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배우는 생존 전략

“한 조각의 햇빛이라도 더…” 식물의 치열한 경쟁이 던지는 교훈

223호 (2017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너그럽지 않은 자연환경 속에서 숲의 식물들은 제각기 삶에 유리한 방식으로 성장을 꾀한다. 특히 나무는 경쟁 환경에 따라 성장속도를 달리한다. 울창한 숲에서 자라는 나무가 부피보다 길이를 키우는 데 주력하는 반면 듬성듬성한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가지를 넓게 뻗는 것도 이 같은 원리다. 심지어 식물이 동물과의 차별점이라고 배운 ‘움직일 수 없다’는 고유의 본성을 어겨가며 움직이며 생존하는 국수나무 같은 사례도 있다. 식물들의 생존 전략을 보면 경쟁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추구하진 않는다. 생존을 위한 기회를 스스로 확보할 수 있다면 모두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은 우리에게 몸소 가르쳐주고 있다.



자연은 너그럽지 않다.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종(種)에게만 생존과 성장의 기회가 허락된다. 그 과정은 결코 공평하지 않으며 제한된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구글 검색창에서 경쟁(競爭)의 생물학적 정의를 검색해보면 ‘생물의 개체 수 또는 전체 양이 공간이나 먹이의 양에 비해 많아진 결과 생기는 증식 및 성장에의 마이너스적 영향’이라고 소개된다. ‘마이너스적 영향’이라니? 경쟁은 본질적으로 번영이나 성장을 방해하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말인가? 나무의 이야기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자.



나무의 키 높이 경쟁

나무는 느리게 자란다. 늦어도 너무 늦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생장을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어떻게 하면 나무를 빨리 성장시킬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이 고민을 아주 심각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전국의 산이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다. 포화에 불타고, 땔감으로 잘려나가고, 심지어 먹을 것이 없어 나무껍질이며 뿌리까지 파버리니 나무 한 그루 남아 있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렇게 붉은 흙과 바위투성이였던 산을 불과 60년 만에 울창한 숲으로 변신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나무의 느린 성장 속도를 고려해보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워 보인다.

과거 식목일에는 온 국민이 산에 가서 나무를 심었다. 식목일 하루 동안 워낙 많은 사람이 모여 좁은 공간에 나무를 심다 보니 ‘촘촘히’ 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무를 밀식(密植)하면 나무는 일단 키부터 키운다. 주변 나무보다 더 빨리 하늘 공간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부피 생장은 잠시 미뤄두고 높이 성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숲에 가보면 회초리 같은 나무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경쟁을 부추겨 빠른 성장을 촉진시키는 방법을 나무에까지 써먹다니 우리나라 사람들 참 영특하다 아니할 수 없다. 덕분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조림(造林) 선진국이 됐으니 말이다.

나무는 서로 눈치를 보며 경쟁을 한다. 다시 말해 경쟁 환경에 따라 성장 속도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일본의 수학자 이와사 요는 ‘게임 이론(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의사결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수학적 논리)’으로 설명했다. 이 수학자는 나무의 높이에 따른 이득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봤는데 나무가 ‘광합성으로 얻은 에너지양’에서 ‘성장에 사용한 에너지양’을 빼는 방법으로 나무의 득실을 비교했다. 그 결과 울창한 숲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부피 성장보다 길이 성장에 에너지를 많이 투자해 나무의 키가 더 큰 반면 나무가 듬성듬성한 숲에서는 나무줄기가 굵고 키가 작은 대신 가지를 넓게 뻗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나무가 광합성으로 얻는 에너지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데 유리한 방향으로 성장 에너지의 투자를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치열한 경쟁은 나무의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한다.



