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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0. 위기에 내몰린 스타트업, 원인과 미래는?

‘성장을 위한 사업’에서 ‘생존을 위한 사업’으로
비용 절감과 구조 효율화로 살아남아야

최정우 | 359호 (2022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최근 오늘식탁, 메쉬코리아, 왓챠 등 자금난을 겪는 스타트업들의 위기설이 잇달아 나오고 있지만 이는 특정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어느 정도 규모를 이룬 스타트업은 거의 예외 없이 후속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또다시 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은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 더 많은 리스크를 지고, 더 크고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고 주문하던 투자자들, 혁신을 속도와 동일시하던 착시에 빠져 있던 창업가들도 태세를 전환하지 않으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특히 J커브 성장을 목표로 수많은 직원을 채용하던 플랫폼 기업은 높은 인건비 등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잠시만 버티면 예전과 같은 시대가 돌아올 것이라 방심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회사의 고정비와 변동비는 얼마인지 재무 구조를 뜯어보고 철저한 비용 절감과 구조 조정으로 대응해야 한다. 비즈니스 사이클을 거스를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위기가 지난 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면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작은 변화들이 만들어 낸 큰 폭풍

실리콘밸리에서 사용되던 유니콘이란 말이 한국에 처음 소개됐을 때만 해도 이 낯선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 정책이나 대중매체 등에도 흔히 등장하고 누구나 아는 개념이 됐다. 유니콘은 ‘1조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투자자가 투자한 기업’을 의미한다. 처음에 이 유니콘은 세상에 없는 환상 속 동물에 빗댈 만큼 희귀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는 한 해에 이런 유니콘이 몇 개씩 생겨나고 사람들은 이를 당연히 여기게 됐다. 심지어 유니콘 육성이 정책적 테마로까지 등장하는 세상이 됐다. 유니콘이 과연 ‘희귀한 존재’일까에 대한 의문마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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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유니콘의 정의에 담긴 숨은 의미를 읽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우리가 기업 가치 1조 원이라 바라본 기업들은 대부분 공개된 주식시장에서 대중의 평가를 받은 기업이었다. 다수가 1조 원의 가치로 인정하는 곳들은 대부분 실적도 그에 부합했다. 매출뿐 아니라 이익 수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기업은 통상적으로 몇천억 원의 매출과 최소 몇백억 원의 이익을 냈다. 그리고 이 실적이 하락하거나 기업 펀더멘털에 문제가 생기면 여지없이 기업 가치는 내려갔다.

하지만 오늘날의 유니콘은 다르다. 공개적인 시장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을 필요가 없다. 마지막에 투자한 하나 이상의 투자자가 기업의 가치를, 정확히 말하면 주식 가치를 1조 원으로 평가하고 투자금을 집행하기만 하면 유니콘 기업에 등극한다. 시장에서 매출이나 이익 같은 실적을 검증받을 필요도 없다.

이런 주관적인 기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별문제가 없었다. 유니콘이 된 기업뿐 아니라 그보다 작은 기업들도 현재 실적보다는 미래 가치를 포함한 기업 가치로 투자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래액 혹은 다른 선행 지표가 계속 성장하기만 한다면 매출이나 이익 같은 지표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시장에는 낙관론만큼이나 자금이 넘쳐났고 모두들 밝은 미래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기업들이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고 인재들을 높은 연봉에 경쟁적으로 영입하면서 자연스럽게 물가가 상승했다. 비단 한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고연봉자들도 집을 구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물가 상승에 시달렸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두가 미래의 큰 성장을 목표로 빠르게 나아갔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예상치 못한 변수인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했고 이러한 위기를 겪으면서 전 세계는 살아남기 위해 유동성 잔치를 벌였다. 소비 위축으로 인한 경기 불황을 걱정하며 모두가 돈을 풀며 소비를 부추겼고, 물가는 더욱 높아졌다. 이후에는 갑작스러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공급 측면에서 큰 쇼크를 가져왔다. 이런 정세 변화에도 여전히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아직 시장에 자금은 충분했고, 전쟁에 대한 염려와 별개로 기업들은 밝은 미래를 바라봤다. 2022년 초까지만 해도 시장에 비관론자는 많지 않았고, 위기에 민감한 몇 명만이 다가올 위험과 버블을 경고했다.

