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준의 시애틀 비즈니스 산책

스타벅스와 기네스가 만든 ‘도시 브랜드’

284호 (2019년 11월 Issue 1)

편집자주
베스트셀러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의 저자로 유명한 아마존 출신 1인 기업가 박정준 씨가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미국 시애틀은 아마존, MS,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기업의 본사가 위치한 도시일 뿐 아니라 최근 실리콘밸리를 위협하는 스타트업의 요람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20년째 시애틀에 살고 있는 박정준 대표가 시애틀에서 보고 느낀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필자가 시애틀에 정착해 산 지도 올해로 벌써 스무 해가 됐다. 이따금 한국을 방문할 때면 새로 만날 분들에게 어떤 선물을 사갈지 고민하는데 현재까지 가장 호응이 좋은 물건은 스타벅스 1호점이 탄생한 시애틀에서만 구할 수 있는 스타벅스 텀블러와 머그잔이다. 서울은 놀랍게도 매장 수로만 본다면 시애틀은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스타벅스 매장을 보유한 도시다. 서울 매장의 텀블러는 아내가 매번 시애틀로 돌아올 때 사와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예쁜 디자인을 자랑한다. 그렇지만 스타벅스를 보고 서울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다. 스타벅스 하면 시애틀, 시애틀 하면 스타벅스가 떠오른다.

스타벅스가 시애틀에 주는 이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1만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두세 1 를 비롯한 엄청난 세금을 시애틀에 납부한다. 또 시애틀의 유명 재래시장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 안에 위치한 스타벅스 1호점과 매장 안에 커피 공장을 갖춘 스타벅스 리저브 1호점은 시애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다. 관광객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시작한 하나의 로컬 커피숍이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 체인으로 성장한, 반세기에 걸친 놀라운 스토리를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이 두 곳을 방문함으로써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3만여 개의 스타벅스 매장이 시애틀이란 도시 브랜드를 시시각각 홍보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도 스타벅스처럼 도시 브랜드를 알리는 기업이 있다. 더블린의 필수 관광지 중에는 국보 1호 『켈스의 서』가 보관된 트리니티대학, 독립의 역사가 담긴 킬마이넘 감옥과 더불어 ‘기네스 스토어하우스’가 꼽힌다. 펍(Pub) 문화로 워낙 유명한 더블린이 가장 자랑하는 맥주인 기네스는 독특한 커피 향과 깊은 색, 그리고 부드러운 거품과 목 넘김이 일품인 고상한 흑맥주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는 입장료만 25유로(약 3만3000원)인 7층짜리 건물로, 옥상 전망대에서의 맥주 시식을 비롯해 다양한 체험과 쇼핑을 할 수 있는 복합 관광 공간이다. 마치 대형 박물관이나 놀이동산을 연상시키는 매표소와 입구를 지나면 1층에는 기네스 로고가 박힌 초콜릿부터 골프용품까지 다양하고 퀄러티 좋은 상품을 판매하는 대형 매장이 있다. 평일인데도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전망대에서 겨우 비집고 시내 전경을 바라보며 기네스 한 모금을 마시고 내려와 다른 층을 관람한다. 이곳에서 버려진 양조장을 900년간 헐값으로 임대 계약했다는 유명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물론 제조 공정까지 배울 수 있다. 아일랜드는 800여 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22년에 비로소 독립을 이뤘다. 이웃 강국의 지배를 받은 것도, 독립 후에 남북으로 나눠진 모양새도 한국과 많이 닮았다. 기네스 가문은 피지배 시절 영국에서 작위를 받은, 우리로 비유하자면 친일 가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오늘날 기네스는 영국이 아닌 아일랜드와 더블린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맥주라는 점이다.

김용진 작가 그림

많은 사람이 지역 특산품 하면 여전히 사과나 귤같이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1차 산업을 떠올린다. 하지만 커피가 한 톨도 나지 않는 시애틀에서는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가, 또 더블린에서는 기네스를 비롯한 맥주가 지역 특산품 역할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하나의 도시와 그 안에서 성장한 기업은 서로에게 굉장한 선순환의 시너지를 발휘한다. 스타벅스를 통해 커피로 유명해진 시애틀에는 전 세계로부터 많은 커피 소비자가 모이면서 커피 산업이 더 발전하고 있다. 더블린과 기네스도 마찬가지다. 길이가 10블록에 달하는 더블린 중심의 유명한 템플바 스트리트(Temple Bar Street)에는 밤새도록 흥겨운 전통음악과 전 세계 인종들이 함께하는 맥주 축제가 연중무휴 펼쳐진다.

