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를 통해 본 세상

SK와 한미사이언스 사례로 본
분식회계 판단의 정치학

325호 (2021년 07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11년 국내 도입된 국제회계기준에 따르면 모회사가 자회사에 실질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우, 모회사와 자회사의 재무 상태와 영업 성과를 합쳐 보고하는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2019년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의 연결재무제표 작성 여부에 대해 회계기준원과 금융감독원이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지배력 여부를 판단하라’며 직접적인 판단을 회피하는 일이 있었다. 이는 2017년 SK C&C가 SK㈜에 대해 실질지배력을 갖고 있는데도 연결에서 제외했다는 금융감독원의 판단과 배치된다. 회계는 수학 공식처럼 명확한 것이 아니라 결정 과정에서 여러 판단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정치적인 이유로 특정 기업을 처벌하고자 한다면 이런 판단과 관련된 회계 처리를 손쉽게 문제 삼을 수 있다. 감독 당국이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혼란과 갈등은 계속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미사이언스(구 한미홀딩스)는 신약 개발로 대박을 터뜨린 한미약품을 자회사로 거느린 한미약품그룹의 지주회사다. 임성기 회장이 한미사이언스의 주식 중 34%를 소유한 최대주주이며,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의 주식 중 41%, 제이브이엠의 주식 중 37%를 보유하고 있다. 과거 있었던 한미약품을 2010년 분할해 지주사와 자회사 체제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런데 2011년 국제회계기준 도입 시점부터 한미사이언스는 개별재무제표를 작성할 뿐 한미약품을 종속회사로 간주하지 않아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의 재무 상태와 영업 성과를 합쳐 보고하는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았다. 회계 기준에 따르면 자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해서 실질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실질 지배력을 행사하지는 못하더라도 2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다면 중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간주해 지분법으로 회계 처리한다. 즉 실질 지배력이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회계 처리가 완전히 달라진다. 연결재무제표 작성의 대상이 되는 자회사를 종속회사라고 부르며, 이와는 달리 지분법 적용 대상이 되는 자회사를 관계회사라고 부른다.

국제회계기준(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IFRS) 도입 이전에는 A 회사가 B 회사의 (1) 의결권 있는 주식을 50% 이상 소유하는 경우, (2) 의결권 있는 주식의 30%를 초과하여서 소유하고 있으면서 최대주주인 경우, (3) 이사회의 과반수 이상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경우 A회사가 B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했다. 그런데 IFRS에서는 규정이 바뀌었다. 지분 비율이 50%가 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방법을 통해 B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해 이사회를 임명하거나 재무 정책과 영업 정책 등을 결정할 수 있다면 종속회사로 간주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도록 했다. 마찬가지로 지분 비율이 50%가 넘더라도 다른 이유가 있어서 B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지 못한다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IFRS 도입 이전에는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상대적으로 명확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IFRS 도입 이후에는 기준이 좀 더 복잡하다. 지분 비율이 50%에 미달하는 경우 실질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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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사이언스의 회계 처리를 둘러싼 논란

2019년 들어 한미사이언스의 회계 감사를 담당하던 회계법인이 삼일회계법인에서 한영회계법인으로 교체된다. 그런데 새로 감사를 맡게 된 한영회계법인은 한미사이언스가 41%의 지분을 보유한 한미약품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므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즉 2011년부터 2018년까지의 회계 처리가 모두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대해 한미사이언스는 동의하지 않았다. 과거 9년의 기간 동안 안진과 삼일이라는 두 대형 회계법인이 감사를 맡았을 때는 한 번도 문제 삼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이를 문제 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론에 반응이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아마 과거 한미사이언스를 감사했던 두 회계 기관도 긴장했을 것이다. 만약 관계회사로 취급한 과거의 회계 처리가 잘못된 것이라면 회계법인과 담당 회계사들은 징계를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소송까지 당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경우와 개별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경우의 재무제표 장부 금액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잘못된 회계 처리의 금액에 따라 달라지는 법적, 행정적 처벌의 정도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의견이 대립되자 2019년 말 한영회계법인은 회계기준원에 이 안건을 질의한다. 그러나 회계기준원은 “사실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면서 질의 접수 자체를 거부한다. 2020년 1월, 한영회계법인은 이에 대해 항의하고 다시 답을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자 회계기준원과 금융감독원의 연석회의가 열렸는데 두 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 결과 “지배력에 따른 연결 처리 여부는 기업의 판단이고 감사인은 이를 확인하라”는 원칙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즉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라는 것이다. 표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내용과 언론에 보도된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금융감독원은 한미사이언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즉 ‘기업 스스로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알아서 판단하라’는 의미를 가진 결론이었다.

