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Sloan Management Review

기술 혁신했나요? 윤리적 책임 문제는요?

311호 (2020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산업 전반에 걸쳐 모듈화가 가속화되면서 기업들은 사용자 요구에 맞게 제품을 재빨리 조정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혁신과 기회가 넘쳐나게 된 만큼 잠재적 리스크도 늘어났다. 사용자들의 단기적 욕망이 사회의 장기적 니즈에 항상 부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모듈화 덕분에 공급망, 규제 산업, 지적 재산 등에서 대대로 존재해 온 통제를 우회할 수 있게 됐지만 경영진이 사용자들에게 윤리적 책임까지 맡겨 둔다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역할에 머물게 되기 쉽다. 경영진이 적극적으로 책임의 일부를 떠맡고 잘 드러나지 않는 윤리적 문제도 양심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혁신가 본인이 1) 시장의 표준을 선도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2) 실패를 예방할 안전장치를 문서화하고 3) 각 문제에 따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파악해 둬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글은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20년 봄 호에 실린 ‘A Crisis of Ethics in Technology Innovation’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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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는 세간에 사생활 침해의 대명사로 유명해졌다. 이들과 페이스북이 얽힌 논란은 온라인에서의 정보 공유 방식과 관련해 세상에 경종을 울렸다. 물론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는 이제 사라졌고 마크 저커버그도 아직은 건재하다. 하지만 이 사건이 페이스북에 미친 여파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태 초기의 주가 하락, 청문회 증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부과한 50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벌금, 연방대법원이 승인한 이용자들의 집단 소송1 , 그리고 또다시 이어진 불편한 청문회 출석까지 말이다.

페이스북이 일으킨 이 파문은 기업인들과 소비자 모두에게 경고를 던진다. 그러나 이 일화의 교훈은 소위 가짜 뉴스와 관련된 교훈보다 훨씬 더 크다. 신기술을 중심으로 성급하게 재건된 가치사슬은 산업 전반에 윤리적 우려를 자아내고 악화시킨다. 기업들이 새로운 역량을 가지고 사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누구나 이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중 누가 살아남느냐가 아니라 이런 경쟁의 결과 우리가 문명화된 사회를 지속할 수 있을지, 아니면 첨단 기술의 와일드 웨스트(Wild West, 무법이 횡행하던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의미하는 관용어-역주)를 맞이하게 될지다.

페이스북은 콘텐츠 제작 및 유통에 있어 세계 최대 규모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수십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해 새로운 퍼블리싱 시대를 열었다. 그들은 또한 페이스북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된 많은 플랫폼 사용자를 위해 콘텐츠 창작자들과 광고주들도 불러 모았다. 그 결과 미디어의 가치사슬이 더 이상 소수의 대형 조직에 의해 좌우되지 않게 됐다. 페이스북 덕분에 인터넷 연결이 되고 키보드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세계 최대의 유통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사실상 기존의 미디어 가치사슬을 해체하고 그들의 API(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가치사슬을 창조했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미디어라는 산업 생태계를 탈바꿈하는 데 일조하면서, 동시에 편집 윤리에 관해서는 그만큼 신경 쓰지 않았다. 페이스북은 자신들의 플랫폼에 게재되는 모든 콘텐츠와 거리를 뒀다. 그러면서도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같은 회사들에 자사 사용자들에 대한 접근권을 판매했다. 그 덕분에 콘텐츠 창작자들은 그들이 유포하는 정보가 허위이든, 진실이든, 아니면 대상을 오도하든 메시지의 타깃을 정확히 선별하기 위해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은 수십억 명에 이르는 사용자 수요에 맞춰 자신들의 네트워크에 있는 콘텐츠들로 클릭 수를 끌어모으는 데만 집중했다.

작가, 편집자, 배급자가 독립된 개체로서 각자도생하는 새로운 퍼블리싱 세상에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파문은 어쩌면 예정된 결과였는지 모른다. 이런 구조에서는 책임감도 가치사슬의 구성원 사이에 분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누구도 나서서 시스템 전체에 적용될 윤리적 기준을 바로잡지 않으면 종국에는 모두가 고통을 당할 것이다.

