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 건터 맥그래스 강연 및 토론

"프로세스 이끌어갈 자신이 없다면, ‘혁신’ 이야기조차 꺼내지 마라"

168호 (2015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혁신 

 

오늘날의 경쟁우위는단기적이고일시적일 수 있다. 일시적 경쟁우위를 계속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바로혁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통한 일시적 경쟁우위 창출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패한다. 혁신 프로세스의 제대로 된 가동을 위해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1) 혁신활동이 단편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일을 방지하라.

2) 혁신에 자원이 제대로 배분되도록 하라.

3) 고객 경험과 연결시키도록 노력하라.

이 같은 세 가지 유의점을 토대로 구체적인 혁신 3단계 방법론을 활용해야 한다.

첫째는발견이고, 둘째는인큐베이션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가속화.

 

2007 12월 세계 유력 경제경영잡지인 <포브스>지에노키아, 10억 명의 고객을 확보하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노키아 CEO였던 올리페카 칼라스부오의 사진이 표지에 실리기도 했다. 기사의 부제는누가 이 휴대폰 왕을 잡을 수 있을까였다. 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노키아가 어떻게 됐는지 모두 알고 있다. 2007년은 어떤 해였을까? 이때에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애플의 아이폰 출시였고,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상용화였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비즈니스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노키아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경쟁우위에 도취돼 있었고 함정에 빠져 있었다.”

 

‘동아비즈니스포럼 2014’ 둘째 날 기조연설자로 나선 리타 건터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너무도 유명한 노키아의 실패 사례로 강연을 시작했다. ‘지속가능한 경쟁우위의 원천을 갖고 있다고 믿는 기업들이 전성기에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혁신을 하지 못해 실패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2014 124, 1시간30분가량 진행된 맥그래스 교수의 강의와 이후 1시간 넘게 진행된 강진구 고려대 경영대 교수와의 지정 토론, 청중과의 질의응답 중 핵심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리타 건터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교수 (동아일보 박영대)

 

기조강연

혁신은 왜 성공하기 어려운가?

1. 단기적 경쟁우위 창출을 위한 혁신의 필요성

그동안 이 세상에 등장했던게임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아케이드 게임이 등장했다. 그 다음에 콘솔(게임전용 기기)게임이 등장해 전성시대를 맞았고 아케이드 게임의 시장점유율은 줄어들었다. 그 다음 범용 플랫폼이 시장의 중심이 됐다. 바로 PC. 게임을 사서 컴퓨터에 설치하기만 하면 게임을 마음대로 즐길 수 있게 됐다. 이미 집에서 쓰고 있는 PC에서 기존 콘솔게임에서 하던 많은 것들을 그대로 할 수 있게 됐다. 비즈니스 모델이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 모델도 또 사라져버렸다. 클라우드·모바일 기반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이 등장했고, 현재는 각 SNS 플랫폼별로 할 수 있는 게임이 따로 있다. 게임 시장의 변화사를 살펴보면 각각의 게임 방식이 각자 자신의경쟁우위의 전성기를 지나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시장에 출시되고, 한동안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누리게 된다. 경쟁사들이 앞서 나온 기술을 복제하거나 고객들이 싫증을 내면 경쟁우위는 잠식된다. 앞으로 더 많은 산업군에서 이런 양상이 펼쳐질 것이다.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라는 것 자체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는 뜻이다. 언제나 새로운경쟁우위(창출)의 파이프라인을 만들어가면서 기존의 경쟁우위가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경쟁우위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혁신 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실행해 가야 한다. 이를 절대 우연에 맡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오늘날의 경쟁우위는단기적일 수 있다는 것이며, 단기적 경쟁우위를 계속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사실 이걸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다수는 체계적 혁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을 컨설팅하면서, 공식석상이 아닌 좀 더 편안한 자리에서 개인적으로왜 당신 기업은 혁신에 어려움을 겪는가를 물었다. 많은 이들은우리 회사 조직구조가 혁신에 맞지 않는다” “우리 비즈니스 모델이 혁신과 별로 상관 없다” “아무도 혁신 프로세스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혁신을 이뤄냈다고 내게 주어지는 보상이 없다.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된다” “리더가 혁신을 통해 기존 비즈니스의 매출이 줄어드는 걸 싫어한다등의 말을 늘어 놓는다. 답변들을 모아보면 대략 <그림 1>과 같다.

 

 

이 모든 요소의 공통점은 바로 문제 자체가내부적이라는 거다. 기존의 비즈니스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 구성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장애물은 결국 내부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렇다면 이는 내부적으로 없앨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2. ‘혁신 프로세스에서 주의해야 할 점

