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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chain & Business

고양이 키우기 게임에서 NBA톱샷까지…
블록체인 기술이 만드는 ‘더 즐거운 세상’

김지윤 | 290호 (2020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블록체인 기술에 바탕을 둔 ‘디지털자산(NFT)’은 각종 엔터테인먼트/게임 산업에서 각광받고 있다. 강력한 팬덤의 아이돌 비즈니스에서는 현물 굿즈는 물론 사이버 굿즈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아이템, 실제 아이돌 멤버와 연결되는 느낌을 주는 여러 서비스를 중개인과 별도 플랫폼 없이 제공할 수 있다. 게임에서의 아이템도 게임의 흥망과 관계없이 하나의 자산으로 등록될 수 있다. 이처럼 블록체인의 기술 특성에 기반한 콘텐츠의 디지털자산화는 향후 거의 모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편집자주
한때 ‘투기’나 ‘사기’ 정도로 취급받던 암호화폐와 그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다시 경영계의 관심이 커졌습니다. IT 전문 기자로 오랜 시간 활동하고 최근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에서 현장 취재와 연구를 하는 김지윤 기자가 ‘Blockchain & Business’를 연재합니다.



블록체인과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은 고양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7년 11월 출시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고양이 육성 게임 ‘크립토키티’ 얘기다. 크립토키티는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받은 디지털자산(Non-fungible token, NFT)에 고양이 옷을 입혀 분양하는 수집형 게임이다.(DBR minibox ‘NFT의 개념과 현황’ 참고.) 어찌 보면 상당히 단순해 보이는 이 게임은 당시 꽤 큰 반향을 일으켜 출시 한 달 만에 게임이 운영되는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마비시키기도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블록체인 기술은 크립토키티 외에도 여러 방향으로 엔터테인먼트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크립토키티 개발사 대퍼랩스는 이후 AR 필터로만 볼 수 있는 디지털 옷, 전미농구협회(NBA)에서 인기 있는 콘텐츠를 팬들이 디지털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NBA톱샷(NBA Top Shot) 개발로 행보를 이어갔다. 대퍼랩스가 자체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블록체인 플로(Flow)에 대한 1100만 달러 규모 투자에 래퍼 카디비, 가수 에드 시런의 소속사인 워너뮤직그룹이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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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단 대퍼랩스만의 움직임이 아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인공지능(AI) 홀로그램 개발사 오벤에 투자했고, 블록체인을 활용해 팬덤 커뮤니티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블록체인 스타트업들도 게이머가 직접 제작한 게임 내외 콘텐츠를 디지털 자산으로 취급하는 플랫폼을 선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소비자가 콘텐츠 제작자로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나 게임 생태계를 확장하는 시대다. 블록체인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커뮤니티가 직접 서비스에 기여하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다리 역할을 할 전망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고객을 사로잡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면 블록체인의 ‘엔터테인먼트 실험’이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대퍼랩스의 2년… “콘텐츠는 곧 디지털자산”

대퍼랩스는 디지털 세상에서 콘텐츠가 곧 자산이 되는 실험을 시작했다. 디지털 콘텐츠의 소유권도 이를 만든 사람의 손에 쥐어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들은 ‘블록체인을 통해 즐거운 경험으로 가는 문’이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 크립토키티 이후 배틀로얄 형태의 게임 ‘치즈위저드’, 디지털 패션 AR 필터, 농구 콘텐츠 플랫폼 개발 소식이 이를 증명했다.

2018년 11월 필자가 처음 대퍼랩스 팀을 만났을 때 이미 이 팀은 같은 달 삼성전자 산하 벤처투자조직 삼성넥스트,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벤처투자조직 GV, 록펠러 가문의 투자회사 벤록 등으로부터 1500만 달러를 투자받은 상태였다.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해 다른 암호화폐와 교환할 수 없는 NFT라는 아이디어를 이들이 처음으로 제품에 적용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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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대퍼랩스는 3가지 뉴스를 더 들고 왔다. 치즈위저드와 AR로만 볼 수 있는 디지털 옷 ‘무지개 빛(iridescence)’ 경매, NBA와 함께 농구 팬덤 플랫폼(NBA톱샷)을 개발한다는 소식이었다.

