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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종합

시장파괴적 ‘초인의 무기’ 3D프린팅 제품·기업·사회·인간을 바꾼다

윤영진 | 173호 (2015년 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959년 체스터 칼슨이 고안한 전기사진기술로 복사용 프린터가 처음 개발됐다. 그 후 1963년에 최초의 데스크톱 복사기인제록스 813’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약 5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프린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번엔 3차원의 사물을 2차원으로 보여주는 데 그쳤던 기존의 복사용 프린터보다 훨씬 더 진화한 3D프린팅이 주인공이다. 3D프린팅은 저작자의 관념 혹은 특징화된 사물을 복제하는 행위다. 기존 프린터와 달리 입체적 사물을 조형할 수 있다. 각 개인이 생산 주체, ‘창의 메이커스가 되면서다수의 참여자에 의한 효율적 연계 생산과 가치의 공유가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3D프린팅은 제조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제조전략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미래에는 서비스산업 분류표에 제조업이 포함될 수 있다. 즉 제조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서비스업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3D프린팅, 본질과 현상을 바꾸다

 

우리는 문제를 바라볼 때 혹은 가치를 판단할 때 흔히 대상이 주는 객관적 본질(기능)에 그 기준을 두곤 한다. 이는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히 통용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소위 본질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보편적 가치로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씩 생각이 다른 것 같다. 특히 현재와 같이 개성, 차별, 개인화, 커스터마이징 등이 키워드가 되면서 몰개성에 대한 비판적 사회 코드가 주류를 이루는 시점에서는 본질이 사용자의 주관적 목적의식과 이용방식에 따라 다르게 활용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종종 창의적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본질이 현상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용의도에 따라 주관적 관념을 사물화된 정형체로 표현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3D프린팅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인간이 가지는 형이상학적 관념을 유물화(Materialization)시키는 매우 유용한 도구다.

 

다시 본질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물의 본질은 그 쓰임에 의해 결정되며 그 쓰임을 위한 도구가 생긴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방(Room)은 우리가 몸을 놓을 공간이며 방문(Door)은 방의 쓰임을 위한 부수적 기능이라는 것이다. 즉 대상의 핵심가치는 사용목적에 따라 본질이 정해지며 이는 모든 것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반면 실존론자들은 애초에 보편적 쓰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즉 헤겔이 주장하는 보편적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고너와 나로 대별되는 개인의 주체성에 의해 실존과 본질의 가치가 정해진다고 이해할 수 있다. 본질과 현상은 사유화된 관념이 구체화된 물질로 표현되는 과정으로 보이며, 이때 관념은 본질에 대한 통찰을, 물질은 현상에 대한 구현을 실현시킨다. 이는 마치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를 디자인 혹은 모델링 도구로 구현하고 이를 프린터를 통해 즉각적으로 물상화할 수 있는 3D프린팅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3D프린팅을 하는 과정은 의외로 단순하다. 먼저, 내가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이미지와 기능을 모델링 도구를 통해 설계한다. 혹은 더욱 쉽게는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정보를 유사 물상으로부터 읽는다. 이를 스캐닝(Scanning)이라 표현한다. 모델링된 정보 혹은 스캔된 정보를 설계도면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프린터에 소재를 넣고 출력한다. 마지막으로 필요에 따라 후가공을 한다. , 프린팅을 하기 위해 모델링, 스캐닝, 디지털 설계도면, 소재, 프린터, 그리고 후가공의 요소가 필요하다. 각각의 과정에서 기존 산업기술이 다양하게 투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보는 사물이 내가 상상하는 그대로 복제돼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3D프린팅은 기술의 탁월함보다는 활용의 파괴성에 그 방점이 있다. 

