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야크 성장 전략

힘들 때 찾은 히말라야에서 본 ‘검은 야크‘ 그 야생의 DNA가 ‘빛‘을 던졌다

170호 (2015년 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전략

 

블랙야크는 정통 산악 브랜드 이미지와 연계해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침으로써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강화했다. 이는 통합적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블랙야크를 아웃도어 업계 톱 플레이어로 성장시켰다. 한 박자 빠른 시장선도 전략, 확고한 브랜드 DNA와 일관된 커뮤니케이션, 체험적 참여 전략이 블랙야크의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지혜(가톨릭대 영문학과 4학년) 씨와 이정완(경희대 경제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국내 아웃도어 업계 부동의 1위는 미국 기업 노스페이스였다. 10년 이상 압도적인 점유율로 한국 아웃도어 업계를 주도했다. 특히 노스페이스 패딩은 청소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한때교복으로까지 불렸다. 영원할 것만 같던 노스페이스의 아성을 위협하는 기업이 등장했다. 42년 전통의 국내 토종 기업블랙야크가 그 주인공이다.

 

 

블랙야크의 모태는 1973년 강태선 회장이 서울 종로5가 골목 귀퉁이에 만든동진이다. 33㎡ 남짓한 공장과 10㎡가 채 안 되는 판매 공간에서 시작해 1995년 블랙야크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브랜드 탄생 20년 만에 블랙야크 매장 수는 현재 국내와 중국에서만 580여 개에 이른다. 국내에서 1위 자리를 위협하는 강자로 성장한 블랙야크는 점차 글로벌 브랜드로의 도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2년에는 네팔에 매장을 열었다. ‘히말라얀 오리지널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에 맞게 아웃도어의 본거지에 깃발을 꽂으며 글로벌 브랜드의 발판을 마련한 것. 최근에는 미국 아웃도어 기업나우 1500만 달러( 162억 원)에 인수해 화제를 모았다. 블랙야크는 투자와 신규 개발을 지속해 2020년에는 매출 4조 원, ‘글로벌 넘버원아웃도어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런 성장의 배경에는 일관된 브랜드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블랙야크는 아웃도어의 대중화에 집중해 온 경쟁 기업과는 달리정통 산악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고수하고 강화했다. 2010년 이후 배우 조인성 씨를 모델로 해 히말라야에서 찍은 광고가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이는 그전부터 쌓아온 브랜드 아이덴티티(BI)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브랜드 구축을 중심으로 한 블랙야크의 성장 전략을 DBR이 집중분석했다.

 

 

 

위기를 기회로

 

1980년대 경제개발로 등산인구가 늘어나면서 가게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그 와중에 1982년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됐다. ‘무박산행(無泊山行)’ 바람이 불었다. 거기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산악회가 기름을 부었다. 너도나도 코펠이나 배낭, 텐트 등 등산용품을 찾았다. 1986년 아시아경기와 1988년 서울올림픽 특수는 그 정점이었다. 등산용품 전문점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폭발적인 등산인구의 증가는 경쟁 업체의 수를 크게 늘렸다. 바야흐로 아웃도어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불암산, 북한산, 도봉산을 오가는 버스의 주요 골목인 종로5가의 동진레저 주변은 어느새 전문 등산장비 거리가 됐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태동기였다.

 

 

하지만 경영 환경은 또다시 급변했다. 야간 통행금지라는 정부 정책으로 성장했던 회사는 취사야영 전면금지로 직격탄을 맞았다. 등산인구가 증가하자 산에서 먹고 마시는 일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자연이 크게 훼손되자 1991년 정부 차원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유는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등산용품 업계는 치명상을 입었다. 당시 등산용품업계의 70% 이상이 문을 닫았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자연히 시간적 여유가 늘었다. 강 회장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산을 다시 올랐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시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회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강 회장은 오랜 꿈이었던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하기로 했다. 엄홍길 대장과 함께 원정을 떠났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묵묵히 산을 오르며 강 회장은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당국의 금지조치가 해제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산이 좋아 등산용품 전문 매장을 열었는데 갑자기 업종을 변경하기도 싫었다. 그때 문득 입고 있던 등산복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등산복에 패션을 접목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등산복은 산악인들만 사용하던 전문 장비로 인식되던 시대였다. 또 당시 등산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기능이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강 회장은 이 점을 공략하기로 했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생각이었다. 1990년대는 등반 시 조난 상태에서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원색 디자인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시중에는 온통 빨강이나 노랑 등 눈부실 정도의 원색 등산복뿐이었다. 검은색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강 회장은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심플하고 깔끔한 검은색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계획을 세웠다.