언론 보도로는 당시 한미사이언스와 한영회계법인 사이에서 큰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후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한번 짚고 넘어가자’면서 양측이 모두 동의해서 질의를 하게 된 것이다. 즉 감독당국의 규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질의였다. IFRS에서 제시하고 있는 실질 지배력 기준이 모호해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한 만큼 혹시나 감독당국이 다른 해석을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전에 그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이런 질의를 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추측으론 당시 한영회계법인이 나서서 한미사이언스의 회계 처리에 대해 한번 점검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게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017년부터 금융감독원은 SK㈜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혐의하에 감리를 진행하고 있었다. SK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분식회계라고 주장한 내용이 한미사이언스 사례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SK 관련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SK그룹과 헤지펀드 소버린 사이의 경영권 분쟁

2015년 이전까지 SK그룹의 지주사는 SK㈜였다. 이 회사가 SK이노베이션, SKC, SK네트웍스 등을 지배하는 형태였다. 이때의 SK㈜를 그 후 SK C&C와 SK㈜가 합병해 탄생하는 SK㈜와 구분하기 위해 구 SK라고 지칭하겠다. 그에 반해 합병 이후 탄생하는 SK㈜를 신 SK로 칭하겠다.

SK C&C는 원래 1991년 창립된 선경텔레콤이 시초다. 현재의 SK텔레콤과는 전혀 다른 회사로서 시스템 통합 및 IT 아웃소싱을 주 사업 분야로 하고 있다. 이 회사의 대주주는 SK그룹의 총수인 최태원 회장으로, 45%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주식들도 대부분 기타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하고 있어서 소액주주들의 지분 비율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2010년을 기준으로 SK C&C는 구 SK의 주식 32%를 보유하고 있었다. 즉 당시 SK기업집단의 지주사인 구 SK의 주식 중 다수를 SK C&C가 보유하고 있는 형태였다. 형식적인 지배구조로 보면 SK C&C가 더 상위에 위치해 구 SK를 지배하는 것 같지만 그룹의 수뇌부는 구 SK에 모여서 그룹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담당하고 있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구 SK가 SK C&C를 지배한다고 볼 수 있었다. 구 SK와 비교할 때 SK C&C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시스템 통합 및 IT 아웃소싱을 담당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회사였다. 그래서 옥상옥 구조1 의 지배구조라고 불렀다.

이렇게 이상한 형태의 지배구조가 생긴 데는 다 이유가 있다. 1990년대까지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 집단들과 마찬가지로 SK그룹도 순환출자 체제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다 2004년 헤지펀드 소버린이 구 SK의 주식을 매집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다.2 순환출자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가 구 SK였는데 구 SK만 지배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구 SK의 주식만 매수한 것이다. 당시 최태원 회장 및 특수관계인들이 보유 중인 구 SK의 지분은 1% 미만이었으며, 순환출자 형태로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구 SK의 지분을 모두 합해야 15%뿐이었다. 그런데 소버린이 1700억 원을 투자해 15%의 주식을 매집해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선언했으니 양측의 표 차이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SK 측과 국내 언론들이 나서서 ‘우리나라 회사를 외국 투기자본에 뺏긴다’면서 애국심에 호소한 결과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당시 정권과 정권을 지지하는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소버린 측을 지지했다. 따라서 주주총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는 누가 이긴다고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SK 측이 62 대 38의 큰 표차로 승리했다. 주주총회에서 패배하자 소버린은 주식을 매각하고 철수했는데 투자 기간 1년 동안 약 1조 원의 이익을 얻었다.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이런 일이 있는 후 SK그룹은 절치부심해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착수한다.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던 순환 출자 체제를 끊고 보다 바람직한 체제로 간주되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각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히 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대기업 집단들의 지주사 체제 전환을 권장하고 있었다. 그런 작업의 일환으로 대주주가 많은 지분을 보유한 SK C&C에서 보유 중이던 타 기업의 주식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과 여유 자금을 총동원해 그룹의 지주사인 구 SK의 주식을 매수한다. 그 결과 SK C&C가 보유한 구 SK의 지분은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던 2005년 11%에서 지배구조 체제가 거의 완성된 2010년에는 32%까지 증가한다. 따라서 대주주가 SK C&C를 지배하고, SK C&C가 구 SK 주를 형식적으로 지배하고, 구 SK가 다른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형태가 확립된 것이다.

