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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Business Frontier

‘일단 창업’은 백전백패. 일을 즐기는 집념 있는지 돌아봐야

장재웅 | 233호 (2017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창업은 하기도 어렵고, 성공하기는 더 어렵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한번도 성공하기 어려운 창업을 연거푸 성공시키기도 한다. 김정현 셰어하우스 우주(WOOZOO) 대표는 대학생이던 2010년 보청기 회사 딜라이트를 창업해 국내 중견 제약사에 40억 원에 매각한 후 그 돈을 바탕으로 셰어하우스 우주, 티엔네이션엔터테인먼트, JNFNB 등을 연속으로 성공시킨 국내 대표적 연쇄 창업가(Serial Entrepreneur)다. 그는 단순한 이윤 추구가 아닌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 기업가이기도 하다. 그는 “창업을 통해 번 돈과 터득한 노하우를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지 고민하다 보니 계속 새로운 사업을 생각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내가 돈 벌면 건물 하나 사서 평생 임대료 받아서 먹고산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으레 등장하는 대화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면 그 돈으로 부동산 등에 투자해 임대 수익을 올리며 편하게 살기를 원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돈을 벌었다고 편한 삶을 추구하지는 않는 것 같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일론 머스크(Elon Musk)나 ‘아마존 킬러’로 불리는 제트닷컴(jet.com) 창업자 마크 로어(Marc Lore) 같은 기업가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신이 세운 회사를 천문학적인 돈을 받고 매각한 이후에도 그 돈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어 이른바 ‘연쇄 창업가(Serial Entrepreneur)’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은 ‘창업이 직업인 사람들’로,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창업을 계속하면서 지속적으로 성공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벤처 창업 붐이 불면서 연쇄 창업에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주택 공유 중개 업체인 ‘셰어하우스 우주(WOOZOO)’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김정현 대표도 그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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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대학생이던 2010년 벤처기업 ‘딜라이트’를 창업했다. 저소득 난청인들을 위해 시중에서 판매하는 보청기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저가 보청기를 개발, 판매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로부터 1년 뒤, 그는 이 회사를 중견 제약사 대원제약에 40억 원에 매각했다.


20대에 큰돈을 벌었지만 김 대표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후 청년들의 주거문제에 관심을 갖고 주택 공유 중개 업체를 창업했다. 김 대표가 세운 두 번째 회사인 셰어하우스 우주는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을 임대해 셰어하우스에서 살기를 원하는 개인에게 재임대를 한다. 예를 들어, 종전 월세 100만 원을 받던 방 4개짜리 아파트가 있다고 하면 입주자 5명을 구해 월세 40만 원씩을 받는 식이다. 그렇게 되면 집주인은 월세 200만 원을 벌 수 있다. 우주는 세입자를 구하는 것은 물론 집의 인테리어, 귀찮은 관리 등을 도맡는다. 관리의 대가로 15% 정도를 수수료로 챙긴다. 집주인이나 세입자, 우주 모두에게 ‘윈윈(win-win)’인 모델이다.


김 대표는 우주 이후로도 ‘원조 아이돌’ H.O.T 멤버 토니안과 함께 연예 기획사 티엔네이션엔터테인먼트를 공동 창업했고, 음식 사업가로 유명한 장진우 대표와 함께 JNFNB라는 회사를 세우며 요식업에도 뛰어들었다. 두 회사 모두 딜라이트나 우주처럼 사회적 기업 성격을 띠고 있다. 티엔네이션의 경우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인디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데 주력한다. JNFNB 역시 음식점 운영 수익의 일부를 소년원 출신 어린이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이 밖에도 15개에 달하는 벤처기업에 30억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한 엔젤투자자이기도 하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돈을 벌 만큼 번 청년 기업가가 편안한 길을 놔두고 한번 성공하기도 어렵다는 창업을 연거푸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DBR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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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딜라이트를 창업해 큰 성공을 거뒀다.