 

 

아이디어가 꼬리를 물고 떠오르던 그 순간 묵묵히 등반장비를 지고 가던 야크의 검은 털이 햇빛을 받아 빛났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블랙야크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히말라야의 척박하고 험한 자연 속에서 살며 인간이 산을 오를 때 도움을 주는야크는 기존 동진이 추구하는 강인한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진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산에서 해법을 찾은 강 회장은 2년의 연구 끝에블랙야크라는 브랜드의 등산복을 출시했다. 로고에서도 블랙야크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고산지대에 사는 강인한 야크의 이미지를 가운데에 놓고 검정, 빨강, 흰색을 조합해 독창성을 강조하고 산과의 연계성을 부각했다.

 

 

처음 진입하는 등산의류 시장인 만큼블랙야크라는 등산복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신제품 마케팅의 방점을 뒀다. 새 제품에 대한 기대는 컸지만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검은색이 소비자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얻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매출에 대한 기대는 한 수 접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블랙야크의 검은색 등산복은 예상외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축소 효과가 있는 검은색이 산에서도 날씬해 보이길 원하는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것이다. 산뜻한 디자인과 뛰어난 기능성, 심플한 색은 입소문을 타면서 매출이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동안 등산복의 주요 고객이었던 남성은 물론 몸매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도 검은색 등산복을 사기 시작했다. 초기 반응이 예상보다 좋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홍보활동에도 열을 올렸다. ‘산에도 패션시대가 온다는 광고 문구를 내걸었다.

 

 

동진으로서는 회생의 신호탄이었다. 다음 해인 1996,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블랙야크 상표등록을 완료하고 검은색 등산복을 대량으로 출시했다. 내놓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매장에 걸린 등산복의 색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강렬한 원색이던 것이 점점 검은색 일색이 됐다. 다른 브랜드에서도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검은색 브랜드를 대량으로 쏟아냈기 때문이다. 당시 전체 등산복 중 절반 이상이 검은색일 정도였다.

 

 

등산인구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1990년대 말이 되자 해외 아웃도어 의류 기업들도 한국에 진출했다. 시장이 팽창하면서 여러 브랜드들이 난립했다. 동진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등산용품 생산을 줄이고 등산의류 비중을 더욱 확대했다. 패션과 기능성을 강조해 인쇄매체 위주로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치며 외국 브랜드에 밀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제품 라인업도 조금씩 확대했다. 외환위기 때는 실직자뿐 아니라 배우자들이 함께 산을 찾으면서 여성 고객 비중이 늘어나자 등산복의 여성라인 비중을 높였다. 산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가벼운 재킷을 포함해 황적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을 입힌 등산복을 내놓으며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시장에서 반응을 얻자 삼성, 현대 등 주요 기업에서도 동진에 블랙야크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블랙야크라는 브랜드가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가자 소비자들은동진이라는 회사 이름 대신블랙야크라는 브랜드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동진에서 블랙야크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2005 970억 원이었던 매출액은 2010 5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블랙야크가 아웃도어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자 동진은 2010년 블랙야크 브랜드를 분사하기로 했다. 이런 브랜드의 독립은 그간 블랙야크가 구축해왔던 익스트림 등산용품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마운티아와 카리모어라는 브랜드들도 같이 내놓고 있었는데 차별화와 고급화를 위해 블랙야크를 동진레저에서 독립시켰다.

 

 

진정성으로 승부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블랙야크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면서 회사는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가장 대표적인 게 TV광고다. 블랙야크는 2005년부터는 TV광고를 시작했다. ‘사람이 산이다’ ‘야크는 생명이다’ ‘야크와의 동행등 캠페인성 광고를 연달아 내보냈다. 기능성 아웃도어 제품을 강조한 내용이 많았다. 외국인 모델과 여성 모델을 적극적으로 기용했고 다양한 레포츠에 활용된다는 것을 전달하는 데 방점을 맞췄다. 이런 광고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블랙야크는 2011년 변화를 시도한다. 당시 주류였던 화려하고 감각적인 영상을 내보내는 대신, 산으로 가기로 결정한 것. 블랙야크 분사와 함께 좀 더 강력한 이미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 이 같은 광고 계획을 발표하기까지 고민도 많았다.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인데다 짧은 시간에 원하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다. 촬영장소를 어디로 할지, 모델은 누구를 할지, 어떤 콘셉트로 가야 할지 등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다. 기업의 정체성과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광고가 필요했다. 몇 달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히말라야였다. 블랙야크가 탄생했던 곳,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2011년 배우 조인성 씨와 함께 히말라야로 떠났다.