SK C&C와 SK㈜의 합병 계획 발표와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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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상한 지배구조 때문에 외부에서는 꾸준히 SK C&C와 구 SK가 합병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기해왔다. 2012년과 2013년 잠시 주춤했던 SK C&C의 경영 상황이 그 이후 본궤도에 올라 꾸준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익이 증가하자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합병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리고 2015년 들어 실제로 합병이 이뤄지게 된다. 법률 규정에 의거하여 합병 비율은 두 회사의 시가총액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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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5년 4월20일 양사의 주주총회에서 합병 계획이 발표되자 경제개혁연대가 거세게 반발한다.3 이 합병이 비즈니스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대주주의 지배권 강화 목적만을 위한 합병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SK그룹이 의도적으로 SK C&C의 주가를 부풀려 SK C&C의 시가총액이 과다하게 증가한 상황에서 합병이 이뤄지도록 하여 SK C&C의 대주주 최태원 씨는 이익을 얻지만 구 SK의 주주들은 손해를 보는 합병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계획도 발표됐는데 헤지펀드 엘리엇은 이재용 씨 일가의 지분 비율이 높은 제일모직의 주가가 과다하게 오른 시점에서 합병이 이뤄지기 때문에 삼성물산의 주주들에게 불리한 합병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성그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동일한 일이 SK그룹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에 대해 SK 측은 ‘합병을 통해 SK C&C가 보유한 ICT 역량을 그룹 계열사에 더 밀접하게 접목할 수 있어서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고 반박했다. 또한 공정거래법 규정에 따라 계열사 간 내부 거래에 대한 규제가 증가하고 있는데, 그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도 합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당시 SK C&C는 그룹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 비중이 약 40%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공정거래법의 제한을 받게 되면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또한 SK 측이 SK C&C의 주가를 고의로 부풀렸다는 증거가 무엇이냐고 반론했다.

어쨌든 이렇게 의견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이나 기관투자가들이 잇달아 합병안 지지를 발표한다. 의결권 자문기관들의 공신력이 크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들 기관을 포함해 다수의 투자자가 합병을 지지한다는 것은 SK의 주장이 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삼성물산의 합병과 관련해서는 큰 논란이 벌어졌고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데 반해 SK의 합병에 대해 벌어진 논란에 대해서는 언론 보도도 별로 없었고 사건 이후 바로 잊혔다는 사실을 비교해보면 이 사건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이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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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국민연금의 이상한 행동

합병은 6월26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그런데 주주총회 이틀 전 구 SK의 주식 중 7.2%를 보유한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반대투표를 결정한다. 이 합병이 구 SK의 주주들에게 불리하므로 합병에 반대하겠다는 견해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곧이어 열린 주주총회에서 구 SK의 참석 주주 중 87%가 합병에 찬성함으로써 두 회사는 합병을 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 비율이 주주총회 참석 주주들 중 10%였으므로 국민연금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주주가 합병에 찬성한 셈이다. 생각보다는 싱겁게 SK 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표 대결이 끝난 것이다. 그 결과 현재의 신 SK가 탄생하게 됐다. 사실 다수의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므로 국민연금의 투표 여부에 관계없이 주주총회 이전에 이미 SK 측의 승리가 예견돼 있었다.

