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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히어로즈

3구 이내에 승부하라 정면대결이 볼넷 줄였다

이영훈 | 143호 (2013년 12월 Issue 2)

 

 

프로야구 넥센히어로즈의 박병호(27) 선수는 인터뷰를 재미없게 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본인도 안다. 기자들 질문에 답하기 전 박병호 선수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이렇게 말하면 재미없겠지만…”이다. 박병호 선수가 가장 재미없던 순간은 2013 114일 열린 시상식 때였다.

 

2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그는 이날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2년 연속 MVP 수상이었다. 기자들은 끈질기게내년에는 홈런 40개 정도는 치겠다는 발언을 이끌어 내려 애썼지만 그는내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전 경기에 출장하고 싶다고만 말했다. 그는 올해 지난해보다 성적이 더 좋아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대처가 좋아졌다. 특히 볼넷이 늘었다고 답했다. 홈런을 더 많이 친 것보다 볼넷이 늘어난 게 좋다는 건 정말 재미없는 대답 아닌가.

 

그런데 사실 이렇게 재미없는 대답 속엔 그가 진짜 대단한 선수인 이유가 숨어 있다. 그는 지난해 투 스트라이크 노 볼로 타석을 시작했을 때 OPS(출루율+장타력) 0.698밖에 안 됐다. 지난해 리그 평균 OPS 0.698이었다. ,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지난해 박병호 선수는 그저 평범한 타자에 불과했다. 올해는 같은 상황에서 OPS 0.923으로 성적이 좋아졌다. 한화의 대표 선수인 김태균(31)의 올 시즌 OPS 0.920이다. 이제 박병호 선수는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도 다른 팀 간판타자 몫을 해주는 대형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전 경기 출장이라는 목표 역시 의미심장하다. 박병호 선수는 올해 128번의 전 경기에 모두 4번 타자로 출장했다. 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2년 연속 전 경기를 출장하고 모든 타석을 4번 타자로 나선 이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박병호 선수뿐이다. 올해 홈런 37개를 친 그가 굳이내년에는 40홈런을 날리겠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저 이 기록을 3년 연속 달성하면 좋겠다는 겸손함 속에 이미 자신감이 녹아 있는 것이다.

 

박병호의 SCQA

 

올 시즌 박병호 선수에게 가장 달라진 건 상체를 많이 젖혀누워치기자세를 취할 때가 많았다는 점이다. 특히 투수 공이 몸 쪽으로 향했을 때 이런 타격 기술을 선보였다. 이 타격 기술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단점을 이겨내려는 그의 전략적 사고가 엿보인다.

 

2005년 데뷔한 박병호 선수는 지난해 처음으로 한 시즌 전체를 소화했다. 그러면서 몸 쪽 공에 약하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게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약한 이유였다. 약점이 분명한 만큼 상대 배터리(야구에서 투수와 포수를 함께 이르는 말)는 유리한 카운트에서 그 코스만 공략하면 그만이었다.

 

몸 쪽 공은 바깥쪽 공보다 타이밍을 더 빠르게 잡아야 방망이 중심에 맞힐 수 있다. 그래서 보통 타자들은 몸 쪽 공을 칠 때 최대한 빠르게 스윙하려고 애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커브나 체인지업처럼 느린 변화구에는 약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몸 쪽 공에 약점이 있는 선수가 바깥 쪽 변화구에도 애를 먹는 건 이 때문이다.

 

박병호 선수는 다른 길을 택했다. 지난 겨우내 그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등 근육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상체가 탄탄하게 받쳐주면서 몸을 뒤로 눕혀 팔을 쭉 뻗은 채로 방망이를 휘둘러도 힘을 실을 수 있게 됐다. 자기 몸을 활용해 공의 상대적 위치를 바꾸는 기술을 터득한 것이다. 그 결과 변화구에 대한 타이밍을 잃지 않고도 몸 쪽 공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됐다. 시즌 초반 박병호 선수는 변화구를 밀어 쳐 홈런을 만들었고 시즌을 치르면서 점점 몸 쪽으로 타이밍을 옮겼다.