크립토키티가 다소 정적인 육묘 게임이었다면 치즈위저드는 치즈 모양의 마법사 캐릭터를 필두로 승부를 겨루는 배틀 게임이다. 10월부터 660개 이상의 이더리움(최소 12만 달러)을 건 토너먼트가 시작됐는데, 이는 e스포츠 요소를 첨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디지털 옷 ‘무지개 빛’은 지난 5월 뉴욕에서 이뤄진 경매에서 9500달러(한화 1100만 원)에 낙찰됐다. 이 필터를 적용하면 무지개 빛으로 반짝이는 의상을 AR을 통해 착용할 수 있다. 발표 당시 대퍼랩스 측은 “사람들은 스냅챗, 인스타그램 등에서 피부가 더 밝아 보이는 것부터 고양이 귀, 강아지 혀를 다는 AR 필터도 쓴다”며 “이미 디지털 패션을 입어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NBA톱샷은 ‘득점 기계’ 케빈 듀랜트 선수의 3점 슛 장면과 같이 NBA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장면을 디지털 형태로 팬들이 직접 소유할 수 있는 게임 플랫폼을 지향한다.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이자 그 내에서도 자체적으로 팬들이 서로 경쟁하고, 리그 진출이나 팀 구축 등의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 개발한다는 게 협회의 설명이다. 로함 가레고즐루 대퍼랩스 대표는 “농구팬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 팀, 타 팬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게 된다”며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휴대성과 영구성이 보장되는 새로운 자산을 만드는 등 새 디지털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9년 9월 대퍼랩스는 한 차례 더 큰 투자를 받았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안데르센 호로위츠, 유명 엔터테인먼트사 워너뮤직그룹 등으로부터 1100만 달러를 조달했다. 당시 워너뮤직그룹의 제프 브로니코스키 부대표는 “사람들이 디지털 세계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며 “디지털 상품이나 디지털 수집품은 팬덤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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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퍼랩스의 행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디지털 콘텐츠의 자산화’다. 각자 고유한 식별 정보와 개성을 가진 블록체인 고양이처럼 치즈위저드 속 각 캐릭터도 NFT로 이뤄져 있다. AR 필터로만 볼 수 있는 디지털 패션 ‘무지개 빛’도 NFT이기 때문에 세상에 오로지 하나뿐이다. NBA톱샷에서 NFT 기술을 적용할지는 미지수지만 NBA 리그 역사상 중요한 순간이 기록된 디지털 비디오 클립을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자산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1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크립토키티 출시 멤버이자 대퍼랩스 프로덕트 매니저 베니 지앙도 “우리의 삶은 갈수록 (소셜미디어, 게임 등) 소프트웨어를 매개로 하지만 이 소프트웨어는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타인의 컴퓨터에 종속돼 있다”며 “중립적인 제3의 네트워크, 이를 토대로 한 가상컴퓨터 환경에서 사용자 경험을 만들 때 우리는 진정으로 디지털 속 개성(stuff)을 자기 것으로 소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적으로 지난 10월 싸이월드 웹사이트가 수명을 다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굉장히 격렬했다. 다들 추억을 소환했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이 소프트웨어에 돈을 들여 디지털 개성을 만들어왔고, 이 콘텐츠가 자연히 싸이월드가 아니라 이용자 본인의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경제에서 콘텐츠를 자산으로 소유하는 개념은 앞서 등장한 셈이다. 대퍼랩스는 이 경험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데이터 저장소를 기반으로 삼을 때 널리 지속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DBR mini box: NFT의 개념과 현황

엔터테인먼트 관련 사례로 블록체인을 소개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NFT다. 직역하자면 ‘대체할 수 없는 토큰’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암호화폐마다 고유 번호가 매겨져 다른 암호화폐로 대체할 수 없다는 개념이다. 비트코인은 서로 교환해도 똑같은 비트코인이지만 NFT는 설령 겉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콘텐츠더라도 기술적으로 엄연히 다른 스펙을 달고 있다.