페이스북은 스스로를 정의하는 기술 분야 윤리의 속성을 보여주는 일면일 뿐이다. 이 세계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혼탁하다. 이 아티클에서 필자들은 기술 시스템이 빠르게 재편됨에 따라 윤리적 딜레마가 더욱 일상적으로 불거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잘 정립된 이론은 이런 윤리적 문제가 언제, 어디서 발생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러 산업에서 기업인들은 의료, 대출, 출판 등 복잡한 시장에 대한 접근 권한을 모두에게 열어주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경영자로서 담보 대출 업무에서 소비자 보호의 업무를 분리해 버렸다면 애초에 의도가 긍정적이었다 할지라도 대중의 뭇매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요점: 당신이 속한 산업이 이 새로운 세상의 어느 지점에서 비틀거릴 것인지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은 기업의 명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사업을 번창시키는 데 필요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더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모듈화

확실히 하자면, 이 문제는 ‘빠르게 움직이고 무엇인가를 타파하는(move fast and break things, 마크 저커버그의 모토로 유명함-역주)’ 데서 기인한 소프트웨어 버그 몇 개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는 언제, 어디에나 있는 인터넷을 활용해 리더들이 시장과 소비자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와중에 사회를 지탱한다고 여겨지는 윤리적 보호의 선을 의도치 않게 넘는 상황에 관한 것이다. 우리에게 당장 어떤 윤리적 위기가 닥칠 수 있는지, 지금의 사업 환경은 무엇이 그렇게 다른지 파악하려면 가치사슬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왜 책임감 있는 기술 기업들조차 윤리적 의무를 간과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2001년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마이클 레이놀(Michael Raynor), 매튜 베린든(Matthew Verlinden)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Skate to Where the Money Will Be(돈이 있을 곳으로 재빨리 움직이라)’라는 아티클을 발표해 찬사를 받았다.2 이 아티클은 필자들이 상호의존성과 모듈성 이론(Theory of Interdependence and Modularity)이라 부르는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즉, 어떤 신기술이 등장하면 그 구성 요소가 전체 시스템 안에서 상호의존성을 가지므로 원래 디자인 안에서 단단히 결속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취약한 구조가 깨지지 않으려면 하나의 주체가 시스템의 전체 디자인을 철저히 통제하면서 성능을 보장해야 한다.

초기 아이폰을 생각해 보자. 애플은 사용자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심지어 네트워크까지 통제했다. 그래서 제품을 하나의 크기, 하나의 브라우저, 하나의 통신사로만 공급했다. 배터리 수명, 정전식 터치, 통화 품질을 위해 다른 기능들은 포기했다. 크리스텐슨의 표현을 빌리면 당시 아이폰은 음성 통신이라는 전화기의 핵심 기능과 관련된 기본적인 성능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다. 이에 디자인의 상호의존성은 상당히 중요했다. 애플의 확실한 통제만이 그 제품에 합당한 경쟁력을 부여할 수 있었다.

크리스텐슨과 공동 저자들은 복잡한 시스템을 구성하는 다양한 개별 요소 간의 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각 요소의 역할이 규정되고 표준이 정립된다는 것이다. 크리스텐슨의 용어를 빌리면 해당 산업은 모듈화된다. 일련의 기업들이 전체적인 시스템 성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세부 요소를 최적화하고 상업화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아이폰 소비자들은 원하는 스크린 크기와 전화기 두께를 선택할 수 있고, 아이폰 앱스토어는 수백만 개발자가 내놓은 툴과 게임들로 가득하며, 아이폰은 어느 통신사에서나 개통된다. 이제 전체 스마트폰 산업은 소비자가 개개인의 니즈에 맞춰 전화기와 소프트웨어의 모든 것을 고르고 선택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신기술과 관련된 어떤 산업이든 모듈화는 최종 단계에 해당된다. 이는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고 시장 파이를 키워준다. 더 이상 한 회사가 전체 시스템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관련 회사들은 뭐가 됐든 전략상 자신들에 유리한 요소에 자유롭게 집중할 수 있다. 크리스텐슨, 레이놀, 베린든은 기업들에 시장이 어떤 식으로 모듈화가 될 것인지 예측하고, 개발이 가장 어려운 영역에서 경쟁할 것을 조언했다. 스마트폰의 경우 전체 시스템에서 가장 차별화되는 요소인 칩셋(chipset, 컴퓨터 메인보드에 설치된 대규모 집적회로군의 총칭-역주)과 모바일 앱을 개발하는 회사들이 수익을 독식한다. 세 필자가 정했던 HBR 기사의 제목은 캐나다의 유명 아이스하키 선수인 웨인 그레츠키(Wayne Gretzky)가 전한 경기의 팁(그는 “나는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퍽이 있을 곳으로 갑니다”라는 명언을 했다)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들은 전략가들에게 “현재 돈이 있는 곳이 아니라 앞으로 돈이 있을 곳으로” 움직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모듈화는 양날의 칼과 같다. 개발의 책임이 분리된다는 것은 윤리적 결과에 대한 책임도 분리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모듈화가 산업 전반에 걸쳐 가속화되고 있다. 인터넷은 통신, 아키텍처, 정보 교환의 모든 기능을 표준화함으로써 신규 업체가 전체 가치사슬 중 아주 얄팍한 조각일지라도 이를 완벽하게 구현하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승차 공유 플랫폼인 리프트(Lyft)의 예를 보자. 2019년 3월, 리프트가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제출한 자료는 이 회사가 결제, 자금 조달, 웹 인프라, 신원 조회 등 플랫폼 기술의 중요한 요소들을 서드파티 업체들에 의존하고 있는 리스크를 보여줬다. 물론 리프트는 엄청나게 성공한 기업이지만 사업의 핵심 프로세스 중 다수가 다른 업체들이 결부된 서비스를 통해 수행되고 있다. 이런 식의 리스크는 IPO를 진행하는 거의 모든 기업의 보고 자료에서도 발견될 것이다.