1) 혁신 활동이 단편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

혁신을 하고자 할 때 방해되는 것들은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혁신 방해물은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우선 조심해야 할 부분부터 알아보자. 먼저단편적으로 일으키는 혁신 열풍을 조심해야 한다. 어느 날혁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고위 경영진이 모두를 혁신부트 캠프로 보내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며칠 동안 부트캠프에 참여하면서 아이디어를 내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아주익사이팅한 상황이 펼쳐진다. 뭔가 이뤄질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 그대로 끝나고 만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만으로는 절대 혁신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나오고 난 이후가 중요하다. 대부분 처음에는 혁신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른다. 그러다가 처음 혁신을 추진한 고위 경영진이 회사를 떠나거나, 다른 사업부서에서 예산이 부족해지거나, 연말에 기본 업무가 밀려들기 시작하면 아무도 혁신에 관심을 갖지 않는 상황이 된다. 또 혹시나 혁신 프로세스가 진행되더라도 기존 사업을 진행하던 고위직이 혁신으로 인한 위협을 느끼게 되면 거기에서 끝난다. 이처럼 혁신이 지속되지 못하고 타올랐다가 사그라드는 일이 반복되면 부정적 부산물이 만들어진다. 첫째, 애초에 진행되던 아이디어가 과연 좋았던 것인지조차 검증하지 못하게 된다. 둘째, 혁신을 추진해야 할사람들의 실망이 문제가 된다. 첫 번째, 두 번째 혁신 프로세스에서 밤새 일하고 주말을 헌납하면서 열심히 뛰어들었던 사람들이 계속 혁신 프로세스가 중도에서 끝나는 걸 경험하고 나면 세 번째까지는 그렇게 헌신할 수가 없다. 그것보다 중요한 일, 다른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되면 이 자체가 조직 내부의 혁신 장애물이 된다. 따라서 만약 지속적으로 혁신 프로세스를 이끌어갈 자신이 없으면 아예 얘기조차 꺼내지 않는 것이 낫다. 직원들이어차피 우리 조직에서 혁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이는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혁신 방법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얘기부터 해보자. 처음에 해야 할 건 최고위 경영진의 어젠다(agenda)에 어떤 것들이 포함돼 있는지 체크해 보는 일이다. 문자 그대로다. 최고위 경영진의 지난 회의록, 최근의 회의록을 살펴보면 된다. 한 기업을 방문해서 회의록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새로운 비즈니스 개발이라는 의제가 18번째 순서에 나오더라. 혁신은 그 회사에서 중요한 의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중요하다면 첫 번째나 두 번째, 적어도 세 번째 의제로는 설정이 돼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저 단순한 운영관리회의라도 시작과 동시에아 참, 서부 교외지역에서 실행하고 있는 실험이 성과를 냈다고 한마디만 하고 회의를 진행해보라. 그 순간, 사람들의 머릿속에혁신이라는 단어가 남고 앞으로 이를 우선시하게 된다. 이를 통해 고위 경영진이 관심을 갖고 우선순위에 두고 있어야 직원들도 관심을 가진다. 이렇게 하면 혁신이단편적으로 진행되다 끝나고 마는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

 

2) 혁신에 제대로 자원이 배분되지 않는 것

지금까지혁신이 단편적으로 일어날 때 발생하는 문제와 해결방안을 중심으로 얘기했는데 이번엔 혁신의 또 다른 장애물, 즉 새로운 비즈니스 개발에 재원 혹은 자원이 제대로 분배되고 흘러 들어가지 않는 문제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혁신은 보통새로운 것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특정 비즈니스 분류에 잘 맞아 떨어지지 않고, 또 새로운 것이다 보니 때론 기존 비즈니스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 혁신에 필요한 자원이 기존 비즈니스에서 흘러 들어오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실제 소니에서 있었던 일을 약간 각색해보자. 직접 상상의 나래를 한번 펴보라. 당신이 워크맨 전성기의 워크맨 담당자다. 당신은 현재의 소니 워크맨이 갖고 있는 경쟁우위가 지속가능하다기보다일시적’ ‘단기적인 것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신은 R&D 팀에 전화를 걸어서 젊은 기술자들에게 이 기술(작은 테이프나 CD를 작은 기계에 넣고 다니며 음악을 듣는 것)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물어봤다. 그러자워크맨 담당자님, 미래에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AA 배터리도 안 쓰고, 고장이 잦은 워크맨도, 카세트 테이프 자체도 잘 안 쓸 것 같습니다. 노래만 공기 중으로 보내 작은 하드드라이브에 다운로드 받아 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음질도 더 좋을 것입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치자. 물론 이들의 답변은 매우 정확한 전망이었다. 각색한 내용이지만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잊지 말자.

 

실제 당시 소니는 MP3 기술, 자체 소형 배터리 기술이 이미 거의 다 개발돼 있었다. 하지만 워크맨 담당자인 당신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마도의견 감사합니다. 다시 연구로 돌아가세요. 하지만 저에게 주는 피해를 최소화해 주세요라고 하지 않았을까. 당신이 가진 기술과 지식, 이 모든 것들이 필요 없어지는 상황을 원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이미 개발돼 있던 소니의 첨단 MP3 기술 쪽으로는 더 이상 예산과 자원이 투입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이때 누군가가 나서서 기존의 비즈니스, 특히 점점 약화되고 있는 비즈니스에서 과감하게 자원과 예산을 빼서 미래의 기회가 있는 비즈니스 쪽으로 흐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런 걸 바로건강한 분리(healthy disengagement)’라고 부른다. 과거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해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 기존의 자원과 예산을 현재 잘나가는 사업에만 투자하는 게 아니라 미래에 투자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3) 고객 경험과 연결이 안 되는 것

