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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터 슈레터러 지멘스㈜ 부사장 인터뷰

스마트공장은 기성복이 아니다. ‘빨리빨리’보다 ‘차근차근’ 준비를

이방실 | 227호 (2017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이산형 제조(discrete manu-facturing)에서의 스마트공장 전략
1차적으로 ‘제품’ 설계가 목적. 따라서 제품을 디자인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소프트웨어 툴이 중요. 생산 공정도 기계적, 물리적인 가공 조립을 통해 어떤 작업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진행하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에 기계 장비를 제어하는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장비가 중추적 역할 담당. 일관된 엔지니어링 프레임워크하에 가상 세계와 물리적 세계 간 끊김 없이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관건.

프로세스 제조(process manu-facturing)에서의 스마트공장 전략
공장 자체, 즉 어떤 소재나 물질을 생산하기 위한 프로세스와 플랜트 디자인이 목적. 따라서 생산 라인과 플랜트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을 최적화할 것인지가 관건. 또한 생산 공정 역시 원재료를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나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변형, 혼합시키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계측 장비와 DCS(Distributed Control System)가 중요. 기존 레거시 시스템(legacy system)과 새로운 시스템을 어떻게 매끄럽게 연동할 것인지가 가장 큰 도전 과제.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우경(서강대 경영학과 졸업·조지아주립대 석사과정 입학 예정)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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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멘스(Siemens)는 세계적인 전기전자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51년 전인 1866년, 기계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발전기를 개발했다. 이후 1959년엔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1 장비인 ‘SIMATIC 컨트롤러’를 시장에 선보이며 오늘날까지 전 세계 공장 자동화 시장을 주도해오고 있다. 해상 풍력 터빈과 복합 화력발전 터빈 분야에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지멘스가 중후장대한 산업에 특화된 하드웨어 기반 제조기업이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세계적인 IT 리서치 기업인 가트너(Gartner) 추산에 따르면 2015년 소프트웨어 매출액 기준으로 지멘스는 전 세계 11위(35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애플(16위, 25억 달러)보다 더 높은 순위다. 현재 지멘스에는 2만1000여 명(전 세계 지멘스 직원 약 35만1000명의 6%에 해당)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소속돼 있다.

지멘스는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200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을 추진해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향후 스마트공장 분야에서도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전략적 의사결정이었다. 우선 지멘스는 지난 2007년 미국 PLM(Product Lifecycle Management·제품수명주기관리)2 기업인 UGS 인수를 계기로 디지털화의 초석을 닦았다. 이후 지멘스는 PLM을 근간으로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제조실행시스템)3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엘란소프트웨어시스템스(ELAN Software Systems), 액티브테크롤로지아(Active Technologia), 캠스타(Camstar) 등을 인수했다. 이어 ▲네트워크 솔루션 업체 러기드콤(RuggedCom)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분야 전문 기업인 CD어댑코(CD-adapco), LMS인터내셔널(LMS International) ▲전자설계자동화 분야 업체인 멘토그래픽스(Mentor Graphics) 등 스마트공장 구현을 위한 필수 소프트웨어 분야 기업 16곳을 추가로 인수했다. (그림 1) 지난 10년간 스마트공장 관련 소프트웨어 역량 확충을 위해 17개 기업의 인수 대금으로 투입한 비용만 100억 달러에 달한다. 이처럼 적극적인 M&A의 결과 지멘스는 지난해 전체 매출액(약 880억 달러)4 가운데 약 6.7%(59억 달러, 모건스탠리 추산)를 소프트웨어 사업 분야에서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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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멘스의 스마트공장 전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DBR이 디터 슈레터러(Dieter Schletterer) 지멘스㈜ 디지털팩토리(Digital Factory·DF)와 공정산업 및 드라이브(Process Industries and Drives·PD) 사업본부 대표(부사장)를 인터뷰했다. 1988년 지멘스에 입사한 슈레터러 부사장은 지난 30여 년간 아시아·남미·유럽 지사에서 다양한 엔지니어링 및 시공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지난 2015년부터 지멘스 한국 법인의 대용량 드라이브(Large Drives) 및 EPC(Engineering·Procurement·Constru-ction·설계조달시공) 부서를 이끌어오다 지난 1월 DF와 PD 두 개 사업본부를 총괄하는 대표로 임명됐다.



지멘스가 지향하는 스마트공장의 모습은 무엇인가?

