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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디지털 화폐 전쟁

디지털 금융 패권, 제도 아닌 신뢰에 달려

조경엽,장재웅 | 357호 (2022년 11월 Issue 2)
편집자주

디지털 세상에서 중국은 미국에 맞서는 빅테크 회사들을 키워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견줄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올해부터 본격화한 디지털 위안화 실험은 미국의 금융 패권에 도전하는 중요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새 연재를 통해 미중 간 디지털 화폐 전쟁 양상을 분야별로 살펴봅니다.


Article at a Glance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첨예하다. 2018년경 촉발된 무역전쟁 이후 외교 안보 분야는 물론 제조업과 기술 분야까지 미국과 중국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이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분야가 바로 금융이다. 미국 달러가 가진 기축 통화 지위가 공고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융 패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e-CNY) 상용화를 실험하고 있다. 디지털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위안화의 디지털화로 금융 블록을 거쳐 글로벌 위안화 금융 체제를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이다.



‘투키디데스 함정.’

기존 패권 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이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원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최근 미국과 중국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 자주 쓰이는 단어다.

미국과 중국이 대만에서 충돌하고, 반도체를 둘러싸고 통상과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뉴스를 통해 접해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는 또 다른 분야가 바로 ‘디지털 플랫폼’이다. 중국을 직접 방문해보면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이 만든 플랫폼에 접속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플랫폼을 앞세워 전 세계 디지털 세상을 장악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이 힘을 못 쓰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중국인 것이다.

실제 중국은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과 대응할 수 있는 자국의 빅테크 기업 육성에 성공했다. 구글을 대체하는 바이두, 아마존을 대체하는 알리바바, 우버를 대체하는 디디추싱 등이 그들이다. SNS와 소액 결제는 텐센트의 위챗페이와 알리바바의 알리페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기술로 떠오른 드론 분야에서는 DJI, 전기차에서는 BYD 등 스타트업 단계에서부터 정부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한 중국 기업들이 이미 중국 시장에서만큼은 미국 경쟁 기업을 대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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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중국이 유일하게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분야가 바로 금융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위안화 국제화를 시도했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 중국이 금융 분야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의 달러 패권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 금융 시스템을 장악한 건 세계 2차대전 종전을 전후해서다. 당시 미국은 영국, 소련 등과 함께 국제 금융 체계 논의를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를 출범시킨 브레튼우즈 체제가 그것이다. 당시 영국은 경제학자 존 케인스를 중심으로 금을 비롯한 30대 상품 가격을 기초로 산정한 세계 화폐 ‘방코르’와 이를 청산해줄 국제청산동맹을 제안했지만 미국이 주장한 금환본위제1 에 밀렸다. 이 금환본위제는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2 를 뒷받침하는 달러 패권 시대를 여는 기틀이 됐다.

이후 달러화의 기축통화로서 위상에 몇 차례 고비가 있었다. 1971년 닉슨 전 대통령이 금태환을 정지한다는 발표, 즉 닉슨 쇼크로 인해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고 국제통화 체제가 변동환율제로 이행됐을 때나 1985년 달러화 가치가 절반으로 하락했을 때 달러 패권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달러화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경제의 고성장과 강한 달러 정책을 바탕으로 회생했으며 현재까지도 세계 최고의 경제력과 금융 네트워크 지배를 바탕으로 기축통화로서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달러 패권은 글로벌 경제가 위기에 빠질수록 강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가장 최근 예로 코로나발 팬데믹 이후 미국은 경기 부진을 막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달러를 풀었다. 이 돈이 인플레이션을 야기해 미국 소비자 물가가 2022년 9월 기준 8.2% 폭등하기도 했다. 이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조치로 네 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0.75%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서 통화 정책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봐도 미국은 자국에 위협이 되는 존재가 나타날 때마다 금융을 활용해 상대를 제압했다. 1980년대 미국을 위협했던 일본이 플라자합의3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지나서도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다.