 

이제 상대 투수들은 그를 대할 때던질 곳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투수들이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자연스레 볼넷이 쌓이기 시작했다. 올해 프로야구 일정은 지난해보다 5경기가 줄었지만 박병호 선수는 볼넷이 19개 늘었다. 그 결과 지난해 선두였던 한화 김태균 선수를 따돌리고 리그 볼넷 1위를 차지했다. 박병호 선수가볼넷이 늘어 좋다고 말한 건 진심이었다.

 

볼넷은 아웃으로 물러났어야 할 타자를 1루 주자로 만든다. 주자가 많이 되면 득점할 일도 많아진다. 박병호 선수는 리그에서 득점(91)도 가장 많이 올린 선수다.

 

맥킨지컨설턴트 출신 바바라 민토는 자신의 책 <논리의 기술>에서 SCQA 문제 해결법을 제시했다. 어떤 문제를 전략적으로 해결하려면 상황(Situation)을 인식하고, 세부 사항을 따라 전개(Complication)한 뒤, 적절한 질문(Question)을 통해, 해답(Answer)을 찾는 과정을 밟는 게 문제 해결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박병호 선수가누워치기기술을 터득하는 과정에서도 이 네 가지 요소를 모두 찾을 수 있다. 열심히 훈련하지 않는 프로 선수는 생각보다 드물다. 그러나 많은 프로 선수들은 무조건 열심히 죽어라 훈련만 한다. 그리고는왜 나는 운동밖에 모르는데 안 되는 것이냐며 한탄한다. 진짜 문제가 뭔지 모르기에 자기에게 맞는 구체적인 해결법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쉰다. 고로 이긴다

 

2008년 창단한 넥센은 지난해까지 통산 승률이 0.422밖에 되지 않는 약체 팀이었다. 2011년에는 최하위로 처졌다. 지난해는 MVP, 최우수신인을 동시에 배출하고도 팀 순위는 6위였다. 그러던 넥센이 올해 정규 시즌 3(승률 0.571)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전략적 접근법 덕이었다.

 

넥센은 염경엽 감독을 신입 사령탑으로 임명한 뒤 지난 시즌 문제점을 찾는 것부터 올 시즌 준비를 시작했다. 넥센은 지난해도 시즌 중반까지 4강 다툼을 벌였지만 후반기에 무너졌다. 넥센은 지난해 630일까지는 33232(승률 0.508)로 포스트 시즌 진출이 가능한 4위에 겨우 0.5게임 뒤진 5위였다. 그러나 7월 이후에는 28137(0.430)로 무너졌고 4위 롯데와 5.5게임 차이로 6위였다. 여름을 견디지 못했던 것(상황)이다.

 

 

왜였을까. 당연히 선수들 체력이 달렸기 때문이다.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넥센은 자금난 탓에 해체한 옛 현대를 사실상 인수해 창단했다. 넥센 역시 운영 자금이 부족했고 주축 선수 대부분을 시장에 내놓으며 운영 자금을 마련했다. 그 결과 팀에 A급 선수가 부족해졌다(전개).

 

그렇다면 이 부족한 선수 자원으로 어떻게 128경기나 소화해야 할까(질문). 보통 프로야구 선수들은 이럴 때겨우내 단내 나게 굴러 체력을 기르자며 타이어를 등에 메고 뛴다. 특히 2000년대 중후반 김성근(현 고양 원더스) 감독이 SK에서지옥 훈련을 통해 성공 사례를 쓴 뒤로 프로야구에는 강한 훈련이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모든 팀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에게 더 강한 훈련을 주문했다.

