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
금융위기란 자산 가치 하락(Asset Deflation)으로 대표되는 금융시장의 붕괴와 이로 인한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대규모 부도사태를 일컫는다.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언급하자면 금융위기가 오는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다만, 어떤 식으로 위기가 출발했든 전개과정에서 몇 가지 유사한 점들이 보이는데 그것을 이해하면 경제를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질 수 있다.
한 나라 경제 체질의 허약함은 경제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보통 이런 경우, 외환위기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고1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현상들이 나타난다. 우선, 돈을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기업과 금융기관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게 된다. 누가 부실한 곳에 돈을 빌려주려 하겠는가. 그러면 특히 금융기관들은 부실한 대출을 정리하기 위해 담보로 잡았던 부동산을 팔려고 한다. 기업들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부동산 매각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당연히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게 된다. 부동산 가격 하락은 또 다른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담보로 잡힐 수 있는 자산의 가치가 하락해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여력이 더더욱 줄어든다. 당연히 기업부도가 증가할 것이다. 가계들도 자산가치 하락으로 개인파산이 증가한다. 금융기관은 대출을 해주고 잡아놓았던 담보가치가 하락하는 셈이다. 이는 곧 부실채권이 증가하는 것과 같은 효과다. 당연히 대출했던 돈을 빨리 회수하려 들고 신규 대출은 줄일 것이다. 이것을 신용경색(Credit Crunch)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 주식가치 하락이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 및 국내 투자자들이 일거에 빠져나가고 이는 주가하락으로 이어진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장기투자 자원을 조달하는 통로가 붕괴되는 셈이고 이는 기업부도를 증가시킨다. 가계는 역시 자산가치 하락으로 파산이 속출하고 소비도 급격히 위축될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기업이나 은행들이 (구조조정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자기자본을 확충하기 위해서 증자를 하려고 한다. 기업이나 은행들이 건전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남의 돈을 빌려서 경영을 하고 있으면 일정 비율의 자기 돈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빚만 잔뜩 가지고 있는 기업을 누가 건전하다고 생각하겠는가. 이러한 구조조정 과정이 또한 주식가치 하락을 촉진한다. 이는 간단하게 수요 공급법칙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발행되는 주식의 수가 많아지면 당연히 주식의 가격은 하락하게 마련이다.
세 번째로, 시장이자율이 치솟는다. 쉽게 생각해 불안한 곳에 누구도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기업들이 채권발행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려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높은 이자율로 인해 돈이 필요한 기업과 가계가 직접적으로 치명타를 맞을 것은 자명하며, 또한 고금리로 인해 부동산 수요는 더더욱 급감한다. 부동산 가격하락은 앞에서 언급했던 경로 등을 통해 경제를 침체로 몰고 간다.
정리를 좀 해보자.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는 보통 같이 찾아오는데 어떤 것이 먼저고 어떤 것이 나중이기보다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기가 전파되는 경로에서의 보편적인 현상은 자산 가치 하락, 즉 부동산과 주식 등 경제주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실물, 금융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며, 금융기관(은행)에 의한 신용경색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를 예로 들어보면 이렇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것은 은행이 신용도가 그리 좋지 않은 사람에게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주택가격이 높으면 나는 그만큼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다. 담보가격에 비례해 대출총액이 정해지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은행 입장에서는 주택가격이 좋으면 담보로 잡고 대출을 하는 데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2008년 위기 전 얼마 동안 미국 소비자들은 높은 주택가격 덕에 소득보다도 더 많이 소비했으나 저축률은 마이너스였다. 은행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주택가격이 떨어지자 재앙은 찾아왔다.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해 개인파산이 속출했고 이는 급격한 소비 위축과 경기 위축을 가져왔다.
은행은 어떠한가? 은행의 특성 중 하나는 자기자본에 비해 훨씬 많은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고객에게 돈을 빌려 연쇄적인 대출(신용창출)을 통해 이익을 내는 레버리지(leverage)2 를 이용하는 기업이란 말이다. 은행의 레버리지 비율(총자산(부채)/자기자본)을 10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경제가 잘 돌아가고 대출을 통해 수익을 잘 내고 있으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사태로 부실대출이 양산되고 은행에 손실이 나서 자기자본이 10억 원 하락하면 이론상으로 대출은 100억 원까지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급격한 신용경색은 가계와 기업 모두에 치명타를 입히게 된다.
신종 뱅크런의 탄생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3 은행발 위기가 기업에 대한 신용공급에 영향을 미친다면 많은 독자들이 고전적인 뱅크런(Bank-runs)4 을 생각할 것이나 ‘신종 뱅크런’이라는 새로운 채널이 등장한다.
미국 신디케이티드 대출 시장의 규모는 지난 30년간 빠른 속도로 증가해서 현재는 은행이 대기업에 대출하는 주요 방식으로 자리 잡았고 투자은행, CLO(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s), 헤지펀드, 뮤추얼펀드, 보험회사, 연기금 등이 신디케이티드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신디케이티드 전체 대출 규모는 2008년 4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47% 낮아졌고 대출 규모가 피크에 달했던 2007년 2분기와 비교했을 때에는 79% 감소했다. (그림 1) 대출 규모의 감소는 투자적격등급, 투자비적격등급, 장단기 대출, 신용한도대출 계약(그림 2), 기업구조조정, 기업 일반용도의 대출 등 전 범위에 걸쳐 일어났다. 특히, 은행에 단기 자금을 제공해 주었던 채권자들이 일거에 은행에서 자금을 수거해가서 은행 또한 단기 대출 연장(roll-over)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예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던 은행들은 오히려 금융위기 시 대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반면 은행의 일반적 대출(commercial and industrial(C&I) loans)은 증가했는데(그림 3) 이는 신규 대출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기존 신용한도대출 계약(Lines of Credit)5 의 실제 대출금액(또는 실제 사용량)이 증가한 것이었다.6 이러한 현상, 즉 신용한도 대출의 실제 대출금액이 갑자기 늘어나는 현상을 신종 뱅크런이라고 한다. 이는 은행이 불안해지자 채무자들이 은행의 유동성을 빨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신용한도대출 계약을 co-syndicated했던 은행들이 신종 뱅크런을 더 많이 경험했고 그로 인해 대출을 더 많이 줄였다. 대출감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신종 뱅크런의 공포였던 것이다. 예금자 보호로 고전적 뱅크런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최근의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신종 뱅크런에 의해 일어났다.
금융위기 시 재무전략: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유동성7 확보에 나서고 있다. 사채 발행, 사옥 매각, 인수합병 등이 있는데 이는 외부 자본시장에 접근이 용이하거나 일정 정도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금융위기 시 기업의 재무전략, 특히 유동성 확보 전략에 재미있는 특성이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유동성 확보는 현금 또는 신용한도계약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소위 말하는 한계기업들, 즉 현금흐름이 좋지 않고 현금보유량도 적은 회사들이 경제 위기가 예상되면 신용한도계약을 맺으려한다.8 이는 사람들이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의 미래가 불확실해지면 은행에 가서 소위 말하는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려고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미래의 임금충격에 대비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그러나 현금 보유량이 많거나 현금흐름이 좋은 기업은 위기 때 신용한도대출에 대한 수요는 그리 높지 않다. 기존에 쌓아놓은 현금이 많은 경우 굳이 대출이자가 높고 은행을 통해 경영간섭을 받을 수 있는 신용한도 대출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현금 보유량이 적더라도 현금흐름이 괜찮으면 신용한도대출에 대한 수요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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