그런데 주주총회에서의 대결보다 더 놀랄 만한 일이 주주총회 이후에 발생했다.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행사되면 회사가 이 주식을 매수해줘야 한다. 그런데 너무 많은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회사가 보유한 현금으로 이를 다 매수할 수 없다. 따라서 사전에 일정 규모 제한을 두고, ‘그 이상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요청이 접수되면 합병을 무효로 한다’는 내용을 발표한다. 4 그런데 이 건의 경우 SK 측에서는 ‘1조 원 이상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요청이 있으면 합병을 무효로 한다’는 것을 결정한 상황이었는데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의 가치가 1조4000억 원이나 됐다. 즉 주주총회에서의 합병 안건 가결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요청만 하면 합병을 무효로 할 수 있었다. 즉 주주총회에서의 표 대결 승리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국민연금은 주주총회 이후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구 SK의 주주들 중 불과 79주만이 청구권을 행사해 회사는 2000만 원만 들여 이 지분을 매수했다. 합병이 발표된 이후 두 합병 당사자 회사들의 주가는 계속 상승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시가가 10% 이상 높아졌다. 따라서 주주들 입장에서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합병 선언 이후 두 회사의 주가가 계속 상승했다는 점도 주주들이 ‘합병이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대주주만을 위한 합병’이며 ‘소액주주들에게는 손해가 된다’라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이 일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건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주주총회는 SK의 합병 주주총회 날짜보다 약간 늦은 7월17일이었다. 삼성의 합병안을 놓고는 국내 모든 언론이 삼성 편을 들고 있었다. 이때 외국 의결권자문기관은 반대를 권고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찬성투표를 했다. 그런데 SK의 합병안에 대해서는 외국 펀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시민단체와 국민연금이 나서서 반대한 것이다. 이번에는 의결권 자문기관이나 기관투자가들이 합병에 동의를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반대투표를 하고 나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합병을 무효화할 수 있었는데도 청구권 행사를 하지 않았다. 또한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국민연금은 합병 발표 직전까지도 SK C&C와 구 SK의 지분을 계속 매수해 지분 비율을 늘리고 있었다. 합병이 예상된 상황하에서 지분 비율을 늘렸다는 것을 보면 합병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제반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국민연금이 반대투표를 한 것이 실제로 합병이 손해를 본다고 판단해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언론에 짤막하게 보도된 내용을 보면 반대투표를 결정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회의에서도 위원들끼리 서로 의견이 대립돼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경제개혁연대와 의견을 같이하는 몇몇 위원이 반대 의견을 적극 주장한 결과 회의에서 안건이 통과된 것이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합병에 반대한다고 주장하거나 투표한 위원들도 실제로는 합병이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라는 요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해석이 옳다면 국민연금의 일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위원들이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것이다. 우스갯소리에 비유하자면 카드 판에서 가끔 발생하는 블러핑(bluffing, ‘뻥카’)과 유사한 것이다. 국민이 낸 돈으로 운영되는 국민연금이 이처럼 국민의 노후 자금 증진과 무관한 정치적 행위를 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권 교체와 금융감독원의 SK그룹에 대한 조사 착수

이런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난 후인 2017년 중반, 정권이 교체되자 금융감독원 고위직에 공무원 출신이 아닌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다수 진출한다. 그 직후 금융감독원은 다수의 인력을 모아 사전 계획에 없던 몇 개 대기업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그중에는 SK그룹과 삼성그룹이 포함돼 있었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가 사석에서 SK C&C와 구 SK의 합병 사례를 예로 들면서 ‘최태원 회장이 합병을 통해 큰 이득을 보았고’, ‘부도덕한 SK그룹을 혼내줘야 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도 널리 알려졌다. 5 이 말의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우연의 일치일지 몰라도 금융감독원의 조사가 집중된 부분이 바로 SK C&C와 구 SK의 합병 건이었다.6 합병 과정이 법률에 따라 제대로 이뤄졌는지, 합병 관련 회계 처리가 적정한지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2019년까지 무려 2년간에 걸쳐 이뤄진 자세한 조사 이후 금융감독원은 합병과 관련해 대규모 분식회계가 있었다는 잠재적 결론을 내린다. SK C&C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분식회계를 해서, 합병 비율을 SK C&C에 유리하게 조작했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야 SK C&C의 지분을 많이 가진 대주주가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런데 금융감독원이 이야기하는 분식회계 시점은 놀랍게도 합병이 일어난 2014년이 아닌 2010년으로 돌아간다. 즉, 분식회계가 2010년에 벌어졌다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의 전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이 글의 앞부분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부터 상장회사에 한해 IFRS를 적용하게 됐다. 그런데 IFRS에서는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기준이 이전과 크게 달라진다. 2010년까지는 명확한 지분율 기준이 존재해 해당 지분율을 넘으면 무조건 연결했는데, IFRS에서는 실질 지배력을 가진 경우에만 종속회사로 판단해 연결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가 실질 지배력을 가진 것인지 명확하지 않으므로 사람이나 기업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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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S 도입 직전의 SK그룹의 지배구조는 [그림 2]와 같다. SK C&C는 당시 규정에 따라 구 SK를 연결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구 SK도 자회사들을 연결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있었다. SK C&C가 보유한 구 SK의 지분 비율이나 구 SK가 보유한 다른 자회사들의 지분 비율이 50%를 넘지 않았지만 의결권 있는 주식의 30%를 보유하는 최대주주에 해당되므로 자회사들을 종속회사로 간주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했던 것이다.

