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지향적인 항공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를 구분하는 비교적 손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회사의 고위 간부가 비행기 어떤 자리에 타는지 보면 됩니다. 고위 경영자가 공항에서부터 특별한 출입구를 이용해 곧바로 1등석으로 이동하는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면 고객 만족도가 높지 않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일반석 맨 뒷자리에 간부들이 타는 회사도 있습니다. 대다수 고객들이 느끼는 불편 사항을 찾아내는 데 가장 좋은 자리가 일반석 뒷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노력을 하는 기업의 고객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 자동차 판매로 기록적 성과를 올린 한 경영자는 수시로 매장에 나가 고객들의 불만을 듣는 게 주된 일이었습니다. 사무실에 앉아서도 할 일이 무척 많았겠지만 굳이 시간을 내 매장에 나가 고객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혁신 아이디어의 대부분이 이 과정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최근 삼성전자가 냉기를 골고루 퍼뜨리는 시스템 에어컨 신제품을 개발해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신제품 아이디어는 디자인팀원들이 커피숍에서 에어컨의 냉기가 직접 내려가지 못하게 막아놓은 가림막을 관찰한 덕분에 나왔다고 합니다. 왜 굳이 가림막을 설치했느냐고 묻자 커피숍 주인은 에어컨 바람을 직접 맞는 고객들이 추위를 느껴 이렇게 대책을 마련한 것이라고 답했다는군요. 냉기가 나오는 곳은 너무 춥고, 그렇지 않은 곳은 더워서 고통을 겪는 고객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런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한 제품이 나오자 시장은 즉각 반응을 보였습니다.
혁신의 ‘정석(定石)’으로 평가받는 LG전자의 세탁기 트윈워시도 마찬가지로 속옷이나 아이 옷 등 민감한 의류를 다른 세탁물과 분리해서 세탁하고 싶다는 고객의 욕구를 읽었기 때문에 나온 제품입니다. 아이가 있는 상당수 가정에서 이미 분리세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게 혁신 아이디어의 원천이었습니다.
이처럼 최근에 주목받는 제품의 대다수는 고객의 경험에 천착한 결과물입니다. 제품을 만들어서 팔면 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고객들이 제품 검색에서부터 구매 의사결정, 실제 구매, 사용, 유지보수, 폐기 등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전 과정에서 겪는 불편함, 문제점 등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경쟁우위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간단한 검색만으로 다른 사람의 제품 사용 경험을 확인하고 물건을 살 수 있는 시대여서 고객 경험을 중시하는 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훨씬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경험경제 시대가 도래했다는 인식하에 많은 기업들이 고객들의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제한적입니다. 고객의 경험을 고민하는 부서 하나 만들었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전체 조직원들이 고객 경험을 중시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하고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객 경험을 최우선 순위로 고려하는 문화도 구축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출이나 효율성 등을 중시하는 기존 문화가 강할수록 이런 새로운 관점이 설 자리를 찾기 어렵습니다.
DBR은 지난 160호(2012년 6월1호)에 ‘UI/UX Design’을 스페셜 리포트로 다룬 이후 고객 경험을 기업 전략 차원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호에 ‘경험 디자인’이란 이슈를 제기합니다. 아웃도어 마니아가 만든 아웃도어 제품, 만화 오타쿠가 만든 만화 사이트, 테니스 동호인들이 만든 테니스 용품…. 이처럼 직원들이 고객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면서 제품을 개선해간다면 그냥 일반 직장인들로 구성된 조직보다 훨씬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 이번 호 스타트업 케이스로 소개된 레진코믹스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고객 경험에 대한 집착, 미래 경쟁우위의 확실한 원천이 될 것입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질문, 답변, 연관 아티클 확인까지 한번에! 경제·경영 관련 질문은 AskBiz에게 물어보세요.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Click!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