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EB발행’ 父子의 緣 끊는다

21호 (2008년 11월 Issue 2)

지난해 여름 동아제약의 강신호 회장과 강 회장의 차남인 강문석 수석무역 대표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다. 가장 가까운 사이여야 할 부자 사이에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한 번 돌아선 부자 관계는 이 경영권 분쟁을 서로 전혀 모르는 남남 사이의 다툼보다 더 치열하게 만들었다.
 
원래 강문석 대표는 동아제약에서 7년 동안 대표이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그는 경영 방침을 둘러싼 의견 대립으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악화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강 대표는 서서히 동아제약의 주식을 매집했다. 14.79%의 지분을 획득한 그는 15.61%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강신호 회장 측에 대항해 주주총회에서의 표 대결을 선언했다.
 
당시 동아제약의 상황은 상당히 어려웠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350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아 이를 납부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아들로부터 경영권마저 위협 받았으니 강 회장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치열한 언론 플레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여러 경로의 중재를 통해 극적으로 화해했다. 그리고 강문석 대표와 강 대표가 추천한 인물 1명을 동아제약의 이사로 선임했다. 즉 강 대표의 경영 참여를 일부 인정하는 형식이다. 이렇게 부자 사이의 다툼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했다.
 

 
동아제약 경영권분쟁의 변수
재미있는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동아제약은 그 뒤 이사회에서 자사가 보유하고 있던 자기 주식 약 75만주(전체 지분율 7.45%)를 해외의 조세피난처 국가에 위치한 특수목적법인(SPC)인 DPA 리미티드와 DPB 리미티드에 전량 매각, 648억 원을 조달하기로 결의했다.
 
이 두 SPC가 동아제약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지불한 648억 원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은 것이었다. 대출금에 대해서는 동아제약이 지급보증을 서 주기로 했다. DPA와 DPB는 동아제약 주식을 이용해 8000만 달러의 교환사채(EB)를 발행하기로 했다. EB는 사채의 보유자가 일반 사채처럼 발행회사로부터 이자를 정기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으며, 사채를 발행한 회사에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또는 타사 주식을 사채와 교환할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
 
이 EB의 발행 조건은 발행 1년 후인 2008년 7월 4 이후부터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동아제약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환가액은 발행 직전일의 동아제약 주가보다 15% 높은 9만8500원이었다. EB 이자율은 3.954.10%, 발행일로부터 3년 되는 시점에 구매자가 풋(매도) 옵션을 행사해서 발행자에게 상환을 요구할 권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흥미를 끄는 점은 발행 즉시 알려지지 않은 구매자가 나타나 이 EB를 매입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언론은 전혀 심층적인 기사를 내놓지 못했다. 단지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피상적으로 간단히 보도하는 정도였다. 이 보도를 읽은 전문지식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 사건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경영 전문가가 아닌 기자들이 SPC, EB, 지급보증 등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동아제약의 재무제표나 공시 내용을 모두 살펴본다 해도 앞에서 언급한 정보 이외의 다른 상세한 정보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필자는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부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상식적 수준에서 공시처럼 이용 가능한 공개정보를 통해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이름도 듣지 못한 페이퍼 컴퍼니로 보이는 DPA나 DPB라는 회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모두 동아제약이 지급보증을 해준 덕택에 빌린 돈으로 동아제약의 자사주를 사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개운치 않다. DPA나 DPB가 법적으로는 동아제약과 아무 관계가 없다 해도 다른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게 만든다.
 
자기주식 매각대신 EB 선택
그렇다면 동아제약은 왜 자기주식을 시장에서 매각하지 않고 이런 방법으로 해외 SPC에 매각해 EB를 발행하는 방법을 이용했을까. 그 이유는 강문석 대표와의 경영권 분쟁 때문일 것이다. 서로 지분경쟁을 벌이는 입장에서 현금 동원력이 별로 없는 경우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기주식을 시장에 매각해 회사에 필요한 현금을 조달한다고 할 때 경쟁 상대방이 매각된 주식을 매집한다면 경영권이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3자 배정 형식으로 모든 자기주식을 우호세력인 특정인에게 국내에서 매각한다면 이는 경영권을 둘러싸고 법정소송이 벌어질 때 문제의 꼬투리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는 해외 법인인 DPA나 DPB가 발행한 EB를 누가 사든 동아제약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자기주식을 시장에서 매각하지 않고 국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에 위치한 제 3자에게 넘겨 그 3자가 EB를 발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 방법으로 자기주식을 매각해 현금 648억 원을 조달했으므로 동아제약은 부과된 세금을 무사히 납부하고 유동성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SPC 측도 이를 담보로 EB를 발행, 시장에 매각하여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은행에서 차입한 돈을 즉시 상환할 수 있다. 또한 SPC가 발행한 EB는 1년이 경과한 뒤부터 주식으로 교환 가능한 조건이므로 해당 주식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시점을 1년 후로 미룰 수 있다. 1년 동안 동아제약의 지배주주 측은 열심히 지분비율을 늘려 경영권 분쟁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투자자가 이 EB를 살 것인가. EB는 일반 사채에 비해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 EB를 보유한 투자자들은 보유기간에 고정된 이자율에 따라 이자를 지급받는다. 또 회사가 경영을 잘하여 주식가격이 상승하면 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으므로 투자자들은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EB 이자율은 일반 사채의 이자율보다 약간 낮게 형성된다. 즉 발행회사 입장에서는 적은 조달 비용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많은 기업이 이용하고 있는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경우 보유자가 주식으로의 전환을 원하거나 신주인수권을 행사하면 주식을 추가로 발행해야 하므로 대주주의 경영권을 희석시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EB는 신주를 발행하는 것도 아니므로 이런 문제점을 지금 당장은 회피할 수 있다.
 
