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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KC 생산공정 특허권 침해소송 합의 딜 케이스

승소 불확실? 경제성 분석 후 협상안 만들어라

박헌준 | 13호 (2008년 7월 Issue 2)
Case
자체개발 기술, 알고보니 남의 특허
개발社 등 “무단사용 피해 보상” 소송 내
 
갑작스러운 특허 소송
화학업체인 CKC(C.K. Coolidge)는 어느 날 갑자기 소송에 휘말렸다. 경쟁사인 BARD(Barton Research & Development)와 톨마이트(Tolemite)가 바라실(Varacil)이란 화학제품의 생산 공정에 관한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CK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생산 공정 특허권은 1984년 톨마이트가 개발한 것으로, BARD는 특허권을 라이선싱했을 뿐 아니라 재라이선싱 권한까지 갖고 있었다.
 
1993년 당시 아눅스 인더스트리의 자회사인 CKC는 매출액 1050만 달러의 작은 화학 회사였다. 생산 공정 특허 소송이 걸린 바라실이란 화학제품은 매출의 10% 가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밀화학 업체 톨마이트는 1993년 연 매출이 3억 달러에 달했다. 톨마이트는 1984년에 바라실 합성 생산 공정과 관련한 특허를 획득했지만 BARD에 라이선스를 제공했다. BARD는 1984년부터 바라실 생산에만 전념해 오고 있었다. BARD는 특허 사용 대가로 바라실 매출액의 4%를 톨마이트에 로열티로 지불했다. 재라이선싱의 경우 4% 로열티는 톨마이트에 주고, 4% 초과분은 자체 수입으로 가져갔다. 톨마이트가 특허를 획득한지 5년이 지난 1989년 CKC의 한 연구원이 독립적으로 톨마이트와 유사한 바라실 합성 프로세스를 발견했다. 하지만 CKC 연구원들은 이 새로운 처리 기술이 특허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아무런 특허 검색 없이 새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7개 업체가 바라실 시장에서 경쟁
제약회사에만 필요한 화학물질인 바라실은 다양한 약품 조제에 극히 일부 성분으로만 쓰이고 있었다. 바라실 생산에는 고정비가 많이 들고 대신 변동비는 작아서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다. 따라서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대량생산과 장기간 생산이 전제돼야 했기 때문에 대형 제약업체들은 이 제품 생산에 관여하지 않고 있었다. 1993년 당시 합성 바라실 시장 규모는 약 915만 달러였다. 판매량으로 보면 이 시장은 지난 몇 년간 안정적이었으며 앞으로 510년 동안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바라실 가격은 서서히 떨어지고, 판매액 기준 시장 규모는 점점 축소됐다. 당시 합성 바라실 시장에는 7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었다. BARD가 매출 600만 달러로 전체 시장의 66%, 두 번째로 큰 업체인 CKC가 105만 달러로 11%를 각각 차지했다. 나머지 다섯 개 업체는 모두 합해 23%를 점유했다. 1990년에 이르러 7개 경쟁업체들이 거의 똑같은 프로세스를 통해 바라실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BARD만이 톨마이트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나머지는 사실상 특허를 침해하고 있었다.  

1990년 6월 톨마이트와 BARD는 CKC가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미국 연방 1심 법원에 소송을 냈다. 또 17년짜리 특허의 남은 7년 기간에 권리 침해에 대한 금지 명령 및 피해 보상금으로 CKC의 합성 바라실 매출액의 20%를 요구했다. 소송이 제기되자 CKC의 퍼셀 사장은 아눅스 인더스트리의 법률 고문과 상의하고, 뉴욕 ‘Evans and Blaylock 특허법률사무소’에 변호를 의뢰했다. 전문 변호사들은 CKC가 소송에서 패할 경우 손해 배상액은 로열티 요구액 20%의 절반 정도인 약 10%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90년부터 소송이 진행돼 1993년 1월로 공판 일정이 결정됐을 때 CKC는 합의를 위해 남은 특허 기간의 미래 매출액에 대해 2.5%의 로열티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톨마이트와 BARD는 이 제안을 즉각 거절했다. 결국 소송이 진행돼 최종 공판 날짜가 1993년 10월로 잡혔다. 당신이 CKC 사장이라면 어떤 정보와 논리적 분석이 더 필요할까. 또 어떤 협상 전략을 구사해야 할까.
 