 

사회적 도구로서 3D프린팅

 

1959년 체스터 칼슨에 의해 개발된 전기사진기술로 인해 복사용 프린터가 처음 개발됐다. 그 후 1963년에 최초의 데스크톱 복사기인제록스 813’이 만들어졌다. 프린터는 제록스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줬으며 아직도 시장에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약 5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프린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칼슨의 전기사진기술은 3차원의 사물을 2차원으로 상징해 보여주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칼슨의 기술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손쉽게 정보를 제공하는 훌륭한 기술이었지만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보여주고자 하는 3차원의 사물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복사는 사전적으로원본을 베낌혹은문서나 그림, 사진 따위를 이용해 다양한 크기로 복제함을 의미한다. 즉 복사는 2차원의 사물을 옮기거나 혹은 3차원의 사물을 2차원 사진으로 전환해 출력하는 행위다. 복사가 정보의 전달에 있어서 파괴적인 기술임은 분명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사물 그 자체를 재생하는 생산 행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단지 본질이 아닌 사물의 형상만을 전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록스라는 세계적 기업이 생겨났고 이젠 집집마다 프린터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일반화됐다.

 

 

 

 

결국 상상이 가치를 만들게 되고 진정한 의미의

광범위한가치의 확산이 이뤄진다. 3D프린팅은

분업에 의한 효율성 가치를 넘어선 다양성의

가치를 제공하며 누구나 새로운 생산자, 더 나아가

창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3D프린팅은 저작자의 관념 혹은 특징화된 사물을 복제하는 행위다. 기존 프린터와 차이는 대상 물체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실현시킨다는 점과 평면적 정보를 복사하는 것이 아닌 입체적 사물을 조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2D프린터는 정보전달 매체지 생산기기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3D프린팅 기술은 동일한 모양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적층)도 있으며 마치 조각가처럼 커팅하는 방식도 있다. 밀가루 파우더를 가지고 반죽을 만드는 방식도 있으며 모양을 양각해 불로 태워버리는 방식도 있다. 기술은 각 산업 영역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다양해지고 있으며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다.

 

사람들은 머릿속에 맴도는 형이상학적인 문양과 기괴할 정도로 복잡한 형상을 상상하지만 손이 그것을 만들지 못한다. 나만의 상상을 실체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를 물상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과 다단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이를 쉽게 실체화할 수 있으며 그것도 매우 빠르고 저렴하게 할 수 있다면 경영학 생산관리에서 꿈꾸는 실질적인 대량 맞춤생산(Mass Customization)이 가능하게 된다. 이때 필요한 도구는 나의 상상을 현상화하는 디자인 툴과 이를 물상화하는 3D프린터뿐이다. 생산은 자가화되고 상상만이 거래된다. 결국 상상이 가치를 만들게 된다.

 

자가생산체계를 벗어나 효율적 생산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과학적 활동은 1900년도 초반 산업 현장에서 주류를 이뤘던 고민이었다. 과학적 관리운동은 생산의 극단적 효율성을 추구했으며 대표적 생산방식이 조립생산이다. 당시의 조립생산 방식은 이전 시대의 주문자생산공장(Job Shop)에 비해 매우 효율적이며 경제적이었다. 또한 생산능력이 소비능력을 따라잡지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표준화된 상품의 대량 생산시스템이 중요한 경쟁의 원천이었다. 그 후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산방식은 대량 생산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원가우위전략에서 벗어나 차별화 전략을 수립하고 있으나 여전히 생산방식에 있어서의 차별화는 쉽지 않다. 유연생산체계 등을 통해 생산제품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소비자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주인인 고객은 불만족스럽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생산방식의 혁신적 변화 혹은 생산헤게모니의 전환이 없다면 고객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워 할 것이다.

 

3D프린팅은 우선 기존 조립과정을 통한 생산방식과 이에 따른 복잡한 가치사슬을 단순화시킨다. 사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기존 생산 가치사슬을 무참하게 파괴시킨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또한 누구나 생산능력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생산능력이 경제적 잉여를 창출하지 못한다. 아울러 생산자와 소비자로 나뉜 이분법적 경제구조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경제적 잉여는 생산자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시장참여자에게 분산돼 공유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3D프린팅은 기존 가치사슬을 붕괴시킬 정도로 매우 파괴적이면서도 단순하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분법적 분류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나만의 상품을 실체화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생산은 자가화(自家化)된다. 결국 상상이 가치를 만들게 되고 진정한 의미의 광범위한가치의 확산이 이뤄진다. 3D프린팅은 분업에 의한 효율성 가치를 넘어선 다양성의 가치를 제공하며 누구나 새로운 생산자, 더 나아가 창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산업 가치사슬의 변화-창의적 메이커스의 등장

