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2011년 정부의 발표로 그 피해가 공식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10 단계를 걸쳐 위기가 커졌지만 옥시는 제대로 된 위기 대처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회피하고 부정했다. 결국 2016년 모든 것이 터지며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됐다. 위기를 맞은 기업에 옥시 사건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위험을 피하려는 것 자체가 위험이다. 희망하는 상태가 아닌 현실 그대로를 직시해야 한다. 체크리스트를 통해 상황을 빨리, 객관적으로 파악하라.
2.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는 흔히 ‘최고 로펌’을 선호하지만 변호인의 이름과 소속이 실명 보도되는 시대에는 특정
로펌을 쓴다는 것 자체가 평판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3. 사회와 기업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있다. 기업의 대외협력, 커뮤니케이션 업무도 과거와 같은 암묵적 거래가 아닌
사회적 공론의 과정을 통해 관계를 강화하는 ‘기업외교’로 봐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생활용품 화학물질에 의한 최악의 재난이자 대형 참사다.
5년여 동안 수사를 미뤄온 검찰의 수사가 2016년 봄 갑자기 시작됐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발행한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사건 백서>의 총괄편집인을 맡았던 안종주 전 한겨레신문 보건복지 전문기자는 ‘최악의 환경 비극, 가습기 살균제 재앙의 진실’을 다룬 <빼앗긴 숨>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2016년이 되자 모든 것이 일순간에 바뀌었다. 검찰이 어찌된 연유인지 느닷없이 가해 기업, 특히 옥시레킷밴키저(이하 옥시)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면서 이 문제에 천착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언론사가 가장 먼저 달라졌다. 덩달아 환경단체, 시민단체, 소비자단체들도 불매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갑자기 대한민국에서 마술쇼가 벌어지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배신감이 느껴졌다.”
2016년 11월29일 검찰은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팔아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킨 혐의로 기소된 신현우 전 옥시 대표에게 사건의 책임을 물어 징역 20년을, 존 리 전 옥시 대표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옥시가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73명이 사망하는 등 피해자 181명이 발생했다. 검찰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소비자의 안전을 희생시킨 신 씨 등의 책임이 무척 무겁다”며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정부가 2011년 8월31일 원인 미상 간질성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최초의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사건의 시작을 알린 이후 5년 만의 법적 판단이고 1994년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출시된 이후 22년 만의 일이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은 2017년 1월6일 이들에 대한 선고를 앞두고 있다.
민관 합동 폐손상조사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적이 있는 잠재적 피해자를 총 227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은 모든 국민이 피해대상자였고, 모든 국민이 실제 피해자인 사건이다. 피해자와 함께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처음부터 주도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올해 10월31일까지 집계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5060명이고 이 중 사망자는 1058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의 문제제기와 전개, 해결과정은 특이하고 글로벌 기업 레킷벤키저와 한국지사의 대응 또한 특수하다. 이 글에서는 글로벌 기업과 한국 지사가 위기를 맞아 어떻게 여론과 평판에 대응했는가를 중심으로 상황을 분석해보려고 한다. 우선 시간에 따른 사건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배워야 할 몇 가지 교훈들을 정리해보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전개 과정# 1. “과도한 원가절감 추진으로 안전을 소홀히 함” (2001∼2011)소비자의 안전보다 이윤 극대화를 우선시한 경영 윤리의 부재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초래했다.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은 1994년 ‘가습기 메이트’라는 이름으로 가습기 살충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바 있다. 옥시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한 직원은 지난 4월21일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원래 2001년 이전부터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를 팔았다. 그때는 독성 물질이 아니었다. 그런데 회사는 늘 원가절감을 하려고 한다. 관리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생산원가를 낮출 계획을 짠다. 2001년 포뮬러(원료)를 바꿨다고 하더라. SK케미칼에서 싸게 공급을 받은 것 같다.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냈을 것이다. 더 싸게 만들 수 있다고. 그 과정에서 제대로 검증을 했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안 한 것이다. 원가절감을 과도하게 추진하면서 안전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다.” 그는 또 “독성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의 300여 개 생산물품 중 하나다. 게다가 가습기 살균제는 우리 공장에서 생산하는 품목이 아니고 한빛화학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품목이다. 매출액도 10억∼2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매출의 1%가 안 되는 품목이었다. 안전성에 크게 신경을 안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PHMG가 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느냐’는 물음에 “아마도 연구소 직원들은 알았을 것이다. 검찰에서도 그런 식으로 진술했다고 들었다. 위험성을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심각하게 생각을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신현우 전 대표 측 변호인은 “신 씨는 대표이사로 재직할 당시 가습기 원료 물질이 (독성 물질로) 변경됐는지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