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 락앤락 써포터즈
Article at a Glance – 전략, 마케팅, 혁신
국내 기업 최대 규모의 여성 커뮤니티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락앤락이 운영하는 ‘락앤락 써포터즈’다. 2002년 1000여 명 수준으로 출발한 락앤락 써포터즈는 현재 회원 수가 28만 명을 넘어섰다. 이곳은 제품에 대한 직접적인 광고가 이뤄지는 곳이 아니라 회원들끼리 자발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場)이다. 락앤락은 커뮤니티 운영을 외부대행사에 맡기지 않고 직접 운영한 점, 회사가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기보다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생성하도록 한 점, 상업성을 최소화한 점 등을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락앤락 써포터즈는 2006년 플라스틱 용기의 환경호르몬 문제가 불거져 주방용품 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았을 때도 락앤락의 구원투수로 나서 이슈가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 |
편집자주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종희(단국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성공을 거둔 기업은 흔치 않다. 대기업들도 어려워하는 커뮤니티 형성, 유지·관리와 발전의 모범답안을 한 중소기업이 써내려 갔다. 2002년 12월 회원 1000여 명으로 출발한 ‘락앤락 커뮤니티’는 현재 회원 수가 28만 명을 넘어서며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그림 1) 회원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수치다. 회사 측은 “회원 수는 울릉도 인구의 약 28배에 해당하며 회원들이 웹사이트와 락앤락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적은 글을 모아 100페이지짜리 책으로 만든다면 700권을 만들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양적인 성장과 함께 락앤락의 규모도 커졌다. 2000년 10%가 채 못 되던 시장점유율은 60% 이상까지 뛰어올랐다.1 2002년 500억 원 수준이던 매출액도 지난해 10배 이상 늘어 5017억 원을 달성했다. 버버리 코트, 호치키스, 어그 부츠처럼 락앤락도 밀폐용기의 대명사가 됐다. 안정적인 커뮤니티 운영과 함께 회사 브랜드 파워와 매출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그림 2)
‘모이면 강해진다’,
붉은악마에서 ‘서포터즈’의 아이디어를 얻다
락앤락 써포터즈의 시작은 2002년 월드컵이었다. 김준일 회장(62)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지켜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월드컵 4위라는 성적도 놀라웠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목이 터져라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붉은악마’들이었다. 응원단을 보고 ‘마음을 모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김 회장은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처음부터 사람들을 모아 그들에게 물건을 팔자는 생각이 결코 아니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저 ‘한마음’으로 같은 물건을 쓰는 사람, 락앤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순수한 취지였다. 이 ‘진정성’과 ‘순수함’이 이후 락앤락 커뮤니티 성장의 동력이 됐다. 락앤락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락앤락 써포터즈’의 웹사이트 주소도 www.bethe1.co.kr로 정했다. 붉은악마 티셔츠에 새겨져 있던 ‘Be the Reds’를 본뜬 것으로 ‘하나가 되자’는 의미다. 당시 인터넷에서 커뮤니티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었던 것도 락앤락만의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김 회장의 생각을 더욱 굳히게 만들었다. 오프라인 한곳에서 많은 고객을 만나기 어려우니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만들겠단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대표적인 것이 2006년 ‘독일 월드컵 현지 응원단 프로젝트’였다. 김 회장이 직접 제안한 것으로 100명을 선발해 독일로 한국팀 응원단을 보내는 것이었다. 경쟁률이 100대1을 넘어설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2
회사명까지 바꿀 정도로 회사 규모를 성장시켰던 ‘완전 밀폐 용기’ 락앤락의 대성공도 커뮤니티의 힘이 컸다.3 김 회장이 1998년 ‘완전 밀폐’를 주장하며 처음 락앤락을 시장에 내놨을 때만 해도 반응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자 김 회장은 국내 대신 해외로 눈을 돌렸고 미국 홈쇼핑 채널인 QVC에서 제품을 팔았다. 쇼호스트가 밀폐력을 증명하기 위해 방송 내내 락앤락 안에 음식을 넣고 위아래로 흔들고 수조에 담갔다 빼기도 했다. 미국 홈쇼핑 방송은 대성공이었다. 5000세트를 단번에 매진시켰다. 미국에서 먼저 성공을 이루자 국내에서도 서서히 반응이 오면서 2001년부터는 국내 홈쇼핑에서도 연이은 매진 신화를 써내려갔다. 입소문을 타고 락앤락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락앤락 써포터즈는 이 인기를 증폭시켰다. 락앤락 써포터즈에 가입한 회원들이 인터넷 블로그와 포털사이트 등에 락앤락에 대한 긍정적인 글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회원들의 입소문이 주부들을 중심으로 퍼지면서 락앤락은 모든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미국과 국내에서 진행된 홈쇼핑 방송은 홈쇼핑 회사에서 정한 시간 동안만 방송해 시청자들인 주부는 수동적인 입장에 놓이지만 인터넷 웹사이트는 소비자들이 필요할 때 언제든 들어가 볼 수 있고 본인들의 의견도 적극 피력하는 등 회사와 양방 간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폭발력이 더 컸다. 락앤락의 주 소비층인 주부들은 TV 홈쇼핑에서 제품을 사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갔다.
본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만큼 락앤락 써포터즈에 대한 김 회장의 관심과 애정도 컸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직접 이벤트나 커뮤니티 개선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 때문에 커뮤니티 관련 업무는 락앤락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다. 락앤락은 락앤락 써포터즈 및 커뮤니티 관련 일을 모두 직접 처리한다. 자금과 인력이 넉넉지 않은 중소기업 대부분이 커뮤니티 운영을 외부대행사에 맡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락앤락은 락앤락 써포터즈 담당 직원을 따로 두고 홍보팀에서 관리했다. 대행사를 거치면 의사소통이 복잡해질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불만사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문제가 확대 해석되고 관련 내용이 밖으로 새어나갈 우려를 미리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담당자는 회사에 불만사항이나 개선사항이 올라오면 바로 답글을 달아 오해의 소지를 차단했고 회원의 질문에도 최대한 빨리 답을 했다. 담당자가 계속해서 웹사이트만 주시하다 보니 경쟁사의 온라인 커뮤니티보다 반응 및 대응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기업에서는 답글이 달리는 데 며칠이 걸리는 데 반해 락앤락에서는 당일 내에 응답이 있으니 회원들은 더 적극적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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