움직이는 나무, 국수나무

하늘 공간을 놓고 나무들이 벌이는 불꽃 튀는 키 높이 경쟁의 결과로 숲에는 지붕이 생긴다. 키 큰 나무의 수관(樹冠,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려 있는 부분으로 가운데 줄기의 상층부)이 울창해지면 그 아래는 캄캄한 어둠에 덮인다. 그러면 키가 작은 나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울창한 숲에서 키 큰 나무의 잎사귀 사이로 떨어지는 부스러기 햇빛의 비율은 겨우 3%에 불과하다고 한다.1 3%의 햇빛으로는 겨우 목숨을 부지할 에너지를 만들 정도다. 키 작은 나무 중에 ‘국수나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나무가 있다. 등산길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다. 키도 작고, 가지도 가늘고, 잎도 작지만 엄연한 나무다. 숲은 매우 불공평하다. 선천적으로 작은 키로 태어났지만 주변의 큰 키 나무와 햇빛 경쟁을 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경쟁 조건에서 국수나무는 어떻게 생존과 성장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131


우리는 초등학교 때 식물과 동물의 차이를 ‘움직일 수 있다’와 ‘움직일 수 없다’로 배웠다. 나무는 움직일 수 없다. 뿌리를 내린 그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상식을 국수나무는 가볍게 무시한다. 이 나무의 줄기 속에는 말랑말랑한 하얀 물질이 채워져 있다. 이것을 송곳 같은 것으로 밀어내면 국수가락같이 뽑아져 나온다. 속이 단단한 목재로 차 있는 큰 키 나무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 스펀지같이 말랑한 물질 때문에 국수나무의 줄기는 유연하게 구부러진다. 줄기가 단단하고 꼿꼿이 위로 성장해야 하늘공간의 끝자락이라도 잡아볼 수 있을 텐데 키도 작은데다 늘어지기까지 하니 설상가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국수나무는 자신만의 독특한 경쟁전략을 발전시켰다. 바로 ‘움직이는’ 것이다. 국수나무는 어느 정도 키가 자라면 가지가 활처럼 휘면서 늘어져 땅에 닿게 된다. 그러면 그곳에 가지를 처박고 뿌리를 내려 또 다른 줄기를 올린다. 새로운 줄기가 어느 정도 자라면 다시 구부러져 땅에 닿고 또 그곳에 뿌리를 내린다. 마치 스프링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으로 국수나무는 햇빛을 따라 자리를 이동하면서 성장에 필요한 햇빛 에너지를 쟁취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키 큰 나무가 따라 할 수 없는 놀라운 경쟁 전략이다. 태생적으로는 햇빛 경쟁에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고유의 특성’을 활용해 차별적 경쟁력을 발전시켰다는 점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개발하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주는 고마운 나무다.



시간 차 전략, 로제트 식물

햇빛을 차지하기 위한 나무들의 높이 경쟁으로 인해 하늘 공간이 닫히면 땅 위에 붙어사는 풀은 암흑 세계에서 살아야만 한다. 빛이 없는 세상에 갇혀버린 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부스러기 햇빛이라도 허락되는 공간에 풀들은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풀 중에도 유독 키가 작은 ‘난쟁이 풀’이 있다. 봄이 되면 쉽게 볼 수 있는 민들레나 달맞이꽃, 망초나 냉이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산다. 이들은 햇빛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132

 
난쟁이 풀들은 다른 식물들이 잠자고 있을 때를 공략한다. 다시 말해 다른 식물들의 활동이 극도로 위축되는 겨울에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비축한다. 이른바 시간 차 공격을 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풀에게 땅이 얼고, 차가운 북풍이 부는 겨울을 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겨울은 햇빛 에너지를 충분히 모으기에 하루해가 너무 짧다. 이렇게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난쟁이 풀은 독특한 모양으로 진화했다. 땅 표면과 높이가 같을 정도로 짧은 줄기에서 360도로 펼쳐난 잎을 땅 위에 넓게 펼친 듯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마치 둥그렇고 납작한 방석 같은 모양과 같다. 위에서 보면 활짝 핀 장미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로제트(rosette) 식물이라고도 하고, 납작하고 둥근 방석 같아서 ‘방석 식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는 짧은 겨울 햇빛을 모으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잎이 방사형으로 펼쳐져 있으니 거의 온몸으로 햇빛을 받아들일 수 있다. 짧은 낮이 지나고 차갑고 긴 밤이 찾아오면 방사형의 잎은 이불의 기능을 한다. 낮 동안 햇빛을 받아 따뜻해진 땅의 열기가 밤이 되면 대기로 올라오는데 넓은 잎으로 땅을 덮고 있으므로 대지의 복사열을 이용해 밤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낮은 키 때문에 겨울의 칼바람에 온몸이 얼어버리는 것도 피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로제트 식물에는 보상이 찾아온다. 언 땅이 녹고 바람이 따뜻해지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꽃대를 일으켜 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다른 식물이 활동을 멈추는 겨울을 훌륭하게 이겨낸 보상으로서 충분히 가치 있는 결과다.



