시간이다.



조지 길더 디스커버리 인스티튜트 공동 창립자 및 『구글의 종말(Life After Google)』의 저자

세계 3대 디지털 사상가이자 블록체인 시대를 예견한 책 『구글의 종말(Life After Google)』의 저자다. 비영리 공공 정책 싱크탱크인 ‘디스커버리 인스티튜트(Discovery Institute)’를 공동 창립했으며 『이코노미스트』 『와이어드』 『월스트리트저널』에 활발히 기고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리처드 닉슨 전(前)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1981년 레이건 행정부의 감세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책 『부와 빈곤(Wealth and Poverty)』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사회와 정치 분야의 책을 저술하다 1990년대부터 기술 혁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마이크로코즘(Microcosm)』과 『텔레코즘(Telecosm)』은 지난 25년간 발간된 ‘최고의 테크놀로지 도서’ 10권 중 하나로 선정됐다. 이외에도 『텔레비전 이후의 삶(Life After Television)』 『이스라엘 테스트(The Israel Test)』 등 다양한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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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지 말라. 문제를 마주하면 기업들은 여러 시도를 통해 문제를 일단 해결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수차례 실패를 겪고 자신만의 강점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너무 현재의 문제에만 천착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럴 때, 시야를 넓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라. 그러면 지금의 문제를 초월해 더 큰 세상을 개척할 수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성장해 온 방식도 이랬다고 생각한다.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에 관한 수많은 책을 썼다. 그간 겪은 경험 중 가장 획기적인 순간 중 하나가 1990년대에 대한민국을 방문했을 때다. PC방이라는 곳을 그때 처음 찾았다. 사람들이 PC 앞에 빼곡히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과잉 해석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모습을 보고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루덴스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호모루덴스 개념에 따르면 놀이는 인간 창의성과 진전의 근간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과 보급이 진일보하게 진행되고 게임을 즐기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고 한국에서 여러 혁신이 탄생할 것이라 짐작했다.

내 대표 저서로는 『구글의 종말(Life After Google)』 『텔레비전 이후의 삶(Life After Television)』 등이 있다. 특히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책으로는 『부와 빈곤(Wealth and Poverty)』을 꼽고 싶다.

이 책을 쓸 당시인 1970년대에 나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때는 매우 암울한 시대였다. 인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경제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비단 경제뿐인가. 베트남전으로 많은 이가 전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고, 오일쇼크로 극심한 에너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고찰한 『부와 빈곤(Wealth and Poverty)』의 메시지도 결국 이 강연의 서두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텔레비전 이후의 삶(Life After Television)』에서도 새로운 기술이 이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이 나온 1980년대 말은 매스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의 시대였다. 당시 컴퓨터는 비싸고 크고 느렸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차세대 컴퓨터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해지고 작고 가벼워져 심지어 휴대할 수도 있게 될 것이라 말했다. 사람의 말도 인식하고, 길도 찾고, 동시에 우편물과 뉴스도 수집할 것이라 예언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 운영체제 윈도는 말 그대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기회의 창(window)이 될 것이라 했다. 1990년대 한국의 PC방을 보고 깊게 감명을 받은 것도 내가 예견했던 텔레비전 이후의 삶이 점차 실현돼 가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팬데믹 이후 경제는 무엇이 결정할까? 많은 사람이 미래에는 전기차, 5G, 양자 컴퓨터 등이 상용화될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새로운 기술이 나타난 미래에 우리 경제는 어디로 향할까? 희소성이 이끄는 경제일까, 아니면 창의성이 이끄는 경제일까? 철저히 계획된 경제일까, 아니면 예측이 어려운 놀라움(surprise)이 잇따르는 경제일까?

디지털 정보의 정량화, 저장,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정보 이론(Information Theory)을 수용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사람들의 소통이 디지털 정보로 오가고 있으며 바이오테크의 발전으로 사람의 신체 정보 역시 디지털화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을 포함해 5G보다 5배 빠른 6G를 대비하는 정부들도 있다. 디지털 정보를 수집하고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나고 있고, 동시에 이들 정보가 실시간으로 연결될 수 있는 환경도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정보기술의 진보가 결국 가상 세계, 즉 메타버스(metaverse)에 성장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 진단한다. 내가 그리는 메타버스의 미래는 보안•분산형 메타버스다. 즉, 차세대 메타버스에는 보안이 안전하게 유지되는 동시에 개인의 정보와 권력이 중앙 체제에 귀속되지 않고 개인에게 보장돼야 한다.