 

그러나 넥센의 선택은 휴식이었다(해답). 동계 훈련뿐 아니라 시즌 중에도 그랬다. 넥센은 9개 구단 중 가장 훈련을 적게 하는 팀이었다. 올해 프로야구는 홀수 구단 체제라 한 팀은 1주일에 4일은 경기가 없었다. 다른 팀들은 보통 이 중 사흘 동안 훈련을 했지만 넥센은 이틀만 했다. 그나마 그중 하루는 수비 포메이션을 점검하는 수준. 밤 경기 다음에 낮 경기가 이어지면 또 훈련을 생략했다. 염 감독은전체 체력량이 어차피 정해져 있다면 실전에서 집중적으로 쓰는 게 낫다푹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게 결국 장기 레이스를 치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조직생태학의 대가 마이클 해넌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한 업종의 모범사례를 다른 기업들이 다 따라 하면 결국은 기업 간에 차별점이 사라진 채 경쟁만 심화된다남들과 똑같은 전략이나 시스템을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조직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염 감독은 틈만 나면 휴식을 주는예방 주사 야구를 통해 트렌드를 거슬렀다. 그게 넥센에 가장 맞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임 첫해 창단 후 처음으로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나를 알아야 적을 안다

 

프로야구 동계 훈련 때마다 언론에는무한 경쟁이라는 표현이 차고 넘치게 등장한다. 그러나 넥센은 이번에도 거꾸로 갔다. 염경엽 감독은 선수들에게 무한 경쟁을 시키는 대신 훈련 초기부터 주전과 비주전을 구분하고 서로에게 구체적인 역할(role)을 주문했다.

 

무한 경쟁은 낙오자를 배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쟁에서 밀린 구성원은 자기 역할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넥센은 처음부터 각자 임무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해 위험을 제거했다. 넥센 선수들은 못 하는 걸 잘하려 애쓰는 대신 일단 잘하는 것만 더 잘할 수 있도록선택과 집중방식으로 훈련하면 충분했다.

 

넥센의 이장석 대표는스타급 선수는 우량주 종목에, 유망한 선수는 성장주에 비교할 수 있다이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하느냐 하는 것은 마치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와 같다고 설명한다. 당연히 선수 활용법도 달라야 한다.

 

이런 포트폴리오 전략 덕에 문우람(21), 김지수(27), 안태영(28) 같은 선수는 차분히 퓨처스리그(2)에서 담금질을 한 뒤 1군에 올라와 팀 전력에 보탬이 될 수 있었다. 예년의 넥센은 고비 때 돌파구를 찾아줄 선수가 없어 속절없이 무너지던 팀이었다.

 

우리 팀 선수들의 역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나면 다른 팀과 트레이드 카드를 맞추기도 쉽다. 우리 팀에는 겹치지만 상대 팀에는 부족한 자원을 내주고 그 반대 자원을 받아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내야 백업 지석훈(29)과 왼손 대타 요원 박정준(29) 선수는 어차피 넥센에는 자리가 없었다. 넥센은 이들이 주전급으로 뛸 수 있던 신생팀 NC에 트레이드를 제안해 구원 투수 송신영(36)을 받아 왔다. 원래 넥센에서 뛰었던 송신영 선수는 지킬 점수를 만들어 내지 못하던 NC에서 뛰기에는불필요하지만 귀한자원이었다.

 

송신영 선수가 오면서 넥센 구원투수진도 안정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트레이드 전까지 넥센 구원투수들 평균 자책점은 9.0이나 됐지만 그 뒤로는 3.13으로 낮아졌다. 나갈 때마다 점수를 주던 투수들이짠물 투수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 덕에 넥센은 5회 이후 역전패가 단 두 차례밖에 없는 탄탄한 불펜을 구축할 수 있었다.

 

LG에서 여러 수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선수인 서동욱(29)을 받아온 것도 마찬가지다. 서동욱 선수를 받아오는 대신에 내 준 최경철(33) 선수는 어차피 넥센에선 자리가 없었지만 포수들의 잇단 부상 사태를 겪은 LG에선 환영할 만한 인재였다. 결과론이지만 2루 백업을 맡아 준 서동욱 선수가 없었다면 넥센은 지난해 신인왕 서건창(24) 선수의 부상 공백을 채우지 못했을 것이다. 당초 유틸리티 자원으로 쓰려던 김민우(34) 선수가 음주 운전 파동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내야 백업 신현철(26) 선수도 같은 이유로 팀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넥센은 1122일 열린 2차 드래프트 때 이들을 떠나보내며 팀워크를 지켜냈다.

