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①-김개천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별(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Issue 1 과거
왜 아름다움이 중요한가.
아름다움은 생명의 본능이다.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형식이다. 생생함을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것들이 살기 위한 방법,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꽃들은 다 아름답다. 자신을 꾸미려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 곤충들이 아름다운 형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꽃은 곤충을 유혹해야 생존한다. 모든 생명체는 특정 형식에 마음이 끌린다. 꽃은 곤충의 마음을 끌지 못하면, 즉 아름답지 못하면 생존하기 힘들다. 아름다움을 모른다는 것은 생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보기에 아름답지 않은 동물이나 생물도 있다.
그런 측면이 바로 디자이너들의 실수를 유발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은 다 다르다. 아름다움의 절대적 기준은 없다. 절대 비례나 조화 이런 키워드는 과거에 아름다움을 보장해줬다. 옛날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건축의 예를 들어서 과거와 달라진 아름다움의 기준을 설명해달라.
그리스 시대에는 조화와 비례가 아름다움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은 황금 비례로 지어진 수학적 건축이다. 볼륨감이나 색상 등은 나중에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지만 그리스 시대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최고의 아름다움이란 영혼 불멸의 양식, 변하지 않는 형식이어야 했다. 색상 같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이데아(Idea)를 추구했던 그리스인은 색상처럼 변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봤다. 대신 기하학적 법칙으로 구성된 비례를 영원한 형식으로 봤다. 물론 그리스인의 생각이 나중에 완전히 부정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아름다움에 절대불변의 원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리스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맥을 같이한다.
그리스 시대 이후에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달라졌나.
시대가 달라지면 미에 대한 기준도 달라진다. 로마인들은 영원불멸의 이데아를 추구하기보다 현실의 존재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다. 르네상스로 가면서 이런 성향이 더욱 강해졌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신의 원리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데아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왜 물질의 형식을 빌려서 ‘현현(顯現)’해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을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갖고 있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물질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현존하는 물질, 색깔, 공간, 심지어는 감정 등이 모두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소재가 된 것이다.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자연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Issue 2 현재
아름다움에 대한 최근의 인식 중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무엇인가.
형태를 안 갖는 것에 대한 관심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구름을 보면 아름답지 않나. 구름은 형태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계속 변화하는 형식을 갖고 있다. 바람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형식들은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다. 사랑으로 얘기해보자. 나는 당신을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사랑할 이유가 없어졌을 때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사랑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타적 사랑이라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기애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형태가 없는 사랑은 다르다. 상대가 어떤 형태를 갖더라도 사랑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이유가 없이 그냥 좋은 것이 진짜 사랑이다. 상대의 거의 모든 면이 좋게 느껴지는 것, 형태가 없는 것이 더 숭고한 사랑이다. 내 얼굴을 봐라. 이 안에서 장동건 얼굴을 찾을 수 있나? 전혀 못 찾을 것이다. 나의 얼굴은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느낄 수 없다. 이게 바로 한계다. 뭔가 제한돼 있고 고정돼 있는 것은 안정적이긴 하지만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없다. 자유롭지 못하다. 형태를 안 갖게 되면 자유롭다.
형태를 갖지 않는 형식을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추상 같은 게 대표적이다. 현대는 보이지 않는 형식을 아름답다고 하는 시대다. 이런 흐름의 정점은 미니멀이다. 미니멀은 단순함만 추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게 아니다. 재료의 속성에만 의지하는, 다시 말하면 재료에 성질에만 의지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에 의지한 게 아니다. 미니멀의 대가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는 거대한 철판 하나를 둥글게 세워 놓은 유명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모양만 보고 단순한 형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작가는 철판이 녹슬면서 재료의 속성이 다른 걸로 변화하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 것이다. 과거의 아름다움은 형태를 추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준이 달라지다가 20세기 들어와서 인류는 형태를 벗어버리고 그 형태가 가진 어떤 속성에 의지했다. 형태를 버린 것,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인류의 여정에서 20세기의 끝은 이렇게 장식됐다. 이게 한 시대의 끝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가 열리고 있다.
20세기 얘기 조금만 더 하고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자. 미니멀의 사례를 들어달라.
20세기 미니멀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두 사람을 들 수 있다. 우선 미스 반 데에 로에(Mies van der Rohe)라는 독일 건축가다. 우리나라 삼일빌딩은 미스 건물의 대표적인 아류다. 그가 만든 미국의 시그램빌딩(Seagram Building)을 그대로 모방했다고 할 수 있다. (사진1) 철과 유리로만 된 건물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다. 또 르 코르뷔제(Le Corbusier)는 요즘 박스처럼 보이는 건물들의 원형을 만든 디자이너다. (사진2)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사각형 박스로 된 건물들이 다 그의 영향이다. 물론 현대에 이런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 그런(형태가 아닌 속성에 주목했다는) 취지를 알고 만든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유행이라서 모방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몇몇 선도적 작가들이 본래의 의미를 깨닫고 작품을 만들었다. 문화라는 건 위에서 밑으로 흘러간다. 선도자의 깊은 뜻을 몰라도 유행은 확산되곤 한다. 그냥 멋있어 보여서 쓰는 사람도 많다.
미니멀이 재료의 성질, 속성에 의존했다고 했는데 속성이 왜 중요한가.
속성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아름다움의 형식은 없다는 생각이 더 중요하다. 무언가 가지지 않는 게 오히려 아름다운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그 원질을 따져봤을 때 재료가 계속 변하는 성질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의 얼굴보다는 마음의 아름다움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바로 그런 얘기를 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름진 노인 얼굴 사진에서도 굉장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장미란 선수의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바로 그게 현대적 아름다움이다. 마음이라든가, 그 사람이 가진 정신이라든가 태도, 이런 것들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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