곤충을 부르는 꽃의 경쟁

식물이 높이 경쟁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식물은 자신의 씨를 퍼뜨리기 위한 경쟁에 평생을 바친다. 자신의 씨를 더 많이, 더 멀리, 더 정확히 퍼뜨리기 위해 요란하게 경쟁을 한다. 세대를 이어 종(種)을 유지하려는 절대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놓는다.

숲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봄이면 식물의 경쟁은 치열하면서도 동시에 화려한 축제처럼 보인다. 꽃이 피는 식물(현화식물)은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곤충을 초청하는 데 성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꽃잎을 화려한 색으로 갈아입거나 달콤한 ‘꿀(화밀·花蜜)’ 향기를 짙게 풍기는 등 곤충의 감각을 사로잡기 위해 최대한 매혹적으로 치장한다. 대부분의 현화식물이 곤충의 시각과 후각을 사로잡는 경쟁에 몰두하고 있을 때 곤충의 은밀한 본능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교묘히 진화를 한 식물이 있다. 지중해의 숲에 서식하는 꿀벌란(Ophrys apifera)2 이라는 난초는 곤충의 모습을 그대로 흉내낸다. 꿀벌란의 꽃잎은 그 생김새가 호박벌을 그대로 빼닮았다. 꽃잎의 색은 호박벌과 같은 짙은 검은색이며, 무늬와 솜털로 덮인 표면 조직까지도 거의 유사하다. 꽃잎의 형태는 흡사 호박벌이 머리를 꽃잎에 파묻고 꿀을 섭취하고 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호박벌의 암컷이 뿜어내는 호르몬 냄새와 똑같은 향까지 발산한다. 얼마나 비슷했으면 수벌이 지나가다 이 모습과 향에 취해 꿀벌란 꽃과 짝짓기를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한다. 수벌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위해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을 치고 나면 수벌의 몸은 꽃벌란의 꽃가루로 범벅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교미에 실패한 허탈함도 잠시, 곧이어 다른 꿀벌란의 꽃에 수벌은 똑같이 몸을 비비적거리는데 이는 꿀벌란이 발산하는 호르몬의 냄새에 미세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냄새가 다르니 다른 암벌이라 착각하고 똑같은 수법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꿀벌란의 진화는 우연한 사건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정교하고 전략적이다.

133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자연의 혹독한 생존경쟁을 이겨낸 식물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차별적 전략으로 생존과 성장의 기회를 확보했다. 치열한 경쟁 환경이 오히려 결과적으로 성장의 촉진제가 된 것이다. 경쟁이 성장을 촉진하고 생명력을 강화하는 현상은 도처에서 일어난다. 미국 진화생물학자 리 밴 베일런(L.V. Valen)은 1973년에 종(種)의 진화와 멸종을 설명하기 위해 ‘붉은 여왕 가설(Red Queen's hypothesis)’을 제안하면서 ‘생존경쟁을 진화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보았다. 이 가설은 ‘한 종이 진화할 때 다른 종과 주변 환경 역시 진화하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3

대표적인 예로 치타와 영양 간의 속도 경쟁을 들 수 있다. 치타는 영양을 사냥하기 위해 자신의 속도를 빠르게 ‘업그레이드’하고, 그러면 영양 역시 치타에게서 도망가기 위해 계속 자신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경쟁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반복된다는 것으로 이러한 생존경쟁이 순환적으로 계속된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결국 경쟁에서 자기계발을 멈추게 되면 멸종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생물은 환경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시 말해 도태되지 않기 위해 ‘경쟁을 통한 지속적 성장’을 필연적으로 해야만 한다.