 

 

단지 산의 풍광만 담아오기 위해서라면 경쟁 아웃도어 기업들처럼 뉴질랜드나 미국의 산으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돈이 훨씬 많이 드는 히말라야로 향했다. 브랜드의 진정성과 차별성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립 때부터 히말라얀 오리지널을 표방해 온 브랜드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정서를 표현하기에 히말라야가 아닌 다른 곳을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말이 히말라야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인원이 복잡한 절차를 거쳐 네팔까지 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네팔에서부터 엄청난 무게의 카메라와 장비를 들고 다시 해발 4000m의 고산지대까지 올라야 하는 작업이었다. 한라산을 두 번 올라가야 하는 높이였다.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고산병으로 고생했다. 일부 스태프들은 약을 먹어가면서 억지로 산을 올랐다. 산이다 보니 기후를 예측할 수도 없었다. 푸른 하늘이 금세 검은 구름으로 뒤덮였다. 이 때문에 다른 촬영 때마다 훨씬 긴장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조인성의 매력에다 광고 콘티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TV광고를 시작하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장년층에게 어필했는데 광고 이후 젊은이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블랙야크가 공유하고자 하는 감성과 정체성이 광고를 통해 제대로 전달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회사 측은 평가했다. 이듬해부터는 매년 히말라야로 향했다. 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광고 촬영 때마다 갈 수 없어 1년에 한 번 가서 4∼5편씩 찍었다. 매년 연말이나 연초에 가서 광고를 찍어오면 이를 봄여름 시즌, 가을겨울 시즌에 맞춰 방송에 내보냈다.

 

 

굳이 아웃도어 광고를 히말라야에서 찍는 것을 두고 블랙야크 관계자는 시내에서 시속 1000㎞로 운전할 일이 없음에도 F1용 고성능 슈퍼카를 꿈꾸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대중들은 최고에 대한 갈망이 있는데 이것을 끄집어내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블랙야크 측은품질이 낮은 옷을 입고는 절대 히말라야 같은 고산지대를 오를 수 없다. 히말라야를 등반할 때 입었던 옷이라면 일상생활을 하는 장소 어느 곳에서도 입을 수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오은선 대장 후원

 