블록체인 업계에선 이 토큰을 온라인으로 발행하는 데 이더리움이 주로 쓰인다. 그래서 NFT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ERC(Ethereum Request for Comments)라는 함축어도 뒤따른다. 이 용어에 포함된 RC는 인터넷 기술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제안이라는 뜻이다. 시중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NFT는 ERC-721인데, 말인즉슨 721번째 제안을 반영한 이더리움 토큰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연히 NFT에도 종류가 다양하다. ERC-1155는 다중토큰표준(Multi Token Standard)으로 불린다. 게임 개발사 플래닛터리움의 서기준 대표는 “ERC-721이 한 가지 유형만 표현할 수 있고, 다른 층위의 디지털 자산에 대해선 새로 코드를 배포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며 “ERC-1155는 하나의 스마트컨트랙트(자동화 프로그램)로도 대체 가능/불가능 토큰을 모두 대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한 아이템, 게이머나 팬이 자제 제작한 콘텐츠, 세상에 유일무이한 디지털 옷은 NFT 기술을 통해 희소성을 얻게 된다. 카카오가 지난 9월 선보인 이용자 보상 플랫폼 ‘카카오콘’에서도 이 기술이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공개한 카카오톡용 디지털자산 지갑 ‘클립’에서도 게임 아이템 등에 고유번호를 매기는 NFT도 취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더리움 외에도 코스모스, 이오스 등 여타 블록체인에서도 유사한 콘셉트의 기술을 도입하는 추세다. 엔터테인먼트처럼 콘텐츠가 곧 디지털자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는 시도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게임, 아이템 거래, 커뮤니티, 그리고 새로운 IP

대퍼랩스가 NFT의 가능성을 연 이후 여러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을 두드렸다. 게이머가 직접 게임 내에서 콘텐츠를 만들어 이를 디지털자산으로 삼고, 이를 블록체인 기반 장터에서 희소 아이템으로 거래하는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디지털 콘텐츠에 복제할 수 없는 고유성을 부여하면서 이를 생산하는 팬덤, 커뮤니티도 중요하게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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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강남 해시드라운지에서 열린 NFT 세미나에서 애니모카 브랜드의 얏 시우 창립자는 “게임의 중심은 아이템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니모카 브랜드는 게임 개발 및 퍼블리싱을 다루는 다국적 기업으로 F1과 함께 블록체인 기반 레이싱 게임 ‘F1 델타 타임’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때 이 게임 속 자동차는 모두 NFT 아이템이다. 처음으로 경매에 붙인 가상 경주용 자동차 ‘1-1-1’은 지난 5월 415.9이더에 낙찰됐다. 당시 가격으로 11만 달러(한화 1억2900만 원)를 웃돈다. ‘유명 운동선수의 사인이 들어간 칼’ 아이템이 비싸게 팔리는 ‘프리미엄 모델’이 등장했다는 게 시우 창립자의 주장이다. 엇비슷한 게임이 양산되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사용성에 큰 차이가 없을 때 디지털자산 개념이 각광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 콘텐츠가 된다면 이 콘텐츠를 만드는 이용자들은 이전보다 더 중요한, 적극적인 참여자로 거듭나게 된다. 더샌드박스는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마인크래프트류의 게임에 블록체인 기술을 더했다. 마인크래프트는 일종의 ‘디지털 레고’로 사람들이 쉽게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세계관을 구축하는 게임인데, 여기에 NFT 개념을 더해 창작자에게 소유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 콘텐츠를 사고파는 마켓플레이스로도 이어진다. 지난 10월 더샌드박스는 대시보드 서비스를 출시해 게이머들이 다양한 창작물을 NFT로서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선보였다. 아직 블록체인과 연계되지 않은 버전이지만 곧 내놓을 알파 버전에선 사용자가 이더리움 기반 게임 계정을 연결해 아이템을 자기 프로필에 추가하거나 서로 디지털자산을 거래하는 기능이 더해질 예정이다. 온라인 아이템 P2P 거래 플랫폼으로 유명한 ‘아이템 마니아’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보상형 블록체인 게임 모스랜드의 손우람 대표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모스랜드 속 가상현실 지도에 있는 주요 랜드마크 건물이 스스로 IP(지적재산권)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예를 들어, 실제 건물 위에 AR 필터를 씌울 수 있고, 그 필터는 모스랜드 속에서 이 건물의 주인이 소유하는 구조도 상상해볼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모스랜드에서 파생된 게임 디앱 ‘더헌터스’는 GPS를 기반으로 각지에 퍼져 있는 포인트 보상이나 가상현실 속 건물에서 나누는 골드를 획득하는 보상형 게임이다. 게임 내 건물주들은 다른 게이머에게 매력적인 건물이 되기 위해 온·오프라인 이벤트를 직접 기획하는 등 부운영자 역할을 맡는다. 이런 아이디어 덕분에 모스랜드는 대형 IP가 아닌 사례로 지난 5월 구글 맵스와 파트너십을 맺게 됐다. 포켓몬고처럼 사람들의 추억을 활용하는 유명 IP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IP로 사랑받을 수 있을지 가능성을 살피는 분위기다.

