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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손 다각화 전략

키워드 = 女心·중국·브리지 주얼리 ··· 남성적 시계업체, 여성적 주얼리를 뒤집다

고승연 | 179호 (2015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마케팅, 혁신

 

 

 

199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시계 회사였던 로만손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변화, 기술환경적 변화에 의해 위기를 겪게 된다. 위기가 가장 심화되던 시기에 인접 분야인주얼리사업으로 다각화를 이뤄 J.ESTINA라는 브랜드를 출시하며 큰 성공을 거둔다. 성공요인은 다음과 같다.

 

1) 고객가치 이해, 그리고 선택과 집중

2) 탁월한 포지셔닝 역량과 시장개척자 전략

3) 새로운 제품개발 방식의 구축과 활용에 기반한 차별화

4) 해외 시장에서 외국계 후발기업으로서의 약점 극복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손혜령(미국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삼성에서 시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까?

1980년대 후반까지 대한민국의 시계시장은 삼성과 오리엔트가 각각 33∼37% 사이를 오가며 양분하고 있었고 아남과 한독이 각각 13% 8%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뒤를 쫓고 있었다. 하지만 1988 4, 시계 시장에 핵폭탄이 하나 떨어진다. ‘완제품 손목시계완전수입 개방정책으로 해외 고급 시계가 국내 시장에 쏟아져 들어왔다. 기존 4강 체제는 완전히 무너졌다. 당시 언론보도 등을 보면 삼성은 사업을 정리하면서 해당 사업부가 SWC라는 기업으로 독립했지만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 오리엔트는 시계로만 당시 1000억 원 가까운 매출을 바라봤지만 역시수입 브랜드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아남과 한독도 마찬가지였다.1

 

한국 시계시장이 요동치던 그때혼돈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기업이 있다. 바로 로만손이다.

 

차근차근 시계 사업을 준비해 오던 로만손의 창업자(김기문 현 로만손 회장) 5명의 직원들과 함께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수년 만에무서운 30대들의 기업이라 불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로만손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글로벌 브랜드의 꿈, 그러나

창업 후 1년 뒤부터 곧바로 100%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수출에 중점을 뒀다. 로만손이 창업 당시부터 시작된 한국 시계 시장의 혼란을 피해갈 수 있었던 이유다. 물론 로만손도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을 때에는 당시 국내 200여 개의 시계 제조업체 중 70% 이상이 택했던 OEM 방식이었다. 처음부터 브랜드를 알릴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일본 리치저팬과 니혼하레이에 OEM 방식의 수출을 시작한다. 그러나 엔화가 하락하자 일본 바이어 등은 채산성을 이유로 수입선을 곧바로 대만과 홍콩으로 전환했다. 김기문 당시 사장은 이때, 수출이든 내수든 사업의 지속성, 제대로 된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내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자체 브랜드 개발에 온 힘을 기울여 1년 만에 회사명 그대로 ‘romanson’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키우기로 결심한다. 본래 로만손이라는 사명이 ‘Romansion’이라는 스위스 시계 제조도시에서 따온 것이어서 상징성이 있었고, 남자의로망이자로맨스를 상징하는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브랜드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자체 브랜드를 키워서 수출해야겠다는 당시 경영진의 생각은국내적 압력국제적 조건이 만나는 과정에서 도출됐다. 전술했듯, 1988년 수입시계 완제품 개방 이후 국내 시장은 요동치고 있었고 기존의 시장 최강자였던 삼성과 오리엔트 등도 변화의 파고를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러한 압력 속에서 OEM도 큰 리스크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자 자체 브랜드 수출은 더욱 절실해졌다. 오랜 시간 준비했기에 기술력에도 자신이 있었다. ‘고급 예물시계’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한국 명품 시계로 브랜드 콘셉트를 잡았다.

 

여기에 국제적으로 좋은 조건 하나가 더해진다. 로만손이 시장 개척에 나선 80년대 후반은 신흥 성장 시장(Emerging Markets)으로 일컬어지는 개도국 시장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절이었다. 여전히수출주도형 성장 모델을 갖고 있던 한국 정부는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하도록 기업들을 독려했다. 대한무역공사(KOTRA)가 나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도움을 주는 상황이었다. 또한 신규 시장이기에 후발업체임에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로만손은 특히 처음부터 중동 시장에 주목했는데 중동 국가들이 대부분이 석유 생산국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반면 공산품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수출 시장으로서의 매력이 컸던 탓이다. 여기에 두바이는 중동 지역의 중계 무역 중심 도시로 중동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러시아까지 재수출되는 지역이다. 무역이 자유로운 중계 거점 지역 또는 자유 무역 지역을 우선 공략하고, 이를 통해 인근 지역으로의 재수출 방식은 저비용 고효율의 효과적인 방식이다. 이 전략은 이후 로만손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된다.

 

1989 5 KOTRA 주최 행사에서 처음 두바이 바이어와 독점 대리점 계약을 맺어 중동을 중심으로 한 자체 브랜드 수출이 시작된다.2

 

이처럼 로만손은 해외 각국에서 로만손 시계만을 취급하는독점 대리점방식의 계약을 통해 창업 이후 1992년까지 매년 평균 300%씩 성장을 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써갔다. ‘romanson’이라는 브랜드명은 어느 나라에서든 비슷하게 읽히고 쉽게 기억됐다. 주로 UAE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 국가를 비롯해 70여 개국으로 수출이 이어졌다.