 

1700년도 후반 근대 유럽의 경제 상황은 급속히 변하고 있었다. 기름진 옥토를 기반으로 중농주의를 대표했던 프랑스와 신대륙 발견과 무역을 바탕으로 중상주의를 대표했던 스페인에 대항해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이 세계 부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대륙의 외진 섬나라인 영국이 유럽의 다른 부국을 제치고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 배경에는 과거 중세의 산업구조를 혁신시키는 파괴적 기술과 사상이 있었다. 바로 1776년에 발간된 국부론이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표되는 경제학적 사상이 대두된 것이다. 국부론의 진정한 핵심은재화의 확산이다. ‘국가의 부는 몇몇 귀족과 대()상인이 보유한 금의 양에 달려 있지 않다. 사회 저변에 재화가 얼마나 확산돼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개념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현재의 경제구조에서 본다면 산업적 분화와 가치사슬의 정교화를 통해 생산체계의 효율화가 충분히 이뤄졌고 소비 인구 증가에 맞춘 대량의 제품 생산을 위한 생산체계가 시장경제하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의재화의 확산은 교환경제의 효율성을 기반으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효율성은 거시적 분업을 촉발하고 각 계층에 따른 차별적 경쟁 우위 중심의 생산체계를 가속화했으며 결국에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뚜렷하게 양분하는 경제구조를 확립하게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재화를 만들어내는 생산 주체들(Makers)을 중심으로 기술과 자본이 집중됐고 새로운 생산 주체들의 창의적 참여를 제약하는 거대한 장벽이 됐다. 정치적 민주주의에 비춰 보면 생산체계의 민주화는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제한된 생산주체들은 교환경제의 효율성을 다양성으로 확대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제품의 효용함수가 결국 생산성과 다양성으로 대변된다고 볼 때, 생산성의 증대에 비춰 다양성의 확대는 여전히 더디다. 대량 맞춤생산(Mass Customization)은 생산도구와 사회체계가 함께 작동할 때 이뤄질 수 있다. 먼저 도구적 측면에서 볼 때 분명 3D프린팅은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 개인의 니즈를 반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더 나아가 사회체계적 측면에서 볼 때, 창의적인 메이커스(Makers)의 등장이 중요하다. 특히 앞서 짚은 바와 같이 3D프린팅이 산업 활용성 측면에서 파괴적 기술이라고 볼 때 광범위한 산업에서의 3D프린팅 활용 및 적용 참여자가 생산체계 내에서 성장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애덤 스미스의 단순한 재화의 확산만으로는 다양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극단적 효율성을 가진 경제구조가 진화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다양성에 기반한 창조 능력이라고 볼 때 몇몇 주어진 탁월한 메이커스에 의해 이뤄지는 창조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좀 더 구체화해서 생산 기술적 측면에서 본다면 협력생산 혹은 네트워크/그리드 생산(Networked/Grid Manufacturing)이 가능해지고 있으며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참여적 생산(Participated Manufacturing),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이 일반적 사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 나아가 정치경제적 흐름이 경쟁에서 상생으로 변화돼 공동생산 및 활용을 통한 가치 확대로 변해가고 있다. 소위 공유경제 체제다. 과거 이데올로기의 실제적 구분이 경제체계에 있었음을 볼 때 잉여생산 능력의 효율적 활용과 분배는 이제 자본주의 경제구조의 중요한 도구가 됐다. 앞서 거론한 ‘Networked’ ‘Grid’ ‘Participated’ ‘Crowd’ 등의 단어는 유물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개별적 생산능력을 상징하는 것들이 아니다. 이를 포괄할 수 있는 용어는 오히려공유된(Shared)’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 재화의 생산 능력에 의해 계층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공유 능력에 따라 경제적 부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흐름을 엮어보면 결국다수의 참여자에 의한 효율적 연계생산과 가치의 공유가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더 많은 생산주체의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창의적 아이디어는 즉각적으로 상품화되고 유통돼 교환경제의 또 다른 축이 돼야 한다. , 사회 각층으로 단순한 재화의 확산을 넘어선 가치의 확산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생산주체의 창의력을 상품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 3D프린팅이며 이들이창의 메이커스.

