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직장 vs. 한국직장

미국 기업엔 점심시간이 없다?

220호 (2017년 3월 Issue 1)

편집자주
미국 주요 테크기업 A사에서 근무하는 김지웅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가 10회에 걸쳐 한국과 미국의 직장생활을 비교하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필자는 “A사 외의 미국 기업은 다녀보지 못했고 근무기간이 1년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 표피적인 단상일 수 있다. 그러나 이 환경에 더 익숙해지기 전, 지금이 오히려 이런 글을 쓰기에 적기라고 생각한다”라고 합니다.



미국 주요 테크기업 A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생소했던 건 팀원들이 자기 책상에서 점심을 먹으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일하던 모습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야 비로소 점심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단체로 철저하게 점심시간을 지키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는 A사의 점심시간 풍경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나둘씩 키친1 에서 각자 준비한 음식을 먹는 모습도 보이지만 대부분 자기 책상 위에서 홀로 끼니를 때운다. 회의시간에도 스스럼 없이 점심을 꺼내 놓고 먹기도 한다. 참으로 생경했다.

여기선 점심을 꼭 제때 먹는 것도 아니다. 오후 2시, 3시에 겨우 짬을 내서 먹는 경우도 다반사고 심지어 퇴근 때까지 점심식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높은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빡빡하게 채워진 일정 때문에 직급이 높을수록 끼니를 못 챙기는 경우가 더 많다. 한 번은 낮 12시에 잡힌 회의에 들어갔더니 우리 팀 고위임원 한 분이 도시락을 꺼내며 ‘오늘 내 점심은 아이들 도시락과 똑같은 피넛버터 샌드위치와 당근’이라며 투덜거렸다.

‘밥은 먹고 일해야지’라는 한국식 마인드로 보니 ‘너무 심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팀워크도 다지면 좋지 않나, 여기는 왜 이렇게 무미건조한가’라는 생각도 했다. 물론 미국의 모든 기업이 A사 같지는 않다고 한다. 미국 중부에 있는 다른 기업에서 이직해온 미국 토박이 역시 A사에서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희생에 대한 보상이 나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점심을 가볍게 때우면 출근부터 퇴근 때까지 업무강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시간 낭비가 줄어든다. 한국에서는 오전 11시30분이 되면 ‘오늘은 뭘 먹지?’라는 고민이 시작된다. 줄 서기를 피하려고 11시45분에는 로비에서 사람들과 만나 식당으로 향한다. 식사 후 커피숍 방문은 필수다. 후식까지 곁들이고 자리에 앉으면 최소 오후 1시다. 점심시간 앞뒤로 집중력이 흐트러져 다시 일에 몰두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하루에 회사에서 쓰는 시간 중 20∼30%는 점심에 소모된다고 볼 수 있다.

A사같이 단체 점심문화가 없는 회사에서는 점심을 먹기 위해 사용되는 근무시간의 낭비가 거의 없다. 물론 여기서도 카페테리아에 개인 점심을 사러 가고, 줄을 서고, 돌아오는 데에 길게는 30분이 소요되기도 하지만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도 많다. 또 요즘은 스마트폰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사무실로 점심을 배달해주는 곳도 많다. 카페테리아에 다녀올 30분을 투자하기 아까운 사람들은 5분 만에 점심을 조달할 수 있다. 이렇게 절약된 시간은 오로지 더 많은 일을 하는 데 쓰인다.

178_1


점심을 희생해가면서까지 회사생활을 하는 건 너무나 불행하지 않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답은 퇴근시간에 있다. A사는 워낙 일의 양이 많아 조금이라도 일과가 늘어지면 제때 퇴근하기 힘든 회사다. 자리도 뜨지 않고 책상 위에서 점심을 때우는 이유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고, 궁극적으로는 빨리 퇴근하기 위해서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점심이 있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회사가 업무시간 8∼9시간 중 2시간 가까이를 점심 먹는 데 사용하고, 남은 6시간 동안 모든 일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해보자. 바꿔 말하면 그 기업은 현재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타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런 회사가 인력의 효율을 극대화하려면 점심시간에 소비된 그 이상의 시간을 야근에 쓰도록 직원들에게 강요할 수밖에 없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나는 매일 오전 8시30분 정도에 사무실에 도착하고 오후 5시에 통근버스로 칼퇴근한다. (밤에 한두 시간 재택근무를 하기도 한다.) 점심을 못 먹는 날도 많다. 올해 1월 첫 주는 유난히 바빠 단 하루도 점심을 먹지 못했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던 시절, 직장동료들과 근사한 점심과 후식까지 챙겨먹던 시간들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모두 다 가질 순 없다. 점심을 제때 챙겨먹지 못하더라도 매일 무럭무럭 자라나는 두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끼리의 단출한 저녁식사 시간을 매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려고 한다.



김지웅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jeewoong.kim.00@gmail.com

필자는 미국 주요 테크기업 A사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쳤고 한국 MBC에서 전략, 광고, 콘텐츠 유통, 신사업을 담당한 바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0호 오프라인 매장의 반격 2020년 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