블랙야크는 2008년 여성 산악인 오은선 대장을 공식 후원했다. 그동안 엄홍길 대장, 고 박영석 대장 등 유명 산악인들을 대상으로 해오던 비공식적 후원을 공식화하기로 한 것. 오 대장 후원은 산악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마케팅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이뤄졌다. 또 스포츠 마케팅이 본격 붐이 이는 가운데 아웃도어 업체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할 필요도 있었다. 강 회장은 경쟁사처럼 남성 산악인을 후원하는 대신 차별화를 위해 차근차근 세계적인 기록을 밟아가는 국내 여성 산악인을 후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모두가 강 회장의 아이디어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산악계는 남성 중심의 문화였다. 그래서 비공식·공식적인 후원 모두 남성 산악인 위주였다. 당시 오 대장의 이름 석자를 아는 이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 대장을 후원한다고 하자 당장 사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마케팅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라며 회의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 돈으로 차라리 가수 이효리 씨를 모델로 쓰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다른 경쟁기업처럼 스타 마케팅을 하기보다는 브랜드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산악인을 고른 것. 뚜렷한 전략 없이 인지도가 높은 스타를 기용했다 되레에 방점을 둔 기존 BI를 해치거나 또 자사 대신 스타를 알리는 효과만 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블랙야크의 후원을 받은 오 대장은 연속해서 무산소 등정에 성공하며 여성 산악인으로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오 대장이 히말라야 8000m 13좌 등정에 성공하자 강 회장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안나푸르나를 등정하면 여성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는 오 대장의 기록을 함께하자는 것이었다. 강 회장이 한 방송사와 함께 최고 기록을 위한 안나푸르나 등정을 동행하기로 했다. 그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안나푸르나 등반 여정을 담은 적은 있지만 HD 생중계로 이 과정을 보도하는 것은 기존에 없던 기획이었다. 전문 산악인이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 등정에 성공하는 것만 해도 큰 도전인 상황에서 방송 카메라맨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그 여정을 함께한다는 것은 이전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가기 직전까지도 고민이 많았다. 조직 내부에서도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중간에 무산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줄을 이었다. 강 회장 스스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강 회장은 계획을 세우고 바로 움직였다. 1년 동안 등정 여정을 계획하고 전문 등반교육을 이수했다. 틈틈이 체력훈련도 했다. 아무리 산을 좋아하고 산을 자주 탔다고 해도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에 아무리 피곤해도 체력단련을 멈추지 않았다. 막상 산을 오르자 스태프와 직원의 안전을 챙기는 것이 큰 과제였다. 혹시 누군가가 다치면 블랙야크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이어진 준비기간과 현장에서의 세심한 과정은 블랙야크 팀을 무사히 베이스캠프까지 이끌었다. 오 대장은 결국 여성 최초의 기록을 일궈내며 안나푸르나 정상에 블랙야크 깃발을 꽂았다. 이는 세계적인 기록1 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블랙야크는 연일 등산애호가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이후 블랙야크는 산악인 마케팅에 더욱 주력했다. 블랙야크의 후원을 등에 업은 산악인들이 잇따라 어려운 산을 올랐고 이때마다 그들은 블랙야크 깃발을 산 정상에 꽂았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블랙야크는 전문가들이 입는 옷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블랙야크 제품은 고어텍스 소재를 썼기 때문에 좋습니다” “블랙야크는 옷이 가볍고 신축성이 좋습니다라는 식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오랜 세월 지속해서 산악인을 후원해온 것은 강 회장의 철학이기도 하고 마케팅 전략이기도 했다. 이는 또 제품 개발전략의 일환이기도 했다. 등산 제품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전문가인 산악인들이다. 산악인 후원을 통해 블랙야크는 자사 제품에 대해 정확하고 세심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 블랙야크는 지적받은 부분을 수정해 제품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높였다.

 

블랙야크는 산이다

 

2010년 이후 블랙야크라는 이름의 법인을 새로 설립했고 마케팅에 주력했다. 특히 탄탄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블랙야크는 기업의 다양한 활동의 초점을 산에 맞췄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이 명산 오르기 프로그램이다.

 

 

블랙야크는 2010년 산 오르기 프로그램명산14’를 시작했다. 유명 산악인인 오은선 대장과 함께 일반인들이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북한산, 덕유산 등 국내 대표적인 명산 14곳을 오르는 프로그램이었다. 생각보다 반응은 뜨거웠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여러 등산인이 지원해 지원단을 적정 수에 맞게 꾸리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자 이듬해명산40 도전단을 꾸렸다. 프로그램도 더 체계화했다.

 

 

명산 40곳을 다 오르면 블랙야크에서 완주증을 수여했다. 완주증에는 완주순서에 따라 고유번호를 만들었다. 또 완주자 가운데 추첨을 통해 히말라야, 일본, 제주 등 국내외 유명 산 트래킹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상품도 내걸었다. 단순히 완주증과 산 트래킹 외에도 도전자들이 1m씩 오를 때마다 1원씩 적립해 블랙야크에서 사회복지재단 등에 전달하도록 했다. 등산을 통해 건강도 챙기고, 완주증을 얻어 보람도 얻고, 게다가 봉사활동까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지난해는명산 100’을 시작했다. 현재 명산100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만 8300명을 넘어섰다.

 

 

블랙야크는 이 같은 활동을 체계화하기 위해 2012년에는 마운틴북(www.mountainbook.co.kr)이라는 웹사이트도 개설했다. 국내 최초로 만든 산악 전문 웹사이트다. 이 사이트가 개설된 후 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마운틴북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직접적인 제품 홍보가 이뤄지지 않는다. 다만 간접적으로 블랙야크의 고객이 되도록 유도했다. 우선 이곳에서 명산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명산100을 신청하면 블랙야크의 문구가 새겨진 수건을 주고 포인트를 쌓으면 블랙야크 매장에서 쓸 수 있는 카드도 나눠준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명산을 오른 것을 인증하면 그 산의 높이만큼 그린카드에 포인트가 적립된다.