이제 또 다른 문제, ‘혁신이긴 한데 고객경험과 연결이 잘 안 되는 혁신에 대해 언급해보고자 한다. 고객 경험과 연결이 되지 않는 혁신은 반드시시장의 실망을 일으킨다. <그림 2>를 한번 보자. 귀찮게 이 채소 저 채소 넣을 필요 없는야채 젤로가 보이는가? 아이디어는 참 그럴싸하다. 그런데 이걸 정말 빵에 발라서 드시고 싶은 분 계신가? 아래에 있는 사진은 노키아의 휴대폰 겸용 게임기다. 게이머들이 사용하기에는 꽤나 괜찮은 제품이었다. 문제는 전화기로는 영이었다는 것. 아주 우스꽝스럽게 저 제품을 들고 통화를 해야 했다. 불편했다. 시장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오른쪽 자동차 사진은 내가 자주 활용하는 GM의 사례다. 이건 좀 자세히 설명해보겠다. GM이 현재 세계최대의 시장인 중국에 진출할 때의 일이다. 디자인 팀에서 중국에서 매력적인 차는 어떤 것일까 고민을 하다가혁신적으로 비용을 줄이는아이디어를 낸다. 중국 시장을 분석해보니 미국 자동차 시장보다 훨씬 가격에 민감하다는 걸 알게 됐다. 뒷자리에 여러 편의시설과 창문을 전기로 열고 닫는 옵션도 빼버렸다. 그런데 GM 디자인팀이 간과한 문제가 있었다. GM은 중국에서는국민차가 아니라 엄연히외제차. GM차를 대안으로 생각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부유한 계층이다. 그들은 아마도 기사가 있을 가능성이 크고 뒷자석에 앉아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뒷자석 편의시설을 다 빼버리면 그 차는 가격문제로 인해 저소득층에게도, 편의시설 문제로 인해 부유층에게도 어필하지 못하는 셈이 된다. 이 문제를 나중에 깨닫고 운전자 편의시설을 줄이고 뒷자리에 다양한 사양을 추가하는 작업을 했다.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들었다. 고객의 실제 경험과 연결된 혁신을 하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잘 보여준다.

 

3. 혁신의 장애물을 걷어낸 성공사례: IBM EBO

진정한 혁신능력은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상세한 방법론에 앞서 내부의 장애물을 걷어내는 효과적인 방법 위주로 다시 한번 정리해보겠다. 앞서 말했듯 우선 사내 경영진 회의 어젠다의 우선순위에혁신’ ‘새로운 사업’ ‘새 비즈니스 모델등의 안건을 올려놔야 한다. 단지 이번 달, 지난달에 우선순위에 있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지속적으로 안건의 리스트 상위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다. 만약 이렇게 못할 것이라면 안 하는 게 낫다. 둘째로 소니 사례를 통해 설명했듯 기존 비즈니스, 성숙 단계의 비즈니스에서 자원을 빼서 미래에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로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한 기본적인 R&D 단계에 투자하는 것 역시 괜찮은 일이다. 우선순위에 혁신 의제를 올리고 새로운 비즈니스, 미래 비즈니스 개발 쪽으로 재원을 투입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혁신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회사에는 이 거버넌스가 없다. ‘혁신위원회형식이라도 제대로 존재하는 경우가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적절한 메커니즘을 만들어 혁신을 관리하고 자원을 투입할지 잘 몰라 실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글로벌 기업 IBM은 바로 이런 점에서 굉장히 좋은 솔루션을 만들었다. 루 거스너 CEO가 취임했을 당시 IBM은 정말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거의 회사가 붕괴될 위험이었다. 겨우겨우 회사를 안정화시키고 나서 CEO를 비롯한 임원진은 IBM을 다시성장하는 회사로 바꾸기 위해서는혁신이 절실하다고 믿었다. 그들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작은 규모의 다양한 성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는 각 사업 부문별로 하나씩 배당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스너 CEO는 각 사업부에 배당된 작은 성장 프로젝트들을 다시 검토하면서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축소되거나 아예 중단됐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거스너는우리 함께 우리 미래를 위해 이 프로젝트들을 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진행이 안 되냐고 화를 내면서 사업부의 부서장 임원들을 불러 모았다. 각 사업부 임원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열심히 해보려고 했지만 다른 사업에서 예산을 빼서 써야 하는데 프로젝트 자체가 분기별 성과에 반영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아 계속 진행할 수 없었다는 답변이었다.

 

여기에서 거스너는 깨달음을 얻는다. 더 이상 이렇게 소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관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의 작은 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나 역시 이 위원회에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이 위원회에서는 30여 개의 케이스 스터디를 진행했다. IBM 내부에서 진행됐던 소규모 벤처 프로젝트들의 실패 사례에 관한 연구였다.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EBO(Emerging Business Opportunities)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IBM에서 새롭게 부상한 비즈니스 기회는 다 여기에서 탄생했다.

