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센트럴 퍼블리싱(옛 워너북스)은 매년 가을과 겨울에 총 275∼300권의 책 제목을 담고 있는 카탈로그를 내놓는다. 이 출판사는 각 카탈로그에 들어 있는 책 중에서 매출을 올리는데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선정한 다음 마케팅 역량을 집중한다. 그 중 출판사 측에서 모든 노력을 기울일 의향이 있을 만한 책을 소설 부문과 비소설 부문에서 한 권씩 골라 집중적으로 홍보한다. 2007년 가을에 이런 방식으로 선정된 책은 데이비드 발다치의 ‘스톤 콜드(Stone Cold)’와 스티븐 콜버트의 ‘나는 미국이다(I Am America (and So Can You!))’였다. 이 전략의 효과는 매출과 이익에서 곧바로 드러난다. 2006년 그랜드 센트럴은 카탈로그 앞쪽에 있는 61종의 양장본을 출판하는 데 평균 65만 달러의 비용을 들였고, 이익은 10만 달러를 밑돌았다. 대부분 책들이 이 평균치에 가까운 실적을 냈다. 하지만 그랜드 센트럴에서 가장 홍보에 많은 공을 기울인 책을 출판하는 데 700만 달러의 비용이 들었지만 순매출은 1200만 달러에 조금 못 미쳤고, 총이윤은 평균의 50배에 가까운 500만 달러에 달했다.
그랜드 센트럴은 ‘블록버스터 전략’이라고 알려진 전통적 마케팅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식은 특히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많이 사용된다. 매장 진열대나 전통적인 유통 방식에는 공간의 제약이 있고, 소매 업체나 유통 업체들은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다보니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은 몇 가지 제품에 마케팅 재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다. 이런 접근 방식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르긴 하지만 성공하면 수많은 실패로 인한 손실을 모두 보상받을 수 있다. 사실 몇 안 되는 히트 상품이 수익과 이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2006년에는 그랜드 센트럴에서 출시한 책 20%가 전체 매출의 약 80%를 차지했다. 이 20%의 책이 그랜드 센트럴의 이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더 컸다.
하지만 블록버스터 전략이 처음 뿌리를 내린 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바야흐로 언제 어디서나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할 수 있고, 소매 업체들은 온라인에서 무한대의 진열 공간을 가질 수 있으며, 소비자는 셀 수 없이 많은 옵션을 통해 원하는 물건을 찾아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책·영화·음악이 모두 디지털화하고 복제도 수월해진 만큼 ‘과연 블록버스터 전략이 아직도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블록버스터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학파가 있다.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이 1995년에 내놓은 저서 ‘승자독식 사회(The Winner-Take-All Society)’는 이 학파의 생각을 잘 대변하고 있다. 두 저자는 광범위하고 빠른 의사소통, 손쉬운 복제 등으로 인해 인기 있는 제품의 수익성은 한층 높아지고 고객의 성향 및 구매 습관이 한층 유사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 저자는 블록버스터 전략이 유효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우선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은 우수한 제품을 대체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가장 품질이 우수한 카르멘 음반을 구할 수가 있는데도 녹음 상태가 두 번째로 좋은 음반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뿐만 아니라 경쟁 제품에 비해 약간만이라도 우위가 있으면 엄청난 시장 점유율이라는 보상을 얻을 수 있다. 둘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영화를 보는 데에서 가치를 찾는다. 셋째, 상품을 디지털화할 수 있을 때와 같이 제품을 복제하고 유통하는 한계 비용이 낮을 때에는 많이 팔리는 상품의 비용 우위가 엄청나다. 프랭크와 쿡은 경제학자 셔윈 로젠이 발표한 ‘스타 효과’(각 분야에서 몇 안 되는 제품의 매출과 나머지 무리의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는 이론)를 좀 더 발전시켰다. 이 학파는 히트 상품은 계속해서 탄생해 다른 제품들의 매출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긴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설득력 있게 블록버스터 전략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앞세운 이론이 각광받고 있다. ‘롱테일’ 이론은 온라인 잡지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이 기고한 기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했다. 