사실 고등학교 때도 온라인 쇼핑몰을 연 적이 있지만 사업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학생 때 처음 창업을 했는데 당시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적 기업에 대해 공부하는 연합동아리인 ‘넥스터스’에 가입해 국내외 기업의 사례를 연구한 게 큰 계기가 됐다. 넥스터스는 당시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던 사회적 기업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을 한국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는 모임이었다. 이 동아리를 하면서 사업거리를 고민했다. 공모전도 나가고, 논문대회도 나가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창업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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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보청기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넥스터스 활동을 하며 해외 사례를 공부하던 중 인도의 아라빈드 안과병원 사례를 알게 됐다. 아라빈드는 인도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받는 사람들에게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우선 백내장 수술의 핵심인 인공수정체를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수술비용을 낮췄다. 또한 절개하는 의사는 절개만, 봉합하는 의사는 봉합만 하는 식으로 수술 프로세스를 모듈화, 표준화함으로써 수술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이 같은 혁신 노력 덕택에 아라빈드는 인도에서 수술도 가장 빠르고 실력도 제일 좋은 병원이 됐고, 무상 수술을 받기 원하는 가난한 환자뿐 아니라 기꺼이 돈을 내고 수술을 받으려는 부자 환자들도 앞다퉈 찾는 병원이 됐다. 그 결과 아라빈드는 부유한 환자들에게 받은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상 수술을 계속할 수 있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아라빈드가 인도에서 난청 환자를 없애보겠다며 보청기 사업을 시작했는데 실패했다. 이미 백내장 해결을 위해 시작한 사업을 크게 성공시킨 이들이 왜 보청기 사업에서는 실패했을까가 궁금했다. 그러던 와중에 때마침 넥스터스에서 경로당으로 봉사활동을 다녔는데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인들이 150만∼200만 원을 호가하는 보청기를 구입하는 걸 알게 됐다. 저소득 난청인들에게 국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이 30만 원 정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턱없이 높은 가격이었다. 나 역시 우리나라에서 난청 환자를 없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실패를 경험한 아라빈드를 분석하는 게 먼저라고 보고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파고들었다. 나름의 해결책을 찾았고 이를 발전시켜 사업화한 게 딜라이트다.


딜라이트의 목표는 저가의 보급형 보청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시중에 나와 있던 보청기는 수작업으로 제작된 맞춤형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선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딜라이트는 우선 우리나라 난청인들의 귀모양(귓본)을 일일이 조사해 ‘표준화’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즉, 귓본을 토대로 보청기를 개인에게 맞춤으로 제작해주는 고가형과 성능은 비슷하되 사이즈는 S(Small), M(Medium), L(Large) 등 몇 가지로 분류해 가격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사실 이런 형태로 보청기를 만드는 것은 인도 아라빈드도 도입했던 방식이다. 하지만 딜라이트는 여기에 한 가지 변화를 줬다. 바로 보청기 크기를 줄여서 보청기를 착용했는지 잘 보이지 않게 한 것이다. 해외 보청기들은 보청기가 귓바퀴에 크게 보이는 형태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눈에 보이는 보청기에 대한 반감이 컸다. 그래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보청기를 만들고 테스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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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1년 만에 회사를 매각했다. 이유가 있나.

사실 직접 보청기도 만들고 사업을 키웠지만 당시 나를 비롯한 공동 창업자들은 학생 신분이었고 시작할 때부터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었지 이게 얼마나 사업성이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이 커졌다. 솔직히 운도 따라줬다. 창업 초기에 고용노동부 주관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나가서 대상도 받고 언론을 통해 제품이 알려지면서 마케팅 비용을 크게 안 들이고도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직접 생산하지 않고 제품을 기획, 설계만 해 위탁 생산하고 있었는데 공장에서 물량을 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결국 휴학까지 하고 사업에 매달려야만 했다.


하지만 판매량이 워낙 빠르게 늘어나다 보니 안정적인 재고 확보가 필요했고, 위탁생산 방식에서 직접 생산 방식으로의 전환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목돈이 필요한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사실 많은 스타트업들이 규모가 커지면 이런 고민에 부딪히게 된다. 딜라이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나를 포함한 경영진 모두 어떻게 해야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고, 경영 전문성도 있고, 자금력도 충분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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