 

EBO에는 몇 가지 핵심 원칙이 존재했다. 첫째는 EBO만 담당하는 최고위급 임원이 존재하고 그가 직접 CEO에게 상황을 보고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EBO 내에서 진행되는 각각의 벤처 프로젝트 역시 고위급 임원이 한 명씩 달라붙어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IBM 내 최대 소프트웨어유닉스를 담당하던 론 앳킨슨 컴퓨팅 담당 임원은 이 EBO 프로그램에서 지금의 사물인터넷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 비즈니스가 미래에 분명 크게 성장할 것이라 예상하고 경영진에게 보고했으며 필요한 인력을 배정받아 아이디어를 점점 구체화시켜 나갔다. EBO 프로젝트의 원칙으로 인해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했다. 사물인터넷 프로젝트는 우선 기존 부서가 예산을 줄이는 바람에 좌절될 일이 없었다. 또 기존 부서의 자원을 회사 전체 차원에서 재조정해 미래를 위해 흘려보낼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예산과 인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실제로 매출을 발생시킬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었다. 조직은 변했고, 새 프로젝트는 이제 실행 가능해졌다.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론 애킨슨은 EBO 총담당자에게 보고를 하고 총담당자는 원칙대로 곧바로 CEO에게 보고를 하면서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거버넌스와 펀딩, 자원배분 등의 과정에서혁신 프로세스란 어떠해야 하는지 기업이 깨닫게 된 좋은 사례다.

 

혁신을 위한 방법론

1. 시장 불확실성과 기술 불확실성

이제 <그림 3>을 한번 보자. 가로축은시장 불확실성이고 세로축은기술 불확실성이다. 왼쪽 하단 부분에 있는 사업을 보면 여긴 이미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분야다. 여기에서 벗어나 오른쪽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확실히 아는 부분이 적어진다. 따라서 각각의 사업 분야는 여기에서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전략을 갖게 된다. 다시 가장 왼쪽의 최하단 박스부터 보자. 여기는핵심역량 강화의 영역이다. 현재의 고객을 위해 지금 하고 있는 걸 더 잘하는 게 전략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근 많은 기업들이 기존의 자료 저장시스템을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전시키고 있다. 물론 이것도 엄청난 작업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비즈니스를 존속시키기 위한 투자다. 새로운 영역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로 넘어가게 해주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 다음 박스로 넘어가면 18개월 혹은 2년 안에 도래할 새로운 핵심 비즈니스가 있다. 애플이 컴퓨터를 팔다 MP3 플레이어로 넘어갔다가 전화기로, 그다음 태블릿 PC로 넘어가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다. ‘차세대 플랫폼으로 옮겨 타는 것이다. 그래서 차트에 ‘Platform Launches’라고 써놨다. 애플 얘기가 나온 김에 잠깐애플의 실패에 대해 말해보자. 우리가애플실패라는 단어를 잘 연결시키지 못하지만 사실 애플이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는지 돌이켜보는 것도 정말 흥미롭다. 혹시큐브라는 거 기억하는 분 있나? 아이폰보다 먼저 출시됐던락커폰기억하는 분은? 이처럼 이 단계에서는 지금 하고 있는 비즈니스를 더 잘하는 것보다는 불확실성이 확실히 조금 높다. 새롭게 학습해야 할 내용들이 꽤 있다. ‘Enhancement Launches’ 영역과 ‘Platform Launches’ 영역 사이에는 전통적인 경영의 법칙들이 적용된다. 성과를 예측하고 이를 계산하면서비싼 실패는 안 하도록 하는 것 등이다. , 이제 각각의 불확실성이 높은 오른쪽 끝과 위쪽 끝을 한번 보자. 이 두 곳이 바로옵션의 세계다. 작은 투자를 통해 미래에 완전히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영역이다. 물론 반드시 해야 할 의무는 없다. ‘파일럿’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 이런 단어들 다 들어보지 않았나. 그게 바로 옵션이다. 포스트잇이나 어디에 써서 붙여놓았던 여러분의 아이디어가 실제 가능한 것인지, 진짜 성공할 것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잘 안 되더라도 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이 목표다. 한 달 정도 해보고 아이디어가 과연 실행 가능한 것인지, 성과를 낼 만한 것인지 해보는 것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실험은 우리 스스로도 자주 한다. 잡지 한두 달 구독해보고 맘에 안 들면, 나에게 맞지 않으면 구독 취소하는 것, 새로운 식당에 한번 가보고 입맛에 안 맞으면 다시 안 가는 것 등이 다 이런 실험이다.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까운 건 많은 기업들이 옵션을 통해 적은 투자로 미래에 엄청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잘못된 분석·예측 도구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옵션에 대해 재무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면서 순현재가치(Net Present Value) 같은 도구를 사용한다. 순현재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절대 옵션의 미래 가치를 알아낼 수는 없다. ‘아직 정확하게 뭔지 모르는 것이 옵션인데 이걸 전통적인 도구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건 문제가 있다. 결국 기업들은 실제 옵션의 성공을 위해 투자해야 될 액수보다 훨씬 적게 투자하게 된다. ‘체계적인(systemic) 저평가가 이뤄진다는 의미다.

 

 

2. ‘옵션의 세계와 실험, 그리고 혁신 성공사례

‘옵션의 세계에서 불확실성이 높다는 건 이미 강조한 바 있다. 미래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 존재한다. 신기술 몇 개를 예로 한번 들어보자. 나노기술, 3D프린팅,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생물세포(Programmable Biological Cells) 기술을 보자. 5년 뒤에 이 기술이 어떻게 될까 예측해보라면 아무도 못할 것이다. 데이터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3D프린팅은 정말 미래를 완전히 바꿀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블루레이 디스크처럼 일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될 기술에 그칠지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학습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여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학습은일부러 틀리는 것이라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적은 비용으로 크게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학습한 성과를 토대로 불확실성을 줄이고 투자를 늘려가는 것이다.