 

 

최고급 럭셔리는 아니지만 국내 시장에서도 중산층·서민들의예물시계정도로 인정받았다. 창업 3년 만에 세계 최대의 시계 박람회인 스위스 바젤쇼에 참가하면서 최신 기술과 디자인트렌드를 공부했고 기술력이나 자체 브랜드 이미지, 디자인을 끌어올리면서 중동이나 러시아에서는매스티지급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두 가지의 큰 위협이 찾아왔다. 첫 번째는 국내적인 것으로 IMF 외환위기 이후 찾아온양극화 현상실용주의의 대두다. 초고가의 수입 예물 시계는 부유층에서 여전히 소비하고 있었다. 김기석 현 로만손 사장은중산층·서민 같은 경우 예전에는 그래도 일생에 한 번이라는 결혼식 특성상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짜리 시계를 과감하게 교환하고 선물했다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특히 IMF 위기 등을 기점으로 소비자들이 굉장히 실용적으로 바뀌면서 결혼식에서도 굳이 예물로 시계를 교환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당연히 예물 시계 시장이 위축됐고, 100만 원 전후의 중가 예물 시계 라인을 갖고 있던 로만손에는 큰 타격이 왔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화가 로만손의 위기를 가중시킨다. 바로 휴대전화의 보급이다. 모든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은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기능으로서의 시계는 그 생명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러시아와 중동 등으로의 시계 수출은 계속 호조를 보이고 있었지만 내수 기반이 불안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사업이 필요했다.3 내수에서의 시계 산업은 한계가 분명했고 주된 수출지역인 러시아와 중동은 정치·경제적으로 불안요소가 많았다.

 

남성성의 상징에서 여성성의 상징으로

시계는남성의 액세서리. 자신의 이니셜이 수놓아진 드레스셔츠를 입고 고급 시계를 손목에 채우는 순간가장 남성적인 시간이 시작된다. 여성에게는 팔찌, 목걸이, 귀고리 등과 조화를 맞추는 여러 액세서리 중 하나지만 남성에게는 거의 유일한 액세서리다. 특히 시계라는 것 자체가속도’ ‘시간’ ‘기계적 정확성등 남성들이 좋아하는 모든 코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F1 자동차 경주와 레이서는 항상 최고급 시계 브랜드 마케팅 과정에서 핵심요소로 부각되는 경우가 많은데정확한 시간을 재는 경주’ ‘남성성과 기계공학이라는 공통점이 기막히게 맞물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최고급 유럽 시계 브랜드 중 하나는 아예항공 시계’, 즉 조종사들이 차는 시계에서 출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로만손은 남성성이 중시됐던 기존 사업과 정반대의 길을 간다. 남성적인 예물 시계, 고급 시계 브랜드에서 가장 여성적인주얼리 사업으로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1) 디자인, 이미지, 스토리:

핸드백 사업에서 배운 교훈과 시계의 기술력이 만나다.

‘최고급 시계주얼리는 일정한 연결고리가 있다. 남성 최고의 액세서리와 여성의 로망고급 주얼리는 기본적으로 같은 로망을 추구한다. 그래서 스위스 바젤에서시계박람회와보석박람회가 함께 열린다.

 

창업자인 김기문 현 로만손 회장의 동생이자 당시 전무였던 김기석 현 로만손 사장이주얼리 사업 전략을 짜고 보석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했다. 한참 러시아 수출 계약이 늘고 러시아 시장에서준 명품취급받던 바로 그 시기였다.

 

10년이 넘은 시계제조와 판매 경험으로부터 정교한 커팅 기술은 물론고급 브랜드 이미지 메이킹 및 관리’ ‘럭셔리 시장에 대한 이해를 얻은 상태였다.

 

‘패션시장’과여성 소비자의 특성에 대해서는 실패로부터 배웠다. 로만손은 2000년부터 2003년까지로만손 퍼플이라는 이름의 핸드백 브랜드를 내놓고 백화점에까지 입점시킨 적이 있다. 시작은 매우 단순했다. 1999년을 전후해 시계를 사던 중동의 바이어들이 “‘핸드백 수요가 있는데 로만손 브랜드가 괜찮으니 핸드백을 좀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던 것. 안 그래도 국내 시계시장이 어려워지던 차에 돌파구를 모색하던 로만손은바이어의 요청이자현지 소비자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핸드백을 만들어 줄 업체를 찾은 뒤 곧바로 로만손의 로고를 달고 2000년부터로만손 퍼플이라는 핸드백 매장을 내고 판매를 시작했다. 때마침 PPL로 협찬했던 TV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서의 인기도 치솟았다.

 

하지만 그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2년부터 핸드백 사업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고급 패션 브랜드를 지향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건브랜드 스토리였다. 로만손 퍼플엔 그게 없었다. 스토리가 없다는 건 브랜드의콘셉트가 없다는 얘기였다. 일관된 디자인이 나올 수 없었고, 그저 당장눈에 보이기에 예쁘지만 흔한핸드백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출시·판매 3년 만에 초기 성공에도 불구하고 로만손 핸드백은 10여 년간 로만손이 시계로 쌓아놓은 고급 이미지마저 잠식할 정도가 됐다. 김기석 당시 전무는 결단을 내렸다. 최대한 로만손 브랜드 타격을 줄이기 위해염가 처분없이 백화점에서 물건을 빼고 매장 문을 닫았다. 2003 7월의 일이다. 이 쓰디쓴 경험은 역설적으로 같은 해에 출시한 로만손의 주얼리 브랜드제이에스티나(J.ESTINA)’ 성공 스토리의 서막이 된다.