 

 

산악 전문 웹사이트가 개설되자 블랙야크 기존 고객과 등산인뿐만 아니라 등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마운틴북을 찾기 시작했다. 국내외 다양한 산이나 트래킹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혹은 산에 대한 관심으로 이 웹사이트를 찾은 사람은 명산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런 식으로블랙야크라는 이미지를 산과 연결시켰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자들이 다른 브랜드가 아닌 블랙야크를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사회공헌 활동을 할 때에도 단순히 돈을 기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산행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했다. 경제적 자립이 필요한 쪽방촌 주민에게 암벽교육을 하는 등 블랙야크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돕고 있다.

  

 

중국 만리장성, 블랙야크도 지킵니다

 

이 같은 전략은 중국에서도 계속됐다. 국내에 매장이 하나씩 늘어나자 블랙야크는 1998년 중국 진출을 선언했다. 외환위기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존 투자계획마저 철회하던 상황에서 해외 진출 선언은 충격을 줬다. 평소 강 회장의 정책을 늘 지지하던 지인들도 넌지시 다시 생각해보라는 의견을 전했고 사내에서는 극렬한 반대가 있었다. 당시 한국의 경제사정이 어려운 것은 물론 중국은 아직까지 아웃도어 시장이라는 개념조차 전무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분간 수익은커녕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기약 없는 투자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 회장은 적절하게 대응하면 오히려 경쟁 기업보다 먼저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장이 생기고 난 후 진출하면 리스크가 적을 것 같지만 이와 반대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시장성이 있다는 판단이 서면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이 자금력을 앞세워 너도나도 진출할 것이 뻔한데 그때가 되면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 19981, 베이징에 블랙야크 1호점이 개설됐다. 중국 최초로 생긴 아웃도어 전문매장이었다.

 

 

처음에는 중국 외상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도 많았다. 중국에서는 정해진 날짜에 물건 값을 주는 게 아니라 가져간 제품이 어느 정도 이상 팔려야만 외상값을 갚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소매상인이 도매로 물건을 가져갔는데 한 달이 지나도 돈을 주지 않아 블랙야크 직원이 수금을 하러 갔다. 그런데 돈을 주기는커녕 오히려팔려야 돈을 주지라며 블랙야크 직원을 타박했다. 이런 관행을 모르고 상인들이 제품을 달라는 대로 줬다가 돈을 회수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거래 횟수가 적은 곳에는 물량을 적게 주고, 거래 횟수가 늘어나고 대금을 잘 지급하는 업체에는 원하는 물량을 공급해주는 식으로 현지 관행에 대응했다. 중국 매장에서 자리를 잡아가자 서서히 외상 관행도 바꿨다. 일종의 주문생산 방식으로 제품 100개를 주문하려면 40∼50%의 선수금을 미리 지불하도록 했다. 이전에는 없던 문화였다. 안정적인 현금흐름 관리를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블랙야크의 고급 이미지를 심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블랙야크는 또만리장성 보호 캠페인을 벌였다. 2002년부터 시작한 이 캠페인은 중국 내에서 블랙야크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중국의 대표적 관광지인 만리장성은 중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중국에는죽기 전에 만리장성에 꼭 한 번은 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은 만리장성에 큰 애정을 갖고 있다. 블랙야크는 이를 공략하기로 했다. 그리고 블랙야크가 만리장성을 지킨다라는 광고 문구를 생각해냈다. 광고가 나가자 반응이 굉장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부정적인 피드백이 많았다. 외국에서 온 중소기업이 무슨 권리로 우리나라의 보물을 지키느냐는 여론이 들끓었다. 매장에 찾아와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강 회장은 그 반응을 보고 새 광고를 내놓았다. ‘블랙야크도 만리장성을 지킨다로 한 글자만 바꿨다. 그러자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외국 기업의 만리장성 보호 노력은 큰 관심을 모았고 여러 차례 현지 언론에 노출되며 인지도가 크게 향상됐다. 이를 통해 블랙야크는 만리장성을 지키는 좋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블랙야크는 돈을 벌기 위해 온 외국 기업이란 이미지 대신 중국의 문화유산을 지켜주는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덕분에 중국에서도 나날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내 블랙야크 매장 수만 260개에 이른다. 또 중국 전문 산악인이 선호하는 브랜드 1, 해외 아웃도어 브랜드 판매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브랜드 정체성의 내재화