이 가운데 폭풍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계속되는 성장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심리, 공급 측면의 충격, 넘치는 유동성이 가져올 위험을 감지한 미국은 빠르게 이자율을 높여갔다. 그리고 이런 금리 인상의 효과는 약자 기업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났다. 스타트업들은 미래의 높은 성장성을 이야기하지만 당장의 재무 구조는 취약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많은 스타트업은 외부 투자에 의존하는 구조로 회사를 운영한다. 그런데 불확실성은 급격하게 유동 자금을 말려버렸고, 자금 조달이 끊긴 스타트업은 본격적인 위기를 맞게 됐다.

위기에 내몰린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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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내몰린 스타트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한국의 수산물 유통 스타트업 ‘오늘식탁’을 들 수 있다. 오늘식탁은 신선한 산지의 회를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하는 유통 플랫폼 ‘오늘회’를 성황리에 운영하고 있었다. 2016년 12월 설립된 오늘식탁의 누적 회원 수는 75만 명을 넘어섰고, 2021년 기준 누적 매출은 400억 원을 달성했다. 총 투자 유치액은 170억 원에 달했다. 이 회사는 한국에 누구나 알 만한 수산물 브랜드가 없다는 점, 다수의 판매처가 복잡한 유통 채널을 통해 상품을 유통한다는 점 등 미충족 수요를 파악해 이를 서비스로 만들었고, 다수의 고객에게 호평을 받았다. 론칭 이후 매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매년 큰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현재는 추가 자금 조달에 실패한 결과, 서비스를 재정비하고 있다. 기존에 판매하던 제품을 대폭 축소한 상태로 서비스를 제한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직원이 이탈했다. 또한 남은 채권을 회수하지 못한 거래처들의 인터뷰 기사가 언론에 실리면서 투자자들은 불안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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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겪고 있는 또 다른 스타트업으로는 ‘메쉬코리아’가 있다. 물류 스타트업 메쉬코리아는 2013년 설립됐으며 라이더 중심 물류 브랜드인 ‘부릉’을 운영한다. 창업 초기 메쉬코리아는 서비스 이륜차 배달 기사와 배달을 하지 않는 식당 매장을 연결해주는 ‘부탁해’란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배송을 원하는 고객과 매장, 배달 기사를 모두 통합해 운영하는 서비스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첫 번째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메쉬코리아는 이 실패를 바탕으로 개별 식당보다 기업을 타깃으로 한 물류 서비스 부릉을 론칭해 피벗(pivot)에 성공했다. 부릉은 단순한 연결에서 나아가 라이더 수요에 맞춘 배송 서비스를 선보이고, 실시간 정산 시스템을 도입해 계약 및 정산을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등 라이더 문제해결을 차별화 요소로 삼았다.

이렇게 경쟁사와 차별화된 서비스는 라이더와 기업 고객 모두의 호평을 이끌어 냈고, 2021년 회사 매출액은 3038억 원으로까지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메쉬코리아는 네이버와 GS리테일, 현대자동차와 KB인베스트먼트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의 투자를 유치했다. 누적 투자 금액은 1762억 원을 기록하면서 물류 스타트업 최초의 유니콘이 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월 80억 원 가까운 자금이 소진되는 구조는 결국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대표이사 등이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360억 원에 가까운 긴급 자금을 대출받았지만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고 현재 경영권 매각 등을 포함한 사업 조정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이 두 기업은 최근 스타트업 자금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미디어에 소개되고 있다. 처음 몇 개 스타트업과 관련한 위기설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를 특정 기업에 국한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어느 정도 규모를 이룬 스타트업들이 거의 예외 없이 후속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또다시 고속 성장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적어도 2022년 초까지는 그 누구도 위 기업들이 투자 유치에 실패해 자금난을 겪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올해 초와 시장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시장에 풀린 자금은 회수됐고, 스타트업 투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펀드는 활동을 멈췄다. 추가적인 투자가 필요한 기업들은 매달 불안에 떨면서 자금 조달 방법을 고민하는 처지가 됐다. 투자 유치 소식 대신 어려워진 스타트업의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증언이 줄을 잇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냉정한 구조 조정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메타가 1만1000명 이상을 해고한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이는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폭풍의 발단이 된 변화의 과정

