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Special Report: 추격 vs. 선도 전략

“골프스윙, 고치는게 더 어렵다” 퍼스트무버 or 패스트 팔로어, 필생의 선택

강진구 | 148호 (2014년 3월 Issue 1)

 

 

삼성전자가 최근 세계시장에 출시한 곡면 스마트폰갤럭시 라운드와 웨어러블 기기갤럭시 기어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갤럭시 기어의 경우, 출시 두 달 만에 영국에서 갤럭시 노트3 구매 시 무료로 제공되는 사은품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혹자는 이들 제품의 실패를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 혹은 마케팅의 문제이며 흔하게 발생하는 신제품의 실패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삼성전자가 매년 출시하는 수많은 제품들 중에서 한두 개가 시장에서 외면받는 것은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필자는 갤럭시 라운드와 갤럭시 기어의 실패가 삼성전자가 직면한 훨씬 더 거대한 도전과 변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심각한 위기의 일면 혹은 시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주목한 두 제품의 공통점은기존에 존재하지 않던제품들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성장을 견인한 주력 제품들은 반도체, LCD/LED TV,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레이저프린터, 스마트폰 등이다. 이 제품들은기존에 존재하던’, 즉 다른 선도기업들이 먼저 시장에 출시했던 제품들이라는 점에서 갤럭시 라운드, 갤럭시 기어와 분명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갤럭시 라운드와 갤럭시 기어는 삼성전자가 더 이상 기존 제품들을 모방하고 개선하는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에 머무르지 않고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무버(first mover·시장선도자)로 전략적, 조직적 변화를 시도한 첫 번째 결과물이었다는 얘기다.

 

시장선도 기업으로의 변화, 그 문턱에서

 

많은 한국 기업들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고비를 극복하고 세계 시장에서 눈부신 성과와 성장을 이뤄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들을 얻게 됐다.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 LG전자, SK 하이닉스 등이 바로 그런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각자가 속한 산업군에서 이미 기술력 수준에서 세계 1위 자리에 등극했거나 혹은 선두권 그룹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이제 시장선도자로서 21세기를 맞은 한국 기업들은 새로운,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 새로운 도전은 이들 기업이 과거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도전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패스트팔로어에서 퍼스트무버로의 전략적 전환이다. 이제 더 이상 따라 하고 모방할 만한 퍼스트무버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초우량 한국 기업들은 패스트팔로어로 남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뜻이다.

 

패스트팔로어는 선두 기업이 내놓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최대한 신속하게 모방해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인 반면 퍼스트무버는 아직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경쟁자들보다 먼저 출시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으니 연구·개발 과정에서 더 이상 타사 제품의 모방이 아닌 독자적인 혁신에 초점을 맞추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기업의 전략은 그렇게 단순하고 신속하게 수정되고 변화되기 어렵다. 조직군생태학(population ecology) 이론의 대표적인 학자인 해넌(Hannan)과 프리먼(Freeman), 진화경제학(evolutionary economics) 이론을 확립한 넬슨(Nelson)과 윈터(Winter)에 따르면, 조직과 전략의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이들 이론에 따르면 모든 조직은 현재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과업과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조직이 수행하는 업무 프로세스1 를 개선해나간다. 그 결과 조직들은 현재 추구하는 목표와 수행하는 구체적인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프로세스, 문화, 자원들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점진적인 개선, 혹은 조직의 진화과정에서 현재 과업의 성격에 맞지 않거나 방해가 되는 인적 자원, 유무형의 자원들은 궁극적으로 조직 내에서 도태되고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진화의 결과, 현재 각 산업에서 다른 기업들을 압도하고 있는 우량 기업들의 루틴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

 

루틴의 딜레마: “골프 스윙은 새로 배우는 것보다 고치는 게 더 어렵다

 

 