게다가 블록체인 기반의 NFT 아이템은 설령 해당 게임사가 문을 닫더라도 잔류할 수 있다. 게임 개발사 서버가 아니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게임의 아이템이 다른 게임에서도 등장할 수 있다. 예컨대, 크립토키티에서 구매한 내 고양이가 또 다른 경주 게임 ‘키티레이스’에도 등판하는 식이다.

블록체인 업계에선 ‘그동안 비트코인 온라인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작진 일동’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큰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문을 닫았던 포털 사이트 천리안처럼 비트코인도 폐업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다. 이 말이 농담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비트코인이 서비스와 상관없이 잔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트코인 결제 서비스는 없어지더라도 비트코인 그 자체는 분산 네트워크에 남는 구조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도 이 구조가 적용된다면 어떨까. 기껏 열심히 게임 아이템을 강화하고, 2차 창작물을 만들었는데도 주요 서비스가 문을 닫으면 그 서버와 함께 콘텐츠가 없어지던 시대에 데이터 쪼가리도 ‘자산’으로 간직하는 상상이다. 기술적으로, 산업적으로 콘텐츠가 디지털 자산이 될 수 있다면 이를 생산하고 주고받는 이용자 커뮤니티의 존재감은 과거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모바일, IT 통해 이용자와 직접 만나는 엔터테인먼트사

디지털 콘텐츠의 자산화, 이로 인한 소셜 커뮤니티의 부상은 비단 블록체인 업계만의 화두는 아니다. BTS 팬덤 아미(ARMY)는 이미 자체 소셜미디어 앱을 통해 아티스트와 소통하고, 공식 굿즈 스토어 앱도 이용할 수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AI 아바타, 블록체인을 활용해 아티스트와 팬이 더 다양한 채널로 만나고, 팬의 기여도에 보상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잠실종합운동장에선 BTS 콘서트가 열렸다. 현장을 찾은 팬들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IT 계열사 비엔엑스(beNX)에서 개발한 팬덤 소셜미디어 앱 ‘위버스’에서 공연장 내 혼잡도를 표시한 지도, 좌석 배치도, 이벤트존 맵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빅히트 설명회에서 알려졌듯이 자체 플랫폼을 통해 팬들의 ‘고객 경험’을 혁신하는 데 방점을 둔 기획이었다.