 

 

 

DBR Mini Box 1

 

 

J.ESTINA Brand Story Book

일정보다 빠르긴 했지만 조반나는 뉴욕으로 왔다. 파리에서 쇼핑도 하고 카페도 찾아다니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지만 마음으로는 안젤로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안젤로의 마지막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든 눌러보려 애써봤지만 스쳐가는 짧은 로맨스로 묻어버리기에는 안젤로의 존재감이 너무 컸다. 파리의 하늘 아래에서, 안젤로는 편안하게 미소를 머금고 조반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었다.

 

 

“연락처를 주고받을 필요는 없을 거요. 우린 이렇게 운명처럼 만나서 서로에게 끌려 기분 좋은 여행을 했던 동반자로 죽을 때까지 기억하게 될 거요.”

 

 

소설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위 글은 조반나 에스티나를 주인공으로 한 J.ESTINA의 스토리북에서 가져온 것이다.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어떤 액세서리를 하는지, ‘제나라고 부르는 자신의 고양이와 산책을 하고, 그땐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로마와 모나코를 여행하면서는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등이 소설 형식의 책에 담겨 있다. 고양이인 제나의 모양을 형상화한, 비교적 캐주얼한 액세서리도 등장하고 각종 소품이 나온다. 스토리북 중간중간 제품 소개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J.ESTINA 출시 초기 이 스토리북을 받은 고객들은 새로운 경험을 했다. 로만손에 전화를 걸어 경영진이나 아이디어 구상자를 만나고 싶다는 고객들도 있었다. J.ESTINA가 스토리를 통해 잡아놓은 이 브랜드 콘셉트로 인해 현재 핸드백이나 화장품은 물론 침대나 의류까지로의 확장 가능성이 열렸다.

 

 

 

 

 

2) J.ESTINA: 한국 주얼리 역사를 다시 쓰다

①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다

J.ESTINA는 이탈리아의 실존했던 공주 조반나 에스티나에서 이미지를 따온 브랜드다. 실제티아라4  ’ 문양과 고양이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진 그 공주는 나중에 불가리아 왕비가 된다. 그녀가 살던 시대의공주 라이프 사이클스타일을 먼저 그려본 뒤에 파리, 뉴욕, 로마 등을 여행하고 사람을 만나고 파티에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이를 토대로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녀가 자신의 저택에서 눈을 떠서 브런치를 먹고 산책과 독서를 한 뒤 저녁 때 파티 주인공으로 등장하기까지 그때그때 필요한 소품과 장식품 등을 콘셉트로 주얼리를 확장해 나갔다. 아예 이 스토리를 담은 책을 펴냈고, 이를 백화점 J.ESTINA 매장에 올려놓고 고객들에게 선물했다. (‘J.ESTINA Brand Story Book’ 참조.) 당연히 가장 핵심적인 상징물은티아라였고 이를 활용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다. 로만손의 기술력을 이용한 J.ESTINA 시계도 나왔다.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실 당시만 해도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보다는 상품에 대한 직접적인 홍보, 즉 상품력, 디자인 등을 부각하는 마케팅 방법이 대세였다. 김기석 당시 전무(현 사장)는 그러나 생각이 달랐다. 신규 브랜드는 철저하게 기존 브랜드와 차별화 전략을 취해야만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잘못했다간그저 그런또 하나의 브랜드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브랜딩 담당자와 함께 유럽 출장을 자주 떠났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시계도 그렇지만 보석 역시예술성이 있어야 하고 예술에는 언제나 영감을 주는뮤즈가 필요하다. 김기석 현 사장은 찬란한 예술과 문화를 꽃피웠던 역사가 있는 이탈리아를 특히 좋아했다. 역사를 공부하고 계속되는 출장 속에서 브랜드 담당자와 함께 티아라를 유난히 좋아했던 공주조반나 에스티나라는 뮤즈를 찾아냈다. 로만손에서 J.ESTINA를 출시하면서 이런 브랜드 스토리 메이킹 방식을 최초로 도입하기 전까지 그 어떤 주얼리 회사도 이런 방식을 쓴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내부적으로도 반발이 있었다. 새로운 시도인 만큼 당연한 반발이었다. 주로한국적 정서에 맞지 않다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김 사장은여성들의 잠재의식 속에 프린세스가 되고 싶은 욕망이 숨겨져 있고, 이는 티아라라는 상징물을 통해 표현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설문조사를 통해티아라 모양이 들어간 주얼리를 사겠느냐라고 물으면 보통 답변은아니다라는 결과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답변하는 여성들이오글거린다’ ‘공주병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라는이성적 생각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의식은 다르다는 게 김기석 사장의 판단이었다. 이러한 여성 무의식의 숨겨진 욕구를 브랜드 콘셉트와 연결시키면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반발이나 부정적 의견을 잠재우며 김 사장이 말했다. “브랜드는 환상이다. 로망이다. 그걸 심어주고 일깨워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DBR Mini Box 2

 

 

김연아 선수와의 인연

‘짝퉁’이 J.ESTINA의 대표 모델 피겨 퀸 김연아 선수와의 인연을 만들어줬다. 김연아 선수는 세계 주니어대회를 휩쓴 이후 2007년부터 성인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우승 경험이 없는, 아는 사람만 아는피겨계의 스타였을 뿐국민적인 스타까지는 아닌 상황이었다. 당연히 후원 기업도 거의 없었고, 열악한 국내 피겨계에서 고군분투 중이었다. 2007년 한 세계대회에서 김연아 선수가 귀에 걸고 나온 제품이 로만손 임직원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당시 이미 국내 여성들 사이에서고급 브랜드로 이미지를 굳혀가던 J.ESTINA는 사실 그 모양을 흉내낸 모조품도 많아지던 상황. 김연아 선수는 당시 가장 많이 팔리던 디자인 중 하나인 J.ESTINA 모조품을, 그것이 어떤 브랜드를 따온 것인지도 모른 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섰고 그게 로만손 직원 눈에 띈 것이다. 이 얘기는 로만손 임원 전략회의에서 언급됐고, 김기석 사장은그냥 에피소드로 넘기지 말고 정품 제대로 된 것 한 세트를 보내주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훈훈한 해프닝으로 끝날 뻔했던 김연아 선수와 로만손의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2007년 말, J.ESTINA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고민하던 때에 광고대행사가 모델로 김연아 선수를 추천했다. 한국에서 세계선수권 대회 금메달을, 심지어 올림픽 금메달까지 딸 최초의 재목인데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 특성상 사정이 어려우니 김 선수를 모델로 쓰고 후원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들어온 것. 김기석 사장은 자신이 J.ESTINA 정품을 보내준 그 선수였음을 기억하고이것도 인연이라면 큰 인연인데 제대로 후원하자고 결심했다. 그 이후 김연아 선수가 걸어간 길은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다.