‘루틴의 딜레마는 바로 효율적인 루틴일수록 변화시키기가 더 어렵다는 것에 기인한다. 높은 효율성을 가진 루틴일수록 조직 구성원들이 의식적으로 계획하고 수행하는 활동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우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수행하는 다양한 활동들과 절차들은 각 단계가 계획되고 의식적으로 진행되는 행동이 아니라 그 구성원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계획하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판에 박힌’, 당연하고 익숙한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루틴의 사전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스포츠를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프로골프선수들 개개인은 특정한 스윙폼을 가지고 있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선수들은 특정한 폼을 연마하고 마스터하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한 가지 스윙폼을 반복적으로 연습한다. 이를 습득하는 초반 단계에서는 연결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고, 각 동작이 정확한지, 각 동작들이 제대로 연결되는지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많은 신경을 쓴다. 이러한 비숙련 단계에서는 그 폼으로는 결코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하지만 점차 스윙이 숙련되고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각 동작의 단계와 동작 간의 연결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스윙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스윙이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그 스윙이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낸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미 특정 스윙폼을 마스터한 사람이 그것의 한계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교정해 새로운 폼으로 전환하려고 노력할 때 큰 어려움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숙련된 스윙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버리고 새로운 스윙을 습득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폼에도 익숙해지지 않은 초보자의 경우에 새로운 스윙을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특정 스윙만을 연습하면 되지만 이미 숙달된 스윙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스윙을 연습해도 계속 자신도 모르게 예전의 스윙으로 몸이 회귀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얘기다. 즉 과거의 스윙폼에 이미 몸이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스윙폼을 받아들이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몸이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경제학에서 지적하고 있는 이러한 루틴의 특징 혹은 딜레마는 조직군생태학에서는 조직의 관성(organizational inertia)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스윙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이러한 루틴의 딜레마는 조직과 기업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업이 수행하는 숙련된 루틴화된 활동들은 현재 그 기업의 효율성에 기여하고, 그들의 성공 원천이지만, 이러한 활동들을 재검토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바로 그 높은 효율성이 그 활동들의 변화를 제약하게 된다.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채택한 기업의 경우에 퍼스트무버 기업들이 어떤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이면 으레 자연스럽게 연구원들이나 엔지니어들이 이러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관찰한다. 그리고 어떠한 점을 모방하고 어떤 점을 개선하면 더 나은 후발 경쟁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재무팀에서는 시장에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어떠한 설비에 얼마만큼의 투자를 해야 할지를 퍼스트무버 기업의 과거 투자를 관찰하고 퍼스트무버 제품의 시장에서의 성공 수준을 기준으로 미루어 예측하고 계획한다. 마케팅팀에서는 퍼스트무버 기업의 제품이 어느 정도의 시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퍼스트무버 기업의 매출액, 제품판매 추이, 주요 소비자층 등의 지표들을 통해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사제품을 시장에 내놓았을 경우 어느 정도의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고, 어떤 고객층에게 그 제품을 홍보할 것인가를 파악한다. 이러한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30여 년 이상 수행하는 동안 우리 기업들은 연구·개발, 재무계획, 마케팅, 판매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에서 매우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후발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숙달된 루틴을 마스터하게 됐다. 그러나 퍼스트무버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루틴들이 필요하다. 연구·개발 부문에서는 다른 기업이 내놓은 제품과 서비스를 분석하고 모방해내는 활동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고안해야 하는 루틴이 요구된다. 하지만 패스트팔로어 전략에 익숙해진 연구·개발 부문은 시장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이들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받고 있는 선두제품을 신속하게 분석하고 모방해 내는 능력은 뛰어나나 수요조차 존재하지 않는 혁신적인 퍼스트무버 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삼성전자의 신제품 실패를 바로 이런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루틴의 딜레마 해결? 점진적인 변화로는 불가능!

 

조직군생태학과 진화경제학에서 제시하는 루틴의 딜레마 혹은 조직의 관성이라는 개념은 패스트팔로어 전략를 채택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30여 년간 조직 구조를 변화시키고 진화해 온 한국 기업들이 변화하기 어려운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설령 한국 기업들이 조직 내 개별적 요소들을 하나하나 성공적으로 변화시킨다 하더라도 우리 기업들이 패스트팔로어에서 퍼스트무버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룰 수 있으려면 또 다른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들(연구·개발, 재무계획, 마케팅, 판매 등)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전략적 수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루틴의 변화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보니 변화를 모색하는 조직들은 순차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서서히 조직을 변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먼저 연구·개발 분야의 변화를 모색하고 그 변화가 성공적으로 안착된 이후에 다른 부문의 변화를 시도하는 방식 등이다. 하지만 경영전략의 핵심 개념에 따르면 이러한 순차적이고 점진적인 조직활동의 변화를 통해서는 절대로 성공적인 전략적 변화를 달성해 낼 수 없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는 전략을서로 상충하지 않고, 서로의 긍정적인 효과를 강화하는 일련의 활동(activity)들의 유기적인 결합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선택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낸 한국 기업들이 수행하는 수많은 조직 내 활동들은 그 활동 각각이 패스트팔로어 전략에 맞게 최적화돼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들과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결합돼 있다. 따라서 기업들이 하나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킨다 하더라도 이 활동과 밀접하게 결합돼 있는 다른 활동들이 성공적으로 동시에 변화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변화는 전체적인 전략의 성공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니콜라이 시겔코프 (Nicolaj Siggelkow) 교수도 점진적이고 순차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이 왜 전략적 변화를 추구하면서 실패하게 되는가를 역시 전략의 상호연관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보여줬다. 전략에서 강조하는 이러한 상호연관성의 문제는 한국 기업이 패스트팔로어에서 퍼스트무버로 변모하는 문제가 단순히 연구·개발 부문의 변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즉 기업의 다른 많은 부분들, 예를 들면 재무와 마케팅, 영업 등의 부문에서도 퍼스트무버 전략으로의 동시적인 전환과 변화가 요구된다는 의미다.