시애틀과 더블린에는 스타벅스와 기네스만 있는 게 아니다. 시애틀에는 각자의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수많은 커피숍이 있고, 더블린에는 펍의 본고장답게 셀 수 없이 다양한 색과 맛의 맥주가 함께 팔리고 있다. 일등이 나머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폭제로서 도시와 산업 전체에 톡톡한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인 시애틀에서 필자도 거의 매일 커피숍을 방문하지만 절반 정도는 스타벅스를, 나머지는 다른 곳을 간다. 대형 프랜차이즈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맛과 서비스, 분위기를 제공하지만 오랜 집을 개조해 만든 로컬 커피숍에서 느껴지는 낭만과 설렘은 절대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커피와 맥주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니 다른 산업들도 덩달아 활기를 띠게 된다.

도시와 글로벌 시장의 시너지를 보여주는 스타벅스와 기네스는 ‘시장을 크게 보는 관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하나의 동네, 도시 또는 나라든지 간에 그 안에서 치열하지만 공정한 경쟁은 넓은 관점에서 모두를 승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 시장의 범위가 한 골목뿐이라면 길 건너 동종 업체는 눈엣가시이자 찍어 눌러야 할 경쟁자일지 모른다. 그게 대형 프랜차이즈라면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계는 생각보다 가깝고 자유롭게 연결되고 있다. 유튜브 같은 미디어로 성공한 아이돌 그룹 BTS는 한국의 케이팝(K-pop)이라는 장르 전체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알렸다. 이처럼 관점과 시장을 조금 더 넓게 본다면 같은 그룹 내 인기 멤버 또한 시기의 대상이나 넘어서야 할 경쟁자라기보다는 세계 시장에서의 관심도를 높여주는 고마운 존재일 수 있다.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다른 그룹 또한 마찬가지다.

스타벅스와 기네스는 자신이 속한 도시 내 산업을 독점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라는 더 큰 시장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도시 전체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갑질을 일삼는 ‘방구석 여포’가 아닌 도시를 대표하는 영웅인 셈이다. 이때 지양돼야 할 태도는 무조건적으로 ‘선두주자 끌어내리기’ 같은 네거티브다. 달리기에서 앞서 달리는 경쟁자의 바짓가랑이를 잡아 끌어당긴다면 비록 그를 따라잡았다고 해도 결국 전 세계의 달리기에서는 둘 다 모두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다. 반면 시애틀과 더블린 같은 도시는 크고 작은 그릇과 음식이 함께 조화를 이룬 멋진 밥상같이 다양한 기업과 가게가 외부자들에게 매력적인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도시, 나아가서는 나라라는 하나의 팀은 서로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채워줄 때 글로벌 시장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필자는 ‘서울 하면 떠오르는 것은?’이라는 설문에 여전히 ‘남산’이 상위에 꼽히는 것이 안타깝다. 남산으로부터 스타벅스나 기네스와 같은 파급력을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진 그리스 같은 나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도시에 디자인을 입히고 도시를 상징하는 로고나 문구를 만들어도 결국 도시의 진짜 브랜드는 도시 자체보다는 그 도시가 탄생시킨 세계적인 기업과 상품, 그리고 그들이 담은 가공되지 않은 스토리와 이미지에서 탄생한다. 이제 더 이상 누구도 도시나 나라 이름이 적힌 열쇠고리를 선물로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필자는 지금도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 갔을 때 거기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병따개를 더 많이 사두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필자소개 박정준 EZION GLOBAL 대표 jj@ezion-global.com
필자는 미국 워싱턴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아마존의 시애틀 본사에서 2004∼2015년, 총 12년을 근무했다. 아마존에서 가장 오래 일한 한국인으로서 총 8개 부서에서 개발자, 마케팅 경영분석가,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전문가 등으로 근무했다. 재직 시절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클라우드 컴퓨팅 스타트업 공모전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했다. 저서로는 아마존에서 근무한 경험을 정리한 책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가 있다. 2015년 퇴사 이후 유아 매트 판매업체인 EZION GLOBAL, INC.를 창업했으며 현재 유아 매트 부문 아마존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5호 AI on the Rise 2019년 1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