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팜에이트(Farm8)’는 국내 샐러드 시장의 퍼스트 무버이자 글로벌 스마트팜 설비 시장의 패스트 팔로워이다. 여름 악천후에도 안정적으로 샐러드를 재배하기 위해 도입한 스마트팜이 팜에이트의 핵심 역량이 됐다. 팜에이트는 작물별 맞춤 레서피를 개발해 재배 원가를 낮췄고, ‘오버스펙’인 부품들을 개선해 설비 비용을 절감했다. 지하철 내 스마트팜인 ‘메트로팜’ 등 신선한 정부 사업을 진행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설비를 제공한 농장과 저렴한 가격에 계약 재배를 맺거나 스마트팜 소프트웨어의 구독료를 받는 등 ‘샐러드 플랫폼’의 가치사슬 내 사업 모델을 혁신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이 역사적으로 손꼽힐 투자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가 올 1월 피투자사들에 보낸 연례 서한의 내용이다. 기후변화가 투자사를 비롯한 기업들에 엄청난 투자 및 사업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의미다.
효과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선 기술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에너지, 건축, 바이오, 헬스케어, 농업 등 탄소중립과 기후변화 적응의 핵심으로 꼽히는 산업의 기술들은 개발 및 사용에 드는 비용이 높아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최근 그의 저서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탄소 제로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더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그린 프리미엄(green premium)’이란 용어로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통 에너지 대신 비싼 친환경 미래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돈이 곧 그린 프리미엄이다.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21년 3, 4월 호 인터뷰에서 게이츠는 “탄소 배출 제로 달성을 위한 핵심 변수는 그린 프리미엄을 얼마나 낮추는가에 달렸다”라며 그린 프리미엄 절감을 위한 과학기술의 녹색 혁신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대기업도, IT 공룡도 아닌 농업회사법인이 기후변화를 기회 삼아 남들보다 먼저 혁신 기술을 도입하고 상용화하는 수준까지 비용을 낮춘 기업도 있다. 내년 상장을 앞둔 ‘팜에이트(Farm8)’다. 이 회사가 글로벌에서 스마트팜 시장의 전통 강자들을 따돌리고, 국내에서 샐러드 시장을 선점하는 데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기후변화라는 인류 공통의 위기를 새로운 사업 모델의 기회로 만든 사례로 팜에이트를 소개한다.
기술력과 사업성, 모두 인정받은 예비 유니콘샐러드 작물을 재배•가공•유통하는 팜에이트는 2010년 일본에서 스마트팜의 일종인 수직형 농장 설비를 수입했다. 그리고 10년 만에 수직형 농장 분야에서 한국보다 30년 앞선 일본 업체들보다 2.5배 이상 저렴한 수준까지 설비 비용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작년에는 일본 업체에 설비를 역수출했고, 중동 시장을 겨냥한 설비 판매 입찰에서 쟁쟁한 글로벌 업체들을 따돌리고 계약을 따냈다. 가격 경쟁력과 품질을 인정받은 덕분이었다.
DBR mini box I 스마트팜과 수직형 농장
스마트팜은 기존 농법에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ICT와 로봇 기술 등을 접목한 농장이다. 비닐하우스로 알려진 온실이든, 실내든 첨단 기술을 통한 과학적 관리가 이뤄진다면 스마트팜으로 분류된다.
기후변화 이슈가 심각해지면서 스마트팜은 식량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기후 위기 적응 분야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에 따르면 전 세계 스마트팜 시장 규모는 2020년 352조 원이었고, 2022년에는 450조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직형 농장은 스마트팜의 한 종류로, 재배 선반을 층층이 쌓아 올린 실내형 농장이다. 태양광 대신 인공광인 LED를 활용한다. 태양광의 파장과 유사한 분홍색 LED 광원에는 광합성에 필요한 청색광과 적색광이 섞여 있다. 효율적인 공간 활용으로 기존 농업보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약 40배 높다. 층수를 높이거나 첨단 기술을 도입해 더욱 효율적인 관리를 할 수 있게 되면 생산성은 40배 이상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
196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수직형 농장이 개발됐고, 수직형 농장을 부르는 방법도 국가별로 다르다. 수직형 농장(vertical farm)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식물 공장(plant factory)은 일본에서 주로 쓰는 명칭이다.
시장 조사 기관인 그린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수직형 농장의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약 25억1000만 달러(약 2조9400억 원)이고, 연평균 20% 넘게 성장해 2025년에는 약 99억6000만 달러(약 11조65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
하지만 팜에이트의 매출 중 설비 판매에서 나오는 비중은 13%뿐이다. 나머지 87%는 샐러드용 채소 재배 및 판매에서 나온다. 매일 재배한 양상추, 로메인, 파프리카 등 150종의 채소 20∼30톤을 샐러드로 만들어 롯데마트, 홈플러스, 코스트코와 같은 대형마트와 CU, GS25와 같은 편의점, 웰스토리, 아워홈 같은 급식업체까지 다양한 채널에 유통하고 있다. 서브웨이, 버거킹에 납품되는 양상추도 팜에이트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양을 공급하고 있다. 쿠팡에서는 대기업을 제치고 샐러드 판매 1위를 달성했다. 실내에서 수경 재배를 하기 때문에 이상기후가 발생해도 안정적으로 작물 재배를 할 수 있고, 수직형 농장 구조와 ICT를 활용한 과학적 관리로 노지보다 40배 이상 생산성이 높다는 점이 인기 비결이다. 또한 대기오염이나 토지오염으로부터도 안전하고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건강한 음식 섭취를 중시하는 샐러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팜에이트는 최근 들어 스마트팜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강대현 팜에이트 대표는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이 ‘샐러드 플랫폼’임을 강조했다. 강 대표는 “샐러드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은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스마트팜 기술 역시 샐러드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수단이다”라고 말했다.
팜에이트는 시장 수익성을 기준으로 설비와 재배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막대한 노력을 들였다. 그 결과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가 기술성과 사업성을 검토해 유니콘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 15개를 선정한 ‘예비 유니콘 특별보증지원기업’ 중 하나로 선발됐다. 농업 분야에서는 팜에이트가 최초이며 ‘직방’ 등이 함께 선정됐다. 네덜란드의 한 종자 기업으로부터 ‘세계 10대 스마트팜’이란 찬사를 받는 등 국제적 인지도도 높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