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 YG엔터테인먼트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영경(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인기 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 이름을 날렸던 양현석은 1996년 본인의 별명을 딴 양군기획이라는 연예기획사를 설립했다. 2001년에 YG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는 지누션, 원타임, 휘성, 거미, 세븐 등의 인기가수를 꾸준히 키워왔다. 대형 한류 기획사로 성장하게 된 것은 빅뱅과 2NE1가 데뷔한 2000년대 중반 이후다. 이수만의 SM엔터테인먼트, 박진영의 JYP엔터테인먼트와 더불어 3대 한류 연예기획사로 꼽힌 것도 이때부터다. 매출과 이익구조가 안정되면서 2011년에는 코스닥시장에 상장돼 주식이 공개 거래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소속 가수인 싸이가 ‘강남스타일’과 함께 글로벌 스타가 되면서 YG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재무적 성과도 좋아졌다. 2010년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448억 원, 103억 원이었는데 2012년에는 각각 두 배 정도 오른 1066억 원과 215억 원이었다. 2013년에는 싸이의 활약에 힘입어 50% 정도 더 성장할 것으로 증권가는 예상하고 있다.
회사가 급격히 성장하는 동안 YG의 양 대표 프로듀서는 회사 브랜드 전략을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YG에도 물론 마케팅팀이 있고 앨범 재킷 등을 디자인하는 디자인팀이 있다. 하지만 싸이, 빅뱅, 2NE1, 이하이 같은 대형 스타들의 수가 늘어나고 사업 영역이 확장되면서 일관성 있는 브랜드 관리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무엇보다 아티스트의 브랜드와 회사 브랜드와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도 애매했다.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의 대외적인 얼굴은 아티스트다. 기획사의 브랜드를 너무 강하게 드러내면 개별 아티스트의 팬들에게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싸이의 팬이 싸이의 소속사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비즈니스에 있어서는, 또 내부 조직 운영을 위해서는 회사 브랜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필요했다. 2012년 말 기준 직원 수는 138명까지 불어났다. 직원들에게 ‘YG는 이런 회사다’라는 철학을 확립해줘야 했다. 또 YG는 지금껏 음악 콘텐츠들에 주력해왔지만 앞으로는 문화나 라이프스타일 쪽으로의 다각화를 고려하고 있었다. 브랜드 전략에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고민이 깊어지던 2012년 여름, YG는 브랜드 경험 컨설팅사인 플러스엑스(PlusX)에 브랜드 리뉴얼을 맡겼다. YG 미래전략실 이윤호 팀장은 “이번 프로젝트의 최초 목표는 가이드라인에 대한 정리였습니다. 아티스트와 콘텐츠에 대한 브랜딩이 워낙 강하다 보니 회사 차원에서의 브랜딩이 약해 보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아티스트나 콘텐츠의 브랜드와의 유동성을 가지면서도 견고한 YG의 가이드라인을 갖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YG의 미래전략실 직원 3명, 플러스엑스의 인력 15명이 투입됐다. 플러스엑스는 이러한 작업을 ‘브랜드 경험(BX·Brand Experience)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BX 디자인은 BI(brand identity), CI(corporate identity), UI(user interface), UX(user experience) 디자인을 아우른다. 국내에서도 SK텔레콤 등 몇몇 기업에서 BX라는 개념을 도입한 적은 있으나 아직 보편화된 방법론은 아니다.
브랜드 전략 재검토를 위한 3단계 프로세스
브랜드 경험 전략은 브랜드가 고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전달해야 하는지, 브랜드가 어떤 모습과 목소리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디자인 에센스(로고, 컬러, 서체, 그래픽모티브, 소재 등)’와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낸다.
좋은 브랜드 디자인은 기업의 가치관을 담는다. 멋지고 예쁘고 세련된 로고를 만든다고 그게 사업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성공적인 리브랜딩은 단지 이름이나 로고를 멋지게 바꾸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브랜드가 그 회사의 비전, 메시지, 문화와 어울리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다. 회사가 추구하는 바와 브랜드가 어울리지 않을 경우, 혹은 고객들이 느끼는 회사의 이미지와 브랜드가 어울리지 않을 경우 좀 더 자연스럽게 매칭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재조정해야 한다.