 

 

 

② 비어 있는 시장을 찾다

출시 단계에서부터 업계에 충격을 줬다. 김기석 사장에 따르면 처음에 단독 매장을 낼 때에는 업계 사람들이예물도 아니고 캐주얼 패션 주얼리도 아닌 이상한 왕관이 달리고 공주 모양 같은 것들 만들어서 뭐하는 거냐라고 물을 정도였다. 백화점 입점을 문의할 때에도 문제가 생기긴 마찬가지였다. 대형 쇼핑몰과 달리 백화점에는 각 브랜드나 제품의 등급별로 매장의 위치가 다르다. 보석 같은 경우 예물급의파인 주얼리매장들이 다른 명품 매장 쪽에 붙어 있고, 저렴한 패션 액세서리 주얼리 점포들 역시 다른 한쪽에 밀집해 있다. 그런데 J.ESTINA는 분명 패션 액세서리 주얼리보다 5∼6배 비싼 가격을 책정했는데, 파인 주얼리 라인보다는 싼 가격이었다. 백화점에서 오히려 로만손에게어디에 매장을 만들거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로만손은 J.ESTINA의 정체성을브리지 주얼리’, 즉 패션 액세서리에서 파인 주얼리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로 상정했다.

 

기존 시장이 이미 확실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새로움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절대 승산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미 예물 중심의 파인 주얼리와 저가의 코스튬 주얼리 시장이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제품 카테고리를 연구했다. 흥미로운 결론이 도출됐다. 기존 시장의 브랜드들이 패션 트렌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었다. 패셔너블하고 트렌디한 제품은길거리에 있었다. 백화점에 있는 코스튬 주얼리는 소재나 디자인에서저가 제품들과 차별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클래식하고 귀족적인파인 주얼리 20∼30대의 평범한 젊은 여성이 접근하기에는 가격대도 너무 높았고 지나치게예물스러웠다. ‘골드와 실버를 메인으로 하는 트렌디함’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주얼리로 포지셔닝을 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러한 판단하에 기존 파인 주얼리와 코스튬 주얼리의 경계에서 신조어인브리지 주얼리 J.ESTINA를 범주화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철저하게 조반나 에스티나 공주의 라이프 스토리가 반영되고 공주의 심벌인티아라를 형상화해 제품화하자는 결정을 하고티아라컬렉션부터 선보였다. 또 조반나 공주의 시그니처인 J를 리본 모양으로 형상화한 제이 리본 컬렉션(J Ribbon), 그녀의 애완 고양이를 형상화한 제나 컬렉션(JENA), 이탈리아의 국화를 표현한 마르게리타 컬렉션(Margherita), 그리고 그녀를 형상화한 프린세스 컬렉션(Princess) 등으로 확장시켜나갔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출시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4년 초, PPL을 통해 당대 톱 배우였던 김희선 씨가 드라마에서 J.ESTINA 귀고리를 착용했는데 여기에서 말 그대로대박이 났다. 몇 달 만에 20억 원의 매출이 일어났다. ‘짝퉁이 판쳐서 로만손이 골머리를 앓을 정도였다. 바로 로만손 스스로브리지라고 말했던 그 가격대와 콘셉트의 시장은비어 있던 시장이었다. 레드오션 속 블루오션이었던 셈이다. (‘김연아 선수와의 인연참조.)

 

 

또 다른 천운도 있었다. 2008년부터 공식 후원하기 시작한 김연아 선수는 이후 세계선수권대회와 2010년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금메달까지 차지하며 세계 피겨의이 됐고 특히 밴쿠버 올림픽 경기에서 착용한 왕관 귀고리는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몰고오기도 했다.

 

<그림 1> 1999년 이후 로만손의 매출과 영업이익 등의 추이를 보여준다. 영업이익률을 보면 2001년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돼 J.ESTINA 주얼리를 출시하고 핸드백 사업을 접은 해인 2003년과 그 이듬해에 바닥을 찍고 곧바로 엄청난 상승세를 보여준다. 이는마진이 큰 주얼리 사업의 성공과 관련이 있다.

 

또 다른 모멘텀을 기획하다:

핸드백, 화장품, 그리고 중국

1) 핸드백, 그리고 화장품

J.ESTINA가 한참 히트를 치기 시작하던 2005년 즈음부터 로만손 시계의 주력 수출시장의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중동의 정세는 계속되는 전쟁 등으로 계속 불안했고 2008년에는 전 세계적 금융위기가 도래했으며 그 이후에는 러시아의 정치 불안과 불경기가 심화됐다. J.ESTINA의 성공이 없었다면 로만손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탄탄한 내수가 주는 힘을 느낀 로만손은 다시 한번 사업 다각화에 나선다. 2011 8, 8년 전에 굴욕적으로 철수해야 했던 핸드백 사업에 다시 도전장을 내민다.

