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단계별로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투자 환경 조성에는 성공한 스타트업들의 사례가 뒷받침됐다. 인터넷 채팅 시스템을 AOL에 매각해 이스라엘 젊은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됐던 미라빌리스, 자율주행의 개념이 생소했던 시기에 자율주행 시스템 영역을 개척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모빌아이, 이스라엘을 사이버 강국으로 알린 체크포인트, 경쟁사와의 합병을 통해 기술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세계 1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스트라타시스 등은 이스라엘의 발라간(무질서)과 이히에 베세데(긍정의 믿음) 정신을 바탕으로 성공한 기업들이라 할 수 있다.
발라간 문화와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히브리어 ‘발라간’은 러시아에서 유래한 단어로 지저분함, 즉 미리 정해진 질서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무질서는 혼란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생각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유연성을 발휘해 주변 상황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인식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들은 질서정연한 환경에서는 관습적인 생각에 머물지만 혼란스러운 환경에서는 신선한 시각을 갖게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발라간을 통해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능력이 향상되고 이것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을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발라간 문화가 많은 이스라엘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다 보니 이들은 자녀를 교육할 때도 되도록 간섭을 피하려고 한다. 이스라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무질서≠혼란을 초래하는 존재’라 생각하지 않도록 교육을 받기 때문에 주변 상황을 유연하게 수용하게 되고 스스로 상황을 헤쳐 나가는 데 익숙해진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하게 되면 사회생활에서도 엄격한 규칙을 따르기보다 발라간의 태도로 열린 마음을 갖고 변화를 수용할 여유를 갖게 된다. 발라간 문화는 ‘정답은 없다’에서 출발한다. 아이들은 세상에 정해진 규칙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른들은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발라간 문화는 무질서를 받아들이고 이용하는 것이다. 질서정연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관습적인 생각에 머물게 되지만 혼란스러운 환경에서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이렇게 생성된 시각은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발라간 문화에 익숙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장벽이 나타났을 때 유연하고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연습을 오랫동안 해 왔다. 따라서 늘 불확실성에 직면하는 스타트업 환경에 적합한 DNA를 갖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이히에 베세데’, 낙관적인 사고의 힘
발라간 사고와 함께 이스라엘 사람들이 공유하는 신념으로 ‘이히에 베세데’가 있다. 이히에 베세데는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신념을 뜻한다. 이스라엘은 건국 후 주변 중동 국가들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고 크고 작은 테러도 수시로 발생한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이스라엘을 스타트업 강국으로 키운 것은 이스라엘 특유의 낙관주의인 이히에 베세데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천백민bmchun@smu.ac.kr
상명대 지능·데이터융합학부 조교수
연세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상명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IBM과 Stratasys에서 근무하며 ICT와 3D프린팅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으며 창업을 통해 이스라엘 스타트업 기술을 국내에 소개하는 사업을 수행한 바 있다. 현재 상명대에서 신기술과 스타트업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