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tegic Communication
DBR 129호에서 갈등이 생기는 원인을 크게 4가지, 즉 1)다름의 충돌 2)구조의 충돌 3)이해관계의 충돌 4)해석의 충돌로 나눠 설명했다. 앞으로 각각의 갈등에 대한 원인별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번 호 DBR에서 소개하려는 문제는 다름의 충돌이다.
강의를 진행하다가 참가자들과 간단한 테스트를 할 때가 있다. 두 손가락을 모아 손깍지를 껴보라고 말한다.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 해보시라. 그럼 두 개의 엄지 손가락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덮게 된다. 필자의 경우 왼손 엄지가 오른손 엄지 위로 올라온다. 혹시 필자와 다르게 오른손 엄지가 위로 올라온 독자가 있는가?
그럼 반대로 한번 해 보자. 느낌이 어떤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들은 내가 불편한 손을 위로 올려 놓고 지낸다. 왜일까? 그들이 괴로움을 즐기는 사람이어서? 당연히 아니다. 그들에겐 그것이 익숙하고 편해서다.
이 작은 실험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나에겐 너무 불편한 것이 상대에겐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우리는 ‘성향’의 문제라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기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 바로 성향이다. 성향이란 ‘짜장면’을 좋아하다가 ‘짬뽕’을 좋아하게 되는 것과 같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상대의 성향이 나와 다르다고 그를 비난할 순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맞춰나가야 한다.
상대의 성향에 따른 갈등 해결의 궁합을 맞춰라
사람의 성향은 다양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그 모습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갈등 상황에서의 성향별 대처 유형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가 토마스(Kenneth W. Thomas)와 킬만(Ralph H. Kilmann) 박사가 제안한 5가지 갈등 대처 유형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갈등 대처 방식을 ‘상대에 대한 협력 정도’와 ‘내 목표 달성 의지’라는 2가지 축에 따라 5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그림1) 회피형, 호의형, 타협형, 경쟁형, 협력형이 그것이다.
회피형은 갈등 상황 자체를 피하려고 한다. 부부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간단한 예로 풀어보자. 일주일 내내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 불만이 머리 끝까지 쌓인 부인. 토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남편에게 부인이 쏘아붙인다. “당신한텐 여기가 하숙집이야?” 부인의 잔소리가 시작되려 할 때, 회피형 남편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일어나 집을 나선다. 그가 향하는 곳은 사우나. 회피형은 갈등이 생기면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기 위한 안식처를 찾는다. 조직에선 회의 시간에 첨예한 의견 갈등이 생기면 슬며시 자리를 피하는 사람이 이런 유형이다.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건 갈등 상황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갈등 이슈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거나 중요한 일이 아닐 때는 이런 유형의 접근이 의미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의견을 반영하는 게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끌어들여야만 한다. 그렇다고 강제로 갈등 상황에 집어 넣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회피형의 사람과 만났을 때엔 ‘동굴 속에 숨어 있는 곰’을 생각하면 된다. 곰을 동굴 밖으로 나오게 하겠다고 밖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물을 뿌리면 그 곰은 더 깊이 숨는다. 회피형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겐 ‘시간’과 ‘정보’가 필요하다. 지속적인 정보 제공과 기다림, 그래서 스스로 ‘움직이겠다’고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호의형은 이른바 ‘예스맨(Yes man)’ 같은 사람이다. 앞에서 살펴본 부부 사이의 예로 빗대 설명해 본다면 호의형 남편의 경우 부인에게 “미안해, 다신 안 그러도록 노력할게”라고 곧장 사과한다. 이유는? 호의형은 치열한 논쟁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 내기보다 상대와 내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둔다. 또한 호의형은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길 원한다.만약 당신의 부하직원이 호의형이라면 함께 일하기는 참 편할 것이다. 어떤 지시를 해도 “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올 테니까. 하지만 호의형에겐 ‘한 방’이 있다. 밝게 열심히 일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더 이상 힘들어서 회사 못 다니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호의형이다.
그럼, 호의형 부하직원이 갑작스레 폭발하지 않고 꾸준히 일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이들의 “Yes”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항상 감안해야 한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괜찮구나’라고 짐작하는 건 위험하다는 뜻이다. 호의형 사람들의 “Yes” 뒤에는 셀 수 없는 ‘참을 인(忍)’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꾸준한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호의형과 함께 일을 할 때는 지속적인 관심과 인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상대가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겐 “이번 일에선 A 안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어떤 것 같아?” 같은 주관식 질문보다는 “A, B, C 세 가지 대안이 있는데 어떤 게 좋을 것 같아?”라는 식으로 객관식의 보기를 제시하는 게 좋다. 이를 통해 업무상 간접적으로나마 부하직원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혹시 당신의 배우자가 갈등 상황에서 “미안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그의 스트레스 지수가 안전한 수준인지.