 

이야기의 흐름을 엮어보면

결국다수의 참여자에 의한

효율적 연계생산과 가치의 공유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3D프린팅 비즈니스 도메인

 

3D프린팅으로부터 활용될 수 있는 사업 영역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프린팅을 위한 전반적인 하드웨어 영역일 것이다. 다양한 산업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용도의 3D프린터가 개발·활용돼야 한다. 현재는 스트라타시스(Stratasys) 3D시스템스(3Dsystems) 같은 외국계 기업이 주요 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두 회사가 전 세계 시장점유율을 거의 과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술의 단편성을 볼 때 경쟁구조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3차원 설계도면으로 출력되는 제품은 다양한 소재와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IP)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산업적 생산 효율성과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성도 반영해야 한다. 프린터의 성능은 단순한 기기의 문제만으로 국한되지는 않지만 그 자체의 설비가 생산 제품의 품질과 생산 속도를 맞출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지의 여부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 프린팅에 사용되는 소재 영역 또한 매우 중요하다. 실제 제품의 물성이 오히려 소재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 현재는 프린터 제조사 중심으로 업계가 구성돼 사용 소재를 확장하는 데 힘을 쏟고 있지만 향후에는 소재 회사 중심으로 힘을 받으며 활용할 수 있는 프린터가 확대되는 형태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두 가지의 큰 비즈니스 전략이 3D프린팅의 미래 비즈니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욱이 제품의 차별적 가치를 생성하는 것은 단순한 유사 형상이 아닌 그 제품이 가지는 기능적 물성일 경우가 많으며 이는 상당 부분 소재에 의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 번째는 프린팅 하드웨어를 최적화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이다. 오픈소스 기반의 프린터의 성능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사용 애플리케이션이 다양해지면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점진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특히 스캐닝 소프트웨어 및 동작제어, 다양한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도구는 시장 내의 3D프린팅 성장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나아가 클라우드 기반의 모델링 소프트웨어와 IP가 거래되기 위한 보안체계 및 이를 감당하는 TSM(Trust Service Manager) IP 히스토리 관리 및 인증, 과금 시스템, 보안시스템(Clearing Center) 등에 대한 운영시스템이 필요하다.

 

네 번째는 제조서비스 영역이다. 인류의 생산 역사를 되돌아볼 때 과거 과학적 관리 운동이나 헨리 포드가 설계한 조립라인 생산 방식은 미래에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을 기계화하려는 극단적 효율성이 인간의 차별성을 인정하면서 더 효율적인 제조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제조는 생산능력을 보유한 몇몇 자본가 혹은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3D프린팅은 제조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제조전략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미래에는 서비스산업 분류표에 제조업이 포함될 수 있다. 즉 제조는 단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서비스업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IP를 구매해 상품으로 판매하는 머천다이징 서비스는 새로운 생산의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자산의 거래다. 이는 제품 자체의 설계능력을 의미한다. 만약 제조가 서비스화 될 수 있다면 중요한 포인트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차별적 상품을 설계하는 능력일 것이다. 더 나아가 원가 우위에 기반한 제조역량보다는 동일 상품을 출력할 수 있는 권리에서 더 많은 부가가치가 생성될 것이다. 소위 CMS(Content Management System) 기반으로 운영될 콘텐츠 마켓플레이스(Content Marketplace)에서 IP의 생성, 변경, 운영, 과금, 변조 등 다양한 권리관계에 대한 관리와 커뮤니티 서비스는 콘텐츠 유통을 위한 플랫폼 운영자에게 높은 부가가치를 생성시킬 것이다.