메타버스로 나아가는 데는 다섯 가지 관문이 있다. 한국에 희망적인 소식은 한국이 이 모든 분야에서 선두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다섯 가지 관문에 ‘GRIDS’라는 이름을 붙였다. 게이밍 기술(Gaming Technology), 렌더링(Rendering), 신원(Identity) 보장,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초번영(Superabundance)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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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이밍 기술

말 그대로 게임에 필요한 기술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3차원 가상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그래픽 기술, 통신을 위한 대역폭 기술 등뿐만 아니라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들이 하나의 경제 주체로서 활동하기 위한 신원, 화폐 등도 포함된다.

재차 이야기하지만 PC방만 봐도 한국이 얼마나 이 분야에서 앞서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은 모바일, 무선 통신 분야에서도 어느 국가보다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해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으로서는 차세대 메타버스에 요구되는 광대역•저지연 통신 환경과 현실 세계의 사물을 가상 세계에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을 실시간 3D로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이 분야의 세계적인 리더는 크래프톤, 넷마블 등 한국의 게임 기업들이다. 특히 크래프톤은 실시간으로 유저들이 참여해 한 사람 또는 한 팀이 살아남을 때까지 생존 게임을 펼치는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해 3억 명이 넘는 게이머를 모았다.

2. 렌더링

현재 가장 성공적이고 유용한 메타버스는 무엇일까.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Microsoft Flight Simulator)’를 꼽고 싶다. 게임용으로 개발됐지만 실제 항공사에서 파일럿들의 훈련에 활용한다. 3억㎢에 달하는 지도 데이터를 담고 있고(지구 표면적은 약 5억㎢), 2조 개에 달하는 나무가 심겨 있다. 이는 로컬 데이터가 가진 힘을 보여준다.

이처럼 현실에 존재하는 이미지 정보를 메타버스에 실시간으로 연동하기 위해선 렌더링 기술이 필요하다. 렌더링이랑 실제 이미지를 기호 체계로 만들어 인터넷에 전송해 실시간 3D로 구현되도록 만드는 영상 관련 기술이다. 이때 슈퍼컴퓨팅 역량이 필요하다. 메타버스의 실현을 위해서는 현재 클라우드 구축을 위해 데이터센터에서 필요로 하는 것보다 1000배 이상 용량의 컴퓨팅 능력이 필요하다. 엔비디아의 지포스 등 그래픽카드 역시 슈퍼컴퓨터를 제작하고 개인의 컴퓨터에서 3D 환경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하다.

3. 신원

메타버스에서 현실과 같은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선 신원이 확실히 보장돼야 한다. 현재의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은 유저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현재 유저들은 사이트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 패턴 등을 다 기억해야 한다. 잇따른 개인 정보 유출 사고는 보안에 대한 불신을 안기기도 했다. 이 문제는 블록체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수많은 계정을 외워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우며 개인의 신원 역시 안전하고 명확히 보장된다.

4. 탈중앙화

사람들의 뇌는 제타바이트(10의 21제곱) 단위 용량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현재 글로벌 인터넷은 기가바이트(10억), 테라바이트(1조) 단위 수준으로 유지된다. 사람들의 뇌가 처리하고 저장하는 막대한 양의 정보를 그에 비해 용량이 한참 모자란 인터넷 환경에 한데 모아 저장한다는 건 사람들이 가진 능력을 제한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각자의 정보를 각자가 소유하는 탈중앙화 방식이 필요한 까닭이다.