복잡한 시스템을 구성하는 단순한 요소에 초점을 맞춘 기업들이 부상하면서 시장 파괴를 꿈꾸는 사업체들이 새롭고 복잡한 제품을 고객 요구에 따라 맞춤 제작할 수 있는 사실상의 단품 메뉴 시장이 창출됐다. 그 결과 모든 산업에서 가치사슬이 맹렬한 기세로 개편되는 선순환이 자리 잡았다.

모듈화가 가속화되는 세상에서 기업들은 사용자 요구에 맞게 제품을 재빨리 조정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혁신과 기회가 넘쳐나는 만큼 그에 따른 잠재적 리스크도 늘어난다. 이런 리스크는 기업의 수익과 명성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혁신은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만 사용자 보호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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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가 요구하지 않는 것: 규제

사용자 수요만 믿고 어떤 산업을 형성할 때의 위험은 사용자들의 단기적 욕망이 사회의 장기적 니즈에 항상 부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개인의 흡연 행위와 그것이 타인에게 미치는 간접 피해를 생각해 보라. 아니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단기적으로 저축하는 비용과 공중보건에 미치는 장기적인 비용,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개인의 편의와 대중교통 이용에 따른 사회적 편익을 비교해봐도 된다. 많은 경우 사용자는 선택을 하고, 사회는 그 부담을 떠안는다.

이번에는 이 딜레마를 독특한 현대적 상황으로 확대해 보자. 젊은이들에게 공학적 개념에 대한 이해력과 디자인에 대한 익숙함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당신도 부모로서 자녀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서 저렴한 3D프린터 한 대를 사서 그것을 가지고 자녀에게 기술과 소프트웨어, 제조 공정을 설명해 준다. 이제 당신은 아주 훌륭하지만 잠재적으로 위험한 도구를 집에 들여놓은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3D프린팅(또는 적층제조)이란 3D 컴퓨터 모델과 물질을 압출 성형하는 표준 기계를 사용해 층층이 쌓는 방식으로 물리적 물체를 만드는 프로세스를 말한다. 이 기계는 우리가 이제껏 의존해 온 제조 장비들에 비해 저렴하게 소량 생산을 가능케 한다. 대부분의 3D프린터가 아직은 상업적 규모에 걸맞은 속도로 물건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유연성이라는 이점이 처음부터 설계에 반영돼 있다. 이전 패러다임에서 사용되던 사출-몰드 제조 방식에서는 고정된 모형이 있었지만 3D프린터로는 거의 모든 디자인이 구현될 수 있다.

오늘날 3D프린터로 제조 가능한 품목은 플라스틱 장신구 같은 평범한 물건부터 저렴이 주택(affordable housing) 등 인생을 변화시킬 만한 것까지 아주 다양하다. 2014년에는 3D프린터로 제작된 부품을 장착한 최초의 비행기가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또 2019년 4월에는 세계 최초로 3D프린터로 인공 심장 출력에 성공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요컨대, 3D프린팅은 대상이 무엇이든 제조의 민주화를 이끌 것이다.

액면만 보면 기막히게 멋진 일이다. 장기 이식을 위해 하염없이 기다릴 필요도 없고, 갑자기 못이 필요할 때 철물점에 뛰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상상해 보라. 3D프린터에 투자한 가구 수가 이미 수십만에 이른다는 사실이 놀랄 일도 아니다. 홈 프린팅(home-printing)에 최적화된 상품들의 세계가 조만간 열릴 것이다.

