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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중고나라’의 성장 전략

“소통과 교환의 재미가 여기에” 뚜벅뚜벅 무섭게 큰 ‘중고나라’

여준상,김현진 | 222호 (2017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국내 최대의 온라인 커뮤니티이자 대한민국 대표 중고거래 장터인 중고나라는 이제 온라인 카페가 아닌 테헤란밸리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중고나라의 성장 비결은 다음과 같다.

(1) 시대적 키워드를 읽어내는 안목: 과잉생산 시대가 도래하면서 물건에 대한 이별관리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제품 이별관리’ ‘정리 컨시어지’라는 시대적 욕구 변화를 잘 포착했다.
(2) 사회적 연결감을 만들어주는 채널: ‘사회적 연결’이라는 플랫폼이 비즈니스의 핵심이 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중고나라에 가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줬다.
(3) 물건 경험보다는 사람, 스토리 경험에 초점: 사용자의 손때 묻은 스토리가 물건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교환된다. 물건에 담긴 의미, 가치를 누군가와 교환한다는 ‘재미난 경험’을 실현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우경(조지아주립대 석사과정 진학 예정) 씨가 참여했습니다.




‘도카에는 휴일이 없습니다. 24시간 문의 전화 주세요. 010-X○△○-X○X○.’

26세의 쇼핑몰 사장은 패기가 넘쳤다. 남들과 차별화하려면 뭔가 다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과감히 사이트에 올렸다.

그러고 나니 시간을 가리지 않고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새벽 2시, 밤 11시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전화가 걸려왔다.

24시간 응대를 하다 보니 슬슬 체력에 한계가 왔다. 결국 ‘24시간 응대 서비스’는 1년여 만에 종료했지만 그 사이 사장은 온라인을 통해 접하기에 ‘얼굴 없는’ 고객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들에게 어떤 소소한 문의 및 불만사항이 있는지, 또 성별, 나잇대별로 어떤 시간대에 주로 활동을 하는지 등 지금은 빅데이터를 통해서야 면밀히 알 수 있는 정보들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고객들 역시 처음에는 ‘듣보잡’이었던 신생 쇼핑몰 업체에 큰 신뢰를 갖게 됐다. 그래서 1년 만에 ‘도카에도 휴일은 있습니다’라고 공지를 갈아 끼우는 촌극을 빚었는데도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등 응원의 댓글이 잇따랐다.

패기 있게 ‘24시간 응대 서비스’를 시도한 젊은 사장은 축구 쇼핑몰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2003년 12월,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를 설립한 이승우 대표(40)다. 그는 2014년 엔젤투자자와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80억 원대의 투자를 받아 국내 최고의 회원 수를 자랑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이자 중고거래 장터, ‘중고나라’의 운영법인인 ‘큐딜리온’을 설립했다. 현재 중고나라의 회원 수는 네이버 카페와 모바일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합쳐 2100만 명 수준이다. 두 채널에 대한 중복 인원이 있긴 하지만 수치상으로는 남한 전체 인구 10명 중 4명이 중고나라를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네이버에 ‘입주’한 인터넷 카페로 시작해 쿠팡, 인터파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테헤란 밸리의 대표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큐딜리온이 설립되기까지의 과정과 앞으로의 비전 등을 이 대표와 핵심 임원들로부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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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과의 소통을 배우다

중고나라라는 카페를 만들기 전, 이 대표에게 온라인 유통이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사업이 ‘도카닷컴’이다. 광운대 법학과 출신인 이 대표는 학과 분위기에 휩쓸려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좀 더 개인적 적성에 맞는 사업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됐다. 그리고 2003년, 중국 배낭여행을 떠났다 운명처럼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나게 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스포츠 전문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국내에서도 ‘엄브로’라는 영국 브랜드가 인기를 얻기 시작할 당시, 상하이 백화점에서 판매되던 엄브로 제품의 가격이 국내 판매 가격 대비 크게는 8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즉 한국에서 8만 원에 판매되는 엄브로 티셔츠의 가격이 중국에서는 1만 원에 불과했다. 이 사장은 급히 종잣돈 300만 원을 구해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국내에는 이 무렵 월드컵 열기를 계기로 마침 막 온라인 축구 쇼핑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국의 유명 백화점에서 사온 제품이라 정품이 확실했고, 나름 유력 백화점의 MD(상품기획자)를 거쳐 선별된 제품이라 디자인도 좋았다. 이 대표는 이 사이트를 운영하던 중 새로운 노하우도 터득하게 됐다. 그저 물건을 판매하는 ‘커머스’ 기능만 넣어서는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사이트에 머물게 하려면 재미있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코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즉 커머스를 기반으로 만든 일종의 플랫폼이지만 재미를 줄 수 있는 콘텐츠가 있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커뮤니티로 성장해야 사람들을 쉽게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를 위해 전국의 대학생 축구 동아리 사진을 찍어 올리고 경기를 매칭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당시 조기 축구 붐이 일면서 사회인 축구도 활발해질 무렵이라 연예인 축구단 같은 인기 동호회도 접촉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커뮤니티적’인 사이트의 경험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사이트 내 커뮤니티는 기대만큼 활성화되진 못했지만 이러한 노력 덕에 창업 1년 만에 회원 수 및 일평균 방문자 수 기준, 축구 관련 쇼핑몰 1위에 등극하게 됐다. 이후 약 3년간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며 관련 분야에서 메이저 쇼핑몰로 떠오른 가장 큰 비결은 고객만족 서비스였다. 게시판에 오르는 질문에는 평균 20분 안에 답변을 했다. 당시 운영자는 이 대표와 친구 한 명뿐이었던데다 대학 수업도 병행하던 때라 잠을 아껴야 했지만 수만 명씩 회원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회원들에 대해 밀착 응대를 한 덕분에 친한 형, 동생들과 대화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당시에는 네이버에 유료 키워드 광고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이라 트래픽이 높은 사이트가 무조건 최상단에 노출됐는데 유명 스포츠 브랜드로 검색하면 도카닷컴이 가장 먼저 뜰 정도였다.

월 매출 1억5000만 원에 마진율이 25%대였으니 대학생 두 명이 하는 사업치고는 무척 쏠쏠했다. 유명 포털 사이트로부터 스포츠 코너를 도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약 6년간 사업을 운영했으나 결국 폐업의 운명을 맞게 된 가장 큰 요인은 포털 사이트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네이버가 수익 사업의 일환으로 키워드 광고라는 모델을 도입하고, 광고비를 지급하는 업체를 우선적으로 검색 창 상단에 노출시켜 주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축구 관련 1위 사이트였던 도카닷컴으로선 굳이 광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이 대표의 표현대로라면 ‘가랑비에 옷 젖듯’ 차츰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결국 2008년 폐업을 맞게 됐다. 또 하나의 실패 요인은 자체 브랜드를 만든답시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것이었다. 그저 유명 브랜드를 수입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졌고, 이를 위해 직원 수도 늘렸지만 경험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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