그간 엔터테인먼트사에서 IT, 앱 등을 활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팬덤이 가수를 키우는 ‘소셜 프로듀싱(social producing)’이 대세로 떠오른 시대임에도 고객이 일상에서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접하긴 쉽지 않았다. 그나마 유튜브 댓글, 트위터 등 디지털 창구가 생겼지만 여전히 팬들은 ‘내 아티스트가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긴 어렵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특유의 분위기에서도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한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이 산업은 중개인이 너무 많고 산업 구조가 불투명하다”며 “아직도 팬들을 현금 자동입출금기(ATM)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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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비엔엑스의 기획은 더 주목받았다. 이들이 선보인 앱 위버스, 위플리는 엔터테인먼트가 IT 서비스를 품을 때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위버스에는 빅히트 소속 아티스트인 BTS, TXT(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여자친구 팬덤을 위한 섹션이 각각 마련돼 있다. 팬덤은 앱을 통해 아티스트와 직접 소통하는 듯한 소셜 경험을 얻는다. 아티스트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앱을 통해 먼저 공개되기도 한다. 팬 입장에선 여타 플랫폼이나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커뮤니티만의 가상공간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다. 공식 굿즈를 판매하는 앱 위플리도 팬들이 안심하고 굿즈 진품을 구매하는 접점을 마련해줬다.

지난 9월 업비트 개발자 콘퍼런스(UDC)에서 SM엔터테인먼트 주상식 CT-AI랩장은 “기존 아이돌 중심의 음악 사업모델을 넘어 스포츠, 여행, 모바일 앱 등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AI,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플랫폼을 구축해 팬의 기여도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고, 저작권 관리도 효율화한다는 설명이다. 이후 타깃 마케팅 등을 강화해 새로운 수익도 창출할 방침이다.

앞서 대퍼랩스가 워너뮤직그룹과 협력해 “팬덤이 아티스트 활동에 수월하게 참여하고, 시스템을 효율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내다본 것과 맞닿는 전략이다. 기술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과 콘텐츠에 직접 기여하며 시간을 쏟도록 하는 전략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더 자주 접하게 될 전망이다.

이를 단순히 음악 산업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의 이야기로 한정한다면 세상을 좁게 보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글로벌 슈팅게임 포트나이트를 개발한 미국의 에픽게임즈도 중간 단계를 줄이고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려는 엔터테인먼트사 중 한 곳이다. 지난해 구글플레이를 통하지 않고 직접 앱 설치 파일을 배포하는 방식으로 안드로이드용 ‘포트나이트’를 공개했다. 에픽게임즈코리아 이원새 사업 담당은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에픽게임즈는 먼저 게이머와 직접 소통하고, 지속해서 온라인 게임을 서비스하는 모델이 가능하다는 선례를 만들고자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배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여름 에픽게임즈 자회사인 사이오닉스는 올해 말까지 자사 모든 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모두 퇴출하겠다고 밝혔다. 게이머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려는 방침이다.

이 안에서 사람들은 게임 속에서 EDM 파티를 여는 등 신나게 이 플랫폼에 시간을 쏟는다. 고객 개개인이 모여 콘텐츠를 살리고 플랫폼을 띄우는 기여자 역할을 한다. 포트나이트는 ‘2018년 가장 중요한 소셜미디어’라는 평가를 받은 터. 앞서 언급한 엔터테인먼트사들은 모바일을 통해 중개 비용을 줄여 이용자와 직접 만나고, 그렇게 팬덤 커뮤니티를 결집해 이전에는 넘볼 수 없던 사업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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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슈머 커뮤니티&디지털자산이 엔터테인먼트 판도 바꾼다

정리하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IT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나아가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서비스에 이바지하는 프로슈머(prosumer) 커뮤니티와 연계되기 시작했다. 갈수록 사람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은 늘고 있다.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놀이터에서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자유롭게 창작/교류하는 기술 플랫폼을 구축할 때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팬이나 게이머에는 ‘호구’라는 멸칭이 따라붙곤 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돈과 시간을 쓰지만 정작 별다른 권한이 없다는 자조적 별명이다. 이들이 단순히 요금을 내는 소비자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용자라고 상정하는 데서 혁신은 시작된다.