갑작스럽게 반전된 분위기에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관리자들은 모두 당황하고 있다. 금리 인상만으로 시장이 이렇게 급격하게 얼어붙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의 배후에는 그동안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은 성장이 있었다. 또한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면서 증폭되긴 했지만 실제 모바일 버블이 시작된 것은 이보다 오래됐다. 사실 이번 유동성 확장의 시작은 모바일 시대의 시작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으로 시작된 앱스토어란 시장은 누구나 새롭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큰 비용 없이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고, 이런 환경은 다수의 창업자를 만들어 내며 웹 버블의 종말 이후 움츠러든 모험 자본의 본격적인 활동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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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자자와 자본시장의 변화

새로운 시장 기회와 꾸준한 자본 유입은 창업자는 물론 다수의 투자자를 만들어 냈다. 유니콘이란 용어가 탄생한 배경에도 이런 투자자의 확대가 있다. 자본을 투입하는 주체가 리스크를 극도로 회피하는 은행 같은 기관에서 벤처캐피털로 확대되면서 성공 사례는 계속 쌓여갔다. 사업 기회를 포착한 창업자가 증가해 투자자가 증가하는 것인지, 투자자가 늘어나 사업 기회를 실현하는 창업자가 증가하는 것인지 순서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둘 사이에 선순환 구조가 확립됐다.

과거 웹 버블 시대에는 아마존과 구글처럼 결국 살아남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기업들이 있었다. 이를 학습한 투자자들은 고도성장으로 두 기업처럼 독점적 지위를 구축할 만한 기업들을 발굴해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그리고 다수 대중의 평가를 받기 전 일부 투자자들이 이러한 가능성만으로 투자한 기업들 중 소수가 유니콘이 됐다. 2014년 한국에서 탄생한 첫 번째 유니콘, ‘쿠팡’이 대표적이다. 쿠팡의 사례가 증명하듯이 그동안 모험 자본은 스타트업 육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모두들 위험하다고 외치는 기업들의 규모를 키워준 일등 공신이다. 사실 쿠팡이 망할 것이란 이야기는 매년 나왔다. 하지만 모험 자본가들은 ‘계획된 적자’라는 말로 쿠팡의 상황을 옹호했다. 이 말은 회사가 현재 적자일 수밖에 없는 사업 구조를 보유하고 있지만 언제 흑자 전환할지 모른다는 의미를 내포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쿠팡은 2021년 뉴욕 증시에 상장했고 2022년 3분기 실적 기준, 흑자로 전환했다.

버블 시대에는 이러한 선도적인 기업들에 투자한 이들이 고수익을 실현했다. 전설적인 투자로 명성을 떨친 심사역과 투자사도 늘어났다. 성장하는 시장은 실력 있는 인재와 자금을 빨아들이고 투자액은 갈수록 불어났다. 이렇게 시장이 더 과감하고 혁신적인 모험을 할 만한 기업들을 찾게 되자 투자 금액도 자연스럽게 올라갔고 시장에는 리스크가 높은 딜이 돌아다니게 됐다. 큰돈을 벌려면 더 큰 리스크를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2. 창업가의 변화

예전의 창업가들과 현재의 창업가들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르다. 현재 큰 규모를 이루고 있던 기업도 대개는 작은 기업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한국의 창업가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경우 소를 판 돈으로 사업 자금을 만들었다. 일종의 시드머니를 가지고 성공적인 기업을 일군 셈이다. 그 시대에는 어느 누구도 정 회장을 믿고 선뜻 몇십억, 몇백억을 투자해주지 않았고, 창업자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사업 자금을 마련하고 묵묵히 한 단계씩 시행착오를 거쳐 성장해야 했다.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건 한 건 한 건의 계약이지 외부 투자자의 투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똑같은 스타트업이지만 오늘날 스타트업이 그리는 성장의 모습은 다르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회사를 어떻게 키워야 하고, 돈은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스타트업에 대해 가르쳐주는 정보들이 넘쳐난다. 액셀러레이터와 벤처캐피털(VC) 등을 합쳐 약 2000여 개의 투자 기관이 존재하며 유튜브에 스타트업이란 단어만 검색해도 성장 및 투자 유치 전략에 대한 강의가 쏟아진다. 스타트업 창업가로서는 성공하고 회사 규모를 키우려면 투자를 받는 게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

