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종합
Article at a Glance
1959년 체스터 칼슨이 고안한 전기사진기술로 복사용 프린터가 처음 개발됐다. 그 후 1963년에 최초의 데스크톱 복사기인 ‘제록스 813’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약 5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프린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번엔 3차원의 사물을 2차원으로 보여주는 데 그쳤던 기존의 복사용 프린터보다 훨씬 더 진화한 3D프린팅이 주인공이다. 3D프린팅은 저작자의 관념 혹은 특징화된 사물을 복제하는 행위다. 기존 프린터와 달리 입체적 사물을 조형할 수 있다. 각 개인이 생산 주체, ‘창의 메이커스’가 되면서 ‘다수의 참여자에 의한 효율적 연계 생산과 가치의 공유’가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3D프린팅은 제조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제조전략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미래에는 서비스산업 분류표에 제조업이 포함될 수 있다. 즉 제조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서비스업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3D프린팅, 본질과 현상을 바꾸다
우리는 문제를 바라볼 때 혹은 가치를 판단할 때 흔히 대상이 주는 객관적 본질(기능)에 그 기준을 두곤 한다. 이는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히 통용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소위 본질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보편적 가치로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씩 생각이 다른 것 같다. 특히 현재와 같이 개성, 차별, 개인화, 커스터마이징 등이 키워드가 되면서 몰개성에 대한 비판적 사회 코드가 주류를 이루는 시점에서는 본질이 사용자의 주관적 목적의식과 이용방식에 따라 다르게 활용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종종 창의적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본질이 현상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용의도에 따라 주관적 관념을 사물화된 정형체로 표현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3D프린팅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인간이 가지는 형이상학적 관념을 유물화(Materialization)시키는 매우 유용한 도구다.
다시 본질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물의 본질은 그 쓰임에 의해 결정되며 그 쓰임을 위한 도구가 생긴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방(Room)은 우리가 몸을 놓을 공간이며 방문(Door)은 방의 쓰임을 위한 부수적 기능이라는 것이다. 즉 대상의 핵심가치는 사용목적에 따라 본질이 정해지며 이는 모든 것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반면 실존론자들은 애초에 보편적 쓰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즉 헤겔이 주장하는 보편적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너와 나’로 대별되는 개인의 주체성에 의해 실존과 본질의 가치가 정해진다고 이해할 수 있다. 본질과 현상은 사유화된 관념이 구체화된 물질로 표현되는 과정으로 보이며, 이때 관념은 본질에 대한 통찰을, 물질은 현상에 대한 구현을 실현시킨다. 이는 마치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를 디자인 혹은 모델링 도구로 구현하고 이를 프린터를 통해 즉각적으로 물상화할 수 있는 3D프린팅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3D프린팅을 하는 과정은 의외로 단순하다. 먼저, 내가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이미지와 기능을 모델링 도구를 통해 설계한다. 혹은 더욱 쉽게는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정보를 유사 물상으로부터 읽는다. 이를 스캐닝(Scanning)이라 표현한다. 모델링된 정보 혹은 스캔된 정보를 설계도면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프린터에 소재를 넣고 출력한다. 마지막으로 필요에 따라 후가공을 한다. 즉, 프린팅을 하기 위해 모델링, 스캐닝, 디지털 설계도면, 소재, 프린터, 그리고 후가공의 요소가 필요하다. 각각의 과정에서 기존 산업기술이 다양하게 투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보는 사물이 내가 상상하는 그대로 복제돼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3D프린팅은 기술의 탁월함보다는 활용의 파괴성에 그 방점이 있다.
사회적 도구로서 3D프린팅
1959년 체스터 칼슨에 의해 개발된 전기사진기술로 인해 복사용 프린터가 처음 개발됐다. 그 후 1963년에 최초의 데스크톱 복사기인 ‘제록스 813’이 만들어졌다. 프린터는 제록스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줬으며 아직도 시장에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약 5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프린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칼슨의 전기사진기술은 3차원의 사물을 2차원으로 상징해 보여주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칼슨의 기술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손쉽게 정보를 제공하는 훌륭한 기술이었지만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보여주고자 하는 3차원의 사물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복사는 사전적으로 ‘원본을 베낌’ 혹은 ‘문서나 그림, 사진 따위를 이용해 다양한 크기로 복제함’을 의미한다. 즉 복사는 2차원의 사물을 옮기거나 혹은 3차원의 사물을 2차원 사진으로 전환해 출력하는 행위다. 복사가 정보의 전달에 있어서 파괴적인 기술임은 분명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사물 그 자체를 재생하는 생산 행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단지 본질이 아닌 사물의 형상만을 전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록스라는 세계적 기업이 생겨났고 이젠 집집마다 프린터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일반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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