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s among Companies
1. 국제정치의 본질과 비즈니스 월드
국제정치의 주인공은 국가다. 국가들로 구성된 오늘날의 세계는 인간들로 구성된 인간사회와도 흡사하다.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인간사회를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법칙이 적용되는 소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everyone against everyone)’로 묘사했다. 홉스는 이러한 상황을 ‘자연 상태(state of nature)’라고 명명했으며 자연 상태는 절대적 지배자의 부재를 의미한다. 국제정치의 본질은 바로 이러한 무정부상태에서 비롯된다. 서부 개척시대에 보안관이 없는 텍사스의 어느 마을, 그리고 인종청소가 진행됐던 1990년대 중반의 유고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리아의 혼란 상태를 상상해 보라. 이러한 암울한 세상에서 국가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생존(survival)이다. 살아남아야 번영을 도모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생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주변 국가들과 경쟁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위한 다양한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 극대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개별 국가가 가진 능력과 생존전략이 상이하기에 국가들 간의 능력의 차이, 이른바 국력은 불균등하게 분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제정치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혼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경제 생태계 또한 국제정치의 본질과 유사하다. 국제정치의 주인공이 주권국가인 것처럼 경제생태계의 주된 행위자는 기업이다. 정치는 권력의 추구가 최종 목표이고 국제정치는 국가이익으로 포장되는 권력획득을 통해 생존과 번영을 도모한다. 기업 또한 이윤의 획득을 통해 기업의 생존을 도모하고 이윤의 극대화를 통해 기업의 번영을 추구한다. 한정된 자원과 이익을 둘러싸고 기업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동종 업계의 기업들과 약육강식의 치열한 경쟁을 도모한다. 이 과정에서 승리와 좌절의 냉엄한 심판이 내려지며 그 결과로 기업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국제정치에서 권력의 불균등한 분포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기업 간에도 불균등한 성장과 지위의 부여는 필연적이다. 다만 국제정치와 기업생태계의 차이는 국제정치에서는 국가 상위의 권위체가 부재하지만 기업의 활동에는 ‘정부’와 ‘규제’라는 강제적인 상위기관과 엄격한 규율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가 간 이해다툼에 UN과 같은 국제기구의 권능에 한계가 있는 것처럼 시장경제체제에서 나타나는 정부의 간섭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큰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2. 강대국의 정치학과 대기업의 정치학
국제정치의 주된 행위자는 국가이지만 그 주인공은 바로 ‘강대국’이다. 국제정치는 바로 강대국들의 역사다. 대기업과 초거대 기업(글로벌 기업)이 국가경제, 심지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국제정치의 평화와 안정의 문제는 강대국들의 생존 및 발전 전략에 따라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기업들이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처럼 강대국들도 국가 이익의 추구를 통해 절대적 지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은 크게 2가지 차원에서 전개된다. 첫째는 강대국의 지위를 넘어서는 패권(hegemony)국가의 등장과 질서의 유지다. 둘째는 강대국들 간 협조 체제를 통한 안정성을 바탕으로 각국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 역시 비즈니스에 적용해 설명하면 대기업 중에서도 전체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칠 만한 초거대기업(글로벌 기업)이 있고 그 기업의 행태가 전체적인 세계 비즈니스의 구조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강대국 간 협조 체제란 쉽게 말해 우리나라의 전국경제인연합 같은 협력 체제를 말한다.
먼저 패권국가 체제부터 살펴보자. 국가는 압도적 국력의 우위를 통해 국제정치의 안정에 필요한 공공재를 보급한다. 패권국가에 의해 평화가 유지되면 다른 국가들은 패권국가가 창출한 질서에 무임승차(free-riding)해 경제발전을 이루고 군사력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패권국가는 점점 쇠퇴하고 다른 강대국이 기존 패권국가의 국력을 능가하게 되면서 기존 패권질서에 변화가 생긴다. 전자산업에서 소니와 삼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러한 변화가 전쟁을 통해 일어날 때 그 전쟁을 국제정치에서는 ‘패권전쟁(hegemonic war)’이라고 부른다. 20세기 초 미국과 영국 사이의 패권의 이양처럼 평화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이다. 글로벌 기업이 되는 과정에서 기존 1등 기업과 도전 기업 간에 특허전쟁을 비롯한 치열한 경쟁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삼성과 애플과의 특허전쟁은 비즈니스에서의 패권경쟁이라 부를 수 있다. 패권국가는 경쟁국가의 부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소위 ‘예방전쟁’을 수행하기도 하고 부상하는 국가 입장에서는(2등 기업) 패권국가와의 국력의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약자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감행하기도 한다.
패권국가에 대한 부상국가의 도전(1등 기업이 되기 위한 대기업 간의 경쟁)을 가장 잘 설명하는 전형적인 예는 바로 기원전 5세기에 벌어졌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일으켰던 고대 그리스 세계에는 마치 현재의 국제정치의 모습처럼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포함해 약 160개의 국가(폴리스)들이 있었다. 당시 최강의 해양 국가였던 아테네 제국을 대륙의 강대국인 스파르타가 먼저 공격함으로써 27년간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 당시 누가 봐도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스파르타는 왜 패권국가였던 아테네에게 도전했을까?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그 이유를 “아테네의 국력 증가와 그것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마치 2등 기업이 능력의 열세를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등 기업의 승자 독식이 발생하기 이전에 과감한 도전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즉 사세의 격차가 더 벌어진 이후에 경쟁하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도전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즉 승리 가능성이 높을 때)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강대국 중심의 국제정치 구조를 설명하는 두 번째는 강대국들이 협조 체제를 구축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국제정치의 역사를 보면 고대 로마제국이나 19세기 영국, 현재의 미국처럼 초강대국인 패권국가가 월등한 능력으로 국제정치 질서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패권국가의 국력이 쇠퇴할 때 기존 강대국들이 협조 체제를 구축해 지역 및 국제질서를 유지한 사례도 있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패권경쟁에서 사라진 후 승전국들인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과 패전국인(하지만 여전히 강대국이었던) 프랑스가 중심이 돼 형성했던 ‘유럽협조체제(Concert of Europe)’가 대표적이다. 다수 강대국 중심의 유럽협조체제를 통해 유럽은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약 100년 동안 강대국들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을 통해 긴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이어갔다.
이는 대기업들이 카르텔을 형성하거나 경제단체를 만들어 대기업 중심의 질서를 창출·강화하는 현상과 유사한 면이 있다. 혹은 대기업들이 가격 담합을 통해 시장 질서를 자의적으로 교란하거나 유리하게 재편하는 것과도 공통점이 있다. 국제정치는 패권국가가 만들어놓는 질서와 이에 도전하는 강대국 간의 경쟁, 그리고 각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파워를 지속시키기 위해 만드는 각종 협조체제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빚어내는 일종의 파워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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