 

<그림 1>을 보면 J.ESTINA 주얼리 출시 이후 매출은 지속적으로 상승했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영업이익률이 10% 미만으로 떨어지고 2011년에는 5%대가 됐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과 지속되는 불경기 등의 요인을 무시할 순 없지만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새로운 전기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핸드백이었다.

 

 

<그림 2>를 보면 로만손의 사업 부문별 매출 비중이 나와 있다. 시계 사업의 매출 비중은 줄어들고 주얼리 분야는 유지, 그리고 사라진 시계 분야의 매출을 핸드백이 채워주고 있다.

 

J.ESTINA 주얼리는브리지 주얼리비어 있는 시장이었다면 핸드백에서는 그곳이 바로매스티지 시장이다. 문제는 핸드백 매스티지 시장은 브리지 주얼리 시장과 달리레드오션이라는 것. 국내에도 MCM, Louis quartorze 등의 브랜드가 매년 2000∼300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J.ESTINA는 주얼리 출시 당시부터 만들어놓은 스토리와 이미지, 브랜드 콘셉트를 이용해여성적이고 우아하면서도 캐주얼한 핸드백을 만들기로 했다. 로만손 관계자에 따르면 매스티지 핸드백은 중산층을 타깃 고객으로 잡기 때문에중산층의 분포만큼이나 제품의 가격폭도 다양하다. J.ESTINA는 브랜드 정체성에 집중해 한국 소비자 기준에서좋은 품질에 합리적인 가격대를 가진 상품으로존재감 확산에 힘썼고, 곧바로부가가치가 높은 중산층 중 상류층, 제품군으로 치면 매스티지 고급 라인으로 주력 제품군을 이동하고 있다.

 

 

J.ESTINA 핸드백의 포지셔닝 전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핸드백 시장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할 필요가 있다. 핸드백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최근 10년간 크게 성장했다. 유럽 명품 브랜드의 성장이 일단 두드러진다. 일본,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시장의 구매력이 크게 증가했고 특히 신흥 부자들의 수가 웬만한 국가 인구를 넘어서는 중국 시장에서의 수요 폭발은 럭셔리 브랜드, 매스티지 브랜드 할 것 없이 핸드백 시장 전체의 성장을 만들어냈다. 전통적인 명품 핸드백 브랜드들의 매스티지 전략은 로고를 최대한 많이 노출한 엔트리 상품들을 대량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트렌드가 빨리 변화하면서 최고가 명품 핸드백들은 최상위 부유층으로 수요가 완전히 넘어가고, 중산층과 중상층 소비자들은 고급 가죽 소재를 사용한 매스티지 브랜드, 특히 브랜드 가치는 중간 수준이지만 품질 자체가 뛰어난 제품을 찾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런 매스티지 브랜드들은 트렌드 변화에 맞춰 디자인을 끝없이 바꾼다. 일례로 중국에서 루이비통 다음으로 매출을 많이 일으키고 있는 미국 매스티지 브랜드 COACH는 작년부터 로고가 많이 들어간 제품들을 더 이상 판매하지 않고 시장의 트렌드를 빨리 반영한 합리적인 가격대의 좋은 품질의 제품들을 먼저 시장에 선보이는 전략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빠른 트렌드 변화를 읽고 이에 대응하면서 품질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J.ESTINA 핸드백 역시 가능성이 보였다. ‘공식 행사나 파티에 더 어울리는매스티지 자리는 MCM이나 더 오래된 브랜드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캐주얼한 매스티지 자리에 낮은 가격대의 핸드백은 잘 보이지 않았다. 출시 초기부터 티아라 심벌을 중심으로 한 상품군에 집중하면서 기존 매스티지 브랜드들보다는 좀 더 감성적이고 캐주얼한 콘셉트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기존 매스티지 브랜드들이 가지고 있는 보수적인 이미지와는 차별화된 강점이다.

 

<그림 3>은 로만손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J.ESTINA 핸드백의 포지셔닝 전략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의 매스티지 브랜드 중 가장 유명한 MCM은 분명 공간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지만 Traditional(전통) Formal(공식행사나 파티에 활용도가 높은) 쪽으로 이동해 있다. 아직 가격대도 premium 쪽으로 선을 막 넘어선 수준이다. 가까운 공간에서 출발했지만 J.ESTINA의 방향성은 다르다. Contemporary(현대적인 트렌디함) Sensibility(변화에 대한 민감함) 위치에 있고 Mass보다는 Premium 쪽에 약간 더 가까운 포지션이다. 출시 4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1000억 원의 매출을 일으킨 것은 바로 기존 한국 기업 매스티지 핸드백 브랜드와 가까운 공간에서 출발했지만 이처럼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로만손의 설명이다.

 

한편, 앞서 제시한 <그림 1>을 보면 2013년 가을부터 향수 Je가 출시됐다. 아직 본격 출시하지 않은 J.ESTINA 화장품 브랜드의 테스터 성격으로 현재 주얼리 매장에서 선물이나 시범판매용 등으로 나오고 있다. 즉 핸드백에서 화장품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데 브랜드 콘셉트는 주얼리나 핸드백처럼 조반나 에스티나 공주의우아한 일상을 핵심에 두고 있다. 김기석 사장은 “J.ESTINA는 브랜드 확장성이 매우 크다종합 패션 브랜드 혹은여성 브랜드로서 무한한 아이템 확장을 가져갈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나 제품군으로의 확대는 계속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 CHASEAN(CHINA+ASEAN)을 노리다.

