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2.0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적정기술 1.0 vs. 적정기술 2.0 1) 적정기술 1.0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 중심 접근. 외부 재원을 활용하는 보급 중심의 운영. 비즈니스 현장에서 수요를 이끌어내는 데 취약
2) 적정기술 2.0 사용자 필요를 충족하는 수요 중심 접근. 현지 재원 및 자원을 활용한 시장 중심 운영. 문제 해결 외 추가적인 가치 창출(소득 창출 또는 비용 절감)이 핵심 가치
적정기술 비즈니스 실패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 적정기술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문제해결형 적정기술(적정기술 1.0)을 사업화하려고 하기보다는 아예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함. 즉 외부 전문가 시각에서 접근하지 말고 처음부터 현지인의 수요를 바탕으로 적정기술을 통해 소득을 창출하거나 비용을 절감하는 등 가치를 창출(적정기술 2.0)해가려는 접근이 필요. 이때 각국 상황에 맞춰 개발협력 현장 수혜국과 선진 공여국 간 어떤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해갈지에 대해 고민해야 함 |
필자는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APEC-특허청 적정기술 콘퍼런스’에 참여해 ‘적정기술 사업화’라는 주제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발표자에는 적정기술의 대표적인 아이템으로 유명한 큐드럼(Q Drum)의 대표인 리차드 J. 쿨만(Richard J. Kuhlmann)도 포함돼 있었다. 많은 청중의 관심 속에 발표가 마무리된 후 청중석의 한 참석자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큐드럼의 수익성은 어떻습니까?” ‘적정기술 사업화’ 세션에 참여한 많은 청중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리처드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작은 목소리지만 명확하게 답변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사업적인 측면에서 쉽지 않습니다.” 적정기술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큐드럼마저 사업성에 고전을 하고 있다면 적정기술 기반 비즈니스란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적정기술의 대표 아이콘 큐드럼
적정기술의 가치제안 이해하기
적정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수십 년간 원조(援助) 중심으로 진행된 개발협력의 출구전략(exit strategy)이자 기업의 새로운 시장으로 각광받는 ‘피라미드 저변(BOP·Bottom of the Pyramid)’의 방법론으로서 지속가능성을 담보한 적정기술에 대한 요구가 높아져가고 있다. 비즈니스는 확고한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가치제안이 독특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수록 강력한 비즈니스모델로 인정받을 수 있다. 적정기술을 기반으로 하거나 이를 활용한 비즈니스를 편의상 적정기술 비즈니스(appropriate technology business)로 정의해본다면 적정기술 비즈니스를 가능하게 하는 가치제안은 어떠한 것인지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앞서 언급된 큐드럼을 비롯해 인간 동력과 태양광으로 구동이 가능한 라디오와 랜턴 복합기인 프리플레이(Freeplay)나 별도의 땔감 없이 태양열로 취사활동을 돕는 태양열 조리기(solar cooker) 등의 적정기술 가치제안은 무엇일까? 이들은 가치제안 안에 특정한 문제의 해결을 핵심가치로 삼는다는 점에서 ‘문제해결형 적정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반면 ‘항아리 속 항아리’로 불리는 천연 냉장고 팟인팟(Pot-in-Pot), 발로 작동하는 물 펌프 슈퍼머니메이커(Super Money Maker), 휴대폰 등을 충전할 수 있는 태양광 충전기(solar charger) 등의 적정기술 가치제안은 무엇일까? 이들 역시 특정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문제해결형 적정기술과 유사하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추가적인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부가가치로 소득창출과 비용절감이 포함되는데 이들을 각각 소득창출형 적정기술 또는 비용절감형 적정기술로 분류할 수 있다.
적정기술 비즈니스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폴 폴락(Paul Polak)은 그의 저서 <적정기술: 하루 1달러 생활에서 벗어나는 법>에서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 빈곤층’은 스스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소득의 불충분’이다. 이런 면에서 문제해결형 적정기술은 예상과 달리 현장에서 수요를 이끌어내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통해 시작되는데 문제해결이라는 접근 자체가 갖는 외래적 공급방식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예산과 기금이 소진되는 순간 더 이상의 수요 없이 중단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적정기술 비즈니스로서 잠재력이 있는 적정기술은 소득창출 또는 비용절감 효과로 직접 연계될 수 있는 소득창출형 적정기술 또는 비용절감형 적정기술이다.
시장중심 적정기술 비즈니스의 잠재력
과거에 필자는 캄보디아에서 중금속과 오염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무동력 적정기술 정수 장치를 보급하는 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이들은 보급된 적정기술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해당 장치를 더 이상 쓰지 않거나 방치했다. 이들에게 제시된 문제해결이란 외부 전문가들이 바라본 ‘문제(오염된 물)’의 외부적 해결이었을 뿐 실제 이들에게 절실한 문제(소득의 불충분 등)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최근 국비 지원을 받아 개발도상국에 마을 단위로 설치할 수 있는 정수 장치를 사업화하려는 기관에서 사업화 관련 자문을 요청해왔다. 정수 장치를 통해 하루에 생산될 1t 이상의 정수된 물은 오염된 물의 처리라는 문제해결의 관점에만 머무를 경우 지속적인 효과를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앞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필자의 자문 방향은 ‘어떻게 하면 기술을 잘 보급하고 주민들이 소중히 활용하도록 할 수 있을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1t 이상의 정수된 물이 마을 주민들에게 소득창출 또는 비용절감의 기회가 될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진행됐다. 달리 말해 ‘하루 1t의 정수된 물’을 마을 주민들은 어떠한 비즈니스의 자원이자 기회로 인식하는지 뒤에서 소개할 방법론 등을 활용해 우선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적정기술 비즈니스의 잠재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공급과 함께 수요의 발굴과 창출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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