 

이제 자연스럽게실패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보자. 한국 기업들은 특히 실패를 싫어하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이걸 기억해야 한다. 실패를 하지 않으면 학습할 수가 없고, 학습하지 못하면 혁신할 수가 없다. 성공과 실패라는 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똑똑한 실패(intelligent failure)’를 할 준비가 돼 있는가다.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비싸진 않으면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그런 실패 말이다. 똑똑한 실패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원칙은 꼼꼼한 계획을 가진 가설을 세우는 것이다. 꼼꼼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나중에 잘못돼도 어디서 뭐가 잘못됐는지를 모른다. 두 번째 원칙은너무 큰 불확실성은 피하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통제할 수 있는 불확실성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가설을 수립하고 실험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기술, 시장, 유통채널, 제조과정, 이 모든 것에 대해 불확실하다면 애초에 통제 가능한 가설을 세워 실험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도 전혀 알 수 없다. 과학자들은 철저하게 실험을 설계하고 가설을 세우기 때문에 가설이 틀리더라도 큰 교훈을 얻는다. 기업 역시 옵션의 세계에서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똑똑한 실패를 할 수 있고, 학습을 할 수 있고 혁신으로 이어진다.

 

 

아마존 사례를 살펴보자. 모두 알다시피 아마존은 90년대 후반에 이미 훌륭한 주문·배송 플랫폼을 만들었다. 아마존은 이후에 그 플랫폼을 다른 판매자들에게 개방을 하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아마존 옥션이라는 걸 만들었고 이베이와의 경쟁이 시작된다. 여기에서는 실패하고 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플랫폼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을 연구한다. 두 번째로 시도한 게 아마존 Z숍이다. 아마존 홈페이지에 로그인한 후 상단의 탭을 클릭하면 Z숍으로 가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일반 판매자들은 Z숍 탭에 올려진 자신들의 상품을 파는 형태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프 베조스는 경쟁사들의 제품을 아마존 내에 함께 보여주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물론 전 품목을 대상으로 시작한 건 아니다. 일부 품목에서부터 실험했다. 일정 금액을 먼저 낸 아마존 회원들은 무료배송을 받게 되는데, 이미 이 무료배송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아마존 사이트에 함께 보여지는 경쟁 온라인 마켓의 제품보다는 아무래도 아마존의 제품을 사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였다. 이 과정에서 아마존 마켓플레이스가 탄생한다. 현재 아마존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준이 됐다. 실험을 거쳐 만들어 낸큰 기회가 무엇인지 적절하게 보여주는 실례다.

 

혁신에 있어 가장 큰 실수는 지금 판매하고 있는 제품을 갖고 혁신하는 것이다. 시장에서부터 출발해 제품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장에서 어떤 제품을, 어떤 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고객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진짜 혁신이 이뤄진다.

 

‘실패’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보자.

한국 기업들은 특히 실패를 싫어하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이걸 기억해야 한다.

실패를 하지 않으면 학습할 수가 없고,

학습하지 못하면 혁신할 수가 없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례를 소개해 보겠다. 여기 계신 대부분은 아마잔돈을 불편해 할 거다. 아침에 현금 들고 가면 주머니에 잔돈 쌓이지 않나. 보통 집에 오면 작은 저금통에 넣어두기도 하고, 아니면 집안 곳곳에 널려 있게 된다. 어쨌든 청소하면서 다시 다 모으지 않나. 그럼 이제 어떻게 하나? 미국의 경우 은행에서 동전을 특정 단위로 묶을 수 있는 종이테이프를 준다. 그걸로 각자 돈을 묶고 종이 위에 서명을 한 뒤에 은행 업무시간에 그 묶음을 모아서 들고 간다. 이게 즐거운 일인가? 은행에선 이걸 좋아할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코인스타라는 기업이 바로 이 지점을 치고 들어왔다. 슈퍼마켓이나 쇼핑몰에 코인스타가 설치해 놓은 동전 세는 기계에 동전을 들고 간 뒤에 다 붓는다. 그러면 기계가 동전을 계산한 뒤에 영수증을 준다. 이걸 들고 계산대로 가면 지폐로 바꿔준다. 수수료가 있다. 처음에는 투입한 동전의 10%였는데 사람들은 10분의 1은 금방 계산한다. 당연히 수수료가 비싸다고 생각한다. 아주 쉬운 방법은 8.92% 정도로 수수료를 낮추는 것이다. 계산하기가 어렵다 보니 사람들 심리상이 정도면 괜찮은 가격이라고 합리화한다. 코인스타는 아이디어 하나로편리성에 대한 대가를 받아 별다른 투자 없이 돈을 벌었다. 은행은 그럼 이걸 왜 안 했을까? 은행들은고객들은 이런 서비스를 무료로 받고 싶어 한다고 지레 짐작했다고 한다. 은행 입장에서 그저 비용이 된다고 여긴 것이다. ‘혁신은 고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라는 명제를 정말 잘 보여주는 사례다.