 

그저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고 말하지 말라

 

좋은 리더는 구체적으로 말한다. 옛 소련이 1957년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스푸트니크를 쏘아올리자 미국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1961년 취임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1963년 이에 대해 연설하면서우리는창조 과학을 통해 소련에 뒤지지 않는우주 민주화를 실현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우리는 앞으로 10년 안에 사람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귀환시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로 1969년 미국인 닐 암스트롱은 달에 갔다 돌아왔다.

 

올 시즌 넥센 투수진의 제1과제는 볼넷 줄이기였다. 타자와 반대로 투수에게 볼넷은 아웃으로 처리했어야 할 타자를 살려 1루에 내보내주는 행위다. 게다가 투구 수까지 늘어난다. 투수가 가장 피해야 할 기록이 볼넷이다. 그런데도 넥센 투수진은 3년 연속 볼넷 1위를 차지하는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저볼넷을 줄이자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 말은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무책임한 외침이다. “볼넷에 벌금을 부과하겠다거나볼넷을 내주면 2군으로 내려 보내겠다는 으름장 역시 마찬가지다. 어차피 투수진을 모두 교체할 게 아니라면 실천 가능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해야 했다.

 

염 감독은 배터리에게 세 가지를 주문했다. 먼저 3구 이내에 승부할 것. 그 대신 안타를 맞아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다. 또 변화구도 유인구로 쓸 게 아니라 스트라이크로 집어넣으라고 했다. 투수들이 변화구를 던지려고 하다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볼 수만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볼카운트가 늘어나는 걸 막으려는 조치였다. 포수들에게는 초구에는 절대, 두 번째 공에도 웬만하면 자리를 옮기지 말라고 주문했다. 포수가 자리를 옮기면서 투수에게 난이도가 높은 공의 정교한 제구를 요구하다가 투수가 제대로 던지지 못해 오히려 볼넷 수가 늘어나는 걸 염려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략의 변화 결과 넥센의 볼넷 순위는 5위로 좋아졌다.

 

넥센이 볼넷을 줄이겠다는 의지는 올해 2차 드래프트에서도 드러난다. 넥센이 NC에서 영입한 투수 이상민(23)과 윤영삼(21) 모두 퓨처스리그에서 볼넷이 적기로 소문난 선수들이다. 선수단 구성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목표를 잃지 않은 것이다.

 

타격 훈련도 독특하다. 보통 프로야구 팀이 타격 훈련을 할 때는 배팅케이지(쇠그물을 친 타격 연습용의 작은 울짱) 두 개를 놓는다. 하나는 사람이, 또 하나는 피칭 머신이 던지는 자리다. 넥센 타자들은 타격 연습 때 피칭 머신은 홈 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진다. 당연히 선수들 역시 엉거주춤한 상태로 공을 친다.

 

이런 방식으로 훈련을 시킨 이유는 변화구에 속지 않으면서 홈런 개수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홈런을 때리려면 스윙이 커야 한다. 그러나 스윙이 크면 변화구에 속기 쉽다. 상대 배터리 역시 이를 노리고 치기 어려운 변화구로 넥센 타자를 유혹할 개연성이 높다. 나쁜 공은 어떻게 쳐야 할까? 직접 나쁜 공을 쳐보는 연습을 하는 게 최선이다. 변화구에 집중한 피칭 머신 훈련 덕택에 넥센 타자들은 올해 홈런 125(1)를 날렸다. 지난해 홈런 성적도 SK(108)에 이어 2(102)를 기록했다. 상황을 파악한 뒤 구체적인 해법을 찾은 덕택에 거둔 성과다.

 

 

적극적 관찰자

 

레프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리나>에서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방식으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고 했다. 좋은 성과를 내는 기업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망해간다.

