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itary vs. Business Strategy
Article at a Glance
상황에 맞는 리더 기용의 중요성
전쟁사례: 북아프리카의 영웅에서 유럽의 패장으로 전락한 버나드 몽고메리 1942년 롬멜 휘하의 독일 전차군단을 엘 알라메인에서 격파, 전국(戰局)에 승기를 마련. 그러나 노르망디 상륙작전 영국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했을 때 주도한 ‘마켓 가든 작전’은 대 실패로 마감. 전형적인 전황의 전개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드러냈지만 전황의 변화에 따라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공격 상황에 취약함을 드러냄
경영사례: 1980년대 초(턴어라운드)와 1980년대 말(성장 추구) 아이아코카의 부침 1978년 포드에서 크라이슬러의 구원투수로 영입. 기존 계획을 뚝심 있게 처리해 위기에 빠진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키는 데 성공. 강력한 추진력과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결과. 하지만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올라 성장 전략을 취해야 할 때도 뚝심만 고집하다 결국 독선으로 변질되며 조직에 위기 초래
편집자주
전략은 원래 전쟁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전략의 이론은 중국의 <손자병법>부터 시작해서 19세기 독일의 클라우제비츠에 이어 20세기 영국의 리델 하트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쳐 정립되고, 또 실전에서 적용돼 왔습니다. 그만큼 경영 전략은 실제 전쟁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점이 많습니다. <전쟁에서 경영전략을 배우다>의 저자인 김경원 박사가 전쟁 사례로부터 얻은 전략적 교훈이 어떻게 실제 경영사례에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소개합니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전쟁 사례를 통해 의미 있는 경영 전략의 지혜를 얻어가시기 바랍니다.
<손자병법>의 ‘구변(九變)’ 편에는 ‘필사(必死·만용스러운 장수)’ ‘분속(忿速·화를 잘 내고 성급한 장수)’ 등 성향에 따른 장수의 5가지 유형을 언급하고 있다. <손자병법>의 분류가 아니더라도 실제 전쟁에서 상황에 따라 가장 맞는 유형의 장수를 기용해야 승리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강한 공격이 필요할 때에는 과감한 것은 물론 전황변화를 잘 읽어 임기응변에 능한 ‘공격형’ 장수를, 철저한 방어가 필요할 때에는 신중하고 뚝심 있는 ‘수비형’ 장수를 쓰는 게 바람직하다. 기업의 전략 수립 단계에서도 수립된 전략을 누가 실행할지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장 전략을 ‘수비형’ 리더에게 맡기면 그의 ‘뚝심’이 ‘고집’으로 바뀌면서 전략이 엉뚱한 방향으로 실행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위기에 빠진 기업의 회생을 위한 턴어라운드(turnaround) 전략을 ‘공격형’ 리더에게 맡기면 정해진 계획을 따르지 않고 단번에 큰 성과가 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등의 과욕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다음의 사례는 전쟁이나 기업 현장에서 상황에 맞지 않는 리더 기용으로 조직 전체가 큰 피해를 본 사례들이다.
전쟁 사례: 북아프리카의 영웅에서 유럽의 패장으로 전락한 몽고메리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을 대표할 만한 명장은 버나드 몽고메리다. 그는 개전 초 벨기에에 주둔하는 영국군 제3사단의 지휘를 맡고 있었는데 연합군이 케르크(Dunkergue·프랑스 북부의 항구 도시)까지 몰리는 위기 상황에서도 전투력을 거의 완벽하게 보존한 상태로 영국까지 철수시켰다. 하지만 그는 성격이 곧고 직언도 잘해 상관들과 사이가 안 좋았고, 그 결과 본국에서는 후방 부대 지휘 등 한직을 전전했다. 그러던 중 그에게 다시 실전에서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왔다. 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은 롬멜 휘하의 독일 아프리카 전차군단에 연전연패한 끝에 1942년 카이로에서 20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엘 알라메인(El Alamein·이집트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까지 밀려났다. 처칠 수상은 그해 8월 아프리카 전선을 시찰한 후 오킨렉 사령관을 몽고메리로 교체했다.
몽고메리는 사령관으로 부임하자마자 무엇보다도 먼저 장교와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그는 저격의 위협을 무릅쓰고 최전선에 자주 나타나 병사들을 격려했고 직접 담배를 나눠주기도 했다. 또한 향후 반격에 대비해 무기, 탄약 등을 본국에서 꾸준히 조달해 전력을 비축하는 것은 물론 정교한 수비 플랜을 세워 적이 공격할 때마다 강한 수비로 적의 힘을 쏙 빼놓는 전술을 구사했다. 여기에다 야전 화장실 관리 등 위생에도 힘썼다. 식수의 질이 나쁜 북아프리카에서 수인성 전염병이 병사들의 전투력을 심하게 갉아먹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해 10월 말 보급품과 탄약, 무기 등은 물론 병사들의 건강상태 및 사기 면에서 철저한 준비를 마쳤다고 판단한 몽고메리는 공세로 돌아섰다. 이즈음 지중해를 통해 오는 독일의 수송선단은 제해권을 장악한 영국해군에게 속속 격침됐다. 독일 아프리카 전차군단의 보급 상황은 갈수록 나빠져 탄약, 식량은 물론 연료도 떨어져가고 있었다. 게다가 신선한 식수를 구하지 못한 병사들은 상당수가 수인성 질병에 걸려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영국군이 대공세에 나서자 이 군단은 큰 타격을 입고 패주하기 시작했다. 신병 치료 차 베를린에 가 있던 롬멜이 급거 전선으로 복귀했지만 상황을 되돌릴 수 없었다. 이후에도 패배를 거듭하다가 이듬해 3월 튀니지에서 항복했다.
이 전공으로 몽고메리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영국군의 총지휘를 맡았다. 하지만 연합군의 총사령관 지위는 미군의 아이젠하워에게 맡겨졌다.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 10개 사단 중 5개 사단이 미군일 정도로 연합군 내에서 미국의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단숨에 파리까지 점령했던 연합군의 공격 속도가 벨기에에 다다르자 현저히 지체되기 시작했다. 연합군이 진격해 나감에 따라 보급선이 길어지면서 일선 부대 보급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교착 상태를 뚫고자 그해 9월 몽고메리는 아이젠하워를 설득해 독일 본토로 곧바로 진격할 수 있는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이른바 ‘마켓 가든 작전(Operation Market Garde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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