안타깝게도 모든 가정마다 모듈형 제조 장치를 한 대씩 들여놓으면 페이스북이 퍼블리싱 API로 했던 것 같은 가치사슬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 고객들은 더 이상 제품 생산과 유통까지 책임지던 대기업들에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된다. 대신 어떤 아마추어 디자이너든 저렴한 컴퓨터 디자인 소프트웨어만 있으면 제조를 위한 모델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 나아가 그 디자인을 3D프린터 제조사의 유통 네트워크를 통해 수백만 명의 열혈 소비자에게 배포할 수도 있다. 그렇게 간편하게 다운받은 모델 디자인을 최종 사용자가 3D프린터로 쏘면 끝이다.

제조업의 모듈화 덕분에 우리는 공급망, 규제 산업, 지적 재산 등에서 대대로 존재해 온 통제를 우회할 수 있게 됐다. 비교적 점잖은 예를 들자면 차고 넘친다. 당신의 자녀가 새로 나온 액션 피규어를 갖고 싶어 한다고 치자. 당신이라면 돈을 주고 사겠는가? 아니면 불법 복제된 디자인을 3D프린터로 제작하겠는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예로, 만약 운전을 하는 당신의 자녀가 결함이 있는 부품을 집에서 출력해 당신의 차에 장착했다면 어떨까? 한층 더 나쁜 예로 총기 문제를 생각해 보자. 총기 규제는 국가마다 다르고 미국의 경우에는 주마다 다르지만 분명 존재한다. 판매 시점에 적용되는 규제도 많다. 어떤 종류의 무기와 탄약을 판매하고, 누구에게 판매할지 등이 규제 대상이다. 하지만 누군가 인터넷에서 총기 모델을 다운로드해서 집에서 총기를 생산할 수 있다면 총기 규제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 중 많은 부분이 다시 논의돼야 할 것이다.

물론 데스크톱 3D프린터를 집에 들여놓는 소비자 대부분은 이 새로운 시스템의 유연성을 이용하고 싶은 것일 뿐 잠재적 활용법과 실패 사례까지 내다본 것은 아니다. 사용자들은 스스로 가려운 곳을 긁기 위해 자신들의 삶에 기술을 끌어들인다. 즐거움과 사교를 위해 페이스북을, 장소 A에서 장소 B로 이동하기 위해 리프트를, 자녀를 교육하거나 단순한 작업을 더 빨리 마치기 위해 3D프린터를 사용한다. 소비자에게는 모듈형 혁신의 이면에 있는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 의미까지 고민할 책임이 없다. 그런 책임이 있어서도 안 된다.

경영진인 우리가 사용자들에게 윤리적 책임에 대한 문제까지 맡겨 둔다면 기껏해야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역할에 머물게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올바른 방향을 정하기에 이미 늦어버릴 것이다.

다행히 인터넷이 모든 산업에서 계속해서 빠른 모듈화를 밀어붙일 것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강력한 미래를 헤쳐나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몇 가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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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책임감

앤 보이치키(Anne Wojcicki)가 경영하는 23앤드미(23andMe, 유전자 분석 기업-역주)가 처음 뉴스 피드에 등장한 것은 이들이 DNA 검사 키트를 제조사가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D2C(direct-to-consumer) 방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즉, 검사 약병에 침만 뱉으면 23앤드미가 60만 개 이상의 유전자 표지를 분석해서 고객의 질병 위험도와 가족력 정보를 보내주는 서비스였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지는 2008년에 23앤드미를 ‘소매 유전체학 분야’의 올해의 발명품(the Best Invention of 2008)으로 선정했다. 이런 성과는 유전체학과 관련된 지적 재산의 모듈화와 대용량 데이터의 저장, 검색, 처리를 가능하게 한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런 모듈화가 윤리적으로는 애매한 상황을 만들었다.