 

3. 혁신의 3단계 방법론

혁신에 성공하려면 세 가지 역량을 갖춰야 한다.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림 4>를 보자. 첫 번째는 바로 발견, 좋은 아이디어 내기. 사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집중하는데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면 분명 500가지 이상이 나온다. 진짜 중요한 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현실화할 수 있는 것, 현실적인 솔루션은 무엇인지, 어떤 형태인지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 두 번째 단계는 바로 인큐베이션이다. 보통 사람들이 여기에서 진전을 만들어내기 어려워한다. 앞서 언급한야채 젤로가 인큐베이션 단계에서 실패한 전형적인 사례다.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해야 하고, 시장이 없다면 시장을 창출해야 하며, 전략적인 실험을 통해 실질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디어를 내고 정교화하는 것까지 성공했더라도 인큐베이션 단계에서 막히거나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인큐베이션이 끝났다면 세 번째 단계인가속화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인큐베이션 단계에서 성공하고 있는 비즈니스는 고속도로 진입로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의 메인 비즈니스인고속도로 위로 제대로 올라타려면 진입단계에서 이미 달리고 있는 고속도로상의 다른 자동차들과 같은 속도를 내고 있어야 한다. 원동기처럼 고속도로에서 아예 달릴 수 없는 작은 것이거나 제대로 속도가 올라가 있지 않은 상태라면 사고가 난다. 속도를 높이고 크기를 키워 다른 비즈니스와 함께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이때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속화 단계에서는사람의 문제또한 중요하다. UPM이라는 제지업체 사례를 통해 설명하겠다. 이 회사는 목재에서 펄프를 만들어내는 회사인데 실제 <이코노미스트>지 종이를 이 회사가 공급한다. 물론 아시다시피 종이산업은 미래에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아니다. 이 회사의 CEO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UPM이 가진 역량 중 다른 곳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했다. 바로효소분야였다. 나무를 분해에 종이를 만드는 일을 해오면서 쌓인 기술이었다. 이 효소는에너지 분야에서 기술적으로 활용이 가능했다. 바이오 연료 쪽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 펄프 중심의 메인 비즈니스와 새로운 비즈니스를 분리했다. ‘건강한 분리를 해낸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인큐베이션 단계를 거쳐 가속화 단계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 이때 직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성패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가속화 과정에서 분명 많은 이들이 헌신하고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인터뷰를 해보니 이 회사 직원들은 준비가 돼 있었다. 메인 비즈니스 즉, 펄프 부문에 있는 사람들이 전혀 우울해 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람보같은 존재로 여겼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혁신하는 동안 자신들이 회사를 지켜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CEO가 이미 이들에게 몇 가지 약속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 CEO는 기존 비즈니스에서 일하던 직원들에게지금 시작한 작은 비즈니스, 실험 단계의 비즈니스들이 충분히 커지면 그때엔 다시 여러분들의 능력이 필요해질 것이고 새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며미래 비즈니스 분야가 자리잡기까지 회사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이 사례는 가속화 단계에 대한 설명을 하다 꺼내 든 것이지만 혁신에 관한 여러 측면에서 많은 교훈을 준다. 특히 혁신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지정 토론

(지정토론자: 강진구 고려대 경영대 교수)

강진구 교수: 리터 건터 맥그래스 교수님께서는 혁신실험, 새로운 비즈니스 개발을 위해 기업 경영진이 자원을 재분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성숙한 비즈니스에 있는 자원을 새로운 비즈니스로 흘려보내야 한다는 얘기인데 경영진이 자사가 속해 있는 메인 비즈니스의 주력 제품이나 서비스가 성숙단계에 이르렀다는 걸 먼저 이해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런데 장애물은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 외에도 더 있는 것 같다. 제가 아는 사례 하나를 말씀드리겠다. 최근 한 중견기업 CEO를 만났는데 그가 운영하는 회사는 자동차 바퀴 휠을 만드는 세계 5위의 회사다. 알루미늄 휠 분야에서는 기술력이 탁월하고 대부분의 경쟁사보다 낮은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최근 알루미늄 휠 비즈니스가 성숙단계에 있다고 보고 돌파구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바로 마그네슘 휠이다. 무게가 덜 나가서 연비가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 CEO는 아직 이 기술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사내 여론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여전히 알루미늄 기술에서 선두에 있고, 수익률이 높은데 벌써 새로운 기술로 옮길 필요가 있냐는 얘기다. CEO 역시 이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마그네슘 휠 분야가 분명 새로운 수익을 만들 수도 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도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세대로의 제품으로 전환을 하는 데에도 분명 리스크가 있다는 의미인데, 이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다.