이에 따라 현재의 창업가들은 더 많은 리스크를 지고 더 크고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마치 혁신이 ‘빠르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착시에 빠진 것이다. 환경이 좋아진 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에는 경쟁자가 많고, 이런 경쟁자를 제치려면 당연히 더 빠르게 달려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이제 시행착오를 통해 차근차근 기업을 키워가는 전략은 더 이상 스타트업 업계에서 주류가 아니게 됐다. 투자 없이 기업을 키우는 전략을 지칭하는 ‘부트스트래핑(Bootstraping)’이란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이런 용어가 별도로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세로 통용되는 전략이 아님을 반증한다.

투자를 통한 성장의 특징

대다수가 선택하는 투자를 통한 성장 방식은 부트스트래핑 방식과 비교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이익이 나기 전까지 혹은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차분히 보관하면서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게 아니라 더 크고 빠른 성장을 위해 과감하게 집행할 것을 주문한다. 그래서 생겨난 또 다른 용어가 바로 ‘버닝(burning)’이다. 성장 과정에서 매달 기업 손실이 누적되고, 이 손실로 인해 투자금이 타 버리기 때문에 쓰이는 용어다.

둘째, 계속 투자를 받아야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막대한 자금을 받았다 해도 1년에서 1.5년이 지나면 또다시 돈은 마케팅비나 인건비 등으로 ‘타 버려’ 없어진다. 그동안에는 후속 투자가 무리 없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 구조에 문제가 없었다. 적자로 인해 손익계산서와 재무제표가 엉망이 되도 서비스 지표(index)는 성장했고, 이 지표 자체가 투자 근거가 됐다. 시리즈 A, B, C, D, 브리지란 용어도 이런 투자가 연쇄적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순서를 나누기 위해 생긴 구분이다.

셋째, 지표가 중심이 된다. 미래에 큰 이익을 볼 것이 예상된다면 지금의 이익보다는 사업의 성장성을 뒷받침하는 지표가 더 중요하다. 이익을 자꾸 내려고 하면 속도는 둔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이 일을 하려면 당연히 많은 직원을 고용해야 하고,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면 마케팅 비용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익이 날 수가 없는 구조다. 그 대신 다음 투자 단계에는 더 나은 거래액(GMV), 매출,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등 지표로 사업의 밝은 미래를 설명하면 된다.

넷째, 기업 가치를 높여야만 한다. 계속 투자를 유치하다 보면 회사의 지분 구조는 초기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 외부의 제3자로부터 유상증자를 받게 되면 기존 주주의 지분율은 내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필사적으로 투자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최대한 좋은 지표를 바탕으로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기업 가치를 큰 폭으로 높여야 한다.

이렇게 수백억에서 수천억에 달하는 투자를 지속적으로 받고 지표를 개선해 수조 원대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기업이 바로 유니콘이다. 그리고 이 전략이 성공하면 유니콘이 되는 과정에서 회사 매출액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J커브’를 그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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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리지를 통한 ‘J커브’ 전략의 함정