앤 보이치키는 개인에게 자신의 건강 지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의학 연구를 단순화하고 가속화하겠다는 비전을 가졌다. 임상 참여에 동의한 피실험자들로 구성된 충분히 거대하고 다양한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으면 새로운 치료법 상용화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례적인 가능성을 맞닥뜨리기도 쉽다. 검사의 타당성, 예기치 못한 혈통 정보의 발견, 결과 해석에 있어 1차 의료기관의 역할 등의 난제들을 고려하기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정보에 접근하는 이 모든 새로운 방법이 과연 기존 사회 시스템을 뒤엎을 것인지 가늠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질병과 관련된 개인의 유전자 표지를 의료 보험사에 보고할 의무가 있을까? 보험사들이 이런 정보들에 대한 접근권을 구매할 수 있을까? 또 사법기관은 정보에 어느 정도까지 접근해도 될까? 당신은 임상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당신의 유전 정보가 친인척 정보를 통해 쉽게 추론될 수 있다면 어떨까? 이 모든 질문과 그 밖의 관련 이슈들을 고려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처럼 모듈화 시대에는 소유권과 책임감의 문제가 골치 아플 정도로 복잡하다.

이 모든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함의를 고려하는 것은 자신의 유전적 혈통을 궁금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갖는 거대한 질문이다. 게다가 소비자 유전자 검사라는 영역은 CMS(Centers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vices)가 관할하는 임상 연구 규정(소비자 DNA 검사가 임상 시험은 아니다)과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가 관할하는 의약품과 바이오 제품 및 의료기기 규정(FDA는 현재 소비자 유전자 검사 키트를 의료기기에 통합해서 관리한다) 사이 어딘가에 속한다.

보이치키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4년 연속 이 주제에 대한 강연을 해왔다. 그녀는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여전히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따라서 개인이 유전자 분석에 따르는 광범위한 영향을 고려할 수 없고 규제기관이 그 변화의 폭과 속도에 발맞출 수 없다면 보이치키 자신이 책임지고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녀는 기존 의료 산업에서 입증된 개념을 빌려 독립된 기관감사위원회를 조직했고, 이를 통해 23앤드미가 하는 모든 활동에 대해 윤리적 자문을 제공했다.

실제로 23앤드미가 보유한 데이터는 전 세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만한 연구에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파괴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유전자 검사를 시행할 때 1차 의료기관(데이터 수집에 있어서는 임상 연구기관)이라는 중개자를 건너뛰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의 사회로서 어떻게 비용을 통제하고 이익을 극대화할지의 문제다. 23앤드미 데이터를 적절히 활용하는 문제는 대중의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앞으로도 수년간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기업들이 모듈화를 통해 사용자의 니즈를 발견하고 충족한 뒤 이를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런 빠른 속도 덕분에 기업들이 우리 사회의 오랜 공적 감시 단계들을 회피, 단축하는 상황도 봤다. 보이치키는 독립적인 자문단을 구성해 회사의 데이터 사용 방식을 감시함으로써 다른 전통적 연구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관점을 대변하는 대항마를 만들어냈다.

DTC 유전자 검사는 의료 정보에 대한 접근 및 연구 참여 방법을 재정의한다. 동시에 이 사례는 신중한 고민 없이 모듈형 혁신을 감행할 때 어떤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개인 소비자는 물론 FDA도 검사 키트에 침을 뱉는 행위가 가져올 모든 긍정적, 부정적인 의미를 헤아릴 수 없다. 이 행위에서 무한한 가치를 발견했다면 그 기업은 적극적 조치를 취한 23앤드미처럼 윤리적 책임의 일부를 떠맡아야 한다.

실천 의지

크리스텐슨 등 연구진이 주장한 상호의존성과 모듈성 이론은 가치사슬의 진화 양상과 소비자 요구의 영향력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가치사슬이 분리됐을 때 혁신가들은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술 옵션을 유리하게 활용하는 방식으로 가치사슬을 개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수용하려는 경영자라 잘 드러나지 않는 윤리적 문제도 양심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들은 다음 세 가지 행동 방침을 권한다.

1. 당신이 시장의 표준을 선도한다고 가정하라. 대부분의 혁신가는 주변에서 여유롭게 활동을 시작한다. 모듈화를 취하는 파괴자들은 보통 아래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전통적 기업을 겨냥하고 시장의 복잡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그들의 능력을 쉽게 참고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 파괴에 성공했다면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특히 신생 기업이 지배적 플랫폼으로 발전한 경우라면 그렇다. 혁신가는 초반 공격의 효과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역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 즉, 시장 지배자가 됐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가장 쉽게 부서질 만한 영역이 어디이고, 그런 파괴적 공격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또 파괴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자문해야 한다.

