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M&A 전략 7계명
Article at a Glance
한국형 M&A 전략 7계명 ① 오너가 주도해라 ② 길게 봐라 ③ 계획적(Programmatic) 딜을 해라 ④ 시너지 효과에 지나치게 기대하지 마라 ⑤ 믿고 맡길 세 명을 확보해라 ⑥ 신사업 진출을 위한 해외 기업 인수는 신중하게 하라 ⑦ 남들 따라서 M&A 하지 마라
섣불리 인수합병(M&A)을 시도했다 ‘승자의 저주’에 빠진 기업들이 많다. 일순간에 기업 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M&A의 달콤한 유혹 뒤에는 거대 기업마저도 한순간에 몰락의 길로 내모는 치명적인 독이 숨어 있다. 특히 M&A의 역사가 오래 된 서구 기업과 달리 국내 기업들은 M&A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정작 이에 관한 제반 지식이 깊지 않아 일을 그르칠 때가 많다. 국내의 기업 문화와 지배구조가 서구와 다르기 때문에 해외 사례와 전략이 무조건 국내 상황에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국내 문화 및 제반 상황을 고려한 전략과 실행 계획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한국형 M&A를 위한 일곱 개 과제를 제언한다.
오너가 주도하라
M&A 입찰을 두고 경쟁하는 두 기업이 있다. A 기업은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들이 투자은행(IB) 관계자 및 자문단과 함께 피인수기업의 가치를 산정하고 입찰가격의 상한선을 정한다. B 기업에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무조건 사라”라는 오너의 지시다. 이렇게 되면 입찰 가격의 상한선은 없다. 둘 중 어떤 기업이 승리할지는 묻지 않아도 뻔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하겠지만 최근 일어난 많은 M&A에서 필자가 빈번하게 목격한 일이다. 오너가 나서서 높은 가격이라도 밀어붙여 사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무조건 사는’ 식의 M&A가 과도하게 높은 입찰가격으로 이어져 ‘승자의 저주’에 빠질 위험도 있다. 하지만 괜찮은 매물이 나오면 수많은 대기업과 PE들이 몰려드는 한국 M&A시장에서 오너가 나서서 강력하게 드라이브하지 않으면 애초부터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즉 오너 본인이 죽기 살기로 이 거래를 밀어붙여야겠다는 확신이 없거나 실무진이 오너로부터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면 애초부터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 낫다. 전문경영인이 불확실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인수 작업을 주도한다는 것은 한국 경영 현실에서 아직까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오너가 ‘사라’는 지시를 내리기까지 해당 기업에 대해 얼마나 철저하게 분석했는지, 또 기업가정신에 의거해 해당 기업 인수에 대한 확신을 얼마나 강하게 가졌느냐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CJ그룹의 대한통운 인수다.
2011년 8월 말, 대한통운 인수를 위한 본입찰 제안서 접수가 마감되는 날이었다. 매각 주간사인 노무라증권에는 포스코-삼성SDS 컨소시엄, CJ그룹, 롯데그룹 관계자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들은 바로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은 채 오후 5시인 마감시간까지 최대한 기다리며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마감 5분여를 남겨놓고 롯데그룹이 입찰 포기를 발표하자마자 포스코-삼성SDS 컨소시엄과 CJ그룹이 인수 제안서를 제출했다. 당시 포스코-삼성SDS 컨소시엄은 승리를 확신했다. 사실 기업 규모로 보면 포스코-삼성은 CJ를 압도했다. “삼성이 있는 포스코 컨소시엄이 상당히 높은 가격을 써냈다”는 말도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하루 뒤 노무라증권이 발표한 인수자는 CJ그룹이었다.
채권단이 대한통운 매각 공고를 냈을 때 증권업계에서는 대한통운의 적정 인수가격을 주당 15만 원대로 평가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는다 해도 주당 17만 원 정도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입찰 제안서에서 포스코 컨소시엄이 제시한 가격은 주당 19만 원대였다. 포스코로서는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그런데 CJ그룹은 무려 21만 원대를 썼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돈다. CJ그룹 직원들은 봉인된 여러 개의 봉투를 들고 노무라증권에 들어갔다. 봉투 앞면에는 각각 ‘A’ ‘B’ ‘C’라는 영문 이니셜만 쓰여 있었고 내용물은 최고경영진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몰랐다. 마감 직전 직원들은 CJ 본사로부터 “C를 제출하시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훗날 알려진 바에 따르면 C봉투에 가장 높은 가격이 담겨 있었고, 어떤 서류를 제출할지를 최종 결정한 이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었다.
CJ그룹과 포스코의 주당 인수가격 차이는 약 2만 원이었다. 얼핏 보면 2만 원은 큰 차이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오너가 없는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포스코는 삼성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끌어들였음에도 불구하고 2만 원 때문에 대한통운이라는 알짜 매물을 놓쳤다. 즉 오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인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해당 기업을 갖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언제라도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는 전문경영인으로서는 이런 과감한 결단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올해 6월 국내 벌크선(곡물·석탄 운송선) 부문 1위 해운사인 팬오션 인수를 최종 확정한 하림의 김홍국 회장은 이번 인수를 놓고 주위에서 “닭고기 업체가 해운사를 왜 사들이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세계 해운업이 극심한 불황에 빠져 있는 것이 오히려 기회”라고 주장한다. 장기적으로는 해운업 경기가 반등할 가능성이 크고, 현재 업황이 나빠 팬오션 인수가격이 비싸지 않은 만큼 이것이 바로 인수 적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김 회장은 세계 경제가 아직 금융위기의 파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2011년 미국 닭고기 가공업체 알렌푸드를 사들인 뒤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켜 짭짤한 이익을 남긴 경험이 있다.
M&A에 있어서 오너의 확신과 리더십은 인수전에서의 성공뿐 아니라 인수 후 통합 및 피인수 기업의 성장 과정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오너의 확신 및 열정이 있어야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 임직원 모두 단기 성과보다는 중장기적 성과와 시너지를 목표로 일할 수 있다. 오너의 리더십은 특히 M&A에서 가장 중요한 피인수 기업 직원들의 사기 진작 및 두 기업의 조직문화 통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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