‘글로벌 여성 패션 브랜드 J.ESTINA를 키우는 로만손 입장에서 중국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동시에 romanson 시계 브랜드 입장에서는 동남아가 새로운 희망으로 부상하고 있다. 100만 원대 이상의 고가 시계 매출이 올라가는 걸 확인 중이고5  ‘한국=고급이미지와 맞물려자연적 리브랜딩이 이뤄지고 있다. J.ESTINA는 중국, 로만손은 동남아에 교두보를 마련해야 지속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김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생각이다.

 

우선 J.ESTINA글로벌 브랜드가 되느냐, 마느냐는 중국 진출 성공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로만손은 브랜드 인지도 확보를 위해 중국 고객 증가로 현재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국내 면세점시장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2012년 인천공항에 면세점을 최초로 낸 이후 현재 핸드백, 주얼리 등 토털 부티크 매장이 3, 주얼리 단독 매장 2개 총 5개 점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한 매출 확장 개념을 넘어 국내 방문 중국 고객에게 J.ESTINA의 인지도와 선호도를 미리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물론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주얼리의 경우 인천공항 면세점 주얼리 대부분의 매장에서 2(국내/해외 브랜드 종합), 핸드백 매출 역시 매장별로 차이는 있지만 국내 브랜드 중 MCM 다음으로 대부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기반으로 중국의 관문인 베이징과 상하이의 국제공항 면세점 오픈을 추진했다. 지난해 말부터 성공적인 입점이 시작됐다. 2014년 말 베이징 수도공항 터미널3 선라이즈 면세점에 핸드백 주얼리 토털 부티크를 오픈했고 상하이 푸동 국제공항 터미널1, 터미널2에 각각 주얼리 단독 매장을 열었다. 이는 한국 브랜드로서 최초 입점이다. 한국과 중국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모델인 송혜교 씨를 내세워고급 주얼리 이미지를 구축해가고 있다.

 

 

올해 성과는 더 기대를 모은다. 2015 2월 상하이 대표 관광지인 난징둥루에 위치한뉴월드 다이마루백화점명품관에 입점해 COACH, MCM, Armani collezioni 등 이른바 글로벌 브랜드와 나란히 자리하게 됐다. 이 역시 한국 패션 브랜드로서 최초의 명품관 입성이란 측면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연내에 중국의 대표 백화점인 베이징 신광톈디(xin guang tian di)백화점, 강후이 광장 등에도 매장을 열기로 했다. 또한 T mall 입성 등을 시작으로 온라인 비즈니스 구축도 올해 안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romanson 시계의 경우 중국·동남아 지역에서도 인기가 높은 한류스타 이민호 씨를 모델로 내세워젊고 고급스러운이미지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기석 사장은동남아 시장에서 고가의 시계들이 가장 잘 팔린다확실히 한국 제품이 고급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고 100만 원, 200만 원짜리 제품 구매의향이 있는 중산층이 늘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패션 브랜드 입장에서는 중국과 동남아에서글로벌 브랜드의 교두보를 만들고 매출과 수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이 하나 있다. 바로 유럽과 미국 뉴욕 등 패션의 발상지, 혹은 중심지에서도 볼 수 있는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로만손은 현재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뉴욕 5th Avenue에 위치한 상징적 랜드마크인 플라자호텔에 입점했다. 현재는 프랑스 파리 유명 백화점 입점과 고급 패션 거리 편집숍 납품을 추진 중이다.

 

3) J.ESTINA RED의 탄생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는하위 브랜드를 갖고 있다. Armani의 하위 브랜드 Armani exchange, Marc Jacobs 하위 브랜드인 Marc by Marc Jacobs 등이 대표적이다. 티아라 등을 상징으로 내세운 고급 라인은 제외하고 좀 더 젊은 여성층을 위한 패션 잡화 편집숍 개념으로 최근 J.ESTINA가 만든 게 J.ESTINA RED. 20대는 물론쿨 하고 젊은 감각의 30까지 잡을 수 있는 공효진 씨를 모델로 내세우고 2015 6월 현재 지상파 인기 드라마에 출연 중인 공효진 씨를 통한 PPL을 진행하고 있다. 상위 브랜드인 J.ESTINA공주, 귀족이미지가 아니라 여성스러우면서도시크라이프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김기석 사장은 이라이프스타일을 일종의 메가트렌드로 본다. 요즘에는 쇼핑을 할 때에도 대형 백화점이 아닌 재미있는 골목에 있는 작은 숍을 찾는 경우가 많고, 쇼핑몰도 잘 차려입고 가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주말에 트레이닝복 입고 오가면서 브런치 먹고 구경하다 예쁜 액세서리나 새로운 화장품 등이 있으면 구입한다는 것이다. J.ESTINA RED는 바로 이 라이프스타일을 겨냥했다는 설명이다.올해 중순, 그동안 준비 중이던 화장품 사업 중색조 화장품을 먼저 RED 숍에 출시하면서 브랜드 콘셉트를 확고히 한다는 계획이다.