‘가상 공간’에서의 설계 및 생산 활동(design and virtual production)과 ‘실제 세계’에서의 생산 활동(real production)이 연결돼 설계 자동화부터 공장 자동화에 이르기까지 생산 활동의 전 과정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디지털 엔터프라이즈(Digital Enterprise)’ 구현을 최종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이는 제품 설계(product design), 생산 계획(production planning), 생산 엔지니어링(production engineering), 생산 실행(production execution) 및 유지보수(Service), 즉 제품 개발과 생산의 전 단계에 걸쳐 발생하는 모든 정보와 데이터가 끊김 없이(seamless) 통합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선 가장 먼저 현실 세계와 똑같은 가상 공간, 이른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환경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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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윈은 쉽게 말해 내가 공장에서 만들고자 하는 제품이나 생산라인을 PC 같은 가상 세계 안에 똑같이 만들어 놓고 가상 설계, 가상 시제품 생산, 시뮬레이션 등의 과정을 거친 후 현장에 그대로 적용해 실물을 만들어 내는 걸 뜻한다. 실제 물리적 공간에서 각종 테스트를 실시하는 대신 가상 환경에서 시뮬레이션 해 얻은 결과가 현실에서도 그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생산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게 핵심이다. 공장 전체를 디지털 트윈으로 만들어 설계 도면과 엔지니어링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통합적으로 관리·운영하면 제품 설계 및 생산 계획, 엔지니어링. 실행 등 모든 과정에서 가상 시뮬레이션이 가능해 제품 출시 속도(time-to-market)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이탈리아 자동차회사인 피아트(Fiat) 계열의 고급 스포츠카 제조업체 마세라티(Maserati)가 대표적 사례다. 마세라티는 토리노 신공장에 디지털 트윈 구현을 가능케 하는 지멘스의 솔루션을 도입해 고성능 중형 스포츠 세단 ‘마세라티 기블리’의 개발 기간을 기존 30개월에서 16개월로 절반 가까이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제품 출시시간도 30%가 줄어들었고 생산성은 세 배가 늘었다. 독일의 포장설비 전문업체인 옵티마(Optima)도 지멘스의 솔루션을 적용해 톡톡히 효과를 본 업체다. 소비재, 제약, 생명과학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포장설비를 제작하는 이 회사는 과거엔 기계 하나를 만드는 데 대략 2000시간이 걸렸지만 디지털 트윈을 구현한 후부터는 300∼400시간이면 만들 수 있게 됐다. 미국우주항공국(NASA) 연구진으로부터 역대 화성 탐사선 가운데 가장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큐리오시티(Curiosity)’ 설계에도 지멘스의 솔루션이 적용됐다. 큐리오시티는 가상 공간에서 무려 8000회 이상의 가상 테스팅 및 시뮬레이션을 거친 후 발사된 경우다. 최근엔 아디다스가 스포츠 용품 생산의 디지털화를 위해 지멘스와 적극 협력하기로 발표했다. 앞으로 지멘스는 아디다스 스피드 팩토리(Speed Factory)의 디지털 트윈 실현을 위해 실제 생산에 앞서 가상 세계에서의 전 공정을 시뮬레이션하고 최적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제품 개발 및 시장 출시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고 생산 공정에 유연성을 더함으로써 아디다스가 소비자가 원하는 최신 유행 제품을 신속하게 만들어 공급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할 계획이다.



제조업 특성에 따라 스마트공장 전략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제조업은 크게 이산형 제조(discrete manufacturing)와 프로세스 제조(process manufacturing)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두 가지 제조는 그 목적과 생산 공정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이산형 제조는 1차적으로 ‘제품’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반면, 프로세스 제조는 제품이 아닌 ‘공장 자체’, 즉 어떤 소재나 물질을 생산하기 위한 ‘프로세스’와 ‘플랜트’를 디자인하는 게 주 목적이다. 이런 차이로 인해 이산형 제조에선 제품을 디자인하고 시뮬레이션 하는 소프트웨어 툴이 중요하고, 프로세스 제조에선 생산 라인과 플랜트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을 최적화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생산 공정도 확연히 다르다. 이산형 제조에선 기계적, 물리적인 가공 조립을 통해 각각의 오퍼레이션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진행하는지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이산형 제조에선 각 공정에 들어가는 기계 장비를 제어하는 PLC가 핵심이다. 반면, 프로세스 산업에선 열이나 압력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이용해 원재료를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나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변형 혹은 혼합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해당 생산 라인은 물론 플랜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프로세스 제조에선 PLC뿐 아니라 DCS(Distributed Control System·분산제어시스템)5 가 매우 중요하다. 당연히 계측 장비의 중요도도 프로세스 제조가 훨씬 크다. 액체나 가루 등 다양한 재료들을 혼합하고 섞는 과정에서 압력, 온도, 유량 등 공정 자체에서 관찰해야 하는 변수들이 이산형 제조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장비라도 제조업 특성에 따라 사양이 달라져야 하는 건 물론이다. 어느 공장에서나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지만 그게 화학이나 철강 산업 같은 프로세스 제조업이라면 타격은 더욱 심해진다. 가령 500톤 정도 시멘트가 들어 있는 사일로에 문제가 생겨 플랜트 운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 시멘트는 하나도 남김없이 다 버려야 한다. 복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손실이다. 따라서 같은 장비라도 고온, 고압 등 극한 외부 조건이나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내구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계측 장비라면 측정할 수 있는 영역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자동차 공장엔 온도가 1700도에 달하는 사일로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서로 특성이 다른 이산형 제조와 프로세스 제조 분야의 스마트공장 구현을 위해 지멘스는 어떤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나?