모든 생물이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경쟁하고 진화하듯 기업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윌리엄 바넷 교수는 ‘붉은 여왕 가설’을 경영 이론에 접목해 ‘경쟁은 기피 대상이 아니라 기업 성장의 핵심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례연구를 통해 ‘경쟁에 노출된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실패 확률이 더 낮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기업은 경쟁을 통해 더 높은 성과를 내고, 실패를 만회할 방법을 찾고 배우면서 성장해나가기 때문에 경쟁은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드는 성장동력이라 주장했다.



숲에서 배우는 경쟁의 자세

하지만 숲의 역사에 경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숲이 경이로운 것은 ‘경쟁과 공존’이라는 상반되는 현상이 유지되며, 그 결과물로 만들어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식물계의 경쟁은 파괴적이지 않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죽여야만 내가 사는 경쟁이 아니라는 말이다.

경쟁의 자세는 나무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나무는 태생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나무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가혹하다. 뿌리를 내린 바로 그 자리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쟁의 결과에 따라 생존과 소멸이 결정된다. 더구나 나무의 경쟁은 출발선이 똑같지 않다. 다시 말해 1년 된 나무와 10년 된 나무가 서로 경쟁해야 한다. 아름다운 양보란 없다. 너무나 불공평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생존과 성장을 위한 최소한의 기회를 얻기 위해 ‘목숨 걸고’ 경쟁을 해야만 한다. 인간은 땅을 놓고 전쟁을 벌이지만 나무는 하늘 공간을 놓고 경쟁한다. 광합성에 필요한 빛 에너지를 얻기 위해 키를 최대한 높이, 그리고 빨리 키우기 위해 집중한다. 나무는 옆을 보지 않는다. 어쩌면 옆을 볼 겨를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무의 경쟁은 ‘위를 보는 경쟁’이다. 자기 자리에서 위만 바라보며 키 높이에 전력투구한다. 이 과정에서 진짜 경쟁자는 나무 자신밖에 없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의 동력을 풀가동해야 한다. 광합성을 할 수 있는 햇빛을 얻었다면 열심히 에너지를 만들어 다시 또 높이 올라야 한다. 땅속 물을 끌어올려 가지 끝의 생장점으로 퍼날라야 한다.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철저하게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한 싸움에서 승리한 나무만이 하늘 영토를 움켜쥐게 된다.

우리는 모두 경쟁한다. 크고 작은 경쟁이 일생을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언제나 힘겹다. 경쟁은 과연 ‘독’일까, ‘약’일까? 모든 약이 독성(특히 식물의 독)을 가지고 있지만 적절히 활용하면 약이 되는 것처럼 경쟁 또한 마찬가지다. 경쟁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경쟁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그리스 신화가 있다. 경쟁의 신 이름은 젤로스(Zelos)다(영어 Jealousy와 발음이 비슷하다). 젤로스는 매우 열정적이고 승리에 대한 열의가 무척 강했다고 한다. 신의 왕 제우스와 함께 전쟁에 출전하면 제일 먼저 뛰쳐나가 적과 맞서는 것이 바로 그였을 정도다. 젤로스에게는 형제가 있었는데 각각 니케(승리의 신), 비아(권력의 신), 크라토스(힘의 신)였다. 4형제는 언제나 전쟁에 함께 출전해 많은 승리를 이끌어냈고 그 덕에 제우스의 총애를 듬뿍 받았다. 그런데 언제나 승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주인공은 니케였기에 제우스의 오른편 자리를 늘 니케가 차지하곤 했다. 항상 선봉, 즉 전쟁터의 제1선에서 싸우는 젤로스는 마음이 불편했다. 승리에 대한 열의와 갈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불편함도 커졌다. 승리에 대한 ‘열의’는 서서히 ‘시기와 질투’로 변질됐고, 젤로스는 그래서 평생 니케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스어로 질투는 질리아(Zilia)인데 ‘시기와 질투’라는 의미와 함께 ‘열의와 열망’이라는 뜻이 있다.