 

 

성공요인 및 시사점

현재 급속하게 바뀌는환경요소들은 예측하기 힘든 변화들을 초래하면서 기업들의 운영 방식과 성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까지 위협받는다. 로만손의 경우를 살펴보자. 정치·법률적 환경 변화에 따라 1980년대 후반 수입시계가 밀려들어왔고, 곧이어 기술적 환경의 변화로 휴대전화가 시계를 대체하면서 시계시장은 더욱 위축됐다. 또한 사회문화적 환경의 변화로 시계 예물 시장은 붕괴하다시피했고 그 결과 국내 시계 업체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급격한 몰락이 예견됐던 이 산업 부문에서 적극적인 해외 시장 공략과 다각화를 통해 부활에 성공한 기업이 바로 로만손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로만손의 성공요인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환경변화에 부합하는시의적절하고 신속한 변화도모’ ‘사업아이템 발굴과 브랜드 확장 전략’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계획을 수립해 구성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리더십등이 우선 떠오른다. 로만손의 성공요인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고객가치 이해, 그리고 선택과 집중

로만손은 고객의 가치를 이해하고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선정해 확장했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에 성공했다. 국내 시계 산업 부문의 쇠락으로 인해 새로운 수익원 창출이 요구됐던 로만손이 새롭게 선택한 사업 부문은 시계와 인접한 주얼리 사업이었다. 외견상으로만 보면 인접 산업으로의 관련 다각화였다. 하지만 로만손이 주얼리를 새로운 사업 분야로 선택했던 보다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시계 산업을 통해 고객과 직접 소통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통업자들에 의해 중대한 영향을 받았던 사업방식에서 탈피하고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사업방식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만손이 선택한 주얼리 사업의 운영방식은 시계와 주얼리를 함께 판매하는 편집숍이 아닌 단독 매장의 형태였고, 이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J.ESTINA. 대리점을 통해 고객을 간접적으로 상대했던 시계 사업에서와 달리 J.ESTINA에서는 스토리 북 등을 통해 고객들을 접점에서 직접 만나고 있다. 또한 고객이 원하는 중요한 가치를 보다 근거리에서 파악하고 이를 빠르게 상품화해 전달하는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디자인과 마케팅 부문에 특화된 기업으로의 변신을 도모했다.

 

 

비록 창업 초기에는 제조 부문의 역량 강화를 강조하는 시계회사로 발전해 왔지만 현재 로만손 사내에 흐르는 경영의 모토는 브랜드 콘셉트 개발과 히스토리의 구축 역량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주얼리 제조 부문은 과감한 아웃소싱을 통해 해결하고 있으며, 디자인과 마케팅 역량 강화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을 실행하고 있다. 현재 J.ESTINA의 상품기획부서는 내부 육성과 적극적인 외부 인재 영입을 통해 매우 우수한 역량을 가진 인재풀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고객이 원하는 상품의 니즈를 파악해 신속하게 기획하고, 이를 통해 J.ESTINA 브랜드에 대한 고객들의 높은 충성심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또한 다양한 내·외부 관계자들과 협업(콜라보레이션) 체계를 구축해 J.ESTINA 브랜드에 노후화되지 않는 신선함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최악의 불경기라던 2014년에도 12%의 매출 신장을 기록한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2) 탁월한 포지셔닝 역량과 시장개척자 전략

탁월한 포지셔닝 역량에 기초한 시장개척자(first-mover) 전략도 다른 기업들이 배울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로만손의 주얼리 사업 부문이자 브랜드인 J.ESTINA파인 주얼리(fine jewelry)’코스튬 주얼리(costume jewelry)’로 양분돼 있던 전통적인 주얼리 시장에서브리지 주얼리(bridge jewelry)’라는 새로운 제품군을 개척한 선발기업(first mover)으로서 성장해 왔다. 로만손이 J.ESTINA라는 브랜드로 주얼리 시장에 처음 뛰어들 당시에 대해 다시 살펴보자. 실버에 다이아몬드가 붙어 있고 왕관 형태의 모양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의 주얼리 제품은 기존의 업계 종사자들조차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조금은 낯선 콘셉트였다. 심지어 제품 콘셉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백화점 관계자들이 J.ESTINA의 제품들을 매장 어디에 입점시킬지 헷갈렸을 정도였다. 럭셔리한 예물 제품과 저렴한 액세서리로 양분돼 있었던 당시의 주얼리 시장 상황을 고려해 보면 백화점 관계자들의 이 같은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같은 시장을 향해 J.ESTINA Material(재료/원료)는 파인 주얼리에 가깝지만 디자인과 콘셉트는 패셔너블한 코스튬 주얼리의 특징을 갖고 있던 자사 제품을브리지 주얼리로 포지셔닝했다.그리고 결국 이제는 제법 커진 브리지 주얼리 제품군의 선도기업으로서의 높은 수준의 브랜드 이미지와 고객들의 높은 충성도를 구축하고 있다.

 

 

3) 새로운 제품개발 방식의 구축과 활용에 기반한 차별화

로만손의 성공요인 중 또 눈에 띄는 건 새로운 제품개발 방식의 구축과 활용에 기초한 차별화다. 시계 산업 부문의 급격한 환경변화로 인해 고전하던 로만손이 주얼리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며 자사만의 독특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선택했던 방식은 이탈리아에 실존했던 공주조반나 에스티나(J. ESTINA)’에서 이미지를 따온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고, 이에 기초한 제품을 개발해 고객들에게 접근하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조반나 에스티나가 현재의 시점에서 살고 있다는 가정하에 그녀의 라이프 사이클에서 착안한 제품들을 개발하다 보니 기존의 주얼리 브랜드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차별화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반나 에스티나가 파리에 가면 어떨까? 어디에서 어떤 일들을 할까? 아무래도 멋진 남자와 여행을 같이할 것 같다. 그러면 어디에 가고 싶을까?” 이런 상황에 대한 것들을 묶어서트래블(travel) 북을 만들고, 스토리 속에 나올 만한 제품들을 출시했던 것인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제품이 파티에 참석한 조반나 에스티나 공주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샹들리에 컬렉션이다.

