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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히어로즈

3구 이내에 승부하라 정면대결이 볼넷 줄였다

이영훈 | 143호 (2013년 12월 Issue 2)

 

 

프로야구 넥센히어로즈의 박병호(27) 선수는 인터뷰를 재미없게 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본인도 안다. 기자들 질문에 답하기 전 박병호 선수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이렇게 말하면 재미없겠지만…”이다. 박병호 선수가 가장 재미없던 순간은 2013 114일 열린 시상식 때였다.

 

2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그는 이날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2년 연속 MVP 수상이었다. 기자들은 끈질기게내년에는 홈런 40개 정도는 치겠다는 발언을 이끌어 내려 애썼지만 그는내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전 경기에 출장하고 싶다고만 말했다. 그는 올해 지난해보다 성적이 더 좋아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대처가 좋아졌다. 특히 볼넷이 늘었다고 답했다. 홈런을 더 많이 친 것보다 볼넷이 늘어난 게 좋다는 건 정말 재미없는 대답 아닌가.

 

그런데 사실 이렇게 재미없는 대답 속엔 그가 진짜 대단한 선수인 이유가 숨어 있다. 그는 지난해 투 스트라이크 노 볼로 타석을 시작했을 때 OPS(출루율+장타력) 0.698밖에 안 됐다. 지난해 리그 평균 OPS 0.698이었다. ,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지난해 박병호 선수는 그저 평범한 타자에 불과했다. 올해는 같은 상황에서 OPS 0.923으로 성적이 좋아졌다. 한화의 대표 선수인 김태균(31)의 올 시즌 OPS 0.920이다. 이제 박병호 선수는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도 다른 팀 간판타자 몫을 해주는 대형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전 경기 출장이라는 목표 역시 의미심장하다. 박병호 선수는 올해 128번의 전 경기에 모두 4번 타자로 출장했다. 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2년 연속 전 경기를 출장하고 모든 타석을 4번 타자로 나선 이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박병호 선수뿐이다. 올해 홈런 37개를 친 그가 굳이내년에는 40홈런을 날리겠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저 이 기록을 3년 연속 달성하면 좋겠다는 겸손함 속에 이미 자신감이 녹아 있는 것이다.

 

박병호의 SCQA

 

올 시즌 박병호 선수에게 가장 달라진 건 상체를 많이 젖혀누워치기자세를 취할 때가 많았다는 점이다. 특히 투수 공이 몸 쪽으로 향했을 때 이런 타격 기술을 선보였다. 이 타격 기술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단점을 이겨내려는 그의 전략적 사고가 엿보인다.

 

2005년 데뷔한 박병호 선수는 지난해 처음으로 한 시즌 전체를 소화했다. 그러면서 몸 쪽 공에 약하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게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약한 이유였다. 약점이 분명한 만큼 상대 배터리(야구에서 투수와 포수를 함께 이르는 말)는 유리한 카운트에서 그 코스만 공략하면 그만이었다.

 

몸 쪽 공은 바깥쪽 공보다 타이밍을 더 빠르게 잡아야 방망이 중심에 맞힐 수 있다. 그래서 보통 타자들은 몸 쪽 공을 칠 때 최대한 빠르게 스윙하려고 애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커브나 체인지업처럼 느린 변화구에는 약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몸 쪽 공에 약점이 있는 선수가 바깥 쪽 변화구에도 애를 먹는 건 이 때문이다.

 

박병호 선수는 다른 길을 택했다. 지난 겨우내 그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등 근육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상체가 탄탄하게 받쳐주면서 몸을 뒤로 눕혀 팔을 쭉 뻗은 채로 방망이를 휘둘러도 힘을 실을 수 있게 됐다. 자기 몸을 활용해 공의 상대적 위치를 바꾸는 기술을 터득한 것이다. 그 결과 변화구에 대한 타이밍을 잃지 않고도 몸 쪽 공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됐다. 시즌 초반 박병호 선수는 변화구를 밀어 쳐 홈런을 만들었고 시즌을 치르면서 점점 몸 쪽으로 타이밍을 옮겼다.

 

이제 상대 투수들은 그를 대할 때던질 곳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투수들이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자연스레 볼넷이 쌓이기 시작했다. 올해 프로야구 일정은 지난해보다 5경기가 줄었지만 박병호 선수는 볼넷이 19개 늘었다. 그 결과 지난해 선두였던 한화 김태균 선수를 따돌리고 리그 볼넷 1위를 차지했다. 박병호 선수가볼넷이 늘어 좋다고 말한 건 진심이었다.

