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오렌지라이프는 국내 기업 중 드물게 전사적 애자일 전환에 성공했다. 단순히 회사 내 특정 업무에 애자일 관리 툴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애자일하게’ 바꿨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이 모든 과정을 CEO가 주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조직문화를 바꾸는 작업에 리더의 솔선수범과 꾸준한 관심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오렌지라이프 사례는 애자일 전환을 고민하는 경영자들에게 통찰을 준다. 오렌지라이프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핵심 통찰은 다음과 같다.
1) 애자일 전환의 핵심은 결국 ‘리더십’이다
2) 직원을 믿어주면 놀라운 성과로 돌아온다
3) 잘 설계된 가이드라인은 자율과 통제를 양립 가능하게 한다
4)애자일은 적응적 사고다. 계획을 세우기보단 곧바로 실행하라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미라(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
2019년 경영계 주요 화두 중 하나가 ‘애자일’이었다. 연초부터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롯데그룹 등 주요 대기업 신년사에 이 단어가 등장한 이후 많은 회사가 조직 내 애자일 도입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2020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애자일 전환을 시도한다는 기업은 많지만 실제 성공 사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애자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꼽을 수 있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애자일을 단순히 하나의 방법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실제 국내 기업들의 애자일 전환 과정을 들여다보면 대다수의 기업이 애자일을 ‘업무를 빨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툴(Tool)’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까지도 다수의 기업은 외부에서 애자일 코치를 모셔와 회사 내 IT 관련 프로젝트에 애자일 코치를 투입하고 스크럼, 칸반, 데브옵스 등 애자일 툴을 활용하는 방법론만을 배우려 했다. 이런 방식은 조직 내 애자일 툴 활용이 가능한 사람의 수를 늘릴 수 있겠지만 애자일 전환의 진정한 목표, 즉 조직 내 의사결정의 기민성(agility)을 높이는 것에는 적합하지 않다.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애자일 도입은 애초 기대했던 효과를 달성하지 못했고 결국은 “애자일은 한국의 기업 문화에 안 맞는다”는 오해를 낳게 했다.
애자일은 단순히 업무의 속도를 높이는 데 쓰이는 방법론이 아니다. 애자일은 오히려 문화이자 철학에 가깝다. 실제 2001년 애자일 선언문을 통해 애자일을 처음 소개한 애자일얼라이언스(Agile Alliance)의 홈페이지를 보면 애자일 경영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경영에서의 애자일은 특정한 방법론이 아니며 일반적인 이론 틀로 볼 수도 없다. 그보다는 어떻게 조직이 애자일 개발자들 공동체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애자일 마음가짐(Agile Mindset)’과 유사한, 일종의 성장 마음가짐(Growth Mindset)을 통해 운영되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스크럼, 스프린트, 칸반 등 애자일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과 용어들을 어느 정도 아는 것은 애자일 경영을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아무리 이런 도구와 프로세스를 많이 도입하더라도 애자일한 문화가 자리 잡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이하 오렌지라이프)은 국내 기업, 그중에서도 비IT 기업 가운데 조직문화에 천착해 진정한 의미의 애자일 전환에 성공한 회사다. 오렌지라이프는 보수적인 생명보험 업계에서 선도적으로 애자일 문화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특히 다수의 기업이 애자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하나의 방법론으로 접근한 것에 비해 이 회사는 처음부터 애자일을 조직문화로 인식하고 오랜 준비 기간을 통해 전사적 업무 혁신을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CEO가 직접 솔선수범해 변화를 독려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많은 기업이 애자일 조직 벤치마킹을 위해 오렌지라이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에 DBR은 오렌지라이프의 변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문국 대표이사(사장)와 오민 애자일경영지원실장(전무)을 만나 2년여간의 여정을 들었다. 이들은 애자일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입을 모아 ‘리더십’을 꼽았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오렌지라이프의 애자일 여정을 정리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 생존을 고민하다2017년 여름, 정문국 오렌지라이프 대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세상의 변화 속도를 회사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렌지라이프는 정 대표가 대표이사를 맡은 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당기순이익도 3000억 원을 넘어 3500억 원을 바라보고 있었고 인당 생산성도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재무 건전성을 따지는 지표인 RBC(지급여력비율) 역시 쟁쟁한 대기업 계열사들을 제치고 1위를 달렸다. 숫자로 드러나는 기업 상황은 매우 건강했다.
그러나 정 대표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불안감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뉴노멀(New normal)이었고, 다른 하나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었다. 뉴노멀은 보험업계에도 영향을 미쳐 보험 시장의 성장을 멈추게 했다. 시장의 파이가 커지지 않으면 결국 경쟁은 심화되고 서로 남의 파이를 뺏어오기 위한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시 보험업계가 딱 그랬다.
이보다 더 정 대표를 불안하게 했던 것은 ‘디지털 전환’이었다. 2017년을 전후해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금융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IT 역량을 앞세운 핀테크 업체들이 기존 금융업체의 고객들을 야금야금 잠식해 나가면서 이들과의 경쟁이 당면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업계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꼽히는 보험업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험업계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낸 정 대표의 눈에도 보험업계의 기존 질서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정 대표는 “포화상태의 시장에서 경쟁자가 추가되면서 손에 익은 공급자 중심 마인드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이런 변화의 흐름을 정 대표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2017년을 전후해 경쟁사들도 앞다퉈 ‘디지털 전략’을 들고나왔다. 그러나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가입 기간도 길고 영업 시 개개인의 역량이 크게 좌우하는 보험산업의 특성상 디지털 전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2017년 당시 보험업계의 디지털 전략이라고 해봐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서 서비스하는 수준이었다. 정 대표는 “단순히 디지털만 앞세워서는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