 

브랜드의 스토리를 만들어서 접근하는 이 같은 제품개발 방식은 또 다른 제품군으로의 확장이 용이하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강점이 있다. 즉 하나의 제품군이 안정되면 다음의 제품군을 출시하고, 이 상황이 안정되면 또 다음 제품군을 내놓는 방식으로 기업은 제품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데, 이 같은 맥락에서 조반나 에스티나 공주의 라이프사이클상에서의 스토리에 기초해 구축된 J.ESTINA 브랜드는 여성과 관련한 거의 모든 제품군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여성들이 사용하는 화장품, 잠옷, 내의, 심지어는 프린세스가 사용하는 침대로까지 제품군을 확장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강점이 될 수 있는데, 이 같은 제품개발 방식에 기초한 아이템 및 사업 확장 전략은 J.ESTINA의 출시 초기부터 계획됐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실제 핸드백이 출시한 지 4년 만에 1000억 원 매출을 올리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전략 때문이다.

 

4) 해외 시장에서 외국계 후발기업으로서의 약점 극복

외국계 후발기업으로서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 진출하며 로만손은 자사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최적의 진출방식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당시 주얼리 업계의 후발기업으로서 J.ESTINA는 브랜드 인지도 측면에서 중국에서는 절대적인 열세에 있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는데, 그래서 채택한 유통전략이 바로 면세점 우선 진출 전략이었다. 즉 주요 고객들의 트래픽이 집중되는 곳에 브랜드를 최대한 노출해 자사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으로서, 이는 당장의 이익 창출을 위한 단기적인 관점의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정 기간 손익이 발생되지 않더라도 자사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를 꾸준하게 향상시켜 주요 시장에서 장기적인 관점의 경쟁우위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이를 위해 J.ESTINA는 우선적으로 한국의 면세점들을 공략했고, 이후에는 베이징 공항에 매장을 냈으며, 상하이 공항, 하이난, 일본 등에도 진출했는데 이들은 모두 주요 타깃 고객인 중국인들에게 J.ESTINA의 브랜드를 확고하게 인지시키기 위함이었다.

 

또한 외국인 기업으로서의 태생적인 불리함인외국인 비용(liability of foreignness)’을 극복하기 위한 홍보 전략으로서 J.ESTINA는 한류를 활용한 스타마케팅을 꾸준하게 진행해 왔다. 국내에서 전략적인 스타마케팅을 구사함으로써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이 같은 스타마케팅은 한류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중국 및 동남아 시장에서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됐다. 김희선이 출연한 드라마에서의 간접광고(PPL)를 통해 시작됐던 초기의 스타마케팅은 국민적인 스포츠 영웅인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에서 J.ESTINA의 왕관 귀걸이를 착용하고 시상대에 오르며 정점을 찍게 됐는데 이 같은 J.ESTINA의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은 신뢰도 높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외국인 비용을 최소화해 국·내외 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과제 및 제언

현재 로만손은 J.ESTINA의 성공을 전환점으로 기업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시계 사업 부문의 재건과 산업 전체가 지속적인 성장세에 있는 화장품 부문으로의 진입을 위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향후 로만손이 사업영역과 조직 규모의 확대로 인한 성장통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계획하고 있는 원대한 목표들을 차질 없이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에 대한 노력이 요구된다.

 

첫째, 기업의 모태인 시계 산업에서의 부활을 위해서는 환경변화가 가져온 산업 부문의핵심성공요인(key success factor)’ 변화들을 직시하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제품개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로만손이 기존에 이해하고 있던 시계 산업 부문에 대한 이해와 성공방식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암묵적인 자원이 아닌 오히려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요인, 즉 관성(inertia)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키며, 무엇을 더해야 할지를 보다 명확하게 판단해야 할 시점이다.

 

둘째, 화장품시장으로의 성공적인 진입을 위해서는 니치마켓을 선정하고 이를 공략하기 위한 뚜렷한 비전과 전략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막연히 성장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진입만으로도 성장세에 편승해 충분한 성과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는 실패의 전조가 될 수 있다. J.ESTINA를 통해 축적해온 브랜드 가치와 기획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제품생산 관리체계에 대한 강화가 필요하다. 아웃소싱은 강력한 통제력에 기초한내부화(internalization)’의 장점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데, 이 같은 통제력의 약화는 오랫동안 힘겹게 만들어온 기업의 이미지와 브랜드의 가치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로만손은 기획과 마케팅 전문기업이기 때문에 제품의 품질과 생산과정에 대한 관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업체들과의 관계 구축에 나서 제품의 품질과 생산과정에서의 합리성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넷째, 사업범위와 기업규모 확대에 따른보텀업(Bottom-up)’ 제안 채널의 활성화가 요구된다. 현재까지 로만손의 사업아이템 개발과 전략방향에 대한 거의 모든 제안들은 최고경영자 1인의 머릿속에서 구상돼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석 사장은 다음해의 모든 계획에 대한 대략적인 구상을 보통 그 전년도 1/4분기에 끝내고 이것을 임직원들에게 전달해 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업의 범위가 확대되고 규모가 커지고 있는 현 시점에 로만손의 이 같은 성공방식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톱다운(Bottom-up)’ 방식 의사결정 체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상대적으로 역할이 취약했던보텀업(Bottom-up)’ 제안 채널의 실효성을 좀 더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고승연기자 seanko@donga.com 유재욱 건국대 경영대 교수 jwyoo@konkuk.ac.k

유재욱교수는 워싱턴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을 거쳐 건국대 경영대 교수와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세계 3대 인명사전인마르퀴스 후즈후(Who’s Who in the World)’,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 ‘21세기 탁월한 지식인 2000’, 미국인명연구소 ‘21세기 탁월한 지성에 모두 등재됐다. 저서로는 <현대사회와 지속가능경영>이 있고 등 경영학 분야 국내외 저널에 수십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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