대퍼랩스 지앙 매니저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NBA톱샷을 구상한 계기를 설명하며 “팬들이 사랑하는 것에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도록 하는 강력한 기회가 포진해 있다”고 말했다. 제페토, 페이스북/오큘러스 등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게임 캐릭터 스킨을 구매하는 것처럼 팬덤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위해 그가 입은 의상을 구현하는 AR 필터도 살 수 있는 서비스 지지층이라는 것이다.

이용자 커뮤니티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긴밀하게 접촉하는 방향에서 사업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관점이다. NFT를 포함한 블록체인 기술은 이들이 소중히 여기는 콘텐츠에 희소성을 불어넣는 수단에 가깝다. 프로슈머 커뮤니티가 가치를 형성하는 트렌드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자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활용하는 전자상거래 서비스라면 눈여겨볼 만한 흐름이다. 예컨대, 고객이 코디한 사진을 공유하는 전자상거래 앱에서 3D 이모지나 가상현실 게임을 결합한다면 그 안에서 이용자가 직접 디자인한 옷은 설정에 따라 복제되지 않는 NFT로 둘 수 있다.

이를 AR 필터와도 연동해 NFT 소유자는 이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다시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 혹은 경매를 통해 값비싸게 팔거나 기성복으로 전환한 후 앱 내 마켓플레이스에서 자기가 제작한 스킨으로 판매하는 식도 떠올릴 수 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자산이 커뮤니티와 서비스의 힘을 빌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그림이다.

본질은 사람들이 서비스에 들이는 시간, 콘텐츠에 기여하는 노력을 보장하고 보상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게이머나 팬덤과 더 가깝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창구, 콘텐츠를 디지털자산으로 구성하는 기술 모두 소셜 커뮤니티의 일상을 붙잡기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다.

이때 블록체인은 디지털 개성을 담는 중립국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2018년 안데르센 호로비츠의 크리스 딕슨 파트너는 IT 매체 브레이커와의 인터뷰에서 블록체인에 투자하는 이유로 ‘인터넷의 공공성’을 꼽은 바 있다. 오늘날 인터넷 세상은 디즈니랜드에 가깝다는 설명이었다. 당신이 디즈니랜드 안에서 장사를 하는 식당 주인이고, 내 식당의 수완이 너무 좋아 보일 경우 디즈니는 임대료를 올리거나 정책을 바꿀 수 있다. 디즈니랜드의 룰은 플랫폼의 주인인 디즈니가 정한다는 소리다.

반면 블록체인은 디즈니랜드보단 동네 공터를 가꾸는 것에 가깝다. 공터라는 공공재 위에서 사람들은 식당을 차리거나 공연을 열 수 있다. 이때 공터의 룰은 한 사람이 함부로 바꿀 수 없다. 디지털 경제가 사람들의 일상에 더 스며드는 만큼 플랫폼의 중립성, 공공성도 무시할 수 없는 이슈라는 의미다.

여느 블록체인 엔터테인먼트사처럼 대퍼랩스도 이 기술과 게임, 패션, 스포츠 팬덤을 결합해 더 많은 사람이 편하게 분산경제(deconomy)에 참여하는 게 목표라고 본다. 기술은 아무 이유 없이 생기지 않는다. ‘복제할 수 있다’에서 ‘복제할 수 없다’로 흐르는 블록체인 기술은 사람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해 생활하는 현재를 반영하고, 그래서 그 기반이 분권화할 수밖에 없는 미래를 가리키고 있다.


필자소개 김지윤 블록인프레스 기자 jinny.kim@blockinpress.com
필자는 서울대 생명과학부를 졸업하고 YTN 디지털국 콘텐츠 제작자(CP), IT 매체 아웃스탠딩 기자로 재직했다. 현재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블록인프레스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분산형 플랫폼, 디지털 화폐, 데이터마켓을 비롯한 ‘분산경제(deconomy)’를 취재,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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