 

블랙야크가 이처럼 산과 관련해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데는 직원들의 힘이 컸다. 회장을 포함해 전 직원 모두가 등산 전문가로 길러진다. 강 회장은 블랙야크에 입사한 직원은 한 명도 빠짐없이 6주 과정의 한국 등산학교를 이수하도록 했다. 등산학교 졸업 이후에도 블랙야크 자체 등산학교에서 일정 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 외에도 시간이 나면 회장과 직원들은 수시로 동반 산행을 한다. 각종 산악대회나 암벽 익스트림 대회 등에 참석하면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근무한 것으로 인정해 주기도 하며 회사에서 매년 시행하는 신년 산행에는 가족과 친구를 초대할 수도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지원한다. 매년 11일에는 본사 임직원을 비롯해 대리점 점주 등이 모여 오대산, 함박산, 계방산 등 국내 주요 산에 오른다. 새해 첫 일출을 바라보며 지난해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한 해의 계획과 다짐을 나누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한라산 등반 프로그램도 한다. 사내 신청자 20명 정도가 산에 가서 훈련을 한다. 한라산의 소복이 쌓인 눈 속에 텐트를 마련하고 잠을 잔다. 신입이든 경력이든 직원 대부분은 이 코스를 경험한다. 국내 최고의 전문 강사진을 데려와 보행법, 배낭 꾸리기 등 기초 일반 등산부터 산행 전반을 아우르는 이론과 실기교육도 이뤄진다.

 

 

이처럼 블랙야크 직원이라면 누구든지 산과 떨어져 살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아웃도어 의류와 제품을 파는 회사인데 전 직원이 전문 산악인이 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하다는 강 회장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무작정 제품의 특장점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등반을 통해 전 직원이 자사 장비와 의류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직원들이 제품을 직접 착용하고 산을 오르다 보면 등산복이나 장비의 개선 아이디어도 쉽게 낼 수 있다. 이렇게 디자인팀, 제품개발팀 외의 다른 부서 직원들까지도 혁신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블랙야크는 직원뿐만 아니라 대리점주, 백화점 직원 등 블랙야크 제품을 파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웃도어 DNA를 심기 위해서 노력한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산을 사랑하고, 또 제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소비자에게 진정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수업이나 프로그램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전문 강사를 불러야 하는데다 필요한 장비도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때는 안전을 위해 개인과 장비에 들어야 하는 보험료만도 엄청나다. 김준현 블랙야크 이사는그럼에도 이런 일들을 하는 이유는 블랙야크 제품을 파는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은 자연히 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졌다. 직원들은 블랙야크 제품에 대해 전문가가 됐다. 어떤 장점이 있으며, 소재가 무엇이며, 어떤 활동을 할 때 입으면 좋은지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막히지 않고 술술 설명한다. 직원들부터 블랙야크의 가장 충실한 고객으로 만드는 전략이었다.

 

 

 

성공 요인 분석 및 과제

 

블랙야크의 입지전적 성공 요인을 브랜드 전략의 관점에서 몇 가지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세상을 읽다, 그리고 이끌다 (한 박자 빠른 시장선도 전략)

 

전략을 흔히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한다. 전략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전략 실행의 시기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따라서 시장 변화를 읽어내는 감수성, 작지만 중요한 변화를 골라내는 판단력, 새로운 기회를 일단 포착하면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결단력을 기르는 것은 전략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등산용품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시기, 잘되던 의류사업을 접고 등산용품에 뛰어든 것이 80년대 여러 시장상황을 맞아 호황을 거뒀고, 외환위기를 맞아 경제사정이 극도로 나빠졌을 때 아웃도어의 불모지였던 중국 시장을 개척했다. 이는 트렌드를 읽는 경영인으로서의 안목과 감각, 한 박자 빨리 실행하는 전략적 결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좀 더 눈여겨볼 대목은 단지 시장의 트랜드를 좇아가는 것(market-driven)이 아니라 이를 선도해 나가는(market-driving) 능력이 발휘됐다는 점이다. 특히 취사야영금지로 초래된 등산용품 시장의 위기 속에서 패션 등산복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낸 사례는 큰 울림을 준다.