지난 2014년 전사적인 조직 개편 당시 스마트공장 관련 사업을 제조업 특성에 맞춰 새롭게 정비했다. (‘지멘스의 조직 개편과 스마트공장 사업’ 참고.) 구체적으로, 자동차, 반도체, 전자, 항공우주, 공작기계, 생산설비 등 ‘이산형’ 제조업 분야의 스마트공장 사업을 위해 DF를, 화학, 정유, 철강, 제약, 시멘트 등 ‘프로세스’ 제조업 분야의 스마트공장 사업을 위해 PD를 각각 출범했다. 경공업이든 중화학공업이든, 제조업 특성에 따른 구별 없이 제품 개발과 제조 공정 전 단계에 걸쳐 스마트공장 관련 제품과 솔루션을 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은 지멘스가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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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멘스의 조직 개편과 스마트공장 사업

지멘스는 2014년 5월 전력화(Electrification), 자동화(Automation), 디지털화(Digitalization) 3개 분야에 집중 투자해 2020년까지 ‘디지털 산업 기업(Digital Industrial Enterprise)’으로 거듭난다는 ‘지멘스 비전 2020’을 발표했다. 이어 회계연도가 새롭게 시작하는 그해 10월을 기점으로 전사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전엔 총 4개 사업 부문(Sector) 아래 16개 사업본부(Division)를 운영하는 체제였지만 사업 부문 단위를 폐지하며 총 9개 사업본부로 재편했다. 기존의 사업 부문은 사실 너무 광범위한 측면이 있었다. 서로 다른 사업본부가 많으면 5개, 적으면 2∼3개씩 하나의 사업 부문으로 묶여 있다 보니 고객 접근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 지멘스는 각 사업본부에서 해당 산업 분야의 고객사와 직접 커뮤니케이션 해 시장 변화에 보다 기민하게 반응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사업 부문 단위를 없앴다. 이 과정에서 과거 산업 부문(Industry Sector) 내에 존재하던 산업자동화(Industry Automation·IA), 드라이브 기술(Drive Technologies·DT), 고객 서비스(Customer Services·CS) 3개 사업본부가 2개로 재편돼 DF와 PD 사업본부가 출범했다.