IFRS가 도입되자 실질 지배력의 존재 여부에 따라 지배-종속 관계를 파악해 연결 여부를 결정하게 됐다. 그러자 SK그룹은 SK C&C가 실질적으로 구 SK를 지배하지 못한다고 판단해서 구 SK를 연결 범위에서 빼 버린다. 그렇지만 구 SK는 기존에 연결 중이던 다른 자회사들에 대해 실질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해 계속 연결했다. 7

SK C&C가 구 SK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는가?

그런데 이 경우 회계 처리가 복잡해진다. 보유하고 있던 주식의 분류가 바뀐다면 우선 해당 주식의 장부가와 시가의 차이를 평가손익으로 인식한다. 단 IFRS 도입 시점에는 이 평가손익을 손익계산서에 포함시키지 않고 재무상태표의 이익잉여금을 조정했다. 즉 해당 주식의 보유 기간 동안 주식의 시가가 상승했다면 평가이익을, 그 반대로 시가가 하락했다면 평가손실을 회계장부에 적어야 한다. 그 후 새로운 주식의 분류에 따라 적절한 회계 처리가 이뤄진다. SK C&C의 경우 구 SK를 연결 범위에서 제외한 시점에서 구 SK가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회사로 재분류되므로 그 제외 시점부터 지분법 회계 처리를 해야 한다.8

소버린의 경영권 공격을 받은 이후 2011년까지 SK그룹은 여러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이뤘다. 이에 비례해 SK C&C가 보유하고 있던 구 SK의 주가도 보유 기간 동안 엄청나게 상승했다. 따라서 2011년 들어 SK C&C가 구 SK의 주식을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재분류한 결과, 이 주식을 장부가에서 시가로 재평가함에 따라 SK C&C의 이익잉여금이 크게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의 변동은 없지만 연결재무제표의 자본 중 ‘지배기업의 소유주 지분’이 증가하는 효과가 생긴 것이다. 정확히 분리 공시되지 않아 이 금액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IFRS를 도입한 결과 SK C&C의 자본 가치(지배회사 지분)는 도입 전 1조2000억 원과 비교할 때 약 5900억 원 정도 증가했다. 즉 거의 50%가 늘어난 것이다. 구 SK를 연결에서 제외한 것이 이 금액이 늘어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금융감독원은 바로 이 회계 처리가 분식회계라고 판단했다. SK C&C가 보유한 구 SK의 지분 비율이나 구 SK가 보유한 다른 자회사들의 지분 비율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데, 전자는 연결에서 제외하고 후자는 계속 연결한 것이 SK C&C의 자본 가치를 부풀리기 위한 행위라고 본 것이다. 즉 금융감독원은 SK C&C가 구 SK에 대한 실질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데, 고의적으로 SK C&C의 자본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연결 범위에서 제외했다고 주장한다.

금융감독원의 이런 주장에 대해 SK그룹 측은 강력히 반발했다. SK그룹의 지주사이며 그룹의 수뇌부가 모두 구 SK의 직원이며 SK C&C의 고위 임원 인사를 포함한 그룹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구 SK에서 이뤄지는데, 이에 반해 SK C&C는 그룹의 ICT 업무를 담당하는 작은 회사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형식적으로는 SK C&C가 구 SK의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SK C&C는 구 SK의 지배를 받는 SK그룹의 계열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분의 소유구조와는 별개로 SK C&C는 구 SK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구 SK는 다른 계열사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다른 자회사들의 경우 불과 30%대의 지분만을 구 SK가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 정도 지분 비율이라면 실질 지배력이 있는지를 판단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실질 지배력 보유 여부 판단 기준