 

좋은 성과를 내려면 일단 우리 조직 내부를 잘 관찰해 문제점을 찾는 지점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히 좋은 리더가 되려면적극적 관찰자가 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확한 상황 진단이야 말로 개선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넥센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염경엽 감독과 이장석 대표 모두 이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면 자원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써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게 휴식이었다. 말은 쉽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보다 더 큰 목표를 꿈꿀 때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시장 트렌드를 거스르는 결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굳이 수확 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returns)을 거론하지 않아도 잘 쉬어야 일도 잘할 수 있다. 야구는 다 큰 어른들이 식구들 먹여 살리겠다고 하는 공놀이다. 쉬라고 해도 무작정 놀지만은 않는다.

 

사실 이런 결정 탓에 넥센이 입은 손해도 만만치 않았다. 올해 넥센은 1점 차 승부에서 1819패로 강하지 않았고 연장 승부 때도 424패로 반타작에 그쳤다. 만약 이 경기를 모두 잡겠다고 있는 자원을 모두 쏟아부었다면 올해 성적 역시 예년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이런 경기에서 백업 자원을 적극 활용하면서 비주전 선수들도압박감을 경험하는 소득도 얻을 수 있었다. 그 덕에 넥센은 시즌을 시작할 때보다는 더 좋은 자원을 가지고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메시지가 늘 구체적이었다는 것 역시 다른 기업에서 본받을 만한 대목이다. 모든 조직 구성원에게 “4번 타자가 돼 달라고 부탁한다고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올해 넥센은 선수들이 자기 역할에 맞는 구체적인 목표를 수행하면 됐다. 허도환(29) 선수는 올해 타율이 0.215밖에 되지 않는 수비형 포수다. 그가 시즌 중 자기 방망이 실력 탓에 고민했다면 넥센 투수진이 이만큼 볼넷을 줄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허도환은 볼넷을 줄이는 투수 리드에 신경 쓰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다 했다.

항상 함께하라

 

적극적 관찰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 고급 자동차를 타고 천천히 전통시장을 지나는 것보다 시장 한복판에서 떡볶이 한 접시를 사먹는 게 훨씬 더 시장을 잘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코노미석을 타보지 않은 항공사 최고경영자(CEO)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라고 말했던 마리 앙투아네트하고 다를 바 없다. 성과를 끌어올릴 때 가장 중요한 건 조직 구성원들하고 함께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염경엽 감독은 사비 200만 원을 들여 원서 <헤즈업 베이스볼(Heads up baseball)> 번역을 의뢰한 뒤 왼손 투수인 강윤구(23) 선수에게 선물했다. 야구 선수의 심리 훈련 기술을 다룬 책이다. 강윤구 선수는 너무 완벽하게 제구를 하려다 보니 제구가 잘 되지 않는 타입이었다. 이런 선수는 어떤 방식으로 심리 강화 훈련을 해야 하는지 이 책에 녹아 있다. 제구력 불안으로 선발에서 구원 투수로 자리를 옮긴 강윤구 선수는 올 시즌 제 몫을 다하며 감독의 스킨십에 답했다. 홈런을 치고 난 선수가 손바닥을 마주치는 하이파이브가 아니라 감독 가슴을 밀치며 장난치는 팀도 넥센밖에 없다.

 

이장석 대표는 안방 목동에서 열리는 64경기는 물론 가능한 한 모든 경기를 직접 관람한다. 그는눈을 감고도 우리 선수들의 투구, 타격 동작을 떠올릴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선수단 기록도 직접 보정한다.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이런 발품 덕에 그는 넥센에 가장 어울리는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마인드세트(mindset)를 갖출 수 있었다.

 

이장석 대표는 이미 내년 시즌 SWOT 분석을 마친 상태다. 이장석 대표에 따르면 넥센은 다른 팀보다 의사결정을 빨리 할 수 있다는 장점(strength)이 있는 반면 다른 구단보다 자금력이 취약하다는 단점(weakness)은 피할 수 없다. 또 팀 분위기가 상승세를 타고 있어 내년에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기회(opportunity) 요인이 있지만 다른 구단에서 라이벌로 생각해 견제가 심해질 것이라는 위기(threat) 요인도 안고 있다.