법정 분쟁이냐 합의냐 갈림길
CKC는 기본적으로 법정에서 특허에 대한 다툼을 하든가, 로열티를 지급하든가의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그들이 법정에서 패할 경우 법정 비용은 물론 합성 바라실의 과거 매출과 특허 잔존기간에 발생할 미래 매출에 대한 10% 로열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CKC가 승리할 경우 마냥 좋은 일만 생기는 게 아니다. 로열티를 안 낸다는 축복과 함께 불행도 동시에 발생한다. CKC가 승리할 경우 BARD도 마찬가지로 톨마이트에 로열티(4%)를 지불할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BARD에 대해 CKC가 누려오던 상대적 가격 경쟁력이 소멸된다. 또 1심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패자가 항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었다.
 
CKC가 1심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법정에 가는 게 옳은지, 합의를 선택하는 게 옳은지 결정이 필요하다. 당연히 법정으로 가는 경우의 예상 비용이 합의 시 예상 비용을 상회할 경우 합의 쪽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법정에서 승리할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특허 변호사들은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종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무엇을 좀 더 심사숙고해야 할 것인가.
Analysis
필자는 실제로 한국 경영자 27명이 참여한 프로그램에서 이 사례를 분석하고 각자가 CKC, BA RD, 톨마이트 역할을 맡아 협상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경영자 3명으로 한 팀을 구성해 팀별로 3개 회사 중 하나의 역할을 맡겨 협상을 진행토록 했다. 그 결과 610%의 로열티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과연 합의로 가는 것이 나은가, 소송으로 끌고 가는 것이 나은가. 합의로 간다면 어떤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할까.
 
철저한 경제성 분석 선행돼야
이런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CKC, BARD, 톨마이트 각자 입장에서 철저한 법률 검토와 경제성 분석이 필요하다. 기본적 분석은 미래에 발생할 비용과 법정 승리 확률 대비 법정 전 합의 시 CKC가 지급할 수 있는 비용 범위를 산정하는 것이다. 법정을 통해 발생할 미래 비용과 리스크 대비 법정 전 합의에 따른 비용을 비교 분석하는 데 있어 전체적인 문제를 작은 이벤트(event)로 나눠 각 이벤트가 발생할 확률과 결과에 대해 유추하여 그 결과를 수치로 변환,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이런 분석은 합의 딜을 진행시킬 때 중요한 논리적 설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현재까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CKC 법정 승리 확률을 p라 하고 합의 예상 로열티 비율을 R%라고 했을 때 우선 예상되는 사항들과 예상되는 부담, 특허 변호사 비용과 법정 비용, 비용 산정의 몇 가지 기준에 대해 판단해 보자.
 
우선 CKC가 법정에서 승리할 경우 톨마이트 항소 가능성을 90%라 하고, 항소심에서 CKC 승리 가능성은 75%라 하자. 또 톨마이트가 법정에서 승리할 경우 CKC 항소 가능성은 10%이며, CKC가 항소할 경우 톨마이트 승리 가능성은 75%라 하자. 예상되는 부담은 과거 책임에 대해 톨마이트가 승리할 경우 그들은 CKC의 합성 바라실 매출액 267만 달러의 10%인 26만 7300달러를 받을 권리가 생긴다. 미래 로열티에 대해서는 톨마이트가 승리할 경우 CKC의 합성 바라실 매출의 10% 로열티를 특허 기간에 계속 받게 될 것이다.
 