회심의 선제 카드, 디지털 위안화(e-CNY)

달러 패권주의에 맞서 중국이 내놓은 회심의 카드는 ‘디지털 위안화’다. 중국은 주요 국가 중 가장 먼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만들어 실험에 착수했다. 2019년 말 베이징, 선전, 쑤저우, 슝안, 청두 등 5개 도시에서 첫 시범 테스트를 했고, 이어서 2020년 11월에 상하이, 하이난, 창사, 시안, 칭다오, 다롄 등 6개 도시를 추가했다. 2020년 10월 국경절 연휴가 끝날 무렵, 선전시에서 추첨을 통해 뽑힌 5만 명에게 200위안씩 디지털 위안화 홍바오를 지급해 대대적인 홍보를 진행하기도 했다. 올해 4월에는 톈진, 충칭, 광저우, 푸저우, 샤먼 등에 디지털 위안화 테스트를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저장성 6개 도시로 시범 지역을 확대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장강삼각주, 광저우 선전을 아우르는 주강삼각주, 그리고 베이징 톈진과 허베이 등 징진지, 즉 우리나라로 따지면 수도권 지역과 경제 특구들이다. 중국의 정치와 경제를 주도하는 곳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먼저 실험하고 있는 셈이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2022년 5월 말 기준, 시범 사용 지역에서 모두 2억6400만 건 거래가 이뤄졌다. 금액은 830억 위안(123억 달러)에 달했다.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는 가게와 기업은 457만 곳이 넘었고 2억6000만 개의 개인 전자지갑이 개설됐다.

중국이 시범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위안화는 중국어로는 ‘숫자 인민폐’라고 하고, 영어로는 ‘e CNY’로 표기한다. 국제금융기구와 여러 중앙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라고 용어를 표준화했지만 중국은 독자적으로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라고 쓴다.

맞부딪치기 방식으로 결제하는 숫자 인민폐

디지털 위안화가 많은 중국인이 일상적인 거래나 지급 결제, 송금 등에 널리 활용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스마트폰을 이용한 QR코드 결제 방식에 워낙 익숙해 있어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디지털 위안화에도 금방 적응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플라스틱 머니라고 일컬어지는 신용카드를 건너뛰는 ‘리프프로그’4 전략을 실행에 옮겨 QR코드 결제 방식을 채택하면서 급속하게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 공상은행은 2030년, 디지털 위안화의 개인 사용자 수가 10억 명에 달하게 되면서 사용 비율이 전 국민의 70%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유 은행이 전망한 것이어서 정책적 목표에 가까운 숫자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중국 당국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현재 사용 중인 법정 화폐와 동일하다. 다양한 금액 단위의 지폐가 스마트폰에 디지털 형태로 들어가 있다. 앱을 켜면 마오쩌둥 초상이 담긴 지폐가 화면에 나타난다. 1위안부터 100위안까지 중국 지폐 모든 권종에 마오 전 주석 사진이 들어가 있다. 특히 스마트폰끼리 ‘맞부딪치기’ 기능으로 결제를 할 수 있고 은행 계좌에 연계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개인이 등록 수준을 1등급에서 5등급까지 선택할 수 있으며 실명 비실명, 잔액 한도 등을 다양하게 선택 가능하다.

