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 올림픽을 한 달 정도 앞둔 중국 시장은 그야말로 폭풍 전야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베이징 특수를 노리고 기업 활동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184조 원 규모의 중국 의류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들뿐 아니라 한국 의류업체들도 중국 시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잇달아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의류 브랜드의 성공률은 채 10%가 되지 않는다. 국내 무대에서 하던 방식대로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큰 코 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1999년 9월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온앤온(On&On)’이라는 국내 브랜드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보끄레머천다이징은 현지화 전략으로 중국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선정한 현지화 전략 우수 14개 기업에 의류업체로는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했다. 이 경험을 DBR을 통해 공유하고자 한다.
전략적 변곡점에 있는 국내 의류 브랜드
국내 패션 시장은 수년째 21조 원의 성장 한계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장 규모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수요에 따라 시장 흐름이 이동할 뿐 시장 규모 확대를 위한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내 의류 브랜드는 전략적 변곡점에 와 있다고 판단한다. 결국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거나 기존 브랜드의 글로벌화 없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같은 동양 문화권으로서 급팽창하고 있는 중국 시장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전략 지역이다. 특히 중국에서 여전히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 한류(韓流) 또한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끄레머천다이징이 중국 진출 9년 만에 받아든 성적표는 그리 나쁘지 않다.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액은 1600억 원이며 이 가운데 20% 가량인 320억 원이 중국 시장에서 발생했다. 전체 영업이익의 약 50%를 중국 시장에서 거뒀으며, 중국 시장의 영업이익률은 12%로 국내 시장의 두 배에 이른다. 2∼3년 내에 중국을 포함한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장에서 나름대로 선전한 요인을 뽑으면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중국 현지 매장 직원들의 철저한 교육으로 의류 상품 및 서비스 이해도를 크게 높인 것이 주효했다. 둘째, 초기에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현지 파트너에 대한 지원을 과감하게 했다. 셋째, 중국 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 준비 기간을 3년 정도 가져간 것이 큰 힘이 됐다.
사회주의 마인드를 시장 마인드로
중국 시장 진출 초기에 본사 이만중 회장(한국패션협회 중국위원회 위원장) 등 임직원들이 중국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당황스러운 장면을 몇 차례나 목격했다. 소비자가 찾는 제품이 매장에 전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 매장 직원이나 숍마스터는 “찾는 제품이 없다”며 고객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실제 제품은 매장 뒤편의 창고에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한국 같았으면 손님을 잠시 기다리게 하고 창고에 가서 물건을 찾아본 뒤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이 회장이 매장 직원에게 500위안을 주면서 수박을 사오라고 했다. 이 직원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유를 물었더니 500위안짜리 수박이 없어서 그냥 돌아왔다는 것이다. 500위안짜리 수박을 사오라면 꼭 그것을 사와야 하는 현지 직원들의 모습에서 지시에 그대로 따르는 수동적인 사회주의의 그늘을 봤다. 당시만 해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화교와 달리 중국인들은 ‘고객은 왕’이라는 서비스 정신을 알지 못했다.
싼 제품을 판다면 서비스 정신 결여가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 진출 초기부터 고가(高價) 전략으로 갔다. 현재 중국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온앤온’과 ‘더블유닷’ 2개 브랜드는 한국 시장에서 팔리는 것보다 비싸다.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상태에서 매장 직원들의 서비스 정신과 시장 자본주의 마인드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몇 차례 중국 현지에서 교육을 시키고 훈화를 내렸지만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긴급 처방이 필요했다.
체험하게 하라, 그러면 느낄 것이다
새로운 처방전은 선진 서비스의 체험교육이었다. 무엇보다 프리미엄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어떤 마인드로 생활하는지 직접 느껴봐야 고가 제품에 맞는 일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002년에 처음으로 중국 매장 직원 6명을 한국에 데려와 5박 6일 일정으로 교육을 시켰다. 공항 도착에서부터 극진히 영접해 5성급 호텔에서 최고급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20만 원이 넘는 뷰티 살롱에 데려가 네일 아트도 받고 머리 손질을 받게 했다. 이어서 3성급 호텔에 옮겨 고급 서비스와 비교 체험하도록 했다. 실제 이런 서비스 체험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일하는 매장의 매출은 두 배 이상 껑충 뛰었다. 비싼 옷을 권유할 때 중국 현지 직원들이 가지고 있던 심리적 저항감을 줄여 주기 위한 교육이었다. 즉 고가 제품에는 비싼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중국 현지인들의 ‘정신 혁명’을 이끈 것이 중국 현지화 전략의 요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