또 특허 변호사들 비용 및 법정 비용은 1심 공판 비용이 15만 달러, 항소심 비용은 CKC가 1심에서 승리한 경우 7만 5000달러, 톨마이트가 1심에서 승리한 경우 15만 달러가 각각 발생한다. 비용 산정 기준은 첫 번째 CKC는 1993년 현재 생산량 기준으로 바라실을 7년간 생산할 것이다. 두 번째 바라실 가격은 예상대로 점차 낮아질 것이다. 세 번째 CKC는 현재 높은 고정비용과 낮은 변동비용, BARD에 비해 4%의 상대적 가격 경쟁력을 통해 경쟁 우위를 영위하고 있다. 현재가치(NPV, Net Present Value)의 환산을 위한 이자율은 연 10%로 간주한다.
 
분석 결과 R% 로열티의 과거 부담분과 미래 로열티의 현재가치를 합하여 R=10%의 경우 69만 5000달러가 되고, 8%의 경우 55만 6000달러가 된다. CKC의 경쟁우위 상실비용의 현재가치를 계산하면 17만 1000달러가 된다. 이 상황에서 1심 판결과 항소심 판결을 고려해 1심 법정 비용, 항소심 법정 비용, 경쟁우위 상실가치, 로열티 지급, 과거 부담분 모두를 고려해 CKC의 추정총비용을 산정한다.
 
CKC가 1심에 승리하고 톨마이트가 항소했으나 CKC가 다시 승리했을 경우 추정총비용은 39만 6000달러, CKC가 1심에 승리하고 톨마이트가 항소해 CKC가 결국 패배했을 경우 추정총비용은 92만 달러, CKC가 1심에 승리하고 톨마이트가 항소하지 않은 경우 추정총비용은 32만 1000달러다. 또 CKC가 1심에서 패배하고 CKC가 항소해 승리했을 경우 추정총비용은 47만 1000달러, CKC가 1심에 패배하고 CKC가 항소했으나 CKC가 다시 패배하였을 경우 추정총비용은 99만 5000달러다. CKC가 1심에 패배하고 항소하지 않았을 경우 추정총비용은 84만 5000달러가 된다.
 
승소확률 100%라도 로열티 7%로 합의하면 이익
이런 기본적인 분석이 철저하게 이뤄지면 p와 R%에 대한 고려가 가능하게 된다. 분석에 활용한 여러 가정을 전제로 법정 승리 확률이 75%와 100% 사이인 경우 CKC는 법정 전 합의 아래 8.5%의 로열티를 내고 비용 절감을 누릴 수 있으며, 미래 발생할 변호사 비용과 항소 가능성을 고려할 경우 법정 승리 확률이 100%일지라도 CKC는 7%의 로열티를 내는 편이 낫다는 잠정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협상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법정으로 갔을 때 각 단계의 추정총비용을 계산해 보고 어떤 가정 아래에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해 적어도 정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추정총비용으로부터 p와 R% 사이에 손익분기점이 어떻게 계산될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제 CKC의 협상 전략을 구상하기 전에 협상 상대방이 과연 누구인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자. 이 소송과 관련한 협상 당사자들은 과연 누구이며, 그들은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가. 법정에 가지 않고 합의에 이르는 데 실패할 경우 각 이해 당사자에게는 어떤 비용이 발생할 것인가. 가능한 잠재적 합의안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는가. 소송과 합의 간 양자 협상의 틀에서 톨마이트와 BARD를 포함한 3자 협상의 틀로 생각하면 CKC의 협상 전략이 다양해진다.
 