 

 

최근 여러 각도에서 논의되고 있는 급진적 차별화(radical differentiation) 전략 중 하나는 기존 카테고리의 의미를 새롭게 변화시키거나 재해석함으로써 타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다. 이를 범주적 차별화(categorical differentiation)라 부르기도 한다. 핑크색 일색에 남성복을 줄여놓은 듯한 여성 요가복이 판을 치던 시장에 패션과 즐거운 문화체험을 덧붙여 블루오션을 창출한 룰루레몬(Lululemon)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평상시에도 편안한 룰루레몬 운동복을 입고 다닌다. 룰루레몬도 스스로를요가풍 옷(Yoga-Inspired Apparel)’이라 정의하고 있다.

 

 

 

블랙야크 역시 단순한 기능적 등산복을 넘어 일상생활에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기능성과 패션을 동시에 추구했다. 한 미국 교포가 수십 년 만에 한국에 와서 아웃도어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한국에 전문 산악인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말해 웃은 적이 있다. 이렇듯 아웃도어 등산복의 패션화는 등산복의 개념을 재정의함으로써 여성을 포함한 일반인으로 고객의 저변을 대폭 확대시킨 결과를 낳았다. 아마도 이러한 혜안은 상황의 절실함이나 시장의 밑바닥부터 얻은 생생한 경험, 자신의 업에 대한 뚜렷한 철학 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2. 브랜드에 철학을 불어넣다 (확고한 브랜드 DNA와 일관된 커뮤니케이션)

 

브랜드는 살아 있는 생물(生物)과 같아서 철학이 없는 브랜드는 죽은 브랜드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이유로 브랜드를 아이덴티티 마커(identity marker)라고 부르기도 한다. 브랜드라는 그릇을 어떤 아이덴티티(즉 철학이나 DNA)로 채울 것인지를 확실하게 정하지 않으면 이후의 모든 전략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나 다름없다. 블랙야크의 브랜드 철학은 한마디로이다. 그것도 그냥 산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봉우리가 모여 있는히말라야의 산이다. 히말라야의 산이 의미하는 상징은 여러 가지를 포함할 것이다. 도전, 인내, 인생, 겸손, 신중, 힘의 안배 등. 강태선 회장이 인생도, 경영도 산을 타듯이 하라며 전 직원을 등산학교에 보내는 것도 브랜드 철학을 전사적으로 내재화하려는 노력이다. 인사이드아웃(inside-out)이라는 브랜드 원칙이 말해주듯 브랜드 철학은 전 직원이 공유하고 체화해 기업문화로 자리 잡아야 전략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간다. 그래야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된다. 실제로 블랙야크의철학은 전략의 곳곳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

 

 

먼저, 브랜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브랜드명과 로고는 브랜드 철학을 보여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광고 못지않게 중요하다. 블랙야크야말로히말라얀 오리지널의 브랜드 철학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최고의 상징물이다. 당시 등산복 색상으로는 파격적이었던 심플하고 깔끔한 블랙과 히말라야의 척박한 산행에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믿음직한 야크의 결합, 이것보다 더 극적으로 브랜드 철학을 보여주는 단어가 있을까? 둘째, 광고 전략에서도사람이 산이다’ ‘야크는 생명이다’ 등을 주제로 일관된 스토리를 제시했다. 더욱이 히말라야 현지에서 촬영된 광고의 모습은 브랜드 철학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셋째, 엄홍길, 오은선 등 전문 산악인을 적극적으로 후원함으로써철학의 핵심인 도전정신을 극명하게 전달했다. 이들 산악인은 직간접적으로 블랙야크의 브랜드 홍보대사(brand ambassador)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등산복 같이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이들은 핵심적인 선도고객(lead customers)이었다. 이들 덕분에 기능 위주의 소구 없이도 신뢰도를 제고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전문 산악인이 히말라야에서 입는 옷이라면 훌륭하지 않을까?’), 실제로 상품개발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제공받기도 했다. 블랙야크의 통합 브랜드 커뮤니케이션(integrated brand communications)은 브랜드 관리의 제1원칙이라 할 수 있는브랜드 철학을 위주로 한 일관성(consistency)’을 제대로 지켰다.

