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시장세분화, 꼭 해야 할까?

이효정 | 15호 (2008년 8월 Issue 2)
‘마케팅 전략의 출발점은 시장세분화이다.’ 이 말은 맞는 것일까, 틀린 것일까? 
마케팅 전공자나 마케팅 업무를 하는 실무자는 “대답하는 것조차 민망하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시장세분화는 이른바 STP(Segmentation-Targeting-Positioning)라 불리는 마케팅 전략수립 프로세스의 첫 단계이자 마케팅 전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졌던 이 개념이 최근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마케팅 전략의 정석으로 익혀왔던 시장세분화를 이제는 아예 하지 말라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시장세분화가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분화를 왜 시작하게 됐는지 그 배경부터 살펴봐야 한다.
 
시장세분화의 논리적 근거는 ‘모든 사람이 같은 사이즈의 옷을 입을 수는 없다 (One size doesn’t fit all)’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의 취향과 행동 양식은 각양각색이며, 기업이 다양한 고객 니즈(needs)를 보다 잘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비슷한 니즈를 가진 소비자를 그룹으로 나눠 각각의 그룹에 맞는 마케팅 믹스(상품, 가격, 유통, 촉진전략)를 차별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장 세분화의 방법에는 편익세분화나 행동세분화와 같이 진보된 기법들도 있지만 보통 성별, 연령, 소득 직업, 소득수준 등의 인구사회통계(socio-demographic) 변수와 가치관이나 라이프스타일과 같은 심리통계(psychographic) 변수가 많이 쓰인다.
 
