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이 꼭대기층으로 간 이유는?

220호 (2017년 3월 Issue 1)

‘그것만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자고 나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제각기 분수에 맞는 격을 갖춰야 한다고 외치던 중에 이 나라 땅에서도, 북녘 동토에서도,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서도 격을 내동댕이치는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고 있다.

도대체 격이란 무엇이며 왜 갖추기가 어려운 것일까? 사람이나 행위, 태도, 건물 등 격의 대상이 무엇이든 격이 있다고 말하는 판단 기준이 있는데 그 첫 번째 판단 기준은 ‘숙성시간’이다. 즉 격이라는 것은 아무리 서두르거나 들볶는다고 해도 절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 무엇에 대한 의도나 혼이 있는 익숙함이 누적돼야만 비로소 격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 판단 기준은 ‘애티튜드(태도)’다. 진정한 장인은 돈을 벌기 위해 스시를 만들지 않는다. 카운터에 앉은 고객에게 최고의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만 정성을 다한다는 현존 최고령 미슐랭 3스타 스시 장인의 신조에서 보듯 애티튜드는 격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세 번째 판단 기준은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극히 절제된 행위’다. 모자란 듯, 부족한 듯, 과분하지 않은 격은 있어도 넘치는 격은 없다. 내동댕이쳐진 격은 분수를 넘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과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병원을 중심으로 ‘격의 사례’에 대해 생각해보자. 호텔이나 병원이 ‘공간의 격’으로 경쟁사와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주로 FF&E(Furniture, Fixture & Equipment)로 공간을 채우려고 하는데 실은 빛(光)과 공기(氣)와 소리(音)가 공간의 격을 좌우하며, 그 위에 따뜻한 서비스를 더하면 공간의 격이 비로소 완성된다. 의료진은 하루 종일 천장을 쳐다볼 일이 없지만 환자는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는 데서 착안해 자연채광과 천장 디자인을 고집하는 병원, 수많은 보호자가 출입하고 음식을 취급하지만 잡냄새 없고 완벽하게 정화된 공기를 24시간 공급하는 병원, 있는 듯 없는 듯 인지하지 못하지만 24시간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도록 800여 대의 고음질 스피커에 투자한 병원, 수술실의 불안감을 한번에 날려버린 ‘기도하는 의사 프로젝트’라는 서비스를 더해 공간의 격을 완성한 병원이 있다.

이처럼 격은 오랜 기간 동안 남이 알아주든 않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만의 애티튜드로 절제된 행위를 지속함으로써 생겨난다. 환자식은 저염식이기 때문에 맛이 없다는 고정관념 대신에 ‘환자는 원래 입맛이 없기에 정상인의 음식보다 더 맛있게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병원, 천국이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장례식장을 병원 꼭대기층에 마련했다는 병원이라면 더 이상 격을 논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질의 시대를 넘어 격의 시대가 온다고 했을 때 병원은 아직 멀었다고 했다. 그런데 보라. 격의 시대가 호텔을 가로질러 이미 병원에 당도해 있지 않은가?

이제 제품만 잘 만들면 팔리던 ‘양의 시대’, 기술이 담긴 상품이 돼야 팔리던 ‘질의 시대’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을 담은 ‘명품’만이 팔리는 ‘격의 시대’로 전환되는 변곡점에 와있다. 즉, ‘격’은 21세기 창조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강조되고 있는 ‘문화자본(Culture Capital)’을 의미한다. 문화자본은 단기간에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오랜 기간 일상생활에서의 경험들이 축적돼 형성되기 때문에 모방이 불가능해서 궁극적인 차별적 경쟁우위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더 나은 고객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제공해오던 것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차별적 경쟁우위를 확보하자는 뜻이다. 필자가 ‘격의 경영’이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다.



김진영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 kimjin@yuhs.ac

필자는 1989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삼성중공업 기획실, 삼성 회장비서실 인력개발원, 삼성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 삼성전자, 호텔신라 등에서 인사교육전략수립과 현장 적용을 총괄한 HR 전문가다. 호텔신라 서비스 드림팀을 창단해 호텔 품격 서비스의 원형을 보여줬고, 차병원그룹 차움의 최고운영총괄을 맡아 의료서비스 분야에도 품격 서비스를 도입했다. 현재는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려대를 졸업했고 연세대에서 경영학 석사, 경희대에서 국제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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