미국의 경영전문 웹사이트인 비즈니스인사이더(Business Insider)는 2010년 ‘리브랜딩 10대 실패사례’1 중 하나로 오렌지주스 브랜드인 ‘트로피카나(Tropicana)’를 꼽았다. 이 주스는 원래 동그란 오렌지에 빨대가 꽂혀 있는 그림이 그려진 패키지를 사용했다. 이것을 2009년에 리브랜딩하면서 커다란 잔에 오렌지주스가 담겨 있는 그림으로 바꾸었다. 그림 자체는 이전 것보다 세련돼 보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SNS상에서 혹평을 쏟아냈다. <뉴욕타임스> 등 언론 매체도 ‘멍청하다’ ‘저가 마트 브랜드 같다’고 비아냥댔다.2 기존 로고가 보여주는 ‘오렌지에서 직접 뽑아먹는 것처럼 신선한 주스’라는 상징성, 그리고 로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쁘게 만드는 데만 신경 쓴 것이다. 결국 두 달 만에 트로피카나는 돈만 날리고 원래의 오렌지에 꽂힌 빨대 로고로 복귀했다. 그나마 브랜드에 대한 고객들의 충성심을 확인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YG 프로젝트팀은 이러한 실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내부 직원들이 원하는 바부터 파악했다.
“YG가 오랜 기간 사용해오던 로고에 대해 내부 담당자와 직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습니다. 이분들의 고민은 로고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 요소들을 정의하고 이를 일관되게 사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BX 기획을 맡은 플러스엑스의 정의선 마케터의 말이다.
일단 완전 변경이 아닌 ‘브랜드의 진화’로 프로젝트의 성격을 정의한 후, 이제 어떤 방향으로 진화시킬지를 정해야 했다. 먼저 YG의 브랜드 기저에 깔려 있는 ‘핵심가치’를 정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브랜드 핵심가치란 사람들이 ‘이 스마트폰은 삼성답다’ ‘BMW 스타일이 잘 살아 있는 모델이다’ ‘이 웹사이트는 네이버스럽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과 같이 그 브랜드에 대해 느끼는 종합적인 이미지를 의미한다. 이런 이미지를 정확한 언어로 규칙으로 설명해놓아야 나중에 나올 제품과 디자인도 일관성 있게 만들기 쉬워진다.
그렇게 핵심가치를 먼저 수립하고 나서(Step 1), 그에 어울리는 디자인 원칙과 디자인 에센스들을 도출했으며(Step 2), 마지막으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애플리케이션(실제 활용사례)을 통한 방법론을 제안했다(Step 3).
Step 1: 회사를 이해하기
브랜드 리뉴얼의 첫 작업은 클라이언트의 핵심 가치를 파악하는 것, 즉 이 조직이 어떤 철학과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를 알아내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플러스엑스의 신명섭 이사, 정의선 마케터, 윤지영 선임 디자이너는 8월 말부터 10월까지 약 2개월간 YG의 여러 임직원들을 인터뷰했다. 주로 앞으로의 비전과 방향성, 리뉴얼의 수위 및 실무진의 요구 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프로젝트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성과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기 위해서였다.
내부 직원의 의견뿐 아니라 대중문화의 소비자들이 YG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도 알아야 했다. 이를 위해 2006년3 부터 2012년 9월까지 6년간 나온 YG 관련 언론 기사와 TV 출연을 분석했다. 데이터를 아티스트별, 연도별, 주제별로 분류한 후 아티스트들이 말한 내용, 혹은 언론기사가 이들을 묘사한 표현 중에서 공통적인 주요 키워드를 추출했다. (그림1) 우선 인터뷰와 언론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을 문장으로 나열하고(a) 이 중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핵심이 되는 문구를 하이라이트해 표시한다(b). 그리고 이러한 핵심 문구에서 간결한 키워드들을 도출해낸다(c).
인터뷰와 리서치를 통해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후 프로젝트 참가자가 모두 모여 포스트잇을 활용한 키워드 브레인스토밍 작업을 진행했다. 브랜드 키워드가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브랜드 디자인 키워드도 추출해냈다. (그림4)
브랜드 디자인 키워드를 뽑아내니 다른 기획사들과 차별되는 점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예쁘장하게 생긴 걸그룹, 보이그룹을 키우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YG의 간판인 빅뱅, 싸이, 2NE1, 이하이 등은 ‘강남스타일’의 가사처럼 울퉁불퉁한 개성을 강조한다. 외모도 노래도 제각각 튀는 스타일이다. 일관된 ‘YG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아티스트가 갖고 있는 색깔을 최대한 살려주고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티스트가 개인 변호사를 두고 회사로부터 스스로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해주고 있었다. 회사 정책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YG스타일’이라는 점을 프로젝트팀은 발견했다.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