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브랜드와 기업브랜드
기업들은 왜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국가브랜드를 활용해야 할까? 국내에서 브랜드 파워가 제법 큰 기업들도 초창기 해외시장에서는 벽을 느낄 수밖에 없다. 새로 진출하려는 국가의 국민성과 문화, 사업환경 등이 익숙하지 않아 빠른 시일에 자사 브랜드를 알리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빨리 알리고 좋은 이미지를 얻으려면 모종의 전략을 펴야 한다. 초기 투입비용을 줄이고 좋은 이미지를 얻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브랜드의 출생지, 즉 국가브랜드와 기업 브랜드를 연계시키는 방법이다. 국가브랜드와 기업 브랜드를 적절하게 연결해서 국가브랜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등에 업으면 시장진입과 인지도 및 이미지 확산에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다. 또 브랜드의 출생지가 브랜드의 또 다른 특성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이미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국가브랜드를 활용해서 세계로 진출했고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프랑스의 스포츠 브랜드 ‘르 꼬끄 스포르티브(le coq sportif)’는 국조(수탉)를 심벌로 사용하고 있다.
르 꼬끄 스포르티브가 생산하는 스포츠 의류에는 수탉을 형상화한 브랜드가 새겨져 있어서 소비자가 프랑스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고 유럽 선진국의 기업들만 자국의 국가브랜드를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개발도상국의 국가브랜드도 특성을 살릴 수 있다면 기업들이 분명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타일 제조 업체인 Malaysian Mosaics Berhad는 화강암의 3배 강도를 가진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한다. 하지만 원산지가 아시아 지역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국가 이름을 브랜드에 사용했고 자신들이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기업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국가 이름을 브랜드로 사용하고 있다. 자메이카에서는 최고 품질의 커피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자메이카 정부는 블루마운틴의 브랜드를 엄격하게 관리해서 우수한 커피 브랜드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하고 있다.
국가브랜드와 기업 브랜드의 묘한 관계
국가브랜드는 기업이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도와주지만 기업이 아무런 전략도 없이 국가브랜드를 이용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국가브랜드와 기업 브랜드의 관계를 명확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기업 브랜드는 국가브랜드에 귀속되는 개념인가?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국가브랜드를 모(母)브랜드 개념으로 보고 기업 브랜드는 국가브랜드에 속하는 하위 브랜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양자의 관계를 이렇게 단순하게 판단하기에는 복합적인 내용을 더 많이 담고 있다. 일단 국가브랜드는 정치와 사회, 문화, 국민성, 산업 등을 포괄하고 있는 큰 개념이다. 정치와 사회, 문화 등 하위 개념의 이미지가 변동할 때마다 바뀌는 동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국가브랜드와 기업 브랜드의 관계는 한 방향에서 흐르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작용을 하는 일종의 공생관계다. 결국 국가브랜드는 숱한 기업 브랜드를 가족처럼 감싸 안고 있으며 기업 브랜드가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자신의 후광을 배분한다. 기업 브랜드는 모두 자유롭게 형성됐지만 국가브랜드를 구성하는 일원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국가브랜드의 가치가 올라가면 기업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고 반대의 경우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국가브랜드와 기업 브랜드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차이를 만드는 요소는 바로 ‘국적’이다. 국가브랜드는 국가의 입장에서 명확하게 정해진 개념이라서 국적이라는 개념이 깔려 있다. 하지만 기업 브랜드에서 ‘국적’은 브랜드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는 있으나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다른 나라의 좋은 이미지가 있다면 이를 자사 브랜드의 요소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제품의 긍정적 이미지를 확대한다. 정부의 시각에서는 자국의 기업이 다른 나라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이 안타까울 수 있으나 기업의 근본적인 목적은 이윤추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삼성과 현대, LG 등 국내 기업의 브랜드는 세계시장에 진출할 때 ‘한국’이라는 국가브랜드의 후광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국가브랜드 경쟁력이 매우 낮아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까지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브랜드 출생지를 알릴 때도 매우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2007년 앤더슨 애널리스트가 미국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8%가 삼성을 일본 기업으로 생각했다. 42%는 LG를 미국 기업으로 생각했고 56%는 현대자동차를 일본 기업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기업들은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이용했다. 