매년 20∼30% 정도 성장하는 매출로는 절대 J커브가 그려지지 않는다. 20∼30%의 성장률은 고성장 기조를 유지하는 기존 기업들의 평균 지표일 뿐이다. 버블 이전의 물가 상승률이 5% 이하임을 감안할 때 20% 수준도 상당히 고성장이지만 J커브를 그리기 위해서는 매년 10배에서 20배, 혹은 심지어 50배에서 100배에 가까운 성장을 그려야 한다. 최근 10∼20년 내에 이런 J커브 성장을 보인 기업들로는 아마존과 구글 등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각각 커머스와 검색 분야에서 독점을 이룬 기업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독점을 통해 압도적인 성장을 만들어 내야만 J커브가 가능하지 일반적인 성장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렇다면 스타트업들이 J커브를 그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구글이나 아마존을 똑같은 카테고리에서 이길 수는 없기 때문에 그들과는 다른 카테고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폭발적인 성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별 제품 한두 개를 팔기보다는 다수의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많은 기업이 플랫폼 사업에 눈을 돌리는 이유다. 그리고 플랫폼상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거래를 원활히 뒷받침하려면 다수의 개발자가 필요하고, 당장 매출이 나오지 않더라도 버틸 만한 체력도 있어야 되기 때문에 거액의 투자는 필수적이다.

이렇게 J커브 성장을 위한 구조만 완성되면 끝이다. 당장 이익이 나지 않고, 남은 자금이 1년 내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도 스타트업은 모든 비용을 마케팅에 퍼붓고 공격적으로 인력을 모집한다. 어차피 시장에서 계속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나중에 IPO까지 하게 되면 기업 가치는 더욱 커질 테니 대표자 지분율이 작아져도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이 금리를 올렸다. 단순히 이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들이 빌리는 돈의 이자는 상대적으로 그리 높지 않고 차입금이 많은 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스타트업에 투자해주는 기관 대부분 보증을 통해 해준 곳들이 많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점이다.

J커브 성장 전략은 생각지 못한 위험을 안고 있다. 바로 지독하게 높은 고정비다. 회사의 고정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인건비다. 플랫폼 기업의 경우 제조업과 달리 매출원가도 없고 제조비도 없지만 플랫폼을 유지 보수하고 계속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데 직원들의 인건비가 든다. 제조업에서는 재고를 싸게 팔고 매출원가가 높은 항목들을 정리하면 자연스럽게 비용 절감을 할 수 있지만 플랫폼 기업에서는 인건비 절감이 상당히 어렵다. 이미 커져 버린 구조에서 개발팀을 없애면 유지 보수를 하고 신규 서비스를 만들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기존 투자사들은 모두 빨리 투자금을 쓰라고 독촉했고 공격적으로 마케팅비를 써서 지표를 만들고 거래액을 높이라고 주문해 왔다. 그런데 이제 추가 투자 유치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와 다시 이들을 만나러 갔는데 돌아오는 질문이 달라지고 있다.

“그래서 손익분기점은 언제, 어떻게 도달하는 건가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정신이 멍할 수밖에 없다. 지표가 잘 나왔는데 무슨 소리인가 싶어도 이제는 모두가 손익분기점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오로지 성장에만 신경 쓰라고 했던 이들이 원망스러워도 항의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미국은 계속 금리를 올리고 자본시장에는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신규는 물론이고 기존 투자자들까지 돈이 없다고 말한다.

이렇듯 급격하게 자본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시장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경영하는 방법과 방향이 달라져야 하지만 스타트업 대표 중 이런 상황을 맞이해 본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 자금 조달이 쉬운 시대에 팀을 만들고 투자를 받아 회사를 키워왔기 때문에 비용 절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손익분기점은 언제 도달할 수 있는지 모른다.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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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실행 계획

이런 상황이 절대 일시적이라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 각 기업이 처한 환경은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모든 기업이 비즈니스 사이클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인터넷 버블 시대에도 많은 기업이 똑같이 생겨났고, 이들은 지금보다 더 느슨한 기준으로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아무런 규제 없는 환경에서 다양한 모럴해저드가 생겨났다. 웹 버블로 많은 기업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당시 창업가들은 모든 기업의 성장에는 사이클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마 올해 자본시장 변화를 체감하면서 창업가들도 사이클의 중요성이 뭔지 비로소 알게 됐을 것이다. 언제나 투자를 받을 수 있고, 무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교훈이 뼈아픈 기억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기업의 체질을 ‘성장을 위한 사업’에서 ‘생존을 위한 사업’으로 바꿔야 한다.