 

패스트팔로어 기업들은 퍼스트무버의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비 투자와 마케팅 계획을 수립하고 승인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데이터의 존재는 재무팀과 마케팅팀이 투자지출 계획을 수립하고, 고위 경영진이 이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불확실성을 제거해 주고 투자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오랜 기간 추구하고 연마해 온 기업들은 구체적인 시장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은 투자안이나 제안서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설령 연구·개발진이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을 고안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즉, 연구·개발 부문이 성공적으로 퍼스트무버로 변모했다 하더라도 이러한 제품의 시장성에 대해서 평가할 만한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다는 게 문제가 된다. 여전히 패스트팔로어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재무팀과 마케팅팀, 경영진에서는 이러한 아이디어에 자원을 투자하고 추진하는 데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 결과 이렇게 부분적으로만 퍼스트무버로의 전환에 성공한 기업들은 결코 성공적으로 완전하게 퍼스트무버로 거듭날 수 없다. 따라서 전략에서 강조하는 상호연관성의 개념에 따르면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오랜 기간 동안 추종한 기업이 성공적으로 퍼스트무버 전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업 조직의 모든 분야에 걸친 대수술이 동시에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제언 1

 

“무조건적인 퍼스트무버로의 전환은 정답이 아니다

 

기업의 전략적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략적 변화가 과거 30여 년 동안 추구하고 완성시켜온 것에 대한 것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조직의 관성, 루틴의 딜레마, 전략의 상호연관성 등의 개념은 한국 기업들이 패스트팔로어에서 퍼스트무버로 전략적 변화를 시도할 때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효율성이 감소하고, 재무적 성과가 악화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퍼스트무버로의 변화가 어렵기 때문에 패스트팔로어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인가? 이는 우문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필자는 우리 기업들이 일단 당분간은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유지하면서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 정도의 아주 작은 규모의 변화만을 시도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비록 우리 기업들이 많은 분야에서 퍼스트무버에 근접하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혁신적인 기업들이 각 산업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그들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시장에 내놓는 혁신적인 제품들을 재빨리 모방해 보다 더 개선된 성능의 제품을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다면 우리 기업들은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시장 1위 기업이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고수한다는 것이 다소 꺼림칙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감정적인 측면은 잠시 배제하고 자신의 조직에 가장 최적화돼 있는 전략이 과연 무엇인지 따져봐야 하고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 굉장한 어려움을 수반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굳이 퍼스트무버로의 변신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점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하지만 더 이상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고수해서는 희망이 없고 기필코 퍼스트무버로의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다면 그때는 퍼스트무버로의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변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조직이 변화를 모색하는 동안, 즉 기존의 익숙한 루틴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시기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오류와 실수가 발생한다. 이러한 시기에 경영진의 굳건한 의지와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변화를 모색하는 조직이 범하는 오류와 실수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변화에 대한 회의와 반발을 증폭시킨다. 또 이전 루틴 혹은 전략으로의 회귀를 원하는 세력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삼성전자가 최근 내놓았던 곡면 스마트폰 갤럭시 라운드와 웨어러블 기기 갤럭시 기어가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데 실패했다. 패스트팔로어 전략에 익숙한 삼성의 엔지니어들은 아이폰과 경쟁할 만한 갤럭시 시리즈를 만들어 내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지만 시장에 존재하지 않고, 소비자의 반응도 알려져 있지 않은,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유형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패스트팔로어 루틴을 오랜 시간 가동하던 연구·개발 부문은 새롭고 혁신적이면서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과 기술을 제시하는 데에는 서투를 것이다. 사실 전략적 변화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갤럭시 라운드와 갤럭시 기어의 실패는 다소 예상 가능했던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루틴의 변화를 시도하는 시기에는 성공보다 실패가 더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전략적 변화에 어떠한 이유에서든 반대하는 조직 내부의 세력과의 대결이다. 반도체, TV, 휴대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온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이번 갤럭시 라운드와 갤럭시 기어의 성과와 관련, 전략적 변화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 수도 있다. 만약 앞으로 몇 번 더 이러한 실패를 경험한다면 삼성전자의 퍼스트무버로의 전략적 변화 시도는 더욱 큰 내부적 반발과 회의에 직면할 것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전략적 변화를 시도하는 많은 기업에는 결국 두 가지 선택이 존재한다. 전략적 변화 초반의 실패와 비효율을 감내하고 전략적 변화를 그대로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영광을 가져다준 검증된 전략과 루틴으로 회귀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선택 중에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선택인가에 대한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과거의 전략이 수명을 다했다는 확신이 든다면 루틴의 변화에 따르는 일시적인 비효율과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전략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맞다. 반면, 과거의 전략으로도 충분히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많은 위험과 불확실성이 내포된 전략적 변신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일 것이다. 루틴의 변화에서는 효율성의 저하가 수반된다는 것을 감안하고 이를 감내하고 용인할 수 있는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제언 2

