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주류 칼럼리스트인 명욱 숙명여자대학교 미식문화 최고위 과정 교수가 ‘술과 비즈니스’를 연재합니다. 한국 전통주를 비롯해 맥주, 사케, 소주, 와인 등 다양한 주종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와 다양한 주류 기업들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할 예정입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지도 벌써 1년이 돼간다. 그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리는 해외여행보다는 국내 여행을 선택하게 됐고, 사람이 모이는 메가 상권보다는 동네 소매점을 이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외식보다는 집에서 밥을 해 먹거나 시켜 먹는 일이 많아졌고 외부 술자리보다는 홈술과 혼술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소비 패턴도 오프라인 매장 중심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한 비대면 구매를 선호하게 됐다. 이런 변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소비 반경의 축소’라 할 수 있다. 소비를 하러 일부러 멀리 나가는 것이 아닌,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이런 변화의 영향으로 수십 년간 지켜온 주류 업계의 순위가 바뀌는 일이 생겼다. 이웃 나라 일본 맥주 업계의 이야기다. 거의 20년간 일본 맥주 판매량 1위를 수성한 아사히맥주가 물러나고, 늘 만년 2위에 머물렀던 기린맥주가 1위로 올라선 것이다. 아사히맥주가 부진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가벼운 맛으로 히트를 친 80년대 아사히 슈퍼드라이
아사히맥주는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엄청난 마케팅 성공 사례로 불렸다. 80년대까지 일본 맥주 업계에서 ‘듣보잡’ 취급을 받던 아사히가 드라마틱한 반전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아사히라는 단어는 원래 ‘뜨는 해’라는 의미인데 80년대에는 반대인 ‘지는 해’라는 비아냥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소비자 조사를 통해 1986년, 기존의 일본 맥주가 너무 맛이 진하다는 데 착안한 아사히맥주는 반대 성향의 제품을 내놓는데 이것이 바로 ‘아사히 슈퍼드라이’다. 기존의 일본 맥주가 맥아 100%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면 아사히맥주는 쌀, 옥수수 등을 첨가해 가볍지만 알코올 도수는 높은(5%) 제품을 개발했다.
여기에 경쟁사들의 제품이 일본 전통식을 추구하는 디자인이었다면, 반대로 아사히는 메탈릭한 디자인과 폰트, 그리고 은색을 강조한 쿨한 이미지의 제품을 선보여 새로운 맥주, 달라진 맛이라는 느낌을 소비자에게 전달했다. 이렇게 완전히 탈바꿈한 아사히 슈퍼드라이는 엄청난 인기를 끌며 일본 맥주 시장의 판도를 바꾼다. 한때는 수요가 너무 많아 모든 공장이 이 슈퍼드라이를 생산하는 데 여념이 없었고, 나중에는 공급이 못 따라가서 신문에 사과문을 발표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과문은 오히려 아사히의 인기에 더욱 불을 붙인다. 잘 팔려서 품절이 된 상황을 우회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