이제는 기업 목적이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의 환경에서 모두가 혁신을 외쳤던 까닭은 혁신이 곧 높은 투자자 수익률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배달의민족이나 토스의 초기 투자자들은 시장을 혁신한 기업에 투자한 대가로 고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는 혁신만으로는 안 된다. 혁신 기업이 투자자에 수익을 안겨주려면 일단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매출도, 지표도 회사가 무너지면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먼저 회사의 재무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이전에는 매출과 거래액만 신경 썼다면 이제는 비용을 점검해 볼 때다. 회사의 고정비와 변동비는 얼마이고, 기성 기업과 비교해 어떤지도 봐야 한다. 스타트업의 비용 구조를 뜯어보면 엄청난 비효율성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인건비에서 다수의 중복 투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본질적으로, 대부분의 경영자가 자기 회사가 어떤 구조로 이뤄져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조력자를 구해야 한다. 내부인이든, 그동안 자문을 받아온 기관이든, 기장을 대리하는 회계사든 관계없이 회사 비용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현재 사업을 유지하면서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을 구분해야 한다.

변동비의 경우 회사 매출에 연동된 비용이기 때문에 대개 줄이기가 어렵다. 단위당 물류비나 매출원가율 등은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 한 바꿀 수 없다. 특히 작은 기업들의 경우,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지 않아 비용 구조가 좋을 수가 없다. 결국 줄일 수 있는 비용은 고정비다. 특히 과도하게 투자된 인건비는 정리 1순위다. 메타나 아마존이 각 1만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을 괜히 줄이는 게 아니다.

따라서 경영자라면 언제나 비효율적 부문을 잘라내기 위해 인원 배치 현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부문에 얼마만큼 인원이 필요한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의미다. 사실 필요하지 않은 인원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인원이 없는데도 회사가 지속적으로 손실을 내고 있다면 그 사업은 접는 게 맞다. 지금 접지 않으면 언젠가 강제로 ‘접히게’ 된다. 그러므로 적정 인원을 파악하는 기준은 좀 더 엄격해야 한다. 이보다 인원이 줄어들면 절대적으로 서비스 혹은 회사를 운영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 이 마지노선이 적정 규모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인건비뿐만 아니라 사무실 임대비, 복리후생비 등 생존 자체에 필수적이지 않은 모든 비용을 줄여야 한다.

비용을 줄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매출도, 외형도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100명 이상 근무하던 기업의 인원이 반 토막 나고, 회사의 규모가 작아지고, 사업 분야가 축소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잠시만 버티면 예전과 같은 시대가 돌아올 것이라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철저한 비용 절감과 구조 조정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위기가 지나간 뒤 다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생존한 상태로.

새로운 성장의 시대를 기다리며

이런 변화 앞에서 많은 기업은 좌절한다. 규모를 줄이는 과정에서 화기애애하고 밝았던 분위기도 얼어붙고 팀원들도 많이 사라진다. 투자 유치가 확정된 날 비싼 식당에서 다 같이 회식하던 분위기도 당분간 찾아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비즈니스 사이클은 계속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버블 시대를 겪으면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창업가들은 새로운 성장의 시대를 맞이했다. 일부는 활황기에 엑시트(exit)해 자금을 회수했고, 일부는 다른 기회로 또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버블이 꺼지는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은 이 사업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밑거름이 됐다.

몇 년이 지나야 다시 성장의 시대가 올지 답을 알기는 어렵다. 생각보다 암흑기가 짧게 지나갈 수도 있고, 인터넷 버블처럼 길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좋은 사이클은 다시 올 것이고, 지금 살아남는 기업에만 이러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더 크고 빠르게 J커브를 그릴 기회가 주어질 것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최정우 뷰티앤케이 대표 contact.jwoochoi@gmail.com
최정우 대표는 삼일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로 근무하며 M&A와 재무 자문 업무를 담당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당시 태평양)에 입사해 프랑스 향수 브랜드 아닉구탈 인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옐로모바일의 여행지주회사인 옐로트래블을 공동 창업해 M&A를 통한 성장을 견인했다. 현재 뷰티, 여행 등을 포함한 다수의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투자하면서 스타트업들을 위한 자문과 액셀러레이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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