그렇다면 과연 구 SK가 다른 계열사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해 판단해보자. K-IFRS 제1110호에서는 연결 시 투자자가 피투자에 대한 의결권의 과반수를 보유하지 않는 경우 여러 다른 지표를 이용해 실질 지배력이 있는지를 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보는 지표로는 (1) 상대적 의결권 규모 (2) 다른 주주들의 주식 분산 정도 (3) 잠재적 의결권 보유 정도가 있다. 그리고 우선적 지표로 볼 때 판단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추가적으로 여섯 가지 선순위 지표와 네 가지 후순위 지표를 고려한다. 이런 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지표들을 실제 기업의 사례에 적용하는 데는 기업의 재량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이런 기준들 하나하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적 지표 세 가지에 대해서만 설명하기로 하겠다. (1) 상대적 의결권의 규모란 다른 주주들에 비해 얼마나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말한다. SK C&C는 구 SK의 지분 중 32%, 유통 주식 중에서는 37%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2) 2대 주주는 국민연금이지만 다른 주주들은 많은 소액주주에게 분산돼 있다. SK C&C 주주들의 주주총회 참석률이 평균 70%대 후반이었으므로, 이를 고려하면 주주총회 참석자 중 SK C&C의 지분 비율은 대략 48%쯤 된다. 다른 주주들에 비해 압도적인 지분 비율이기는 하지만, 다른 주주들이 모두 연합한다면 52%가 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평상시보다 더 많은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한다면 SK C&C의 지분 비율은 더 낮아진다. 따라서 SK C&C가 상대적 의결권과 다른 주주들의 주식 분산 정도라는 기준으로 볼 때 명백하게 구 SK를 지배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3) 잠재적 의결권이란 의결권으로 전환될 수 있는 다른 상품들(스톡옵션이나 다른 옵션, 또는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다른 지분상품이나 채무상품들)이 존재한다면 이 상품들이 실행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만약 다른 주주들이 보유한 옵션이 실행돼 주식으로 전환되면 SK C&C의 지분 비율은 낮아지게 된다. 이런 옵션이 존재한다면 이 옵션이 실행될 것인지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아직 실제로 실행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만약 앞으로 실행될 것이라고 판단되면 실행의 결과 지분 비율이 변한다 해도 계속해서 자회사를 지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9 그런데 SK C&C의 경우는 이런 상품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로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세 가지 특징은 SK C&C가 보유한 구 SK의 지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구 SK가 보유한 다른 자회사들의 지분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즉 우선적 지표에 따라 판단한다면 실질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다른 선순위 및 후순위 지표를 살펴봐야 한다. SK그룹에서는 구 SK에 근무하는 그룹의 핵심 경영진이 SK C&C를 포함한 계열사들의 경영진을 임명하고 중요한 경영 방침을 결정하는 행위를 하고 있으므로, 이에 근거해 구 SK는 다른 자회사들을 지배하고 있지만 SK C&C는 구 SK를 지배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판단 근거에 사용된 내용들은 대부분 K-IFRS 제1110호에서 규정한 후순위 지표에 해당한다.

금융감독원의 주장과 한미약품의 질의

그렇지만 금융감독원은 지분 비율을 기준으로 볼 때 SK C&C가 구 SK를 연결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또는 만약 SK C&C가 구 SK를 연결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구 SK도 다른 자회사들을 연결하지 않는 것이 일관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즉 자회사에 대한 지분 비율이 유사한데도 불구하고 SK C&C의 지분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구 SK를 연결 대상에서 빼 버렸지만 구 SK는 계속해서 자회사들을 연결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대주주 일가에 유리하도록 2015년의 합병 비율을 조작했다는 견해다.

만약 금융감독원의 이 주장이 옳다면 SK그룹은 사상 최대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셈이 된다. IFRS 도입 이전인 2010년 기준으로 보면 구 SK는 자산 규모가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는 77조 원이지만 개별재무제표 기준으로는 11조 원이다. 즉 연결을 하느냐와 하지 않느냐에 따라 무려 66조 원의 규모 차이가 난다.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대우조선해양 사건에서 드러난 분식회계 규모가 2조∼3조 원 정도라는 것을 고려하면 66조 원이라는 분식회계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분식회계가 사실이라면 당시 개인 비리로 수감 후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 다수가 다시 감옥에 가야 하는 것이 명백했다.

더군다나 이 건은 SK그룹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이미 설명했지만 IFRS 도입 시점에 실질 지배력이 없다는 판단하에 기아자동차를 연결 대상에서 빼버린 현대자동차, 무려 130여 개나 되는 자회사를 연결 대상에서 빼버린 LG그룹의 경우를 똑같은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모두 엄청난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셈이다. 지주사 체제를 취하고 있는 상당수의 국내 대기업 집단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최고경영진도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었다.