 

 

맥그래스: 아주 좋은 사례를 들려주셨다. 우선 새로운 발명품을 쓸 수 있는 산업 전체의 시스템을 잘 살펴보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혁신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산업 전체의 메커니즘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비슷한 사례, 실패 사례를 하나 들려주고자 한다. 미쉐린에서 예전에 팩스타이어라는 신제품을 개발한 적이 있다. 기존 타이어에 비해 내구성이 훨씬 좋아서 자동차 트렁크에 굳이 스페어 타이어를 넣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정도의 기술이었다. 그러면 자동차 전체 무게가 줄어드니 연비도 좋아지는 상황이었다. 미쉐린은 굉장히 고무됐고, 혼다 같은 회사에서 이 팩스타이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팩스타이어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공구가 필요했고, 이 공구는 오직 팩스타이어 설치에만 쓸 수 있었다. 출시 후 1년 정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고 소비자 만족도도 높았지만 결국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다. 타이어 교체시기가 도래했을 때 소비자들은 제대로 된 공구를 갖춘 정비소를 찾을 수가 없었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따라서 강 교수께서 말씀하신 그 회사의 CEO에게도 이런 조언을 드리고 싶다. 단순히 마그네슘 휠을 장착해서 발생할 이점이 어느 정도까지 일지, 그게 알루미늄 휠을 상쇄할 정도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회사가 진정한시장 선도자가 될 준비가 돼 있고 그런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 또한 정말 성공을 거뒀을 때 수요가 늘어나면 그걸 감당할 수 있는지 다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 생태계를 조망해보고 결단을 내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 좋은 조언이다. 다음은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와 관련된 질문이다. 교수님의 발표를 들으면서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됐다. 발견이 중요하고 가능한 많은 옵션을 가지는 것 혹은 가능한 옵션을 제대로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었는데 이 같은 옵션을 발견하고 혁신 실험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조직문화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봤다. 외부 세계에 개방돼 있고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문화, 항상 깨어 있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에도 삼성이 대표적으로 그런 문화를 가진 기업이다. 이건희 회장이 항상 위기감을 심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또 많은 이들이위기감의 부작용도 지적한다. 창의성이 억제된다는 것이다.

 

맥그래스:위기감공포심을 구분하는 게 좋겠다. ‘공포심은 창의성을 억제하지만 경계심은 바람직한 측면이 많다.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세 가지 정보를 봐야 한다. 과거의 데이터와고객들의 얘기와 같은 현재 정보, 가장 얻기 어려운 정보인 미래에 대한 지표와 정보들이다. 사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선행 정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논쟁의 여지가 많다. 나중에 선행지표, 미래에 대한 정보가 정말 잘 맞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뭘까.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인해 취한 행동이 바람직한 결과를 야기했는가를 보면 된다. ‘밀레니엄 버그에 관한 얘기를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과학자들이 어느 날 모든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2진수로 돼 있다는 걸 깨닫고 새천년에 컴퓨터가 다 스톱할지 모른다는 경고를 했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시스템 변경을 하지 않으면 비행기가 떨어지고 발전소가 폭발한다는 등의 극단적인 예측까지 나왔다. 그런데 2000년이 도래하자 어떻게 됐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그 과학자들은 그냥 불안감만 조성한 것일까? 그들이 잘못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예측과 전망을 토대로 조기 경보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잘 대비를 하고 액션을 미리미리 취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스위스 금융기업 중 하나는우리 회사의 미래 위험요소가 뭘까를 고민하다 이를 발견하고 조기경보를 울리자는 취지에서 이벤트를 열었다. 워크숍을 진행했다. 다섯 개 정도가 발견됐다. 놀라운 건 그 다섯 개 미래 위험요소 중 이미 세 개는 현재진행형이었다는 거다. 중요한 건 미리 여유를 갖고 위험요소를 찾아보려고 노력해서 이를 발견했다는 것이고, 또 미래의 위험요소는 상당 부분 현재 상황에서도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항상 미래 위험 요소에 대해 긴급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절대 패닉에 빠지면 안 된다.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대한 통제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감이 지나치면 혁신에 실패한다는 증거는 없다. 긴박감이 혁신의 동력이 되는 경우도 많다. 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듯공포심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원래 뭐든 지나치면 안 좋은 거니까.

 

: 일시적 경쟁우위 혹은 단기적 경쟁우위에 대한 설명을 강연 중간에 해주셨다. 물론 그 중요성을 저도 알고 있고, 최근 학계 전반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여전히 상당수의 회사들은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맥그래스: 안정적인 업계에서는 분명 여전히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가스회사라든가, 스스로 엄청난 사용자 네트워크 가진 기업이라든가 하는 경우에 그렇다. 하지만 기술이 급격하게 바뀌는 많은 산업들,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회사들이 진입하는 경우에는 지속가능한 경쟁우위 패러다임을 적용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이제 경쟁우위에 대한 얘기를 할 때어디에서 어떻게 경쟁을 하느냐를 중심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이전의 산업 분류 방식으로는 21세기의 기업 간 경쟁 양태 자체에 대해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분석틀 자체가 ‘industry’가 아니라 ‘arena’. 경쟁이 일어나는 곳이산업분야가 아니라 새로운영역이라는 뜻이다. 경쟁의 장을 각 산업군 내로 한정하던 때의지속가능한 경쟁우위패러다임으로는 분석이 안 된다. 애플페이 얘기를 해보자. 신용카드는금융산업내에 있던 비즈니스다. 비즈니스 모델은 우리 모두 알다시피 소비자가 카드를 긁고, 신용카드사는 청구서를 받아 돈을 지급하고, 소비자는 나중에 카드사에 돈을 갚는다. 그리고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가맹점들은 이 수수료를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공동의 플랫폼을 만들어 가맹수수료 없이 결제서비스를 진행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 공동 플랫폼 확산이 더디고 어렵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을 애플이 치고 들어왔다. 은행과 매출을 나눠 갖고자 했다. 애플페이 사용자들이 통장을 만들어 둔 바로 그 은행 말이다. 기술회사인 애플의 통신 기반 앱으로 금융 서비스 매출을 만들어내고 가맹점들은 은행과 애플에 각각 수수료를 내지만 그 돈은 카드사에 내는 것보다 적기 때문에 이를 선호한다.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분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애플페이 출시 첫 주에 카드사의 수수료 매출이 40% 하락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과연 특정 산업군 내에서의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 창출 전략이 써 있는 기존의 전략 교과서를 통해 이 현상을 배우고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arena에서의 새로운 경쟁이고 여기에서야 말로일시적 경쟁우위의 지속적 창출이 중요한 이슈가 된다.