 

 

 

 

이제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만약 내가 보고 있는 어떤 제품을 친구에게 선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한 행위처럼 느껴지지만 산업적으로는 좀 더 복잡해진다. 먼저 물류 측면에서 보면, 나는 친구에게 굳이 물건을 만들어서 보낼 필요는 없다. 단지 설계도면만 보내주면 알아서 출력할 것이다. 혹은 친구 프린터로 직접 출력을 시킬 수도 있다. 일단 공정 간 물류(Inbound Logistics)에 대한 비용이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된다. 특히 오프쇼어링(offshoring, 국내 기업이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생산, 용역, 일자리 등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물류비용 및 해외 지사 운영비용에 상당한 혜택이 있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고객의 가정 내 프린터로 완성품을 출력 생산할 경우 완제품 물류(Outbound Logistics)조차 최소화할 수 있다. 이를 수출이라고 봐야 하는가? 그렇다면 과세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 고민거리가 남아 있다.

 

 

생산 측면에서 보면 우선 입지 이슈가 180도 바뀐다. 과거 생산입지는 교통망, 저임금 인력 확보 여부, 부지조성 비용 등 공급자 중심의 요소를 주로 고려했다. 하지만 프린팅 생산은 다단계의 조립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저공해 생산설비다. 대신 간단한 설계변경으로 고객의 즉각적인 구매충동에 대응할 수 있으며 다양한 고객니즈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한 생산력을 자랑한다. 이때 생산설비는 여전히 도심 외곽에 있을 필요가 없다. 도심 내에서 고객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도심형공장(Urban Factory)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마치 킨코스 같은 전문 복사가게가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출력생산이라는 방식의 특징상 복잡한 조립공정을 갖출 필요가 없다. 생산 공정을 관리하기 위한 전문적 기술과 추가적인 기계설비도 필요하지 않다.

 

제품의 디자인과 설계 측면에서 보면 반드시 완제품을 고객에게 전달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완벽하게 보호되는 제품디자인 혹은 기획 설계도면보다는 고객의 참여에 의해 스스로가 제작자가 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는 제품의 유통이 아닌 콘텐츠의 유통과 아주 유사한 비즈니스 환경이 만들어질 것임을 의미한다. 3D프린터가 향후 각 가정에 보급되면 고객은 스스로 자가 생산 설비를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고객전략 역시 큰 변화가 예상된다. 더 이상 소비자는 피동적인 수요처가 아니며 스스로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대량 생산 능력보다는 설계의 창의성과 아이디어의 차별성이 부가가치를 만드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복잡한 생산공정관리 능력과 자본재 기반의 생산설비가 핵심 경쟁력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는 과거 교환경제 체계가 만들어진 이후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시장경제의 기본 구조가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비자는 생산자와 구별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고객전략에 많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유경제기반은 매우 매력적인 시장재편의 모델이 될 것이다.

 

 

산업 가치사슬 측면에서의 변화는 국가적 이슈다. (1)R&D/기획/디자인-(2)부품화-(3)제조/조립-(4)유통-(5)부가서비스 등으로 대별되는 순차적 산업가치사슬이 (1)-(4)-(5)-(2)-(3)으로 바뀌게 된다. 디자인된 설계파일은 곧바로 시장에서 유통되며 이에 맞물려 부가가치 서비스가 생성된다. 이후 대규모의 물량이 확보되는 상품군에 대해 부품화 및 조립과정이 연결된다. 즉 설계파일의 생성과 유통이 산업가치사슬의 핵심이 되며 대부분의 부가가치가 이 과정에서 이뤄질 것이다.

 

초인의 강력한 무기, 그리고 한계

 

인간의 행위에 대해창조란 말을 사용한 것은 인류 역사상 채 200년도 되지 않았다. 사실 19세기 이전에창조의 주체는 오직이었다. 창조주인 신과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를 상징하던창조라는 단어가 19세기 말 니체에 의해 인간에게 부여됐다. 성서주의에서 피조물에 불가하던 인간이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부터 가치를 창조하는 주체로 당당하게 정의된 것이다.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은 초인(Übermensch)으로서 인간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가치의 변천, 그것은 곧 창조하는 자들의 변천이기도 하다. 창조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자는 끊임없이 파괴를 하게 마련이니…. 먼저 파괴자가 돼 가치들을 부숴버려야 한다.”