 

“루틴의 변화를 위한 방법은 많다. 다양한 길을 모색하라

 

패스트팔로어에서 퍼스트무버로의 변신은 결국 루틴의 변화와 새로운 역량의 학습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여러 번 설명한 바와 같이 루틴의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변화를 시도하는 많은 기업과 조직들이 그 와중에 발생하는 효율성의 저하로 인해 경쟁에서 낙오되며 소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물지만 소수의 기업들은 성공적으로 조직과 전략의 변화를 이뤄내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존 루틴의 변형이 필요한데 이는 매우 어려운 과업이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루틴의 변형을 추구하기보다는 외부로부터 새로운 루틴을 습득하는 방식을 추구하기도 한다.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루틴의 습득은 종종 새로운 인재의 고용과 다른 기업의 인수를 통해서 이뤄진다. 극적인 조직과 전략의 변화를 이뤄낸 기업의 예로 IBM을 들 수 있다.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이라는 이름 자체가 말해주듯 IBM은 최고의 컴퓨터 하드웨어 제조업체였다. 그러나 2005 IBM은 컴퓨터 제조 분야를 레노버(Lenovo)에 매각하고 IT 중심의 기업 컨설팅과 솔루션 제공을 주력으로 하는 서비스 회사로 변신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IBM은 스스로의 힘으로 컨설팅 산업에 진입하려고 하기보다는 외부로부터 컨설팅에 적합한 역량과 루틴을 확보했다. IBM 2002 PwC의 컨설팅 부문을 인수해 컨설팅과 서비스산업에 적합한 루틴과 역량을 확보했다. 만약 IBM이 스스로의 힘과 노력만으로 컨설팅 산업에 진입하려고 했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며 컨설팅 산업에서 오늘날과 같은 위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삼성전자도 최근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전통적으로 인수합병에는 관심이 없고 내부적인 역량과 루틴의 개선을 통한 성장을 도모하던 기업이다. 그랬던 삼성이 최근 인수합병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꾸게 된 이유는 아마도 퍼스트무버로의 전략적, 조직적인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변화 노력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인수합병이나 외부 인재 영입을 통한 루틴과 전략의 변화도 다양한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에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루틴과 역량의 습득이 결코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2  결국 조직과 전략의 변화를 도모하는 기업들은 내부적인 루틴의 변화와 역량개발만을 고집하거나 외부로부터의 루틴과 역량 습득만을 고집하지 말고 다양한 방식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취사선택하고 혼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진구 고려대 경영대 교수 jg20605@korea.ac.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 와튼스쿨(Wharton School)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싱가포르 난양경영대(Nanyang Business School) 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심 분야는 경영전략, 혁신과 경쟁우위,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자 의사결정 등이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