공식 조직도상으로 지멘스에서 스마트공장 관련 사업을 이끄는 부서는 DF와 PD지만 사실 지멘스는 전사적으로 스마트공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멘스 내 다른 사업본부들이 DF와 PD에서 생산한 제품 및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각각의 솔루션을 개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력 및 가스(Power & Gas) 사업본부의 경우 DF에서 제작한 PLC와 커뮤니케이션 모듈, PD에서 나오는 DCS 등을 기반으로 맞춤형 솔루션을 만들어 고객사(발전소)에 제공하는 식이다. 즉, DF가 스마트공장 구현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면 각각의 사업부서에서 해당 산업의 전문 지식(domain knowledge)을 더해 스마트공장 실현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개발한다고 보면 된다. 물론 DF와 PD 역시 지멘스 바깥에 있는 외부 기업들에 스마트공장 솔루션을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내부 고객과 외부 고객이 모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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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특성에 따라 제품과 솔루션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조직을 개편했지만 스마트공장 사업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DF와 PD 두 사업본부는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독일 지멘스 본사와 중국, 미국, 인도 등 시장 규모가 큰 몇 개 나라 현지법인을 제외하고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지역에선 두 사업본부를 한 사람이 책임지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R&D) 및 생산은 제조업 특성에 따라 두 개 사업본부에서 각기 조직을 운영하고 있지만 영업 인력은 공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객이 어떤 산업군에 속해 있건 PLC 같은 공장 자동화 솔루션은 어디에나 공히 들어가기 때문이다. 고객사의 공장 및 기계설비의 라이프 사이클을 관리하고 고객사 대상으로 스마트공장 관련 트레이닝을 제공하는 고객 서비스 조직도 비슷하다. 공식적인 조직 운영도상으론 DF에 속해 있지만 사실상 실제 업무를 들여다보면 DF와 PD 조직을 구분하지 않고 일한다. 고객 접점을 마련하고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관리하는 일은 단일 조직에서 공통적으로 담당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국내 많은 기업들이 스마트공장에 관심은 많지만 실제 도입한 사례는 많지 않다. 국내 기업들의 스마트 공장 확산을 저해하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시멘트, 화학산업 같은 프로세스 제조업의 경우 기존 자동화 시스템이 너무 노후화돼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심한 경우 20∼30년 전에 쓰던 시스템을 아직도 쓰고 있는 경우도 있다. 원래 새로운 IT 시스템을 도입할 때에는 과거에 사용하던 기존 레거시 시스템(legacy system)과 새 기술을 어떻게 연동하고 업데이트할 것인지가 가장 큰 도전 과제다. 그런데 한국의 화학, 철강, 시멘트 등 대부분 프로세스 제조업은 기존 레거시 시스템이 너무 노후화돼 있어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물론, 장치산업 특성상 보수적인 성격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춰봐도 크게 뒤지지 않는 자동화를 실현한 한국의 반도체, 전자, 자동차 산업 등과 비교해 볼 때 격차가 매우 크다. 심지어 같은 공장 안에서도 공정별로 적용된 IT 시스템이 달라 매끄럽게 연동이 안 될 때도 많다. 마치 자동화의 ‘섬(island)’처럼 각 시스템이 따로따로 파편화돼 있다. 스마트공장을 논하기에 앞서 먼저 자동화 시스템의 ‘현대화(modernization)’부터 실현해야 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대부분 경영자들이 스마트공장을 구현하기 전에 자동화에 대한 선행 투자부터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스마트공장을 위한 투자 부담도 큰데 기존 자동화 시스템 개선을 위한 투자까지 하라는 건 부담이 너무 크다는 논리다. 하지만 기업이 일상적인 비즈니스 활동을 위해 정기적으로 진행했어야 할 투자를 건너뛰고 스마트공장을 구현하겠다고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선행 투자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정상적인 투자 활동을 건너뛰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하루빨리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일단 공장 자동화의 각 층위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하나로 묶는 것이 스마트공장 구현을 위한 선결 조건임을 인식해야 한다.



스마트공장은 어느 한순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자타 공인 세계 최고의 지능형 공장으로 불리며 제조 공정마다 자동으로 작업 지시를 내리는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도 처음부터 스마트공장이 아니었다. 스마트공장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기 전부터 제조 현장에서의 생산성과 효율성, 유연성을 높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 온 결과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스마트공장의 핵심이 ‘제조업 경쟁력 강화’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이는 당연한 결과다.

자동차, 전자 등 이산형 제조업의 경우 한국의 자동화 수준은 상당히 높다. 화학이나 철강 등 프로세스 제조업과 달리 최소 3∼5년마다 지속적으로 IT 시스템을 정비해 왔기에 노후화 이슈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상 세계에 해당하는 설계 단계에서 발생하는 정보와 데이터를 과연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미흡한 측면이 있다. 설계면 설계, 엔지니어링이면 엔지니어링, 생산이면 생산, 이렇게 각 단계별로 보면 그 안에서 자동화는 잘 이뤄졌지만 각 단계가 서로 잘 연결이 되지를 않는다. 예를 들어, CAD(Computer Aided Design) 프로그램으로 뭔가를 설계하더라도 그 정보를 그대로 엔지니어링 단계로 가져오지 못하고 별도의 프로그래밍 작업을 통해 연동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1) 가상 세계에서의 제품 설계 및 시뮬레이션을 지원하는 PLM 시스템과 2) 설계 개발단(가상 공간)과 공장 자동화(실제 세계)를 연결하는 MES나 MOM(Manufacturing Operation Management·제조운영관리) 같은 공장 정보화 시스템을 별도의 인터페이스 없이 하나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야 가상 세계에서 생성된 정보가 실제 세계로 일방향(one-way) 전달되는 게 아니라 가상 세계와 실제 세계 간 순환 고리를 형성해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closed feedback loop)이 만들어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스마트기계(Smart Machine)’ 수준을 넘어 ‘스마트공장(Smart Factory)’으로 나아갈 수 있다.