협상 순서에 따라 결과 달라져
여기에서 창조적 딜메이킹을 위한 딜 셋업을 생각하면 CKC의 협상 전략은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 딜의 셋업을 생각한다는 것은 협상 상대방으로 누구를 어떻게 선택하고, 어떤 순서, 어떤 속도로 협상할지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3자가 같이 협의를 진행하는 것이 좋은지, 3자 협상의 틀 안에서 따로 2자 협상이 먼저 일어나는 것이 좋은지 판단해야 한다. CKC 입장에서는 BARD와 먼저 협상해야 할지, 톨마이트를 먼저 접촉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도 아니라면 바라실 시장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기타 5개 사를 먼저 접촉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체 바라실 시장 상황과 경쟁 상황을 고려한 전략도 필요하다. 즉 딜의 범위, 잠재적 딜의 모습, 필요한 승리를 위한 연합, 딜을 방해하는 연합(blocking and tackling deal), 올바른 순서를 포함한(sequencing) 바른 셋업 등을 모두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CKC의 협상전략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시퀀싱(sequencing)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살펴보려면 역할 연기와 협상 시뮬레이션을 통한 체험학습을 하는 것이 좋다. 어떤 셋업에서 어떤 순서로 협상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먼저 여러분 스스로 가능한 시퀀싱의 예를 생각해 보라. 그러고 나서 다음에 몇 가지 가능한 시퀀싱 사례를 통해 딜 셋업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 보자. 첫 번째 BARD와 톨마이트를 함께 만난다. 이때 특허 변호사 없이 만날 수도 있고, 특허 변호사와 함께 만날 수도 있다. 두 번째 BARD와 톨마이트를 함께 만나되 CKC가 분석한 법률적·경제적 검토 내용을 공유한다. 세 번째 바라실 시장의 기타 5개 사를 먼저 만나서 생산공정 특허권 침해소송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이해관계 조정을 통해 공동 대응전선을 펼쳐 나간다. 사전 약속을 얻어낸 뒤 BARD를 먼저 만나면서 톨마이트를 고립시킬 수도 있다. 네 번째 톨마이트를 먼저 만나서 딜을 맺은 뒤 톨마이트와 CKC가 연합으로 BARD와 협상한다. 다섯 번째 병렬 접근으로 동시 진행한다. BARD와 딜을 진행시키면서 로열티를 낮추고 동시에 톨마이트에도 낮은 로열티를 주장한다. 여섯 번째 BARD와 톨마이트를 함께 만나되 기타 5개 사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로열티를 약속하는 비밀 딜을 추진한다. 일곱 번째 상기 모든 접근 방법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합의와 소송을 동시에 진행한다.
 
실제 학생들을 상대로 시퀀싱별로 가상의 협상을 진행시킨 결과 특정 시퀀싱의 경우 매우 낮은 수준에서 협상이 타결된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창조적 딜메이킹은 부단한 수련이 필요하며, 전력을 다해 가치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딜메이킹 후 항상 그 내용을 복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둑을 공부할 때 복기하면서 생각하고 토론하고 학습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듯이 창조적 딜메이킹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복기하면서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만들어 보라. 이보다 더 좋은 학습 경험은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과 동아일보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창조경영 시리즈의 일환으로 <Creative Dealmaking>을 연재합니다. 연세대 박헌준 교수가 창조적 발상법으로 큰 성과를 낸 협상 사례를 예시와 해설 형태로 소개합니다. 이 시리즈가 한국 비즈니스맨들의 협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이 사례는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존 해몬드 교수가 작성한 사례를 참고하여 재구성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 짐 세베니우스 교수의 사례 토의 내용과 연세대 경영대학에서의 강의 경험을 참고로 작성했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MBA 학생들에게 이 사례를 바탕으로 역할 연기를 통한 협상 시뮬레이션을 여러 차례 시도했는데, 이 강의 경험을 통해 비즈니스 딜메이킹에 대한 체험적 학습이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됐다. 미국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모리스 교수도 필자의 이런 교수법에 공감했다. 필자는 깊이 있는 비즈니스 딜 사례 연구와 함께 이 사례를 바탕으로 역할 연기를 통한 협상 시뮬레이션을 같이 진행했을 때 딜메이킹에 관해 가장 효과적인 학습이 일어난다는 확신을 하고 있다. 이번 사례에 등장한 회사는 모두 가명이며, 실제 협상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방문 연구교수도 겸하고 있다.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등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으며, 한국협상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협상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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