 

경쟁이 일어나는 곳이산업분야가 아니라

새로운영역이라는 뜻이다.

 

리타 건터 맥그래스 교수와 청중의 질의 응답

질문: 똑똑한 실패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결국 실패로부터 많이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인 듯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실패를 하게 되면 그 사업부가 사라지고 만다. 어떻게 해야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답변: 탁월한 질문이고, 많은 이들이 제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선성공의 요건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성공의 요건이 명확하지 않으면 당연히 실패가 무엇인지도 규정할 수 없게 된다. 그것부터 확실히 규정해야 하는데 이는 비즈니스별로 크게 차이가 난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해줄 수 있는 실질적인 조언은가설 검증에 관한 것이다. 똑똑한 실패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Rent the Runway라는 미국 회사가 있다. 명품 옷을 빌려주는 회사다. 가설은많은 여성들이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고 특별한 행사에 가고 싶어 하지만 지나치게 고가여서 구입을 망설인다. 따라서 빌려주는 비즈니스가 잘될 것이다였다. 그 다음에 테스트를 했다. 첫 번째 실험 설계는 실패했다. 웹사이트에 각 디자이너 브랜드의 위젯을 설치해 클릭해 들어가 직접 명품 드레스를 보도록 했는데 각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그 아이디어를 싫어했다. 디자이너들은 사업가가 아니기에, 또 자기 브랜드의 가치를 지켜야 하기에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비싼 돈을 주고 자신의 브랜드를 구입하기 원했다. 다시 실험 설계를 했다. 아이디어를 바꿔서 직접 이 기업에서 옷을 구입한 뒤에 이를 빌려줬다. 부수적으로 고객 정보 수집도 가능해졌다. 또 여성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사이즈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는 걸 발견하고 신청한 사이즈와 한 치수 더 큰 사이즈를 동시에 보내주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작은 실험으로 가설을 검증해가면서 비즈니스를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질문: 혁신과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이 있어 질문을 드린다. 저는 중간관리자인데 항상 혁신에 대해 생각하고 해야 한다고 믿지만 여전히 많은 CEO들은 단기성과를 중시하면서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다. 중간관리자로서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답변: 먼저 우리 모두가 아는 사례를 통해 얘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아서 프라이라고 들어본 적 있나? 3M의 포스트잇 개발자다. 이렇게 얘기하면 다 알 것이다. ‘포스트잇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처음에 크게 좌절했다. 3M이 초기에 포스트잇을 상업화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간관리자였던 그는 실망감이 컸지만 그래도 본인 스스로 포스트잇을 열심히 썼다. 특히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평소에 성경을 책상에 두고 틈틈이 읽으면서 포스트잇으로 중간중간 페이지에 붙여놓고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반드시 이 제품을 상용화해야 한다고 생각해 작전을 짰다. 3M의 톱10 고객사와 CEO 비서들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 비서들에게 포스트잇을 포장해 보내면서 사용법을 알려줬고 피드백을 달라고 했다. 비서들은 포스트잇이 정말로 편리하고 유용하다고 생각했고 프라이가 보내준 제품이 다 떨어지자 좀 더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그때 프라이는 그 비서들에게우리 회사 최고경영진이 포스트잇의 장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용화하지 못했다더 주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당연히 비서들은 최고경영자에게 안타까움을 토로했고 3M 고객사의 CEO들은 3M에 전화해왜 내 비서가 꼭 필요로 하는 포스트잇을 살 수가 없는지따져 물었다. 당연히 이런 전화를 많이 받은 3M 측에서는 포스트잇 상용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이다. 여러분의 역할을문서에 규정된 역할로 한정 짓지 말라는 것이다. 문서에 규정된 당신의 역할 이외에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엄청나게 많다. 여러분은 그 문서에 쓰여 있는 역할보다 훨씬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고, 또 여러분의 생각을 지지해 줄 동료를 찾으면 그 일은 더 쉬워진다. 꾸준히, 창의적으로 진행해보라.

 

리타 건터 맥그래스(Rita Gunter McGrath)는 미국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 전략경영 교수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전략과 혁신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학자다. 1995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이안 맥밀란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와발견이 이끄는 기획(Discovery Driven Planning·DDP)’이란 개념을 발표하면서 세계 경영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텍사스인스트루먼트, 피어슨 등 유수 기업들의 컨설팅을 맡기도 했다.

 

정리 :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동아비즈니스리뷰 289호 Boosting Creativity 2020년 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