이렇게 서로의 의견이 대립되고 있던 2019년, 한영회계법인이 한미사이언스를 새롭게 감사하게 됐다. 그런데 한미사이언스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한미사이언스는 자회사인 한미약품의 지분 중 41%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그룹의 지주사로서 한미사이언스의 수뇌부에서 자회사인 한미약품에 대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또한 두 회사의 이사진도 같았다.10 즉, SK C&C의 경우와 비교해본다면 한미사이언스는 SK C&C보다 자회사에 대한 지분 비율도 높고 자회사에 대한 경영 의사결정을 내리는 정도도 높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SK C&C가 구 SK를 연결하는 것이 맞다는 금융감독원의 주장이 옳다면 한미사이언스도 당연히 한미약품을 연결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한영회계법인이 고민을 하다가 한미사이언스와 협의를 해서 어떤 회계 처리가 옳은지에 대해 금융감독원과 회계기준원에 질의를 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2019년 말 한미사이언스가 이 안건에 대한 질의를 하자 회계기준원은 특이하게도 ‘답변을 줄 수 없는 사항’이라고 질의 접수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대답을 회피한 것이다. 당시 외부 감사에 대한 법률이 크게 강화돼 3년 동안 감사인을 감독당국이 강제로 지정하는 주기적 감사인지정제도가 실시되기에 감사인 교체 빈도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후임 감사인이 법적 책임을 낮추기 위해 전임 감사인이 허용한 회계 처리 중에서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만한 점이 있다면 뒤엎어 버리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었다. 즉 기업과 회계법인 사이, 그리고 전임 회계법인과 후임 회계법인 사이에 회계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속출하고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9년 중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는 감사인이 교체된 후 전임 감사인과 후임 감사인 사이에 적정한 회계 처리를 둘러싼 이견이 있는 경우 질의를 하면 적극적으로 이에 답변해 이견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업과 회계법인이 질의를 하자 답변을 회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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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회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증권선물위원회의 판단

왜 금융감독원과 회계기준원이 이 질의에 대해 답을 회피했을까?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럴 만한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서 SK그룹 안건을 분식회계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한미사이언스의 회계 처리가 올바른 것이라고 답을 한다면 금융감독원의 SK그룹에 대한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그 반대로 한미사이언스의 회계 처리가 틀렸다고 답을 한다면, 이는 금융감독원의 SK에 대한 주장은 옳지만 SK뿐만 아니라 국내 다른 대기업 다수도 엄청난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어떤 판단을 내린다고 해도 후폭풍이 크기 때문에 입장이 곤란하므로 질의 접수 자체를 회피한 것으로 추측된다.

일이 이렇게 커지자 금융감독원도 많은 고민을 한 듯하다. 그러다 결국 SK C&C가 구 SK를 연결에서 제외한 것이 고의적인 분식회계라는 주장을 접었다. 이 주장을 제외하고, 합병 때 발생한 다른 회계 처리와 관련된 안건들에 대해서만 증권선물위원회에 상정한다. 그런데 그 안건에는 합병 시 구 SK가 보유하고 있던 SK라는 브랜드 가치를 과대평가해 무형자산으로 인식했다는 주장이 새롭게 포함돼 있었다. SK라는 브랜드는 가치가 없으므로 연결재무제표에 자산으로 기록되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2조 원으로 부풀려 평가했다는 주장이다.11 연결 범위 작성 이슈 때 언급하던 66조 원 규모보다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어쨌든 2조 원이라는 분식회계 규모도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규모에 육박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자본시장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검사 역할을, 증권선물위원회는 판사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한 기관이 검사와 판사 기능을 모두 수행하면 권한이 너무 크기 때문에 두 기능을 분리해놓은 것이다. 또한 회계 관련 사안들은 회계에 대한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하므로 회계 분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일부 포함한 감리위원회를 증권선물위원회 산하에 두고 자문을 받고 있다.

