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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추격 vs. 선도 전략

“골프스윙, 고치는게 더 어렵다” 퍼스트무버 or 패스트 팔로어, 필생의 선택

강진구 | 148호 (2014년 3월 Issue 1)

 

 

삼성전자가 최근 세계시장에 출시한 곡면 스마트폰갤럭시 라운드와 웨어러블 기기갤럭시 기어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갤럭시 기어의 경우, 출시 두 달 만에 영국에서 갤럭시 노트3 구매 시 무료로 제공되는 사은품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혹자는 이들 제품의 실패를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 혹은 마케팅의 문제이며 흔하게 발생하는 신제품의 실패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삼성전자가 매년 출시하는 수많은 제품들 중에서 한두 개가 시장에서 외면받는 것은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필자는 갤럭시 라운드와 갤럭시 기어의 실패가 삼성전자가 직면한 훨씬 더 거대한 도전과 변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심각한 위기의 일면 혹은 시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주목한 두 제품의 공통점은기존에 존재하지 않던제품들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성장을 견인한 주력 제품들은 반도체, LCD/LED TV,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레이저프린터, 스마트폰 등이다. 이 제품들은기존에 존재하던’, 즉 다른 선도기업들이 먼저 시장에 출시했던 제품들이라는 점에서 갤럭시 라운드, 갤럭시 기어와 분명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갤럭시 라운드와 갤럭시 기어는 삼성전자가 더 이상 기존 제품들을 모방하고 개선하는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에 머무르지 않고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무버(first mover·시장선도자)로 전략적, 조직적 변화를 시도한 첫 번째 결과물이었다는 얘기다.

 

시장선도 기업으로의 변화, 그 문턱에서

 

많은 한국 기업들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고비를 극복하고 세계 시장에서 눈부신 성과와 성장을 이뤄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들을 얻게 됐다.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 LG전자, SK 하이닉스 등이 바로 그런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각자가 속한 산업군에서 이미 기술력 수준에서 세계 1위 자리에 등극했거나 혹은 선두권 그룹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이제 시장선도자로서 21세기를 맞은 한국 기업들은 새로운,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 새로운 도전은 이들 기업이 과거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도전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패스트팔로어에서 퍼스트무버로의 전략적 전환이다. 이제 더 이상 따라 하고 모방할 만한 퍼스트무버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초우량 한국 기업들은 패스트팔로어로 남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뜻이다.

 

패스트팔로어는 선두 기업이 내놓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최대한 신속하게 모방해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인 반면 퍼스트무버는 아직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경쟁자들보다 먼저 출시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으니 연구·개발 과정에서 더 이상 타사 제품의 모방이 아닌 독자적인 혁신에 초점을 맞추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기업의 전략은 그렇게 단순하고 신속하게 수정되고 변화되기 어렵다. 조직군생태학(population ecology) 이론의 대표적인 학자인 해넌(Hannan)과 프리먼(Freeman), 진화경제학(evolutionary economics) 이론을 확립한 넬슨(Nelson)과 윈터(Winter)에 따르면, 조직과 전략의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이들 이론에 따르면 모든 조직은 현재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과업과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조직이 수행하는 업무 프로세스1 를 개선해나간다. 그 결과 조직들은 현재 추구하는 목표와 수행하는 구체적인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프로세스, 문화, 자원들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점진적인 개선, 혹은 조직의 진화과정에서 현재 과업의 성격에 맞지 않거나 방해가 되는 인적 자원, 유무형의 자원들은 궁극적으로 조직 내에서 도태되고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진화의 결과, 현재 각 산업에서 다른 기업들을 압도하고 있는 우량 기업들의 루틴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

 

루틴의 딜레마: “골프 스윙은 새로 배우는 것보다 고치는 게 더 어렵다

 

 

‘루틴의 딜레마는 바로 효율적인 루틴일수록 변화시키기가 더 어렵다는 것에 기인한다. 높은 효율성을 가진 루틴일수록 조직 구성원들이 의식적으로 계획하고 수행하는 활동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우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수행하는 다양한 활동들과 절차들은 각 단계가 계획되고 의식적으로 진행되는 행동이 아니라 그 구성원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계획하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판에 박힌’, 당연하고 익숙한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루틴의 사전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스포츠를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프로골프선수들 개개인은 특정한 스윙폼을 가지고 있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선수들은 특정한 폼을 연마하고 마스터하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한 가지 스윙폼을 반복적으로 연습한다. 이를 습득하는 초반 단계에서는 연결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고, 각 동작이 정확한지, 각 동작들이 제대로 연결되는지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많은 신경을 쓴다. 이러한 비숙련 단계에서는 그 폼으로는 결코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하지만 점차 스윙이 숙련되고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각 동작의 단계와 동작 간의 연결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스윙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스윙이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그 스윙이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낸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미 특정 스윙폼을 마스터한 사람이 그것의 한계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교정해 새로운 폼으로 전환하려고 노력할 때 큰 어려움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숙련된 스윙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버리고 새로운 스윙을 습득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폼에도 익숙해지지 않은 초보자의 경우에 새로운 스윙을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특정 스윙만을 연습하면 되지만 이미 숙달된 스윙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스윙을 연습해도 계속 자신도 모르게 예전의 스윙으로 몸이 회귀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얘기다. 즉 과거의 스윙폼에 이미 몸이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스윙폼을 받아들이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몸이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경제학에서 지적하고 있는 이러한 루틴의 특징 혹은 딜레마는 조직군생태학에서는 조직의 관성(organizational inertia)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스윙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이러한 루틴의 딜레마는 조직과 기업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업이 수행하는 숙련된 루틴화된 활동들은 현재 그 기업의 효율성에 기여하고, 그들의 성공 원천이지만, 이러한 활동들을 재검토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바로 그 높은 효율성이 그 활동들의 변화를 제약하게 된다.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채택한 기업의 경우에 퍼스트무버 기업들이 어떤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이면 으레 자연스럽게 연구원들이나 엔지니어들이 이러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관찰한다. 그리고 어떠한 점을 모방하고 어떤 점을 개선하면 더 나은 후발 경쟁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재무팀에서는 시장에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어떠한 설비에 얼마만큼의 투자를 해야 할지를 퍼스트무버 기업의 과거 투자를 관찰하고 퍼스트무버 제품의 시장에서의 성공 수준을 기준으로 미루어 예측하고 계획한다. 마케팅팀에서는 퍼스트무버 기업의 제품이 어느 정도의 시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퍼스트무버 기업의 매출액, 제품판매 추이, 주요 소비자층 등의 지표들을 통해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사제품을 시장에 내놓았을 경우 어느 정도의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고, 어떤 고객층에게 그 제품을 홍보할 것인가를 파악한다. 이러한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30여 년 이상 수행하는 동안 우리 기업들은 연구·개발, 재무계획, 마케팅, 판매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에서 매우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후발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숙달된 루틴을 마스터하게 됐다. 그러나 퍼스트무버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루틴들이 필요하다. 연구·개발 부문에서는 다른 기업이 내놓은 제품과 서비스를 분석하고 모방해내는 활동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고안해야 하는 루틴이 요구된다. 하지만 패스트팔로어 전략에 익숙해진 연구·개발 부문은 시장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이들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받고 있는 선두제품을 신속하게 분석하고 모방해 내는 능력은 뛰어나나 수요조차 존재하지 않는 혁신적인 퍼스트무버 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삼성전자의 신제품 실패를 바로 이런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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