중국 공상은행, 농업은행, 중국은행, 건설은행 등 4대 국유 은행과 우정저축은행, 초상은행, 알리바바 계열 민영 은행, 텐센트 계열 민영 은행 등이 지정 운영 기관이다. 인민은행이 지정 은행 기관에서 준비금을 예치하면 1대1로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하고 상업은행이 개인과 법인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상업은행과 함께 고객 정보를 공유하고, 별도로 인증센터, 등록센터, 데이터센터 등 3센터를 운영한다. 인증센터는 사용자의 신분 정보를 집중 관리하고, 등록센터는 발행과 폐기 과정을 담당하며, 데이터센터는 자금 세탁 방지와 감독 관리, 데이터 분석 등을 맡고 있다. 이 과정을 모두 인민은행이 ‘중앙 관리’ 체제로 책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의 중요한 특성인 탈중앙화 방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위안화 국제화 기반 다지고 금융 제재 때
우회로 마련하려는 목적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정착을 서두르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중국의 지도자들과 학자들은 GDP 2위 수준의 국가에서 1위가 되는 것은 시일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 믿고 있다. 세계 1위 국가로 올라서는 것은 사회주의 신중국 성립 이후, 개혁 개방이 이룬 새로운 성취나 업적일 뿐만 아니라 당연한 ‘제자리 찾기’라는 관점을 갖고 있다. 근대 이후 100년 동안 서구 열강에 당했던 수모와 영국과 미국에 내주었던 세계 1위 국가로 ‘복귀’하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중국은 홍콩, 싱가포르와 동남아 화교경제권 등을 포괄하는 중화경제권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실물 경제 통합과 연합을 뒷받침하고 더욱 공고하게 하려면 위안화를 주축으로 한 금융 통합이나 연합 체제가 필요하다. 디지털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위안화의 디지털화로 금융 블록을 거쳐 글로벌 위안화 금융 체제를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해서 m-CBDC 브리지 프로젝트가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이 2019년 홍콩과 태국 간 다른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21년 중국과 아랍에미리트가 가세했다. 이 프로젝트는 여러 나라의 디지털 화폐를 하나의 플랫폼에 포함해 국경 간 결제를 시도해보는 것이다. 잘 알려진 SWIFT(국제은행 간 결제 청산 시스템) 체제가 높은 거래 비용과 늦은 속도, 복잡한 운영 방식 등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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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위안화와 m-브리지 프로젝트, 국경 간결제 시스템(CIPS, Cross-boder Interbank Payment System) 가동 등 다양한 시도는 디지털 세상에서 중국이 디지털 금융을 선도하고 위안화를 디지털 시대 기축통화로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더불어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미국 등 G7 나라들보다 먼저, 그리고 신흥국들과 함께 실험하는 것은 글로벌 표준을 선점해 디지털 금융의 글로벌 리더 국가가 되겠다는 포부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이 글로벌 패권 전략으로 진행해온 최대 프로젝트는 사실상 ‘일대일로 전략’이다.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에 철도, 도로, 항만, 공공시설 등을 지어주고 경제적 유대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것이다. 경제적 관계는 외교•안보 관계를 연결하기 마련이다.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자금 조달과 송금 등 실행 과정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금융 수단으로 활용하면 위안화 국제화 전략에 맞아떨어진다. 상대적으로 재정 상태가 취약하고 금융이 발전하지 못한 신흥국에서 디지털 위안화 무역 금융 체제를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학자들도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위안화 금융 체제를 선택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e-CNY는 ‘국내용’이고 소매금융에 국한해서 적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민은행 부행장과 디지털 위안화 팀장이 나서서 카드뉴스 형태로 만들어 널리 홍보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한 중국 학자는 금융센터로 부각되고 있는 하이난다오에서 무역과 금융에 활용하기 위해 위안화 교환 규칙을 실험해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두 회사를 견제하는 조치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들 두 회사의 디지털 지급 결제 비중은 지역에 따라 상거래의 80∼90%를 차지하고 있다. 고객 정보와 결제 내역 등이 두 회사에 집중되고, 이를 활용해서 중국 고객들을 장악한다면 국가 경제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만일 주요 국유 은행들이 지급 결제에서 밀려나 알리페이, 위챗페이의 금융 창구 역할에 그친다면 중국 정부가 펼치려는 통화정책이나 금융 수단이 한계에 부닥칠 수 있다.

디지털 위안화는 ‘프로그램이 가능한 법정 화폐’다. 이론적으로 컴퓨터망을 활용해 코드에 반영한다면 개인들이 최대한 보유할 수 있는 한도를 두거나 특정한 결제 대상을 지정 또는 배제할 수도 있다. 만일 위안화가 대량 유출된다면 추적이 가능하기에 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다. 또한 위안화와 특정 화폐 간 교환을 막거나 한도를 정하는 것도 할 수 있다. 디지털 법정 화폐로서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이 있지만 중국인들은 그리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미국의 달러 패권 체제 유지 노력

미국은 CBDC 발행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와 법치주의, 프라이버시 보호 등을 강조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볼 때 미국이 CBDC를 서두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두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달러 패권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데 굳이 현재 판도를 뒤흔들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SWIFT 결제 기준으로 볼 때 위안화는 2022년 1월 기준으로 3.2%에 그친다. 중국 인민일보는 2021년 12월 2.7%에서 크게 높아진 수치로 엔화를 추월해 세계 4위 결제통화로 올라섰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 외환보유고 중 위안화 비중은 2.88%를 차지했다. 지속적으로 비중이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달러 체제는 요지부동이라고 보는 게 맞다.

디지털 경제로 전환되면서 모든 나라가 현금보다는 카드 결제나 계좌 이체 등 ‘현금 없는 사회’로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다. 숫자만 오고 가는 금융 거래가 일상적이다. 이 기준으로 봐도 달러는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플라스틱 머니라고 하는 신용카드 부문에서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글로벌 카드 결제망을 장악하고 있다.