 

 

3. 시대에 맞는 전략으로 브랜드를 키우다 (체험적 참여(engagement) 전략)

 

소비자의 힘이 커진 오늘날의 시장에서는 더 이상 기업의 일방적인 전략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물론 브랜드의 씨앗은 인사이드아웃으로 시작되지만 진화과정에서는 브랜드를 둘러싼 이해관계자(stake-holders)들의 다면적인 상호작용과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따라서 쏟아내기식 커뮤니케이션이나 밀어내기식 영업이 점점 그 한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아웃도어와 같이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하게 관련된 제품군에서는 쌍방향 상호작용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브랜드와 관련된 체험적 경험을 쌓고 이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공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브랜드 성과를 높이는 체험적 참여(engagement) 마케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참여, 소통, 개방의 키워드가 마케팅에서도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블랙야크에서는 체험적 참여 전략을 크게 내부고객과 외부고객의 두 그룹으로 나눠 진행했다. 먼저 자제 직원, 대리점주, 백화점 직원 등을 대상으로 등산학교, 사내 암벽반 활동, 등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아웃도어 DNA를 체화함은 물론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와 소비자 응대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얻고 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마케팅을 위해서는 모든 직원, 심지어는 협력업체 직원까지도 브랜드 철학을 마음으로 느끼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한편명산 오르기 프로그램이라는 산행을 통해 일반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블랙야크와 접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혁신고객(innovators)이라 할 수 있는 전문 산악인과 대부분의 일반 고객을 이어주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s)로서 시장의 의견을 선도하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블랙야크는 마운틴북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지만 제품홍보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고객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산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러한 내외부적인 소통과정은 고객과의 교감을 통해 브랜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남겨진 과제

 

블랙야크의 출발점은 등산복이었지만 진화과정에서 패션과 디자인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개념의 등산복을 탄생시켰다. 경쟁 브랜드에 비해선 남성적인 이미지, 전문 산악인의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는 산이라는 핵심 아이덴티티가 새로운 제품라인에 긍정적 유출효과(spill-over effect)를 가져왔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제 시장이 점점 성숙기에서 포화기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향후 브랜드의 진화방향을 고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브랜드 오리진에 충실하면서 관련 시장을 개척할 것인가의 문제는 많은 브랜드, 특히 블랙야크와 같은 소위 컬트 브랜드들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고민이다. 영 아웃도어나 다양한 아웃도어(클라이밍, 바이크, 트레일 러닝, 트레킹, 골프 등)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등산복이라는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블랙야크가 이러한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시장에 뛰어든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요 경쟁 구도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인가? 모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이 감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닌가? 반대로 본래의 이미지에 충실한다면 브랜드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가? 등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어떤 방향으로 가든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블랙야크라는 브랜드는 컬트적인 요소가 많은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는 점이다. 이는 제품의 기능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와 관련된 문화 창출과 소비자의 경험관리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블랙야크가 지금까지 여러 체험적 참여 프로그램들을 통해 내·외부 고객에게 브랜드와 관련된 문화를 체험하고 공유하는 장을 제공했듯이 새로운 방향으로 브랜드를 진화시킬 때에는 어떠한 문화적 체험을 제공할 것인지를 매우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블랙야크가 추진해 오고 있는 글로벌화 역시 브랜드의 진화 문제와 매우 밀접하게 연동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출해 있는 중국이나 네팔에서는 어떤 브랜드 전략을 취할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각 시장의 특성과 전체 글로벌 시장의 포트폴리오를 고려함과 동시에 한국 시장에서의 전략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그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시장에서 거둔 외형적 성과만큼이나 커진 규모의 조직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마케팅 교과서에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브랜드를 구매한다는 말이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진정성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아마도 확고한 브랜드 철학을 지향하며 브랜드 철학에 근거한 마케팅을 통해 고객들이 구매하는 것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그들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철학을 얻는 것이라고 각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블랙야크는 성공적인 브랜드 주도형 마케팅 사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소통과 공유의 마케팅도 적절하게 사용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간의 성공에 큰 박수를 보내면서도 조심스러운 점은 과거의 성공이 미래 성장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의 덫(success trap)에 걸려 과거의 성공방정식에 안주한다거나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누구나 언제든 위험해질 수도 있는 격랑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된 시대에 걸맞은 변화된 전략으로 새로운 성공을 거두는 블랙야크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박기완 교수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통계학 석사 및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 관심 분야는 소비자 행동, 브랜드 관리, 마케팅 혁신 등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0호 플라스틱 순환경제 2021년 10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