 

니체가 정의하는 초인을 현대의 기술적 의미로 굳이 해석한다면파괴적 기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더불어 파괴적 기술이란 궁극적으로는 가치를 변천시키는 모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3D프린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단편적인 요소 기술의 발전이 아닌 사회적 가치의 변천을 이끄는 융합적 기술 측면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NASA가 매번 왕복선을 통해 우주정거장에 부품을 제공하는 방법을 개선하기 위해 3D프린팅 기술의 적용을 검토한 이후 데이터의 흐름이 곧 제품의 흐름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됐다. 과거 수십 년간 학자들이 연구했던 수많은 물류 최적화 모델이 무색해진다. 기술모델 자체는 단순했지만 그 가치는 파괴적이라 할 수 있다. 특정 기술이 가치의 변천을 이끌기 위해서는 기존 가치형성 체계를 파괴시킬 수준으로 혁신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3D프린팅은 기술의 단조로움에 비추어 매우 파괴적 성향을 갖추고 있다. 복잡한 생산과정을 단순화하고 고도화한 산업 가치사슬을 해체시키기에 충분한 효용성을 지녔다. 이제 누구든지 생산자가 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강력한 장벽으로 작동했던 제조역량을 단순 서비스 역량으로 전락시킬 정도다. 이제 우리는 제조를 서비스하는(Manufacturing as a Service) 경제구조로 들어가고 있으며 순수한 의미의 대량 맞춤생산이 실현되는 시점에 와 있다.

 

가치의 변천을 이끄는 또 하나의 동인은 사회 전체가 쉽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활용성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3D프린팅은 각 개인들이 활용하는 다양한 컴퓨팅 기술 및 디바이스의 생태계에 쉽게 편입된다. 3D프린팅을 활용하는 개인들은 가치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될 수 있으며 이는 가치창출력이 상호작용에 의해 극대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기술, 정책, 참여자의 합종연횡(合從連衡)이 이뤄지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CPS, HCI 등 다양한 정보통신기술이 논의되고 있으며 이들 간의 연결고리 안에 분명 3D프린팅이 존재한다. 로봇공학(Robotics), 바이오 분야에서도 프린팅 기술의 적용을 고민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체계의 등장이 바로 눈앞에 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극복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프린터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사용되는 소재의 다변화와 지능화가 필요하다. 제품의 품질이 단지 형상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제품을 복제 또는 복원한다는 것은 그 물성까지 동일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소재의 개발, 더 나아가 소재의 지능화에 대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더욱 어려움이 있다. 의료 등과 같은 허가제 기반의 산업에서는 제도에 대한 정비가 따르지 않으면 여전히 적용상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콘텐츠의 보호와 유통상의 안정적 상거래 구조를 짜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IP가 단순한 형상정보뿐만 아니라 생산정보를 함께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IP의 침해는 생산기술의 도난을 의미한다. 처음 접하게 되는 생산-소비 생태계에서 보호와 유통이 균형감 있게 유지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사업가들의 중요한 숙제임이 분명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3D프린팅은 산업지도의 재편을 야기할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산업지도 재편 노력에 대한 우리의 효과적 대응 전략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는 마치 지구 온난화로 농산물의 주산지가 바뀌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서서히 변해가는 산업지도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정부3.0’ ‘인더스트리4.0’ 등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정의하는 여러 단어들이 나오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에는 니체가 주장했듯자율의지’ ‘자율적 인간이 있다. 스스로 참여하고 창조하며 유통하는 전 과정에 집단뿐만 아니라 사람 한 명 한 명의 자율적 노력을 이끄는 동인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는 초인의 무기를 가지게 될 것 같다. 이제 우리가 창의적 생산자로서 스스로 초인이 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변혁적 산업체계를 맞이할 것이다.

 

윤영진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 yjyoon@smu.ac.kr

윤영진 교수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더앤더슨코리아 시니어컨설턴트, 베어링포인트코리아 이사, 삼정KPMG회계법인 파트너 상무이사로 근무했고 현재 상명대 경영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식경제부장관상(2009),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2014) 등을 수상한 바 있다.

  • 윤영진 | - (현)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
    - 아더앤더슨코리아 시니어 컨설턴트
    - 베어링포인트코리아 이사
    - 삼정KPMG회계법인 파트너 상무이사
    yiyoon@s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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