2. 현재 시스템에서 실패를 예방할 안전장치를 문서화하라. 린(lean, 최소한의 소비자 요구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빨리 출시해서 시장에서 빠른 평가를 받는 접근법-역주) 프로세스를 통한 개선 방식에서 한 페이지를 가져와 보자. 먼저, 당신이 시장에 진입하기 전 당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사슬이 어땠는지 매핑해 보라. 그런 다음, 당신이 그 시장의 지배자가 된 다음 가치사슬이 어떨지 매핑하라. 아마도 당신은 가치사슬의 중간 단계를 없애거나 단축해 작업의 효율성을 높였을 것이다. 이 단계들이 실제로 어떻게 발전했는지 그 역사를 파악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안전장치가 생겨났는지 살펴보라. 안전장치가 규제 같은 것인가? 표준과 관련돼 있는가? 아니면 사회적 구조물인가? 접근 권한을 제한해 시스템을 보호해 왔다면 접근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교육과 훈련을 받았을까? 도움이 될 것 같다면 철없는 십 대 무리가 당신의 서비스를 어떤 식으로 오인하거나 오용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라. 또 악의적 행위자들에 의해서는 어떻게 악용될 수 있을지도 파악하라. 안전장치는 시장뿐 아니라 소비자도 보호해 왔을 것이다. 그런 장치들을 파악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3. 이런 역할을 수행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파악하라. 어떤 경우에는 책임자가 명확하다. 예를 들어, 승차 공유 서비스는 운전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사업이 존속될 수 없다. 이에 리프트와 우버는 자신들이 직접 관리하지는 않을지라도 운전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꼭 한다. 하지만 책임자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령, 3D프린터는 모델 디자이너와 소비자 간 교환을 촉진하는 ‘단순한 플랫폼’일까? 리더들은 자신들이 초래한 변화가 실패했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조언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성공을 가정하고, 현재와의 격차를 이해하고, 만들어질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실천의 세부 내용은 산업과 기업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모듈화 과정 중 어디에서 윤리적 불확실성이 발생할 것인지, 그 변화를 어떻게 책임감을 가지고 탐색할 것인지를 파악하는 데 있어 이 세 가지 조치가 분명 중대한 역할을 할 것이다.

3D프린터로 제작할 수 있는 플라스틱 사제 권총인 리버레이터(Liberator)의 모델 도면은 10만 번 이상 다운로드됐다.3 미연방법원이 3D 총기 제작용 도면을 온라인에 게시하는 행위를 차단하기도 전에 이미 다운로드가 이뤄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든 가정에 3D프린터가 있는 것은 아니고, 프린터로 출력이 됐다고 해도 제작된 부품들을 꼼꼼히 조립해야 하며, 설사 부품들을 정확히 조립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생산된 총은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의도한 목표물이 아닌 총기 주인에게 거꾸로 발사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복잡한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곧 이런 명백한 위협에 대처할 계획을 세울 시간이 아직 규제 당국에 남아 있다는 의미다.

이보다 더 우려할 만한 문제가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진화해 온 대출, 미디어, 고용, 의료 같은 산업들을 생각해 보자. 이런 분야의 안전장치 중에는 아주 힘겹게 얻어낸 것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전 사업자들이나 타깃 고객들의 본질적 특성에 내재된 것도 있다. 파괴자들과 대기업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이런 가치사슬을 탈바꿈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놀라울 만치 빠른 정보 전송, 인공지능 기술 적용, 저마진 업무를 배분하는 시장 및 네트워크 창출 등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안전장치가 새로운 모듈 시스템에 자동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가정은 너무 낙관적이고 무모하다.

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윤리적 함정을 피하기에 충분치 않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전 COO인 줄리언 휘트랜드(Julian Wheatland)는 CNN 비즈니스의 한 코너에서 정보 유출 파문에 대해 이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는 많은 실수를 저지른 끝에 악명을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정부 규제만 준수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데이터 윤리와 대중의 인식에 대한 많은 질문을 묵살했다는 겁니다.”4

교훈: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합리적 해법은 새로운 윤리 패러다임을 신중하게 수용하는 것이다. 경영자라면 누구나 다가올 미래를 구상해야 하고, 소비자 만족을 위한 경로와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체계적인 안전장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번역|김성아
dazzlingkim@gmail.com

맥스 웨즐(Max Wessel)은 SAP의 최고혁신책임자(CIO)로 기술 연구와 제품 인큐베이션 업무를 책임진다. 니콜 헬머(Nicole Helmer)는 SAP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decision scientist)로 고객 경험, 신기술, 신제품 개발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일한다. 이 글에 의견이 있는 분은 http://sloanreview.mit.edu/x/61303에 접속해 남겨 주시기 바란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