삼성은 일본지사를 ‘일본 본사’라고 불렀고 현대자동차는 신차 광고에서 일본의 스모 선수를 등장시키는 등 해외시장에서는 일본의 국가브랜드를 적절하게 이용했다. 다른 국가의 이미지를 기업이 활용하는 것은 한국 기업에만 있는 사례는 아니다. 일반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기업의 원산지가 기업의 철저한 브랜딩 및 마케팅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례가 많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브랜드 출생지보다 타국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일까? 기업들은 제품과 서비스에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부여하고 싶은데 국가브랜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이미지를 자신의 국가들은 가지고 있지 못하고 다른 일부 국가들이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하겐다즈는 덴마크식 브랜드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북유럽의 청정 낙농국 이미지가 고급 천연원료만 사용하는 하겐다즈 제품과 부합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반대로 기업 브랜드가 국가브랜드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서 오히려 국가의 산업이미지를 견인할 때도 있다. 어떤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선도기업으로 명성을 쌓으면 이 기업의 이미지가 해당 국가의 산업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잡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 기업과 같은 국가의 산업에 속한 로컬 기업들도 해외에 진출할 때 이 기업의 브랜드의 덕을 봐서 쉽게 해외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탄산음료 제조기업인 펩시가 성공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펩시가 스스로 큰 노력을 했겠지만 Coke의 성공에 따른 수혜도 크게 작용했다. Coke의 성공으로 ‘콜라’라는 음료 산업이 미국을 대변한다는 이미지가 형성됐고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펩시 또한 코카콜라를 벤치마킹하거나 경쟁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비슷한 사례로 독일의 벤츠와 BMW, 폴크스바겐은 독일의 자동차 산업이라는 국가이미지의 한 축을 형성해 독일의 산업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국가브랜드 및 경제 위상은 강화되고 있으며 국내 기업의 브랜드 경쟁력 역시 강화되고 있다. (2013년 인터브랜드 발표, 삼성 : 8위, 현대자동차 : 43위) 한국의 국가브랜드와 기업의 브랜드가 계속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연결한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게다가 IT의 발달로 소비자의 정보 접근성이 향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계속해서 다른 나라의 이미지를 차용하면 원산지와 브랜드 이미지의 불일치가 나타나 오히려 소비자에게 혼동과 위화감만 조성할 수도 있다. 삼성은 일본 본사를 폐쇄했고 현대자동차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원산지 효과와 국가브랜드
국가와 기업의 관계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바로 원산지 효과다. 원산지 효과는 1896년 독일의 어네스트 윌리암스가 상품에 ‘made in Germany’ 로고를 사용해 국가 이미지를 해외 마케팅에 활용하면서 처음으로 거론됐다. 이후 오늘날까지 소비자의 구매를 촉진시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원산지 효과란 제조국의 정보가 소비자의 구매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한다. 특히 제품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을 때는 제조국의 이미지가 소비자들이 제품을 고를 때 더 크게 작용한다. 제품 브랜드가 특정 국가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하면 소비자들은 즉시 특정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와 품질 수준을 떠올리고 이에 준하는 프리미엄 가격을 지불한다.
한국산 제품의 가격을 100으로 정하고 일본과 중국, 독일, 미국에서도 동일한 수준의 제품이 생산됐다고 가정하면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가격은 국가마다 다르다. KOTRA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과 미국, 일본의 순으로 원산지 효과가 크다. ‘Made in Germany’의 제품은 ‘Made in Korea’의 제품과 비교할 때 가격 프리미엄을 37.1%나 누리고 있다. 중국은 낮은 원산지 인식의 영향을 받아 독일의 절반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2006년부터 실시된 KOTRA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원산지 이미지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일본과 비교할 때 원산지 효과 격차가 2006년 48.8%에서 2011년 21.0%까지 줄었다. 원산지 효과는 기업 브랜드 파워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되기도 한다. 현재 애플의 아이폰은 제품 개발과 설계, 디자인 등은 미국 본사에서 이뤄지고 있으나 제품은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아이폰의 원산지를 중국으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업 브랜드가 강력한 경쟁력을 형성하고 있을 때 원산지 효과는 상대적으로 작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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