블록체인 개념은 2009년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생겨났다고 알려졌다. 많은 사람이 블록체인의 탄생을 소프트웨어의 혁신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블록체인은 삼성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퓨터 메모리가 비약적으로 늘었기 때문에 블록체인도 가능한 것이다. 무어의 법칙에 따라 지난 50년간 컴퓨터 메모리는 약 20억 배나 향상됐다. 이처럼 대용량 메모리가 있어야 블록체인을 통해 모든 거래를 분산 기록할 수 있다. 즉, 블록체인은 하드웨어의 성공이고 이는 곧 그 주축에 서 있는 한국 반도체의 성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블록체인은 구글로 대표되는 빅데이터 플랫폼을 대체할 것이다. 유저들은 이들 플랫폼의 정보 및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자신들의 개인 정보를 플랫폼에 제공한다. 그러면 플랫폼은 고객들의 정보를 클라우드에 한데 모아 저장한다. 얼핏 유저들은 자신들이 플랫폼을 무료로 이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플랫폼은 유저들에게 다양한 광고를 보여주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기업으로부터 광고비를 받는다. 자신들이 가진 고객 정보를 분석해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기도 한다. 즉, 플랫폼이 유저들의 개인 정보를 한데서 관리하고 이용하는 중앙화 모델이다.

이는 근원적으로 안전하지 않다. 악의적인 범죄자들이 이들의 클라우드에 각종 사이버 공격을 감행한다. 심지어 중앙은행 역시 그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플랫폼이 유저들의 정보를 판매하기도 한다. 유저들 역시 이 같은 중앙화 모델의 안전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개인의 정보를 개인이 소유하고 이를 보장하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탈중앙화 모델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경이 구축돼야 제타바이트에 달하는 개개인의 정보를 십분 활용하고 개인의 창의성이 꽃피울 수 있다.

5. 초번영

앞선 네 가지 요인이 충족되면 비로소 초번영의 세상이 도래한다. 우리는 희소성의 경제에서 벗어나 번영의 경제로 넘어가야 한다. 희소성 개념에 따르면 모든 자원은 그 양이 제한돼 있고 희소한 자원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모든 경쟁은 누군가 이득을 보면 누군가는 그만한 손해를 보는 제로섬게임으로 향한다. 제한된 자원은 경제적 계획에 따라 운용돼야 하며 따라서 정책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정보 이론에 따르면 더 이상 자원은 희소하지 않다. 마리안 투피(Marian Tupy), 게일 풀리(Gale Pooley)는 그들의 책 『초번영(Superabundance)』(2022, 한국 미출간)을 내며 사람들이 그들에게 꼭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시간이 지난 40년간 75%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원유, 커피 등 주요 50대 원자재의 실질 가격은 40년 동안 폭락했다. 심지어 같은 기간 인구수는 75% 증가했다. 이는 자원이 과거 우리 생각만큼 모자랐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자원이 사람들의 소비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는 게 실증적으로 입증됐다. 정보화 시대에 자원이 되는 디지털 정보가 무한히 유통된다는 점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보 이론에 따르면 초번영의 시대에 유일하게 부족한 자원은 시간이다. 더 이상 자원이 부족해서 생산할 수 없다는 말은 유효하지 않다. 각자가 가진 정보를 기반으로 경제활동에 시간을 쏟는 만큼 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이 곧 부가 되고, 배움이 곧 성장이 된다.

탈탄소의 시대, 그래핀을 주목하라

초번영 경제만큼이나 무시할 수 없는 변화가 탈탄소 시대로의 전환이다. 전 세계 정부와 기업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에 매달리고 있다. 그 와중에 2022년 7년 사우디아람코가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자리에 올랐다. 자원으로서 석유의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는 뜻이다. 지정학적 위기, 경제적 위기가 반영된 탓도 있지만 그만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 라이스대의 제임스 투어 교수팀이 새로운 탄소 시대를 열고 있는 듯하다. 바로 그래핀(graphene)이라는 신소재 생산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것이다. 그래핀은 육각형 격자 모양으로 단단하게 결합된 탄소 원자 물질이다. 얇고 가벼운 동시에 내구성도 좋다. 강철보다 200배 이상 높은 강도를 자랑하지만 원래 길이의 25%까지 늘어날 만큼 탄성도 뛰어나다. 또한 구리보다 100배 이상 높은 전기전도도를 가졌다. 그래핀을 활용하면 건축, 자동차, 의류 등 수백 가지 산업의 생산 활동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간 그래핀은 일관성 있는 고품질 합성이 힘들어 상용화가 어려웠다. 그러나 현재 유니버설매터 등 투어 교수가 설립한 스타트업들과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의 활약으로 상용화가 앞당겨지고 있다. 이는 실리콘의 발견만큼이나 인류에 뛰어난 성취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리=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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