타협형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빨리’ 끝내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공정하게 양보해 해결하는 것을 선호한다.술을 좋아하는 타협형 남편의 행동도 간단하다. “오케이, 다음 주부터는 일주일에 월, 수 이틀은 양보할게. 대신 나머지 3일은 간섭하지마!” 타협형의 대응은 제한 시간 내에 결정을 해야 할 땐 아주 효과적이다. 하지만 결과에 아무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어느 한쪽도 ‘온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타협형을 만났을 때에는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는 생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쉽게 양보할 수 있는 것과 꼭 얻어야만 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 둘 필요가 있다.이들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경쟁형은 본인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는 유형이다. 그래서 남편이 경쟁형이라면 부인의 잔소리가 엄청난 ‘재앙’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에 반대 의견을 들으면 ‘공격’ 받았다고 느낀다.이렇게 설명하면 경쟁형은 마치 ‘독불장군’인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경쟁형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사건 당시 이와테현의 수많은 사람들이 쓰나미 직격탄을 맞았다. 그런데 이와테현에서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마을이 있었다. 바로 후다이마을이다. 비결은 마을 앞에 세워진 높이 15.5m의 방조제와 수문이었다. 이것은 1960년대 촌장이었던 와무라 유키에(和村幸得)가 만든 것이었다. 당시 유키에 촌장이 수문 건설 계획을 발표하자 주민들의 반발이 엄청났다. 온 마을 주민들이 36억 엔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가면서까지 15m 이상의 수문을 쌓아야 하느냐며 집단 반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갈등 상황에서도 유키에 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유는? 과거 이 마을에서 두 차례나 쓰나미가 발생해 439명이 목숨을 잃었던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유키에 촌장의 고집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1 갈등 상황을 피하거나 양보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처럼 확실한 정보가 있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면 경쟁형도 꼭 필요하다.
협력형은 아무리 갈등이 심해도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는다. 대신 갈등 당사자 모두 참여해 의견을 조율하길 원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놓으며 갈등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풀어보려 시도한다.그럼 부인의 잔소리에 대응하는 협력형 남편의 태도는 뭘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당신은 내가 집에 일찍 오길 바라지? 좋아, 그럼 일주일에 이틀은 밖에서 술을 마시고, 나머지 3일은 당신이 술상을 차려주면 집에 와서 마실게. 어때?” 이렇게 갈등 상황에서 뭔가 그럴싸한 아이디어를 내야만 직성이 풀린다. 협력형은 이처럼 기존에 없던, 그리고 양측 모두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한다. 이런 유형은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낼 확률은 높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어떤 유형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모두 장단점이 있다. 문제는 상대의 갈등 대처 유형이 뭔지 모른 채 상대의 행동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판단할 때다. 예를 들어, 회피형과 타협형이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자. 회피형은 자신이 ‘준비’가 다 되지 않으면 갈등 해결에 뛰어들지 않는다. 반면 타협형은 자기 것을 양보해서라도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타협형은 회피형을 만나면 기분이 나쁘다. 타협형인 나는 양보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빨리’ 풀고 싶은데 회피형인 상대는 나를 외면하며 ‘시간을 끌기’ 때문이다. 급기야 상대가 날 무시한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호의형과 협력형이 만났을 때도 문제가 복잡해 질 수 있다. 호의형은 ‘양보’를 해서라도 빨리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런데 협력형은 양보를 얻어내는 것보다 ‘양측 모두’ 만족할 만한 대안을 찾고자 계속 시도한다. 이 때문에 호의형은 협력형을 만나면 힘들다. 양보를 하고 또 해도 계속 뭔가 새로운 걸 요구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을 꿈꾸며 접근하는 협력형의 시도가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는 나쁜 행동’으로 오해되는 순간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행동 유형이 있다. 그걸 틀렸다고 말할 순 없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 무조건 상대에게 맞출 수도 없다. 다만 상대의 유형을 알고 이해하라. 그럴 때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납득할 수 있다.기억하라, 어떤 것도 정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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