참고로 지멘스는 현재 국내 스마트공장 보급 및 확산을 위해 현대위아, 훼스토(Festo), 쿠카(Kuka), 이플랜(Eplan), 리탈(Rittal) 등 스마트 제조 부문의 글로벌 선도 기업들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데모 스마트공장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경기도 안산·반월 시화단지에 구축될 예정인 데모 스마트공장에는 지멘스의 모듈형 생산 시스템을 기반으로 스마트 공작기계, 로봇, 공정 장치를 융합해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 가공 통합 라인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멘스는 데모 스마트 공장 구축을 계기로 지멘스 독일 본사의 최신 선행 기술 및 노하우를 국내로 도입,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기술 향상 지원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 스마트 공정 혁신 플랫폼과 고부가 가치 제품 생산을 위한 기술 컨설팅 등도 제공할 계획이다.



스마트공장 도입으로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독일에서 ‘인더스트리 4.0’의 핵심 축으로 스마트공장을 추진한 이유는 미래에 공장에서 일할 생산 인력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저출산 및 고령화라는 두 가지 인구변화 요소만 보더라도 이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변화다. 당장 생산인력 공급이 풍부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미래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시장을 선도하기 힘들다. 지멘스를 위시해 많은 독일 기업들이 스마트공장 도입에 힘쓰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자리 ‘수’에 초점을 맞춰 스마트공장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기보다는 일자리의 ‘질’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분명히 로봇이나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일자리는 있을 것이다. 단순 반복적인 업무라든가 위험도가 높은 작업의 경우엔 특히 그럴 것이고, 실제로 로봇 산업이 발전해 있는 일본의 경우 이런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4차 산업혁명은 보다 높은 수준의 일자리를 창출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기술 혁신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공장을 도입하려는 한국 기업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한다.

한국은 독일처럼 제조업이 강한 나라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마트공장 구현을 통해 제조업 혁신을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IT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어 한국의 스마트공장 발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 기업 중에는 어느 곳에서나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스마트공장 모델을 찾으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때문인지 이미 만들어져 당장 가져다 쓸 수 있는 기성 제품처럼 완벽하게 짜인 솔루션을 원한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그런 솔루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제품과 시스템은 산업 특성에 따라, 또 고객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반드시 조정돼야 한다. 맞춤화(customization)는 스마트공장 구현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솔루션 제공 업체 간 긴밀한 협력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포장설비 전문업체인 옵티마의 대표 솔루션 중 하나인 ‘옵티마 모듈라인(Optima Moduline)’을 예로 들어보겠다. 이 시스템은 지난 2015년 10월 독일의 헤어케어 전문업체 닥터볼프(Dr. Kurt Wolff)의 빌레펠트(Bielefeld) 소재 공장에 처음으로 적용됐다. 현재 이 공장에선 샴푸생산 라인 한 개당 1분에 120개씩 20개 포맷의 서로 다른 용기에 샴푸를 담아 박스 포장까지 끝내 제품을 출하하고 있다. 옵티마 모듈라인이 이처럼 고객 맞춤형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지멘스와 훼스토가 공동 개발한 ‘멀티캐리어시스템(Multi-Carrier System·MCS)’의 공이 크다. MCS는 제품 생산의 전 단계가 모듈화돼 있어 개별 제어가 가능하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조합이 가능한 운송 시스템(modular and flexible transport system)이다. 작업 상황에 따라 제품을 실은 캐리어를 개별적으로 한 개씩 이동시킬 수도 있고, 여러 개를 한꺼번에 그룹 지어 이동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다운타임(downtime)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옵티마는 닥터볼프의 니즈에 꼭 맞는 맞춤화된 샴푸 생산 라인을 제작하기 위해 초기 R&D 단계에서부터 고객사인 닥터볼프와는 물론 지멘스, 훼스토와도 적극 협력했다. 이처럼 한 공장에서 생산 라인 하나를 지능화해 생산성과 효율성 개선 효과를 보려면 여러 사업자 간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자체 R&D 역량으로,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 소위 어디에나 가져가도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범용(one-size-fits-all)’ 스마트공장 솔루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 상황에 따라 맞춤화가 필요하고, 이는 특정 기업 한 군데에서만 힘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모든 기업에서 동일한 수준의 스마트공장을 구현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먼저 자신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진단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실제 고객들을 만나보면 자신들이 구체적으로 뭘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스마트공장 구현을 위한 시작이라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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