 

물론 넥센의 올해 성공이 반짝 신화로 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넥센은 보스가 아닌 리더가 이끄는 조직이고, 리더는 늘 조직 구성원들보다 한발 앞서 구체적인 지점을 가리킨다. 이렇게 살아서 꿈틀대는 조직 문화를 잃지 않는 한 넥센은 언제고 반등할 수 있는 저력을 갖춘 조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성공요인

 

① 절박함이 오히려 약이 됐다.

 

2007년 우여곡절 끝에 국내 프로야구 리그에 합류한 넥센히어로즈는 다른 구단과 비교할 때 태생부터 남달랐다. 먼저 구단 소유주로 든든한 대기업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넥센은 구단의 광고스폰서다. 결국 외부에서 아무런 재정적 지원이 없기 때문에 구단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다. 창단 초창기 재정난에 시달리자 쓸 만한 주전선수들을 시장에 내놓고 구단 운영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은 프로야구계가 넥센히어로즈를 서자로 취급하며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까지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절박함이 오히려 넥센히어로즈에는 약이 됐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는 현실은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더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동분서주하게 만들었다. 또 모기업의 지원이 없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장점이 되기도 했다. 구단이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경영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된 것이다.

 

② 약자의 생존법을 찾았다.

 

영화머니볼(Moneyball)’에서 메이저리그의 가난한 구단인 오클랜드 애틀래틱스의 단장 빌리 빈(브래드 피트 분)이 팀 스카우터들과 다음 시즌 전력보강을 위해 회의를 하는 장면이다. 구단주에게 예산지원을 요청했다 거절당하고 돌아온 빌리 빈 앞에서 스카우트터들은 새로 찾아낸 유망주들을 소개했다. 이때 빌리 빈은우리가 뉴욕 양키즈와 같은 방법으로 팀을 구성한다면 무조건 진다. 무엇인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선수 연봉 예산이 세 배나 더 많은 양키스 구단과 똑같은 방법으로 선수를 평가하고 팀을 만든다면 이길 수 없다. 무엇인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넥센히어로즈도 마찬가지였다. 이장석 대표는 열악한 재정으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만의 경영을 찾아야 했다. 넥센히어로즈는 물량을 대거 투입하지 않고도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적절한 휴식 등의 방법을 고안했고 이런 방식이 속속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③ 숨은 가치와 가능성을 발굴했다.

 

남과 다른 경영전략을 찾는 데는 위험이 뒤따른다. 잘못된 전략을 택했다가는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그래서 넥센히어로즈의 새로운 전략은 철저한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빌리 빈은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에 기초한 선수분석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겉만 번지르르한 선수를 미끼로 타 구단 벤치에 앉아 있는 알짜배기 선수들을 트레이드 해왔다. 이유도 모르고 당하기만 하던 MLB 구단들은 나중에는 또 당할까봐 겁이나 오클랜드 애틀래틱스와는 트레이드를 주저할 정도였다. 넥센히어로즈도 몇 차례 트레이드를 통해 비용들이지 않고 팀 전력을 보강했다. LG트윈스에서 벤치에 앉아있던 박병호의 가치를 알고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왔다. 이장석 대표가빌리 장석이란 별칭을 얻을 정도였다. 투수들에게는 3구 이내에 승부할 것을 주문한 전략은 빌리 빈이 타자들에게 5구 안에 승부를 보지 말라는 주문과 일맥상통한다. 수비에서 볼넷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 넥센히어로즈와 공격에서 볼넷을 더 얻으려는 오클랜드 애틀래틱스의 전략은 동일한 전략이다.

 

이영훈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yhnlee@sogang.ac.kr

이영훈 교수는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량경제와 스포츠경제 분야를 가르치고 있다. 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으며 단행본 <스포츠와 돈> <한국의 야구경제학>을 썼다. 현재 한국야구학회 이사이기도 하다.

 

황규인 동아일보 스포츠부 기자 kini@donga.com

황규인 기자는 서울대에서 언어학을, 서울디지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동아일보 사회부, 국제부, 경영전략실 등을 거쳤고 현재 스포츠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PC통신 등에 야구 관련 글을 썼으며 2005년부터 스포츠 블로그 kini’s Sportugese(http://kini.kr)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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