불필요한 규제, 시간과 돈만 허비
이 때문에 최근 들어 EB 발행 규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회사들이 주가관리 차원에서 자기주식을 많이 매입함으로써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증가했기 때문에 EB 발행이 용이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단 국내법상 자사주 펀드나 특정금전신탁 등에 의해 취득한 자기주식은 EB의 발행 대상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자사주를 해외에 설립한 SPC에 형식적으로 매각하고, 해당 SPC가 EB를 판매하는 형태로 EB를 발행하는 것이다. 사실 자사주 펀드나 특정금전신탁 등에 의해 취득한 자기주식은 EB의 발행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규정은 불필요한 규제라고 생각한다. 외국에 SPC를 세우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합법적으로 해당 규정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만 더 소모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기타 EB를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의 경우를 보자. KB금융지주의 황영기 회장이 최근 자사주 매각 및 EB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여 금융기관 인수합병(M&A)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은행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행주식의 20%에 이르는 자사주를 대량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를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사주를 한꺼번에 대규모로 매각하면 주식 가격이 단기간에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 자사주를 담보로 한 EB를 발행하면 이런 위험성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놓고 경쟁한 포스코나 한화그룹도 모두 자금 조달 목적으로 EB 발행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글로벌 신용위기로 현재 자금시장이 꽉 막혀 있는 상태이므로 실제로 원하는 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이들 기업은 모두 현재의 위기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EB 발행 시기를 가능한 한 뒤로 미루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2008년 9월 중국 정부 당국도 폭락하고 있는 주식시장 때문에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막히자 EB 발행을 허용하겠다고 발표, 추락을 거듭하던 중국 주식시장이 잠시 반등하기도 했다.
 
교환사채 발행 후 지분경쟁 종료
EB 발행 후 동아제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화해하는 듯 보이던 부자 사이에는 다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강문석 대표는 법원에 EB 발행을 중지하게 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소송 제기 이유는 EB 발행이 경영권 경쟁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정당한 자금조달 목적이라는 강신호 회장 쪽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동아제약에서는 이사로 선임된 강 대표 측에게 사무실이나 업무를 주지 않았다. 강 대표 측 이사의 이사회 참석도 거부했다. 이후 강 회장 측은 우호지분을 꾸준히 늘려 2007년 말 지분율을 약 30%로 끌어올렸다.
 
반대로 강문석 대표의 우호세력 측은 지분을 일부 매각했다. 이 사실만 놓고 보면 지분 경쟁은 이제 끝났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강신호 회장 측이 승리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EB 발행이 대주주가 아니라 동아제약이란 회사에도 도움을 준 거래인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막대한 추징세금 낸 동아제약
동아제약은 SPC에 매각한 자금을 이용해 막대한 추징세금을 납부했다. 동아제약의 2007년 세전이익은 500억 원이다. 그러나 530억 원의 법인세를 납부하는 바람에 지난해 전체로는 당기순손실 30억 원을 기록했다. 2006년의 277억 원 흑자에 비하면 실적이 상당히 나빠진 셈이다.
 
다만 2008년 반기 보고서를 살펴보면 올해 실적은 2006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부터 3년간의 세전이익을 비교한 경우에도 동아제약은 올해 들어 확실한 실적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또 동아제약은 지난 7월부터 9월 초에 걸쳐 발행주식의 1%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매입했다.
 
자사주 매입과 경영성과 호전에 힘입어 동아제약 주식은 올해 주식시장의 거듭된 하락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동아제약 주가는 10만원 안팎에서 거의 1년 간 움직이지 않다가 주가가 급락한 10월 한 달 간 약 30% 하락했다. 같은 기간에 업종 내 다른 종목 주가가 평균 50% 이상 하락했음을 감안하면 동아제약의 선방은 어떤 면에서 놀라울 정도다. 다만 회계와 경영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 EB를 구입한 투자자는 강신호 회장 측과 친밀한 우호세력일 가능성이 높다. 과연 이 투자자는 EB 매입을 통해 충분한 이익을 거뒀을까. EB의 주식 교환이 시작되는 시점인 2008년 7월 4 동아제약 주가는 10만1000원이었다. 1년 전 결정된 교환가격 9만8500원보다 약간 높다. 따라서 이때 EB를 주식으로 교환했다면 1년간 적어도 7.45%의 이자를 받은 것 이외에도 추가 이익을 더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주식을 교환하지 않고 계속 EB를 보관하고 있다면 얼마나 더 이익을 올릴 수 있을지 여부는 앞으로 동아제약 주가의 추가 상승 여부가 결정할 것이다. 이 EB의 만기가 일부는 5년, 나머지는 10년이니 만큼 아직 투자자가 기회를 살펴볼 시간은 충분하다 할 수 있다. 사실 지금처럼 경제 전반과 주식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시점에 적어도 7.45%의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처도 많지 않을 것이다. 1997년 IMF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5년씩 걸리지는 않았으니 현 주가 하락 위기도 5년이 지나기 이전에 안정을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편집자주 서울대 최종학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한편 비즈니스에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9호 Boosting Creativity 2020년 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