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철수냐, 잔류냐’ 뒷말만 무성했던 LG전자 PC사업. 2010년부터 노트북 PC를 포함한 PC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위기에 빠졌지만 2014년 내놓은 ‘그램’ 시리즈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매해 혁신을 거듭하는 ‘그램 시리즈’는 경쟁사들보다 더 가볍고, 더 오래 휴대할 수 있는 노트북의 대명사로 거듭났다. 핵심 성공요인은 다음과 같다.
1. 시장의 속성, 잠재성 등을 파악해 ‘레드오션’인 노트북 시장에서 휴대성을 강화한 초경량 노트북으로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다.
2. 전사적 협업, 조직의 민첩한 대응으로 신제품 출시 주기를 단축해 제품 개발의 선순환을 이뤄냈다.
3. 1년마다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출시하면서 경쟁사들과의 차별화를 공고히 했다.
“980g으로 무게를 줄이라고?”
2012년 말, LG전자 PC 개발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신제품 콘셉트가 980g짜리 노트북이라니. 연일 부진한 사업 때문에 가뜩이나 자신감이 떨어져 있던 개발자들은 980g은 불가능한 얘기라고 손사래를 쳤다. 일각에선 “노트북 성능이 아니라 무게에 집중하는 게 맞는 방향이냐”며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PC사업 수뇌부의 의지는 확고했다. 어려워진 노트북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무게를 줄이는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직원들도 일단 이 목표에 도전하기로 했다. 사업부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선 마당에 못 해 볼 일은 없었다.
개발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회로, 배터리, 디스플레이, 키보드 등 부품별로 팀을 나눠 감량 목표를 정했다. 머리를 쥐어 짜내야 했다. 한 달 동안 가족 얼굴 한 번 못 보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내가 감량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옆 팀에서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구에 몰입했다. 그러는 사이 노트북의 무게는 점점 줄어들었다. 외관 재질은 플라스틱에서 마그네슘으로 바뀌었고, 베젤 폭을 최대한 좁히는 등 각고의 노력이 이어졌다.
2014년 1월. 드디어 ‘LG전자 울트라PC 그램’ 13인치 노트북이 출시됐다.
“이게 될까?”
출시하고서도 반신반의했다. 무게 ‘다이어트’에 올인해 휴대성을 높였지만 소니의 ‘바이오’, 애플의 ‘맥북’ 등이 장악하고 있던 시장을 되찾아올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LG전자 그램의 확장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다. 커피숍, 학교 등지에서 흰색 노트북이 눈에 띄게 늘었다. 13인치, 980g짜리 그램 노트북은 여성들의 가방에도 부담 없이 들어갔다. 학생들은 노트북을 넣은 가방을 메고도 가뿐하게 교실로 달려갈 수 있었다.
최근 4년간 그램 시리즈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매출 증가율이 매해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젊은 층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매각설로 사업 존폐의 위기를 겪었던 LG전자 노트북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찾은 비결은 무엇일까.
“노트북 시장은 끝났다?”2011년 말 글로벌 IT기업인 HP가 PC 사업을 매각하거나 분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비슷한 시기, 상대적으로 실적이 나쁘지 않았던 삼성전자도 PC사업부를 축소해 모바일 사업부에 편입시켰다.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되고 태블릿PC가 등장한 마당에 노트북, 데스크톱 등을 포함한 PC 시장의 전망이 어둡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2010년 이후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면서 PC시장을 등한시한 측면도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델, HP, 레노버, 에이서, 애플 등 글로벌 PC 제조사들이 이미 선점한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기보다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삼성이 2012년 내놓은 아티브 시리즈는 태블릿에 비중을 뒀다. 아티브 스마트PC, 스마트PC 프로는 11인치 화면에 본체와 키보드를 탈부착할 수 있는 컨버터블 노트북 형식이었다.
노트북 시장의 경쟁도 격화되고 있었다. 중국·대만을 거점으로 한 글로벌 노트북 회사들은 저가 경쟁을 본격화하면서 가성비가 높은 제품을 쏟아냈다. 프리미엄 노트북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애플이 2000년대 후반 메탈 소재의 슬림한 노트북을 출시한 데 이어 소니도 경쟁력을 인정받은 바이오 제품을 출시하는 등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