둘째, 가상 자산 생태계 내에서 이미 달러 패권이 실현된 거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압도적인 상위 2개 스테이블코인은 모두 달러에 연계돼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생태계의 기축통화나 마찬가지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의 변동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가치가 안정된 암호화폐가 필요해지면서 탄생한 것이 스테이블코인5 이기 때문이다. 테더사가 만든 세계 1위 스테이블코인 USDT는 1달러당 1USDT로 발행된다. 미국 월가 회사들이 투자한 USDC는 달러화 실물을 담보로 1달러에 1USDC가 발행된다. 2위인 USDC는 지난 1년 동안 USDT와 격차를 크게 줄였다.

‘크립토 원터’라고 불릴 정도로 암호화폐가 크게 하락하는 국면에 접어들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상대적으로 입지가 안정적이다.

CBDC는 미•중 금융 패권 대결의 한 단면…
전방위로 확산되고 진영 형성


달러 패권은 미국의 패권을 지탱해주는 너무나 유용하고 강력한 무기이다. 달러 패권에 조금이라도 도전해온다면 미국은 가차 없이 싹부터 잘라버렸다. 중국이 CBDC를 선점하는 전략으로 움직일 때, 미국은 당분간 추이를 지켜볼 것이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에 가속도를 붙이게 한 계기는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 발표였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구상 단계에 그쳤지만 리브라는 여러 나라 통화 바스켓을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이나 다름없다. 2019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28개 파트너가 대부분 미국 은행과 빅테크 핀테크 회사였다. 처음 계획이 나왔을 때 통화 바스켓에서 위안화는 빠져 있었다.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 싱가포르 달러 등이 포함된 통화 바스켓에서 위안화가 제외된 것이다. 이를 보고 글로벌 디지털 화폐 체계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품게 됐다고 추정한다.

메타를 이끄는 마크 저커버그가 내놓은 리브라 구상은 미국 의회와 정부,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페이스북 가입자 20억 명 이상이 사용하게 된다면 달러 체제에 큰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에 ‘디엠’으로 개편안을 제시했지만 이마저도 철회됐다. 저커버그의 리브라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G2 두 나라를 긴장시켰던 셈이다.

미국이 CBDC를 어떤 형태로 내놓을지,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USDT, USDC 등 민간이 만들어낸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 달러에 연동시킨 스테이블코인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할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안을 제시할지 지켜볼 대목이다. 앞으로 CBDC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사용자들에게 어떻게 수용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백가쟁명이 한창이다. 이 때문에 CBDC는 너무 많이 통용돼선 안 되고 너무 존재 가치가 없는 상태가 돼도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분명한 것은 중국이 자체적으로, 그리고 일대일로를 활용해서 또는 여러 나라를 아우르는 다자회의 등 협의체와 채널을 통해 끊임없이 디지털 위안화의 영역을 확장하려 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6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자체 국제결제망 가동과 에너지 동행 구축이 핵심 의제였다고 한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 편’이라는 중국다운 전략으로 10년 아니면 20년 지속한다면 달러 패권에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이 내놓게 될 CBDC와 디지털 화폐 정책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화폐는 인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국가, 종교와 함께 화폐를 호모 사피엔스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창의적인 아이디어 중 하나로 꼽았다. 화폐는 제도가 아니라 신뢰가 핵심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가 동의한다. 어느 나라가 더욱 굳건한 신뢰를 얻고 쌓아갈지에 따라 패권의 향방이 좌우될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도전자로서, 미국은 지키는 챔피언 입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장악하려는 디지털 화폐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물밑에서 펼쳐질 흥미진진한 드라마에 우리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


조경엽 전(前) KB금융경영연구소장 •경영학 박사 kycho0909@gmail.com
조경엽 전 소장은 경영학을 전공하고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경제 금융 증권 분야를 취재했다. 2013∼2020년 KB금융경영연구소장으로 재직하며 금융 관련 연구 조사 및 분석 업무를 수행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 암호화폐,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기술 트렌드에 관심을 갖고 금융과 기술의 접목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 조경엽 | - (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소장
    - 매일경제신문에서 산업, 금융, 경제 전반을 취재활동을 하였음.
    - (전) 매일 경제신문 금융부장, 국제부장
    - (전) 주간지 <매경이코노미> 담당 국장
    - (전) 월간지 <럭스맨> 담당 국장
    - 1997년부터 1년간 미국 조지타운대 정부-기업관계 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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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웅 장재웅 | 동아일보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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