지나치면 ‘독’이 되는 시장세분화
시장세분화 기법은 지금까지 꾸준히 진화해 왔으며, 세분화는 마케팅의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마케터들은 세분화의 정도가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세분화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기업이 시장을 세분화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틈새시장을 찾아내기 위해 시장을 계속해서 쪼개면서 오히려 이윤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마케팅의 거장’으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 미국 노스웨스턴대 석좌교수도 그의 저서 <수평형 마케팅>에서 극도로 세분화된 시장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시장 세분화를 거듭하다 보면 시장은 점점 더 작아지고 마침내 포화상태가 되며, 초세분화(hyper-segmentation)된 작은 틈새시장에서는 이윤의 기회도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세분화된 시장에 속한 고객의 니즈가 자주 변한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요즘 소비자는 과거와 달리 인터넷 등을 통해 다른 소비자와 수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자신의 니즈를 수정하거나 타인의 니즈를 모방하는 경향이 커졌다. 휴대전화의 통화품질을 중시하던 ‘통화품질 우선’ 성향의 소비자가 어느 순간 ‘사용편의 우선’ 성향으로 탈바꿈한다. 온라인 상의 휴대전화 사용자 커뮤니티 등에서 반복적으로 논의된 사용 편의성 관련 이슈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마케터들 사이에서 시장세분화 기준 자체가 잘못됐다는 자성도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인구통계적 세분화와 라이프스타일 세분화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이들 세분화에 사용된 변수에 고정관념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정 연령대나 성별 등 인구통계학적 변수로 소비자를 묶으면 놓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연령별 세분화를 하면 ‘아들, 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종횡무진하는 5060대’는 설명할 수 없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2007년 말 기준) 40대의 18.8%, 50대의 13.9%, 60세 이상의 8.9%가 본인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30대 중반의 여성 중에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골드미스’인 미혼 직장인도 많다. 각기 다른 개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전형적인’ 연령대나 라이프스타일을 기준으로 소비자 개개인의 니즈와 구매행위를 넘겨짚다가는 시장세분화의 ‘덫’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시장세분화는 무엇보다도 신성장 기회인 블루오션(Blue Ocean)을 찾아내기에 부적합하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시장을 개척하고 성장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기존 시장을 반복해서 나눌 것이 아니라, 아예 시장의 경계선 자체를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기존 산업과 상품군의 시장(고객)뿐만 아니라 대안 산업의 시장으로까지 눈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기업 실무자들이 시장세분화 방법론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2006년 2월호에는 컨설팅회사 마라콘 어소시에이츠(Marakon Associate)와 경제분석기관 EIU가 수행한 설문조사가 인용됐다. 대기업 임원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9%가 지난 2년 간 마케팅에 세분화 기법을 적용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응답자 중 14%만이 이런 활동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고 한다. 시장세분화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본원적 상품’을 만들어라
그렇다면 시장세분화의 대안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모든 고객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본원적 상품’의 개발이다. 이는 시장을 잘게 쪼개서 각개전투에 나서는 대신 하나의 강력한 제품과 메시지로 전 고객층에 어필하는 방법이다. SK텔레콤은 과거에 ‘TTL’을 필두로 ‘리더스클럽’, ‘유토’, ‘팅’, ‘카라’ 등 나이와 성별에 따라 시장을 세분화한 멤버십브랜드를 히트시켰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략 방향을 선회해 ‘본원적 상품’ 전략을 펼치고 있다. SK텔레콤의 이동통신 브랜드 ‘T’를 유심히 보면, 그 어떤 고객이라도 만족할 만한 제품과 서비스에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KTF와 LG텔레콤도 연령별 시장세분화 대신 각각 ‘쇼(SHOW)’와 ‘오즈(OZ)’ 등 단일화된 브랜드로 광범위하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고객의 다양한 니즈는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본원적 상품’ 전략에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옵션’, 즉 다양한 선택사양의 제시를 통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본원적 상품이 플랫폼(공통분모)을 가지고 공통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이라면 옵션은 ‘내 맘대로 골라 즐기려는’ 개별적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상품요소다. 최근에 이와 같이 하나의 본원적 상품에 여러 개의 선택사양이 결합된 ‘레고 블록’ 방식의 상품들이 히트를 하고 있다. 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그 공식을 따랐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 역시 이 방법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하나의 공통적인 콘셉트(플랫폼) 위에 알렉스-신애, 크라운제이-서인영, 앤디-솔비, 황보-김현중 등 다양한 옵션을 추가했다. 로맨틱 커플, 개성파 커플, 닭살 커플, 연상연하 커플 등으로 나눠 고객이 취향에 따라 골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세분화된 특정 고객층만을 노려 한 커플만을 등장시켰다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가요계의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도 다채로운 소비자를 공략하는 플랫폼식 그룹을 만들어 성공했다. 트로트를 부르는 슈퍼주니어-T, 발라드를 선보이는 슈퍼주니어-K.R.Y, 중국을 겨냥한 슈퍼주니어-M 등으로 팀을 나눠 같은 그룹 안에서도 ‘따로 또 같이’ 활동 중이다.
 
한도 끝도 없는 시장 쪼개기 전략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면 지금 당장 망설이지 말고 시장세분화 전략을 버려라. 가속도를 내며 진화하는 소비자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소비자보다 한발 앞서 질주해야 한다. 지금은 ‘시장세분화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변화한 시장환경에 맞는 독창적인 마케팅 전략을 강구해야 하는 시점이다.
 
필자는 연세대를 졸업(영어영문학, 국어국문학 전공)한 뒤 한국경제신문 경제주간지 한경비즈니스의 기자로 일했다. 이후 서울대 경영대학원를 졸업하고 삼정KPMG 경제연구원에 입사했다. 현재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소비자 연구와 유통 산업, 소비재 시장의 분석을 맡고 있다.
 
편집자주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김상훈 교수가 이끄는 비즈트렌드연구회가 동아비즈니스리뷰(DBR)를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합니다. 학계와 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이 연구회는 유행처럼 흘러가는 수많은 비즈니스 트렌드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을 제시합니다.
  • 이효정 | - (현) 삼정KPMG 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소비자 연구, 유통 산업 및 소비재 시장 분석
    - 비즈트렌드연구회
    - 한국경제신문 경제주간지 한경비즈니스 기자
    jennygogo@empal.com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