이후 앤더슨은 2006년 ‘롱테일 경제학(The Long Tail: Why the Future of Business is Selling Less of More)’이란 저서를 발표해 롱테일의 개념을 더 발전시켰다. 이 책의 부제는 롱테일 이론이 내포하는 있는 전략적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앤더슨은 이제 소비자들도 개인의 취향에 좀 더 잘 어울리는 제품을 찾고 구입할 수 있게 된 만큼 획일화된 히트 상품을 멀리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 또 앤더슨은 현명한 기업이라면 더 이상 블록버스터 상품을 개발하는 데 올인하지 않고 롱테일(기존 유통 방식 아래에서는 회사 이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틈새 상품)을 통해 얻는 이윤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간단하게 살펴보는 롱테일 이론’ 참조)
간단하게 살펴보는 롱테일 이론
크리스 앤더슨은 저서 ‘롱테일 경제학(The Long Tail: Why the Future of Business Is Selling Less of More)에서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상관성이 있는 두 가지 주장을 했다. 첫 번째는 상품을 매장 선반에 진열할 필요가 없어졌고, 선택에 따르는 물리적·비용적 제약이 사라졌기 때문에 상품의 가짓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검색 및 추천 도구들은 소비자들이 지나치게 방대한 선택의 폭에 압도당하는 걸 막아준다.
오른쪽 도표는 가상의 제품 분야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매출 기준으로 나열해 놓은 것이다. 회색으로 칠한 부분은 전통적 형태의 매장에서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제품을 나타낸다. 즉 긴 꼬리는 이전에는 활용하지 못하던 수요를 나타낸다.
음악·비디오·정보 등 디지털화할 수 있는 제품의 경우 유통 비용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에 꼬리가 아주 길어질 수 있다. 애플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콘텐츠 매장 아이튠스(iTunes)는 수백 만 개의 앨범과 노래를 보유하고 있으며, 아마존은 25만 개의 앨범을 판매한다. 반면에 아무리 규모가 크다 하더라도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 최대 1만5000여 개의 앨범을 진열할 수 있을 뿐이다.
긴 꼬리 부분에는 진정한 틈새 상품, 과거의 히트 상품 등이 들어있다. 틈새 상품은 대부분 전통적인 유통 경로를 통해 유통된 적이 없거나, 음악에서의 싱글 앨범과 같이 따로 떨어져 있는 제품들로 구성된다.
앤더슨의 두 번째 주장은 바로 소비자들은 대중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보다 소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틈새 상품을 더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온라인 유통 방식으로 인해 수요곡선 모양이 실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소매 방식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더 많은 틈새 상품을 발견할 수 있게 된 만큼 소비자의 구매 행동도 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묻혀 있는 상품들을 판매할 수 있게 돼 꼬리가 계속해서 길어지는 동시에 소비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발견하게 되면서 꼬리가 더욱 통통해 질 거라는 전망이다.
앤더슨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품들로 인해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히트 상품들이 차지하고 있던 엄청난 비중이 줄어들 것으로 믿었다. 앤더슨은 “시장이 셀 수 없이 많은 틈새시장으로 세분화되면서 까다로운 고객들이 히트 상품만을 좇는 대신 다양한 제품을 구매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각 틈새 상품의 매출을 모두 모으면 그 금액이 매우 커질 수도 있다. 사실 앤더슨은 전통적인 소매 및 유통 방식을 통해 개별적으로 잘 팔리지 않던 제품이 형성하는 수많은 조그만 시장들을 모두 모으면, 경제적으로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는 제품으로 구성된 기존 시장의 크기를 능가할 것이라는 대담한 예측을 내놓았다. 즉 앤더슨은 시간이 지날수록 곡선 아래에 색이 칠해진 부분의 면적이 히트 상품이 차지하는 하얀 부분의 면적을 능가할 것이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