2019년 말 열린 회의에서 증권선물위원회는 금융감독원의 주장 중 사소한 일부 사항에 대해서만 금융감독원의 판단이 옳다고 인정했다. 연결재무제표 작성 시 SK라는 브랜드 가치를 ‘0’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약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브랜드 가치라는 무형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의 다른 거의 모든 대기업 집단 지주사도 분식회계를 한 셈이다. 외국 유명 기업들도 동일한 예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니 이들도 다 분식회계를 한 셈이다. 금융감독원의 주장은 SK그룹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 브랜드를 보유하면서 그 브랜드를 사용하는 계열사들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로열티)를 받는 일반적인 기업들에 거의 다 해당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9년 기준 연결재무상태표에 표시된 CJ의 브랜드 가치는 1조2000억 원이다. 그렇다면 CJ도 ‘0’으로 기록해야 할 브랜드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대규모 분식회계를 한 셈이니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쳤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수많은 경영진이 감옥에 가고 회계사들의 자격이 취소 또는 정지됐을 것이다. 그 결과 주가도 크게 출렁일 것이며 이와 관련된 민사소송도 다수 발생할 것이다. 증권선물위원회에서도 금융감독원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판단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12

회계 이슈를 둘러싼 혼란과 미래 전망

이런 판단이 내려진 직후인 2020년 1월, 한영회계법인은 한미사이언스 관련 질의사항에 대해 다시 답을 달라고 금융감독원과 회계기준원에 요구한다. 이 당시 회계법인들 사이 또는 회계법인과 기업 사이에 적절한 회계 처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여러 갈등이 벌어지면서 한 달 동안 무려 200건이 넘는 질의가 회계기준원에 쏟아졌다고 한다. 그러자 금융감독원과 회계기준원은 이 건과 관련한 연석회의를 다시 열었는데 두 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 후 “지배력에 따른 연결 처리 여부는 기업의 판단이고 감사인은 이를 확인하라”는 원칙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즉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라는 것이다. 표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내용과 언론에 보도된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금융감독원은 한미사이언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즉 ‘기업 스스로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알아서 판단하라’는 의미를 가진 결론이었다. SK C&C가 구 SK에 대해 지배력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처럼 한미사이언스도 스스로 판단하라는 의미다.

언론은 이 결과를 한미사이언스의 의견을 지지하는 내용이라고 해석했지만 애매한 표현 내용을 보면 금융감독원과 회계기준원이 다시 답변을 회피한 것이라고 봐야 정확할 것이다. 기업이 판단을 하고 감사인이 확인을 한 회계 처리라 하더라도 금융당국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기업과 감사인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처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이슈를 둘러싼 혼란과 규제 위험은 금융감독원과 회계기준원의 답변이 나왔다고 해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SK의 사례와 똑같은 지배력 상실 시점의 회계 처리와 관련된 삼성바이오로직스 건에 대해서는 분식회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가 정권이 바뀌자 의견을 바꿔버렸다는 점도, 전문가인 필자 입장에서 볼 때도 도대체 뭐가 옳다는 것이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다.

회계는 1+1=2의 수학 공식처럼 명확한 것이 아니다. 회계 처리를 결정할 때는 여러 판단을 해야 한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애매하고 선택 가능한 대안들이 모두 충분한 근거를 갖춘 상황이라면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더 유리한 방향으로 판단할 것이다. 기업이 아닌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나중에 그런 판단을 뒤집어서 처벌한다면 기업은 엄청난 규제 위험에 처하게 된다. 더군다나 특정 기업을 타깃으로 ‘혼내주라’는 지시가 정치권에서 내려온 경우라면, 이런 판단과 관련된 회계 처리들을 골라 손쉽게 문제 삼을 수 있다. 물론 SK 사례가 그런 경우라는 의미는 아니며 앞으로도 이런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계속될 위험이 있으므로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될 회계 처리가 있다면 전문가적 입장에서 판단을 내리기가 두려워진다. 특히 최근 들어 회계법인의 법적 책임이 크게 증가한 후 이런 경향이 더욱 커졌다. 그 결과 선택 가능한 대안이 있다면 가장 보수적으로 회계 처리를 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했다. 이런 이유에서 기업과 감사인, 전임 감사인과 후임 감사인 사이에 올바른 회계 처리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견이 크게 증가했고,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회계기준원에 질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혼란과 갈등이 일시적인 것이고 시간이 지나가면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필자도 그랬으면 하지만 쉽게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정치적인 이유에서 특정 기업을 타깃으로 한 처벌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유사한 사건은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전문가의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두고, 감독당국도 합리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란다. 정치와 아무 관계없어야 할 국가 행정조직조차도 정치화돼가는 듯해서 안타깝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acchoi@sn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권과 『재무제표 분석과 기업 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