알피 콘(Alfie Kohn)은 그의 저서 <경쟁을 넘어서(1957년)>에서 인간의 경쟁을 ‘구조적 경쟁’과 ‘의도적 경쟁’으로 구분했다. ‘구조적 경쟁’은 승패의 구조와 관계가 있고 외부적인 상황에 의한 것인 데 반해 ‘의도적 경쟁’은 내부적인 것이며 1등이 되고자 하는 개인의 소망에 관한 것이다. 두 가지 다른 경쟁 중 우리는 어떠한 경쟁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나무는 온몸으로 답하고 있다. 경쟁의 목적이 ‘생존과 성장을 위한 기회의 확보’라는 점에서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승리는 경쟁자의 패배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쟁의 목적은 분명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경쟁자가 실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면 모두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그 기쁨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에게만 허락되는 선물이다. 그래서 경쟁은 내부적인 것이며, 개인적 열망이어야 한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 상대방이 실패해야 한다’는 구조적 경쟁은 오히려 우리에게 ‘독’(毒)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경쟁의 본성은 결과지향적이다. 따라서 경쟁의 과정에서 그 목적이 변질되기 쉽다. 마치 젤로스의 ‘승리를 위한 열의’가 ‘경쟁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시기심’으로 변질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우리 스스로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옆을 보는 경쟁을 하며 ‘시기와 질투’라는 독소가 우리 자신을 파괴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무처럼 ‘위를 보는 경쟁’, 다시 말해 생존과 성장의 기회가 무엇인지 인식하고, 그것을 목표로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하다 보면 경쟁이 ‘약(藥)’이 될 수 있다.



생명의 역사에서 살펴봤듯이 식물은 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켜왔다. 식물은 햇빛을 얻기 위해,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씨앗을 멀리 퍼트리기 위해 경쟁했으며 그 결과 자신만의 차별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진화론의 핵심 개념도 바로 ‘생존경쟁’이다. 찰스 다윈(C. Darwin)은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생물은 서로 경쟁을 한다’는 맬서스(T. Malthus)의 경제학적 입장을 반영해 ‘이러한 경쟁에서 이기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아 진화의 기회를 얻는다’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식물의 경쟁이 경이로운 것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절묘한 공존의 길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때로는 경쟁하거나 때로는 협력하면서 전체로서 진화했다. 그것이 생존과 번영의 가능성을 더 높인다는 것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것일까? 자연에서의 경쟁은 1등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생존과 성장을 위한 최소한의 기회를 확보한 생명체는 경쟁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도태되지만 않는다면 모두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자연이다.

21세기의 경영환경에서는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상대와 경쟁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경쟁상대를 적(敵)으로 간주해 파괴적 경쟁을 하려 한다면 우리는 경쟁의 독배를 마시고 성장을 멈출지 모른다. 진화에 성공한 풀과 나무가 그랬듯이 경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되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1등의 자리를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우리 자신과 싸워야 한다.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미래의 생존과 성장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승리’가 아닌 ‘성장’을 위한 경쟁의 자세를 잃지 않는 한 우리는 반드시 진화에 성공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강력한 DNA가 있지 않는가.



유재우 수피아에코라이프 대표 supia_eco@naver.com

필자는 한양대 광고홍보학과와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충북대 생명과학대학원 산림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인터브랜드에서 브랜드 경영 컨설턴트를, 인컴브로더에서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를 역임했다. 2006년 국내 최초로 숲에서 배우는 인재개발 교육전문기관인 ㈜수피아에코라이프를 설립하고 조직개발 및 리더십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7호 New Look at Gen X 2022년 06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