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이후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경각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여러 굵직한 사건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가해자는 물론, 관련 사건을 제대로 조치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비난도 거세졌다. 그리고 이는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매출 감소, 주가 하락 등 실제 기업의 재무적 손실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이 점차 늘어나면서 미국 기업들은 관련 이슈들을 재무적 리스크로 반영, 기업 평가 요소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도 관련 사건을 처리하는 비용에 대해선 세금 감면을 불허하는 등 보다 강력한 조치도 이행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개인의 상처와 고통으로만 끝이 날까. 기업은 일시적인 이미지 타격만 잘 견디면 될 일일까. 과거에는 그랬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변화를 보면 그렇지 않다. 조직 내 만연한 성희롱 사건을 눈감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큰코다칠 수 있다. 미국 폭스뉴스는 회사 CEO인 로저 에일스(Roger Ailes)가 회사 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성희롱, 성추행 사건으로 피해자들에게 약 7000만 달러(약 840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최근 영화 ‘밤쉘(Bombshell)’로 유명해진 이 스캔들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 놀랄 일이 아니다. 불운한 기업에만 닥치는 일도 아니다. 조직 내 성희롱 문제를 경시하는 기업에게는 엄연한 현실이요, 존폐의 위기로 치닫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제 성희롱은 회사에서 쉬쉬하고 넘어가야 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아니라 회사가 철저하게 관리하고 대응해야 하는 리스크인 셈이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 성희롱 사건들이 어떻게 기업의 재무적 손실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젠더 이슈를 포함해 차별적 조직문화가 경영 성과를 어떻게 해칠 수 있는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도 소개한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2010년, IT 업계에서 입지 전적인 인물이었던 HP CEO 마크 허드(Mark Hurd)는 조디 피셔(Jodie Fisher)라는 계약직 여성으로부터 성추행 고발을 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허드는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그 뒤 그의 몸값은 더욱 치솟아 경쟁사에서 모셔가기 위한 영입 쟁탈전이 벌어졌다. 경쟁사인 오라클에서 그를 영입하겠다는 이야기가 시중에 돌았고, 그 즉시 오라클 주가는 치솟았다. 그의 불미스러운 행동보다 그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과 능력이 기업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후 HP 자체 감사 결과 성추행은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이 사건 이후 회사를 나온 조디 피셔는 결과에 유감을 나타냈고, 허드는 오라클의 CEO가 됐다. 불과 10년 전 일이다.
최근까지도 성희롱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도의 미국의 성희롱 사건 수는 총 7944건, 2017년도에는 6696건으로 여전히 매년 수천 건이 발행하고 있다. 매사추세츠대 연구팀은 성희롱이 지속적으로 과소평가됐고, 성희롱 피해자의 대부분이 회피와 부정으로 일관하는 게 슬픈 현실이며, 직장에서 성희롱을 경험한 99.8%의 여성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실적제 보호위원회(Merit System Protection Board)의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성희롱을 당한 직장인의 6%만이 피해 사실을 알리고 법적 조치를 취했다. 이 설문 조사는 성희롱을 경험하고 그 고통으로 인해 퇴직한 직장인들은 포함하지도 않았다.
곽승욱swkwag@sookmyung.ac.kr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필자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와 텍사스공과대에서 정치학 석사와 경영통계학 석사, 테네시대에서 재무관리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타주립대 재무관리 교수로 11년간 근무한 후 현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행동재무학/경제학, 기업가치평가, 투자, 금융 시장과 규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