 

볼넷은 아웃으로 물러났어야 할 타자를 1루 주자로 만든다. 주자가 많이 되면 득점할 일도 많아진다. 박병호 선수는 리그에서 득점(91)도 가장 많이 올린 선수다.

 

맥킨지컨설턴트 출신 바바라 민토는 자신의 책 <논리의 기술>에서 SCQA 문제 해결법을 제시했다. 어떤 문제를 전략적으로 해결하려면 상황(Situation)을 인식하고, 세부 사항을 따라 전개(Complication)한 뒤, 적절한 질문(Question)을 통해, 해답(Answer)을 찾는 과정을 밟는 게 문제 해결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박병호 선수가누워치기기술을 터득하는 과정에서도 이 네 가지 요소를 모두 찾을 수 있다. 열심히 훈련하지 않는 프로 선수는 생각보다 드물다. 그러나 많은 프로 선수들은 무조건 열심히 죽어라 훈련만 한다. 그리고는왜 나는 운동밖에 모르는데 안 되는 것이냐며 한탄한다. 진짜 문제가 뭔지 모르기에 자기에게 맞는 구체적인 해결법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쉰다. 고로 이긴다

 

2008년 창단한 넥센은 지난해까지 통산 승률이 0.422밖에 되지 않는 약체 팀이었다. 2011년에는 최하위로 처졌다. 지난해는 MVP, 최우수신인을 동시에 배출하고도 팀 순위는 6위였다. 그러던 넥센이 올해 정규 시즌 3(승률 0.571)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전략적 접근법 덕이었다.

 

넥센은 염경엽 감독을 신입 사령탑으로 임명한 뒤 지난 시즌 문제점을 찾는 것부터 올 시즌 준비를 시작했다. 넥센은 지난해도 시즌 중반까지 4강 다툼을 벌였지만 후반기에 무너졌다. 넥센은 지난해 630일까지는 33232(승률 0.508)로 포스트 시즌 진출이 가능한 4위에 겨우 0.5게임 뒤진 5위였다. 그러나 7월 이후에는 28137(0.430)로 무너졌고 4위 롯데와 5.5게임 차이로 6위였다. 여름을 견디지 못했던 것(상황)이다.

 

 

왜였을까. 당연히 선수들 체력이 달렸기 때문이다.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넥센은 자금난 탓에 해체한 옛 현대를 사실상 인수해 창단했다. 넥센 역시 운영 자금이 부족했고 주축 선수 대부분을 시장에 내놓으며 운영 자금을 마련했다. 그 결과 팀에 A급 선수가 부족해졌다(전개).

 

그렇다면 이 부족한 선수 자원으로 어떻게 128경기나 소화해야 할까(질문). 보통 프로야구 선수들은 이럴 때겨우내 단내 나게 굴러 체력을 기르자며 타이어를 등에 메고 뛴다. 특히 2000년대 중후반 김성근(현 고양 원더스) 감독이 SK에서지옥 훈련을 통해 성공 사례를 쓴 뒤로 프로야구에는 강한 훈련이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모든 팀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에게 더 강한 훈련을 주문했다.

 

그러나 넥센의 선택은 휴식이었다(해답). 동계 훈련뿐 아니라 시즌 중에도 그랬다. 넥센은 9개 구단 중 가장 훈련을 적게 하는 팀이었다. 올해 프로야구는 홀수 구단 체제라 한 팀은 1주일에 4일은 경기가 없었다. 다른 팀들은 보통 이 중 사흘 동안 훈련을 했지만 넥센은 이틀만 했다. 그나마 그중 하루는 수비 포메이션을 점검하는 수준. 밤 경기 다음에 낮 경기가 이어지면 또 훈련을 생략했다. 염 감독은전체 체력량이 어차피 정해져 있다면 실전에서 집중적으로 쓰는 게 낫다푹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게 결국 장기 레이스를 치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조직생태학의 대가 마이클 해넌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한 업종의 모범사례를 다른 기업들이 다 따라 하면 결국은 기업 간에 차별점이 사라진 채 경쟁만 심화된다남들과 똑같은 전략이나 시스템을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조직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염 감독은 틈만 나면 휴식을 주는예방 주사 야구를 통해 트렌드를 거슬렀다. 그게 넥센에 가장 맞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임 첫해 창단 후 처음으로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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