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투어의 성공비결
Article at a Glance
1978년 단 4명의 프로골퍼와 함께 KPGA ‘여성부 투어’로 시작된 한국 여자 골프 투어는 1988년 KLPGA투어로 독립한 뒤 30년도 채 되지 않아 세계 3대 투어로 성장했다. 놀라운 성공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비용도 많이 들고 골프장도 멀리 있는 한국의 골프 환경이 오히려 ‘완벽한 스윙’을 익힐 때까지 연습하게 만들고 필드에서 신중하게 1타 1타를 치게 만들었다.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완성형 선수를 만들어냈다.
둘째, 협회는 3부-2부-KLPGA투어로 이어지는 3단계 투어 성적에 따라 상위 투어 시드를 받는 ‘승강’ 시스템을 만들어 공정하고 치열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했다.
셋째, ‘팬클럽’까지 만들어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한국 특유의 골프팬 문화와 이를 활용하면서 선수들의 소속감을 강화시키는 ‘소속팀’제가 운영되면서 KLPGA투어의 ‘충성 고객’이 확보됐다.
2010년대 한국의 글로벌 히트 상품이 뭐냐고 물으면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 K-Pop과 드라마 등을 꼽는다. 하지만 골프에 대해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 투어’라고 말할 것이다.
2016년 한 해에만 KLPGA투어는 무려 33개의 대회가 열렸고 총 상금이 212억 원에 달했다. 대회 평균 상금은 6억4000만 원. 게다가 대회가 열리는 장소도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베트남 등으로 확대되며 글로벌 투어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여기에 진정한 ‘글로벌 투어’로 성장하기 위해 외국인 선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세계 골프계를 주름잡는 선수들과 다양한 기업들의 투자, 그리고 ‘K골프’라는 브랜드를 지속가능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만들려는 KLPGA투어의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 2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미국(LPGA)과 일본(JLPGA)투어에 이어 세계 3대 투어로 우뚝 섰다. (그림 1) 이 글에서는 지난 1988년 KPGA 여자프로부에서 떨어져 나와 정식으로 창립한 KLPGA투어가 불과 28년 만에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 과정을 살펴보고 기업인들에게 줄 수 있는 시사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그림 2)
30년 만에 이룬 세계 3대투어의 신화
1) 초라했던 시작
KLPGA투어는 전 세계 스포츠 시장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최고 골퍼들이 모여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집 한 편의 차고를 사무실로 사용한 스타트업 기업처럼 KLPGA투어의 시작은 초라했다.
KLPGA투어의 뿌리는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까지 한국에 ‘여자 프로골퍼’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운명의 1978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서 여자 프로골퍼를 육성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골프장마다 여자 프로 지망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족한 저변과 골프에 대한 인식 부족 탓에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1978년 5월 경기도 양주 로얄골프장(현재 레이크우드 골프장)에서 열린 1회 여자프로골프 프로테스트에는 단 8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강춘자 현 KLPGA 수석 부회장과 고인이 된 한명현, 구옥희, 안종현 등 4명이 역사적인 첫 관문을 통과해 ‘프로’ 타이틀을 따는 데 성공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의 효시가 되는 ‘4인방’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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